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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96화 (396/1,000)
  • 397화 나쁜 놈 (3)

    유다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원래 얼마 전까지 쓰던 이름은 마동왕(麻棟汪), 지금은 개명해서 마동섭(麻棟燮). 키 187센티미터에 몸무게 90킬로그램. 현실에서는 컴뱃삼보 슈퍼미들급 출신으로 러시아 유학파래요. 현재 레드문이라는 기업의 스폰을 받고 있는데 그 기업의 총수가 차규엽이에요. 프로게이머로 데뷔하기 전 전적이 깨끗한 걸로 봐서는 사설토토 불법리그 같은 곳에서 뛰던 사람 같은데…….”

    이토록 실력이 출중한 신인 게이머의 정보가 많이 없는 게 유다희는 굉장히 수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수상하다고 느낄 껀덕지도 없었다.

    ‘…오랜만이네.’

    나는 눈앞에 있는 진짜 마동왕, 아니 이제는 마동섭이 되어 버린 이의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뎀 프로리그를 몰락으로 이끈 장본인, 승부조작의 아이콘, 뎀 팬들이 두고두고 치를 떠는 E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오점.

    원래 ‘본좌’ 마동섭(개명 전 마동왕)은 ‘투신’ 마태강과 함께 ‘쌍마(雙馬)의 시대’를 이끌었던 주역이었다.

    당시 그를 따라다니던 별명만 해도 본좌 외에 ‘마스터피스’, ‘마걸작’, ‘마본좌’ 등 꽤나 화려했었다.

    한때 E스포츠, 그 중에서도 뎀 프로리그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최고의 주역들 중 하나임에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그 뒤 별명들이 중요하지.’

    마막장, 마레기, 마주작…. 온갖 불명예스러운 별명들이 그 뒤를 따라다니게 된 것은 마동섭이 승부조작 브로커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였다.

    당시 마동섭은 두 개의 건틀릿과 등에 짊어지고 있는 하나의 방패(셋 다 뿔이 돋아나 있어서 3뿔)라는 혁명적인 아이템 빌드를 사용했다.

    두 주먹으로 적을 공격함과 동시에 반격이 들어오면 몸을 빙글 돌려 등의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흘려보냈고 다시 빙글 돌아 손등이나 팔꿈치의 뿔을 이용한 백스핀 블로우로 공격해 오는 공격패턴.

    말로만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당해 보지 않은 자는 그 기상천외함을 알 수 없다.

    또한 리자드맨 종족이 프로리그를 지배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오크 전사였기에 그 기대감은 더했다.

    오크라는 틈새시장 공략과 압도적인 성적.

    이는 상대 선수의 불안감을 자유자재로 조장하고 이용하는 심리전 능력과 전투 내내 벌어지는 돌발변수에 대한 임기응변식 대처능력, 상대방의 도발은 무시하고 자신의 도발은 무조건 콕콕 박아 넣는 인성질(?)이 콜라보레이션 된 결과였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지.’

    마동섭이 본좌 소리를 들으며 본격적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쌍마의 시기’는 임요셉으로 대표되던 대격변 전 올드비들이 전부 몰락한 직후이다.

    이 시기부터는 경기 자체가 종족빨에 의해 심하게 좌우되었으며 탄탄한 기본기와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정형화된 템트리와 전술, 특성 조합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어찌 보면 ‘정답’이 존재하는 양산형 전투법이 크게 범람하던 시기였기도 하다.

    마동섭의 변칙적이고 임기응변 식의 운영은 분명 천재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당일 컨디션이나 감정 상태에 의해 낙폭이 컸고 또 워낙에 많이 분석되고 연구된 패턴이니만큼 양산되는 카운터, 천적들의 물량공세에는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마동섭은 올드비와 뉴비 사이에 있는 선수로 대격변의 과도기에 잠깐 끼어 있던 세대이기에 그의 몰락은 필연적인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마동섭 본인이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한 연구를 게을리 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었다.

    같은 세대이면서도 오랫동안 롱런한 투신 마태강은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수련으로 더 높은 경지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

    ‘……그런 면에서 아쉽긴 아쉬웠지. 그래서 놈의 메타를 내가 일찌감치 선점한 것이기도 하고.’

    나는 마동왕 메타를 떠올리며 향수에 젖었다.

