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93화 (393/1,000)
  • 394화 홀인원 (4)

    1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린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

    입장 시간이 지나서도 인파는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돔구장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쳐 추산하면 그 수가 거의 2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E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길거리에서는 상인들과 취재진, 행위예술을 하는 아티스트들이 모여 반쯤은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불꽃이 터지고 휴대용 캡슐기기를 든 사람들이 열광한다.

    애, 어른, 남자, 여자, 외국인, 내국인 할 것 없이 모든 이들이 똑같이 열광하고 즐기는 공간.

    지금 이곳에 있는 평범한 팬 황정현(17살, 고등학생)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새로웠다.

    “와, 사람 진짜 많다.”

    황정현과 그 친구들은 구장 밖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구장 위로 솟아오르고 있는 거대한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경기 화면을 틀어 놓은 것은 물론이다.

    황정현은 그 와중에 마동왕의 채널을 열어 놓은 상태였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같이 온 세 명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황정현을 비웃고 핍박했다.

    “야, 솔직히 마동왕 화면 보는 거 개오바야. 시작하자마자 죽을걸? 다른 선수 채널로 중간에 바꾸지도 못하는데. 오래 살아남을 선수 채널을 픽 해야지.”

    “님아, 언제 적 마동왕임? 대세는 오크인 거 모르심?”

    “인간은 안 닦아. 리자드맨이 짜세지. 마동왕은 솔직히 퇴물 인정.”

    하지만 황정현은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지나도 마동왕은 내 넘버원이야.”

    황정현은 제 1회 뎀 프로리그를 떠올렸다.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꺾고 부러트리는 패도의 길.

    그때 본 마동왕은 황정현을 뎀의 세계로 이끌어 준 선구자이자 스승, 친구, 우상이었다.

    따라서 황정현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바꾸지 않았다.

    비록 대격변이 일어나고 게임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 옛 우상보다 강한 랭커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해도 말이다.

    프로게이머들의 수명은 짧다. 세대교체는 빠르게 이루어진다.

    한 세상을 풍미했던 프로게이머가 불과 몇 년 만에 노장 취급을 받으며 은퇴하는 경우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노장 취급만 받아도 양반이다. 민폐, 퇴물, 뒷방 늙은이 등의 오명으로 남는 이들도 부지기수.

    ‘장렬한 플레이를 보여 주세요! 인간 종족의 희망!’

    황정현은 노장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친구들은 황정현의 일편단심 팬심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오크 랭커나 리자드맨 랭커의 플레이를 찬양하기 바빴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난 뒤. 모든 상황은 뒤집어졌다.

    “……미쳤네. 야. 누가 마동왕 보고 퇴물이라 했냐?”

    이 자리에 모인 십 수만의 인파는 홀린 듯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자욱한 포연을 걷으며 등장하는 마동왕의 모습.

    평범한 갑옷과 망토.

    그리고 대격변 이전, 프로리그의 제왕을 상징하던 가면!

    무려 서른두 명의 합격을 받아내고도 쓰러지지 않는 거목(巨木)의 위엄에 모든 이들이 전율했다.

    누가 그랬던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그 말은 틀렸다.

    노병은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라지지도 않는다.

    “것 봐 이 새끼들아! 영웅은 죽지 않아!”

    황정현은 열띤 어조로 소리쳤다.

    돔구장 밖 초대형 스크린은 선수들의 맵 장악력에 따라 크고 작아진다.

    그리고 현재, 마동왕은 스크린의 90% 이상을 혼자서 장악하고 있었다.

    불멸(不滅)의 패왕!

    그 모습은 흡사 대격변 이전, 전 세대의 프로리그에서 보여 주었던 위풍당당한 모습을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을 재현하고 있다.

    단신으로 25명을 발라 버리던 패기는 더욱 더 진화하여 지금은 서른두 명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황정현은 괜히 자신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치고 있었다.

    한편.

    “자, 마교에서 나왔습니다- 마동왕사랑교에요- 도장 찍으시고 다시 주시면 됩니다-”

    저 앞에서 입단원서를 나눠 주고 있는 마교 멤버들의 포교행위가 한층 더 열심이다.

    눈에 확 띄는 예쁜 여자 하나를 필두로 수많은 마교 회원들이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팬클럽 회장 유다희입니다~ 여러분 입단원서 받아 가세요~ 태어난 날은 순서가 있어도 입덕하는 날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했던가?

    마교의 회장까지 직접 발로 뛰는 포교행사에 모두의 관심과 시선이 쏠린다.

    황정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 역시도 모두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신규회원 목록에 고등학생 4명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       *

    콰콰콰콰콰쾅!

    서른두 명의 랭커들이 쏘아 보낸 충격파가 나에게 떨어졌다.

    우지직-

    내 몸이 조각조각 나는 느낌이 선명하다.

    하지만 ‘앙버팀’ 특성이 있으니 상관없다.

    나는 데스나이트의 망토로 모든 충격들을 흘려보냈고 늘 그랬듯 HP가 1남은 상태로 살아남았다.

    동시에.

    …질끈!

    발을 슬쩍 뒤로 움직여 바닥에 있는 녹색 십자가를 밟았다.

    팟!

    힐팩의 효과가 발동되어 나의 HP를 회복시킨다.

    나의 HP는 극도로 적었기에 소형 힐팩 하나를 밟는 것만으로도 체력 게이지를 꽉 채울 수 있었다.

