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94화 (394/1,000)
  • 395화 나쁜 놈 (1)

    [……아. 화물이 밀렸네요. 그럼 게임 끝났죠.]

    전용진 캐스터의 멘트를 마지막으로 경기는 끝났다.

    내용만 놓고 보면 허무하게 끝난 경기였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날 용산에 모인 20만 명의 관중, 그리고 그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게임 팬들은 느꼈다.

    ‘한국 프로리그의 패왕은 아직 건재하다!’

    마동왕. 그는 대격변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의 넘버원이었다.

    오히려 대격변 이전의 전성기 때보다도 훨씬 더 압도적으로 강해져서 나타난 것이다.

    결국 화물을 미는 시스템이 추가된 ‘배그옵’ 형식의 경기는 닳고닳은 뉴비 구단이 우승을 차지했다.

    무혈우승(無血優勝)!

    프로리그의 그 누구도 해낸 적 없는 전무후무한 위업이었다.

    그 밑에 2위와 3위가 없었기에 닳고닳은 뉴비 구단을 뺀 나머지 9개 구단의 45명이 재경기를 치러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경기가 종료된 다음 날.

    ……당연하게도 한국의 모든 게임 커뮤니티 사이트는 터져 버렸다.

    -와;;; 홀인원 원큐에 경기끝내버린거 실화냐????

    ↳ㅇㅇ ㄹㅇㅍㅌ 반박시 개돼지

    ↳ㄴㄴ반박시 오크리자드맨

    -게임 경기 직관가면 엔만해선 후회하는데...이번건 직관한 사람이 승리자였다

    ↳ㅆㅇㅈ바로 마동왕 팬됐잖어~

    ↳방금 마동왕 팬클럽에 후원금 넣고오는 길이다

    ↳도네만 쏘는걸로는 이제 부족해! 마동왕오빠 사생질 하고파

    -ㅋㅋㅋ결국 재경기했네.. ‘바스터즈’랑 ‘엘리트즈’ 동점ㄷㄷ

    ↳노관심;;

    ↳안물안궁~

    ↳지금 그딴게 중요함?

    .

    .

    모든 관심과 시선은 마동왕 하나에게 쏠려 있다.

    마동왕을 제외한 49명의 선수들 개인화면 동영상은 저조한 조회수를 기록하는 반면 마동왕의 개인화면 동영상만은 실로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올리고 있었다.

    […주제파악 못한 대가는 비싸지.]

    내가 짧게 한 마디 던진 뒤 주먹을 휘두르자 이내 모래폭풍이 몰아쳐 주변의 스크린을 모조리 가려 버린다.

    [으아아아아!]

    주변에 있던 랭커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

    사정권 안에 있던 탱커들은 뒤로 날아가 버렸고 방어력이 약한 마법사나 궁수 등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몇몇 이들은 극심한 공포감에 혈압이 기준치 이상으로 높아져 강제 로그아웃될 정도였다.

    폭풍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캐스터들의 흥분한 목소리들이 빗발친다.

    [다, 당장 리플레이 화면 내보내 주세요! 제발! 빨리! 우리도 못 봤단 말이에요!]

    [화물이 탑뷰캠을 가릴 정도면 얼마나 높게 올라간 거죠!? 선수캠이랑 탑뷰 캠 풀로 돌려야겠는데요!?]

    [나는 봤다! 여러분 저는 봤습니다! 하하하하!]

    [으아! 방금들 봤어요!? 이 장면은 꼭 건져야 해요! 게임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인데!]

    그 시점에서, 오로지 마동왕 시점의 카메라만이 시야가 밝아진다.

    혼란이 끝날 지점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는 시선처리.

    아주 치밀하고 정확하게 계획된 일격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화면이었다.

    […터치 다운(Touch down).]

    [쾅!]

    마동왕의 마지막 대사를 끝으로 화물이 격납고에 떨어졌다.

    동영상이 끝나자 댓글들이 미친 듯이 달린다.