    그 시절의 마동왕(현 마동섭)은 분명 빌어먹을 놈이지만 그때 열광하던 팬들의 벅찬 감동만은 진짜였다.

    싸그리 배신당하기 전만 해도 분명 나 역시 가슴 떨린 감격을 느끼며 흥분에 취했었으니까.

    (그래서 마동섭이 더욱 나쁜 놈이리라)

    당시 마동섭의 소속팀은 그가 임요셉의 뒤를 이을 뎀 프로리그의 화신, 아이콘이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투자를 하던 차였다.

    만약 마동섭이 제대로 된 커리어를 유지했더라면 마태강과 함께 E스포츠 역사에 그 이름을 당당히 남겼을 것이다. 뎀 프로리그를 제 2의 전성기로 이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며 이 모든 업적은 먼지처럼 스러졌다.

    공중파 3사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그랜드 슬램 달성과 함께 놈은 뎀 프로리그에서 영원히 퇴출당했다.

    LGB 게임 방송사 주최 리그 전적과 수상 경력도 전부 소멸했고 E스포츠 스타디움 1층 명예의 전당에 걸려 있던 마동섭의 사진 역시 전부 내려졌다.

    역대 우승자 목록에서도 그의 이름은 깔끔하게 지워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실질적으로 마동섭은 모든 전적 기록이 말소되어 공식적으로는 프로게이머조차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 봉사 360시간이라는 법원의 판결까지 내려져 완전히 범죄자가 되어 버렸다.

    돈 부족할 것 없이 잘 나가던 놈이 승부조작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괘씸하다는 이유로 양형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팬들이 실망하고 분노한 것은 이 마동섭 사태 때문에 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아 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가 지정 정식 종목에서 제외될 뻔하여 선수들의 군면제까지 날아갈 뻔했다.

    이토록 모든 이들의 공분을 사는 와중, 마동섭은 개인방송 리그에서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벌어 놓은 돈과 후원금으로 외제차에 고급 빌라를 샀고 전신을 명품으로 도배한 모습을 보여주어 다른 선수들이나 팬들을 박탈감에 젖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매번 클럽에서 VVIP 행사를 즐기는 모습들도 종종 언론에 노출되었다.

    매번 SNS에 연예인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모델 급 미녀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을 인증하는 통에 SNS 플랫폼 쪽에서도 경고가 들어올 정도였다.

    이때쯤 해서 다른 프로 선수들의 폭로도 이어졌다.

    마동섭은 평소에 인사를 잘 안 받아주기로 유명했다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어서 팀의 불화를 키웠다거나 하는 비호감적인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아예 그딴 짓 못하게 싹을 뽑아 줘야겠다.”

    이번에 마동섭이 몸담고 있는 구단은 ‘바스터즈’, 차규엽이 이끌고 있는 ‘레드문’ 기업의 후원까지 받고 있다고 하니 더욱 잘됐다.

    마동섭을 짓밟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구단은 무슨 죄일까 싶어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었는데 말이다.

    삭주굴근(削株堀根). 아예 뿌리까지 뽑아 버린다.

    내 각오를 들은 유다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왕님, 아시는 사람인가요?”

    “…음. 예전에 조금.”

    나는 마동섭의 플레이 영상을 틀며 대답했다.

    이내 동영상이 재생되며 마동섭이 등장했다.

    검은 후드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플레이어.

    하지만 3미터가 넘어가는 큰 키와 장대한 근골, 로브 안으로도 드러나 보이는 엄청난 근육량을 보면 그의 종족이 오크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다.

    동영상 속 마동섭의 모습은 호쾌하기 그지없었다.

    [콰쾅!]

    자신의 앞으로 달려드는 리자드맨 전사의 턱을 커다란 주먹으로 후려쳐 날려버린 동시에 뒤에 있던 다른 오크의 몸뚱이를 주먹을 뚫어버린다.

    아래턱이 뜯겨져 나간 리자드맨이 땅에 떨어지는 동시에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오크도 무릎을 꿇고 사망 로그아웃.

    [우지지지직!]

    그 뒤로 인간 마법사 두 명이 불과 얼음을 퍼붓는다.

    마동섭은 단단한 육체를 내세워 그 마법들을 그냥 씹어버렸고 허공으로 펄쩍 뛰어올라 두 마법사의 목을 잡아 그대로 땅에 내팽개쳐 버렸다.