    쉬이이이익-

    덕분에 나는 태연하게 포연을 찢으며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풀 HP 상태이니 당연하다.

    (여벌의 심장은 굳이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서른두 명의 적들은 내가 데미지를 전혀 입지 않은 줄로 착각한 모양이다.

    하기야, 나 정도 되는 천상계 탑 티어 랭커의 HP가 고작 소형 힐팩 하나로 꽉 찰 리가 없다고 생각할 테니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저걸 맞고도 안 죽었어!? 돌겠네…….]

    [와, 도대체 체력이 얼마나 많은 거야!]

    [개 미쳐 버렸다! 이걸 버티네!? 방어력이 얼마나 높기에…!]

    한국리그를 대표하는 랭커들은 생소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 모여 있는 적들을 상대한 적은 많아도 자신들이 모여서 한 명의 적을 상대해 본 적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몬스터라면 몰라도 플레이어가 상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그 한 명의 적에게 압도되고 있는 이 상황이 익숙할 리가 없다.

    맨 처음,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 내게 와 꽂히던 시선들이 180도 변했다.

    비웃음, 경쟁의식, 증오, 도전욕구, 호기심, 자기과시, 그 외 기타 등등.

    나를 꺾기 좋은 ‘증표’ 정도로 생각하던 이들.

    …하지만 지금 저들의 시선은 어떤가?

    공포. 내지는 경외감.

    그 두 가지 감정으로도 축약하기 충분할 것이다.

    “주제파악 못한 대가는 비싸지.”

    나는 적들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빠르게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콰콰콰쾅!

    내가 두 주먹을 내뻗자 서른 두 명의 랭커들이 쏘아 보낸 충격파가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고오오오오

    등 뒤에서 시커먼 용 두 마리가 용솟음쳐 내 주먹을 휘감아 조였다.

    온 세상천지를 뒤집어엎을 듯한 데미지가 내 몸에서 시커멓게 폭사되어 날아갔다.

    모든 이들이 손에 땀을 쥘 만한 광경!

    하지만 내 주먹이 향한 곳은 서른두 명의 랭커들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뻐버버버벙!

    화물.

    가로, 세로, 높이 8미터의 육중한 파괴불가 오브젝트.

    그것이 내 주먹에 맞아 허공으로 쏘아졌다.

    [커헉!?]

    [흐억! 읍!]

    [으아아아아…]

    내 주먹의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던 몇몇 랭커들이 호흡곤란을 시도하며 주저앉았다.

    심지어 몇몇은 심박 수가 너무 급격히 증가하여 강제로 로그아웃되기도 했다.

    나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빠직! …빠지지직!

    시커멓게 물든 두 건틀릿이 가루가 되어 완전히 부서져 나갔다.

    심해의 가혹한 환경에서 얻은 A+등급 아이템의 내구도로도 피카레스크 마스크의 공격력과 반사 데미지를 미처 다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중계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다, 당장 리플레이 화면 내보내 주세요! 나 못 봤어!]

    [선수캠이랑 탑뷰 캠 풀로 돌려요!]

    [캠이 모자랍니다! 화물이 너무 빠르게 밀리고 있어서…아니 밀리는 게 아니라 날아오르고 있어서…]

    [으아! 방금들 봤어요!? 이 장면은 꼭 건져야 해요! 게임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인데!]

    중계진들조차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도 모르고 흥분해 있는 마당에 관객석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우와! 탑뷰 스크린이 까맣다!]

    [화물이야! 화물이 날아와서 카메라를 가린 거라고!]

    [개 미쳐 버렸다! 화물이 탑뷰캠을 가릴 정도면 얼마나 높게 올라간 거냐!]

    [나로호도 이거보단 낮게 날았겠다!]

    열광의 도가니, 관객석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혼란과 혼돈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한 퍼포먼스였으니만큼 아주 당연하게.

    내 두 건틀릿과 서른둘 랭커들의 반사 데미지를 연료삼아 하늘로 높이 쏘아 올려진 화물.

    휘이이이이이잉-

    그것이 원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별똥별. 운석처럼 떨어져 내리는 화물.

    그곳은 화물이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 1킬로미터가 조금 넘게 떨어져 있는 장소.

    “…터치 다운(Touch down).”

    바로 격납고였다!

    ……쿠-웅!

    묵직한 여진이 일었고 마른 흙구름이 풀썩인다.

    주변 흙으로 된 건물들은 와르르 무너졌고 그 안의 철골들마저 바깥쪽으로 휘어 버렸다.

    모든 이들이 입을 딱 벌리고 보고 있는 와중, 화물은 맵 중앙에 있는 격납고 안에 완벽하게 떨어져 내렸다.

    ……. ……. …….

    정적.

    지독한 정적이 게임 속 필드를 넘어 돔구장 안과 밖, 도로 위 현실세계까지 범람하고 있었다.

    20만 명의 관중들이 몇 초간 일제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해외 언론에까지 보도될 만큼이나 신기한 기현상이었다.

    [……아.]

    침묵을 제일 먼저 깨트린 이는 바로 전용진 캐스터였다.

    [화물이 밀렸네요. 그럼 게임 끝났죠.]

    전용진 캐스터의 한 마디와 함께.

    우-와아아아아아아!!!

    환호성이 폭발했다!

    돔구장의 돔 천장이 허공으로 붕 뜰 정도로 엄청난 반응.

    게임 역사에 영원토록 남을, 실로 충격적인 홀인원(Hole in one)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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