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나쁜 놈 (2)
“칵테일 좋아하세요?”
유다희는 내게 물었다.
16층 회의실 구석에는 작은 바가 있었는데 유다희는 진열장에 놓여 있는 술들을 보고는 눈을 반짝 빛냈다.
취미가 칵테일 만들기였다나?
“예전에는 단골 바에서 음주방송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 그때 밤거리에서 처음 만났잖아요? 그날도 술 마시러 가던 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다희는 나를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달그락-
그녀는 가넷으로 된 잔을 들어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드카 40ml, 피치 리큐어 10ml, 스위트&사워믹스 20ml, 토닉 워터 10ml, 시나몬 파우더 0.5온스, 꿀 한 방울, 잘게 간 얼음을 부채꼴 모양으로 띄우고 말린 뷰글라스(bugloss) 꽃잎 한 장을 올리면 완성. ……간단하죠?”
유다희는 내 앞으로 칵테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은은한 무드등 조명이 와 닿아 부서지는 붉은 잔, 각진 면마다 영롱한 광택이 어린다.
끈적하면서도 달콤한, 그리고 독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칵테일.
Please tell the truth, ‘진실을 말해 주세요’ 라는 뜻을 가진 유명한 술이다.
“원래는 보드카를 더 넣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유다희는 진열장을 돌아보며 목 근처를 매만졌다.
한편.
나는 칵테일 잔을 집으며 물었다.
“차규엽이라는 사람하고는 악연이 깊지?”
“…….”
내 질문에 유다희는 잠시 침묵했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내 질문에 대답한다.
“맞아요. 제 아버지의 위에 있었던 사람이죠. …한때는.”
유다희는 한숨과 함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름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창희나 세희는 의견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유다희가 꺼내 놓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의 것, 회귀 전의 세상에서도 그녀에게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차규엽은 제 아버지와 밑바닥부터 함께한 사이였어요. 온갖 더러운 짓은 함께 하며 컸죠. 그러다 어느 날 차규엽이 감옥에 들어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그 혐의를 아버지가 대신 뒤집어썼어요. 의리를 지키겠다면서 바보같이.”
“…….”
“차규엽은 분명 아버지를 금방 빼 주겠다고 약속했었죠.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아버지는 오랜 시간을 감옥 안에 있어야 했어요. 그동안 차규엽은 저희들의 후견인 행세를 했죠.”
유다희는 어린 시절부터 차규엽을 무서워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을 훑는 그 끈적한 시선을 마주할 때면 전신에 뱀과 지네를 휘감은 듯한 착각이 일 때도 있었더란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는 출소를 했어요. 하지만 세상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고 그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아버지는 폐인이 되었죠.”
유다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었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 건조하다.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해도 될까요?”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연한 모습의 그녀이다.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유다희는 표정과 달리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언젠가, 한 번은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시장 근처를 걸어가고 있는데 길가에 아버지가 앉아 있는 것을 봤어요.”
“…….”
“그 당시에 저희 동네에 캣맘들이 많아서 길고양이들 먹으라고 곳곳에 고양이 사료를 뿌려두고 가는 일이 많았는데…….”
유다희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진다.
“아버지가…그 사료를 먹고 있었어요. 전봇대에 기대서.”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유다희는 손등으로 눈을 쓱쓱 문질렀다.
“그 모습이 그때는 너무 더럽고 징그럽게 느껴졌어요. 친구들도 버려 두고 도망쳤죠.”
“…….”
“그 뒤로 아버지는 죽은 채 발견되었어요. 많이 갑작스러운 일이었죠. 사인은 자살이었는데…세상에 스스로 두 손을 뒤로 묶고 한강에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나요? 심지어 두 다리는 차에 치인 것처럼 부러져 있었는데…….”
누가 봐도 차규엽의 소행임에 분명했지만 제대로 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죽음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난 얼룩처럼 잊혀졌다.
유다희는 칵테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그때 시장에서…도망치지 말 걸 그랬어요.”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두고 있던 진심이 한숨과 함께 토해져 나왔다.
그 독한 칵테일을 원샷해 버린 유다희는 붉어진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본다.
“…….”
나는 유다희가 준 칵테일을 마시지 않고 옆으로 살짝 치워 두었다.
“…….”
“…….”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당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설픈 공감과 위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나이를 먹으며 느낀 것 중의 하나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것.
“…….”
나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유다희는 의외로 약간은 개운해진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낫네요. 그동안은 말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이걸 누구에게 말하겠는가?
아버지 이야기라면 극도로 싫어하는 유창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 유세희에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니까.
한참의 침묵 후. 나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유다희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차규엽’, 놈에 관한 이야기이다.
“…차규엽의 e스포츠 승부조작 브로커 이야기는 확실한 거야?”
내가 묻자 유다희의 얼굴에 약간 실망의 빛이 스쳐갔다.