    -근데 저게 홀인원이 가능한 거리냐? 파7홀이 1000미터가 넘는데 그쯤 될 듯한데...

    ↳초장거리 홀인원이네...골프에서도 안 나오는 기록인데 이건;;;

    ↳화물 무게 겁나 무겁다고 하지 않음?ㄷㄷ...

    -진짜 무슨 액션영화 트레일러 영상이라고 해도 믿겠다 와;;;;

    -20만 명을 10초간 침묵시키는 클라스ㄷㄷㄷ

    ↳해외 언론에까지 나왔다더라ㅋㅋㅋㅋ

    ↳퍄;;나는 정지화면인줄 알았잖어~알고보니 라이브 화면이었던거임ㅋㅋㅋ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악당들아 기다려라 아챔에서 대한민국은 절대 지지않아~

    ↳ㅇㅋ계획대로되고있어

    -아니;; 저 구단에 투신 마태강도 있지않음?ㅋㅋㅋㅋ꿀빨았네 투신

    ↳투신조차 꿀벌로 만들어버리는 마동왕 수준ㅋㅋㅋ

    ↳넘.사.벽

    .

    .

    이렇게 해서 3개 팀을 뽑는 1차 선발전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제부터 펼쳐질 순위결정전은 ‘닳고닳은 뉴비’, ‘바스터즈’, ‘엘리트즈’ 이 3개의 팀으로 구성되며 바스터즈와 엘리트즈가 배그옵에서 동점을 이룬 만큼 2위와 3위를 결정하는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이 두 팀 중 승리한 팀과 닳고닳은 뉴비 팀이 맞붙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한국을 대표하여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나갈 국가대표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       *       *

    한편.

    나는 앞으로 있을 2차 순위결정전에 대비해 건물 내부를 쭉 돌아보는 중이었다.

    1층 캡슐방 쪽을 슥 돌아보자 수많은 손님들이 보인다.

    “여기 컵라면 두 개요! 단무지 많이 주세요!”

    “흡연실이 어느 쪽인가요?”

    “형, 남자 화장실 휴지 떨어졌어요.”

    “오빠, 여기 캡슐기기 안 돼~”

    “옆으로 옮겨서 해 보자.”

    광활한 캡슐방 공간에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애매한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만석이었다.

    식사류나 음료수 역시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중이다.

    …거 장사 엄청 잘 되는구만?

    “쩝, 딱히 이득 보려고 시작한 장사가 아닌데 이렇게 잘되니 당황스럽네.”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1층을 쭉 돌아보았다.

    총매출이 하루에 2억이 넘게 나온다.

    이윤을 남기지 않을 생각으로 구색만 맞춰 놓은 사업이라 그런가 오히려 더 성황이었다.

    ‘…내가 캡슐방 차린 건 돈 벌라고 그런 게 아닌데.’

    그때, 저쪽에서 유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고딩들아. 너네 10시 넘었어. 집에 가~”

    “아 형님! 진짜! 10분만 더요! 거의 다 잡았는데! 승급이 코앞인데~”

    “집에 가라. 규제 때문에 형도 어쩔 수가 없다. 법은 지켜야지~”

    “아 형이 언제부터 그렇게 법을 잘 지켰어요!?”

    “소피마르소 왈 ‘법도 악법이다’ 모르냐 임마?”

    “소크라테스고요. ‘악법도 법이다’ 에요. 실제로 그런 말 한 적도 없고요.”

    유창이 한 떼의 고딩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결국 캡슐방 밖으로 쫓겨나는 고딩들을 보며 나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딩들이야?”

    내가 묻자 유창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보니까 뭐 가출한 애들 같은데 요즘 맨날 옵니다. 은근 착해요, 애들이.”

    “다음에 오면 컵라면이라도 하나씩 줘. 그리고 집에 들어가라 그래.”

    “집이 없다는데요? 가족도 없고.”

    “…그래?”

    나는 가만히 턱을 쓸었다.

    유창은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으며 한숨을 쉰다.

    “요즘 가출한 애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사회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원.”