    뒤를 이어 리자드맨 궁수가 화살을 쏜다.

    마동섭은 몸을 틀어 방패를 이용해 화살을 튕겨냈고 자신의 몸을 포탄처럼 날려 리자드맨 궁수를 그대로 밟아 죽여 버렸다.

    [뿍!]

    이후 대검을 든 인간 전사의 공격을 그냥 맨몸뚱이로 받아내 버리는 기염을 토했고 그 인간 선수는 자기 얼굴만 한 마동섭의 주먹에 맞아 그 자리에서 피떡이 되어 버렸다.

    [퍼억-]

    마지막으로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벗어 냅다 집어던져서 도망치는 리자드맨 도둑의 등팍에 박아 넣는 것으로 마동섭의 플레이 영상은 끝났다.

    이 경기에서 마동섭이 기록한 연속 킬 수는 7.

    한 경기에서 나오기 힘든 헥사(hexa)킬이었다.

    총 전적은 7/1/2로 7킬 1데스 2어시스트.

    하지만 댓글들은 그렇게까지 뜨겁지 않았다.

    -오 저 정도면 잘 싸우네ㅋㅋ

    -ㅇㅇ양호한 수준

    -마동왕 하위호환 아니냐?

    ↳ㅇㅈ짭동왕이다

    -대격변 전 마동왕 정도는 되는 듯?

    ↳그거보다 못한 것 같은데, 그때 마동왕 인간시절인데도 50명중 과반수 이상을 혼자 죽였다ㅋㅋㅋㅋ

    ↳그 시절 마동왕 킬뎃이 아마 (26/0/2)이었지? 완전 미쳤었는데...

    ↳그때랑은 다르지. 선수들이 다 상향평준화되었잖냐.

    ↳그때랑은 다르긴 뭐가 달라, 이번 시즌에도 마동왕은 그 정도 성적 내더만ㅋㅋ

    -리틀 마동왕 급?

    -언럭키 마동왕이다ㅋㅋㅋㅋ

    내가 관중들의 눈을 너무 높여놓은 까닭이다.

    짭동왕, 리틀 마동왕, 언럭키 마동왕, 하위호환… 마동섭에게는 다양한 별명들이 생겼다.

    본좌, 마에스트로, 마신 등등의 별명으로 불릴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래. 너는 좀 설욕을 겪을 필요가 있어.”

    내가 메타를 선점해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어 놨으니 아무리 잘 해도 나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유다희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다.

    “보니까 원래 몸담고 있던 격투기 계에서도 승부조작 때문에 퇴출당해서 게임계로 넘어온 것 같더라구요. 일방적으로 이기고 있다가 갑자기 코너에 몰려서 졌는데 나중에 마동섭의 감독과 코치가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고 판독기를 돌렸다나 봐요. 사각지대에 있던 카메라까지 돌린 끝에 일부러 한 손을 안 쓰고 있던 게 잡혔다고… 조사결과 승부 전에 출처불명의 막대한 금액이 마동섭의 계좌로 입금되었다는 보도 때문에 더욱 더 궁지에 몰렸겠죠.”

    “그래? 그건 몰랐네. 진짜 싹수부터가 노란 놈이구나. 팬뿐만 아니라 자기를 키워 준 감독이랑 코치, 구단까지 배신한 거잖아.”

    “하지만 그 재능만은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예요. 일부 유저들의 추측으로는 어쩌면 마왕님에 버금갈지도 모른다고…….”

    나는 유다희의 말에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네?”

    유다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놈은 우리 태강이 선에서 정리될 거다.”

    쌍마(雙馬)의 시대 중 가장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본좌 마동왕’과 ‘투신 마태강’의 빅매치. 모든 이들이 쌍마의 대결을 보길 원했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매번 쌍마 중 누가 더 강한지 갑론을박 토론이 벌어졌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그 둘은 한 번도 개인리그에서 마주쳤던 적이 없다.

    회귀 전의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둘의 대결.

    나는 이번 기회에 그 빅매치를 성사시켜 볼 작정이었다.

    ‘테마는 음……‘권선징악(拳善懲惡)’ 정도로 할까?’

    물론 권할 권(勸)이 아니라 주먹 권(拳)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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