“이 화제전환 뭐야, 칵테일 안 마셔요? 기껏 열심히 만들었는데….”
“천천히 마실게, 내가 술이 좀 약해서. 일단 이 문제에 집중하자고. 모든 트러블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것 같으니까 말야.”
나는 차규엽의 사진을 검지로 쿡쿡 짚었다.
그러자 유다희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는 아까보다는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의 확실해요. 마교 팬클럽 열혈회원들 중에 뎀 협회 고위 관계자의 자녀가 있는데 걔네가 직통으로 말해 준 정보라서.”
유다희가 관리하는 열혈회원들은 특별한 권리 없이도 무거운 의무들을 자발적으로 맡아 하는 믿을 수 있는 이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열혈회원 발 정보라면 신뢰할 만했다.
그리고 나 역시 따로 정보 라인이 있다.
‘그 사람 좋은 재영이 형이 싫어할 정도라면 말 다했지 뭐……’
엄재영 감독이 쓰레기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욕할 정도면 더 볼 필요도 없다.
또한 나에게는 앞으로 10여년 뒤를 내다볼 수 있게 해 주는 미래 지식이 있지 않은가?
나는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 들었던 수많은 뉴스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막대한 로비로 선수 선발전에 개입해서 감독 권한 침해하고, 여차하면 외국 선수들의 숙박 시설 예약을 뒤틀어서 컨디션 난조 일으키고, 특정 구단을 매수해서 승부조작 및 브로커 노릇에, 선수 매수해서 빼 가고, 구단이나 선수를 해외자본에 팔아먹고 입 싹 닦고, 기계 오작동을 일으켜 찍힌 선수들 피지컬 저하시키고, 심판 매수에, 각종 언론 플레이에, 사설도박에, 불법 주식 내부자 거래에, 심지어 고위 임원들 불륜 및 성추행 스캔들까지……아주 온갖 E스포츠 비리를 다 저질렀지.’
차규엽으로 대표되는 협회의 ‘썩은 뿌리’, 이 빌어먹을 것들 때문에 장래가 촉망되던 어린 선수들이 죄다 해외 구단으로 빠져 버렸다.
명장 엄재영 감독을 비롯한 몇몇 뜻 있는 감독들과 코치들은 전면 은퇴를 선언했으며 수많은 내부고발자들이 용감하게 비리를 폭로하여 불의에 맞섰다.
심지어 개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불의에 항거하는 의인들도 있었다.
결국 정의는 승리했으며 모든 악은 세상에 그 면면을 낱낱이 드러내야 했다.
차규엽은 기나긴 저항 끝에 결국 손에 수갑을 찬 채 투옥되었고 그간의 행적과 비열한 수법들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E스포츠 업계가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수많은 인재들이 사라졌으며 팬들은 협회에 대해 깊은 불신감만을 갖게 되었다.
악의 뿌리를 제거한 이후에 열심히 재기하려고 해도 이미 모든 인프라가 거세된 마당이었기에 부활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게임업계 뉴스들은 모두 빠지지 않고 읽어 뒀지.”
나는 수많은 내부고발자들과 열혈기자들이 폭로하고 파헤친 ‘차규엽의 비리’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비리들까지도!
그중 굵직굵직한 것들만 미리 대비해 놔도 차규엽을 역으로 공략해 털어먹는 것은 일도 아니다.
회귀 전의 세상에서 정의로운 이들이 터트렸던 특종들, 이번 세상에서는 내가 그것들을 전담마크 할 생각이었다.
“…정의로운 쪽은 늘 손해를 봐 왔지. 하지만 이번에는 아닐 거야.”
내부고발자들이 받는 불이익, 정의로운 쪽이 치러야 할 막대한 투쟁 비용.
그 모든 것들은 이제 내가 감당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 게임업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서, 더불어 나의 안녕과 내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그때.
“아참! 이걸 빠트릴 뻔했네요.”
유다희는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더 꺼내놓았다.
“……?”
내가 고개를 돌리자 테이블 위로 사진 한 장이 놓였다.
유다희는 진지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최근 차규엽이 어디서 선수 하나를 주워 와 키우고 있어요.”
“…선수를?”
“네. 전적이 조회되지 않는 선수에요. 랭킹도 없고. 이건 제 생각이지만…아마 불법 사설토토 리그 쪽에서 놀았던 사람 같은데…….”
불법 사설토토 이야기가 나오니 어딘가 뜨끔하다.
나는 짐짓 호기심 넘치는 태도로 목을 길게 뺐다.
순간.
“……!”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사진 속 얼굴은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잘생긴 얼굴, 쌍꺼풀 없는 눈매가 다소 뱀 같이 날카로운 점만 제외하면 호남형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말이 없자 유다희는 나를 올려다보며 신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신기하죠? 마왕님과 이름이 같아요.”
마동왕(麻棟汪).
회귀 전 세상의 진짜 마동왕(魔動王)이 드디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