    “…민짜 때부터 사채업 한 너도 있는데 뭐.”

    “아 형님~ 저는 특이한 케이스고요~”

    내가 유창과 아옹다옹하고 있을 때.

    “마왕님!”

    캡슐방 저편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다희. 그녀가 오늘 약속시간에 맞춰 나를 만나러 온 것이다.

    나는 유다희를 만나자마자 그녀를 데리고 16층으로 올라갔다.

    17층은 나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니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16층의 회의실에서 나눈다.

    유다희는 커다란 소파에 앉은 채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번 대회 완전 멋있었어요.”

    “…다행이네.”

    “마교 회원수가 거의 두 배 이상 늘었어요! 신규회원 대부분은 인간이지만 오크나 리자드맨 유저들도 많아요!”

    드디어 내 매력이 종족을 불문하기 시작했다.

    고인물 팬덤들이 대부분 인간인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흐뭇해하고 있을 틈도 없이, 유다희는 오늘 나를 찾아오게 된 이유를 바로 꺼내 놓았다.

    “이번 대회에서 뭔가 이상한 점 느끼셨죠?”

    못 느꼈다면 말이 안 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른둘이나 되는 랭커들이 일사분란하게 나를 잡으러 왔었지.”

    “그것도 각 구단에서 조금씩 조금씩 차출된 인원이었고 심지어 종족까지도 뒤섞여 있었죠. 말도 안 통하는 그들이 게임 시작과 동시에 의견을 교류해서 몰려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나를 다구리 깐 놈들 사이에 뭔가 뒷거래가 오갔다는 것이다.

    유다희는 확신을 가진 표정으로 말했다.

    “외부에서 개입한 이가 있어요.”

    그녀는 입이 마르는지 입술을 한번 꾹 다물었다가 다시 뗐다.

    “오래 전부터 E스포츠 쪽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승부조작 브로커예요. 규모가 꽤 커요.”

    말을 마친 유다희는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얼굴에 검버섯 가득한 한 노인의 사진이 붙어 있는 프로필이었다.

    “레드문 기업의 총수로 있는 ‘차규엽’, 일명 ‘큰형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에요. 예전 아버지 인맥을 통해서 간신히 얻어낸 정보들이죠.”

    그녀에게 고급 외제차 등의 선물을 주며 환심을 사려 했던 ‘큰형님’이라는 인물이 바로 차규엽이었다.

    유다희는 증오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차규엽의 사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는다.

    분노와 슬픔, 체념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저도 이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은 많이 없어요. 워낙에 음흉한 인간이라 밝혀진 게 많지 않죠. 별다른 도움이 못 되어 죄송해요.”

    하지만.

    나는 비교적 여유로운 태도를 고수할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이네.”

    “…네?”

    내 대답을 들은 유다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다시 한번 대답해 주었다.

    “이미 잘 아는 사람이라고.”

    예전에 엄재영 감독에게도 간단하게 한번 들었다.

    ‘안 그래도 협회의 큰손 하나가 이런저런 어깃장을 많이 놨다나 봐. 그래서 아챔 일정도 많이 늦게 발표된 거라더라. 그 진상 때문에 내가 아는 협회 분들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심지어 한국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다른 나라에까지 민폐를 끼쳤다지? 국제망신이야 국제망신.’

    ‘그 진상이 누군데요?’

    ‘‘차규엽’이라고 쓰레기 같은 인간이 하나 있는데…….’

    유다희가 예전에 경고한 사람과 엄재영 감독이 말했던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탁-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집어 들었다.

    증명사진 속 노인의 얼굴.

    차규엽.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얼굴보다 10년은 더 젊은 모습이다.

    “…그래, 잊을 수가 없지. 이 얼굴은.”

    뉴스에서 얼마나 많이 보도되었던 사진인데 이걸 기억 못할까?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E스포츠 판과 프로리그를 반쯤 망하게 만든 쓰레기 놈.

    한국인들에게는 어찌 보면 앙신 조디악보다 더한 빌런일 수 있는 이 작자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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