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홀인원 (3)
홀 인 원(Hole in one).
[골프 용어] 공이 한 타 만에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
* * *
전용진 캐스터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런데, 저걸 밀고 있다고 봐야 하나요?]
내가 화물을 미는 방식은 압도적인 힘에 근거한 ‘날려버리기’ 방식.
양손의 건틀릿이 가진 힘도 대단한 수준이지만 사실 이런 신위를 보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진짜 원동력은 피카레스크 마스크였다.
-<피카레스크(Picaresque) 마스크> / 가면 / A+
사이코 연쇄살인마의 얼굴 가죽을 도려내어 그대로 건조했다. 쓰는 순간, 집계는 시작된다.
-특성 ‘연쇄살인’ 사용 가능 (특수)
-공격력 +13,021
※이 가면은 착용자의 카르마 수치를 대신 적용받습니다.
※가면을 착용한 순간부터 Kill 수에 따라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1Kill 당 상승하는 공격력은 1입니다.
※Kill 수의 집계는 오로지 플레이어 캐릭터에 한정되어 이루어집니다.
무지막지하게 올라간 공격력 덕분에 나는 엄청난 근력 스탯을 갖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예전에 ‘황금광의 혈안’ 아이템을 이용해 오크와 리자드맨 유저들을 한꺼번에 몰살시켰던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비교적 게임 초반에 대량학살이 가능한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결과가 이런 특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쿵! 쿠르르르!
나는 오른손으로 지면을 때려 지진을 일으켰고 그럴 때마다 화물은 요동치는 땅에서 떨어져 허공으로 치솟는다.
쾅! 퍼펑!
그러면 나는 와류의 힘이 깃든 왼손으로 화물을 때려 앞으로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엄청난 속도로 전진하는 화물.
하지만 내가 화물을 미는 것은 아무래도 다른 이들의 눈에 잘 띄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츠츠츠츠츠…
소음과 진동. 맵 곳곳에서 내가 만들어내는 소란에 이끌려 온 랭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오크, 리자드맨.
총 32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프로게이머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아주 작정을 하고 모여든 듯한 기세.
한 구단에서 5명 전부가 온 예는 거의 없었다. 각 구단에서 조금씩 조금씩 차출된 듯한 엔트리.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것 봐라?’
승부조작의 냄새가 강하게 난다.
경기 전 무언가 담합이나 카르텔 등 뒷공작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빠르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리가.’
나는 눈앞에 모여든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50명 중 32명. 총 참가자들의 64%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닳고닳은 뉴비 구단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단의 엔트리가 골고루 섞여 있었다.
이런 수준의 ‘다구리’는 사상초유다.
1회 뎀 프로리그에서 매드독의 김정은이 선동까지 해 가며 조력자를 구한 결과도 50% 이하의 참여율이었는데…….
‘다른 구단의 선수들을 매수한 건가? 경기 시작 전부터 동맹을 맺기로 한 게 아니면 이러기 힘들지.’
나는 적들의 어설픔에 실소했다.
이렇게 티가 날 정도로 급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오히려 좋은 전조이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대회 자체가 급하게 잡혔네. 아니, 애초에 대격변 자체가 급했지. 너희들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생각해보니 전에 유다희가 내게 경고했었던 적도 있다.
‘……라는 사람이 이번에 게임 산업 쪽에 투자를 많이 해서 좀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협회를 통해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선발전에 개입한다는 이야기가……’
아마 이번 대회에서 나를 벼르고 있는 놈이 있는 듯하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나는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컸고 아챔이라는 판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니까.
…하지만 나를 벼르고 있는 놈은 알까?
나 역시 나를 벼르고 있는 놈을 벼르고 있다는 걸.
까닥까닥-
나는 눈앞에 있는 끄나풀들을 향해 손가락을 당겼다.
“판 깔렸다. 들어와.”
나의 도발에 서른두 명의 랭커들이 발끈했다.
[인간 주제에 너무 설치는군.]
[마동왕 마동왕 해도 다 대격변 전까지의 일이지.]
[과거에 명성에 취해 똥오줌 못 가리는구나.]
[주제를 깨닫게 해 주지. 퇴물.]
말이 거칠다.
몇몇 이들은 분위기에 취해 팬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 유리해진다.
내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더욱 더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콰콰콰쾅!
화살과 마법들이 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칼잡이들은 참격을 날려 보냈고 탱커들은 되돌아올 반격에 대비해 방패 라인을 더욱 더 굳게 조인다.
한국 랭킹 최상위권의 32인.
대격변 이후의 생태계에 적응한 용장, 맹장들이 각자 자신이 제일 자신있어하는 필살기를 날려 왔다.
불과 얼음, 번개와 바람, 쇠와 나무, 모래와 바위들이 혼합되어 있는 거대한 충격파가 나를 덮쳤다.
콰쾅! 우지지지직!
굉음과 함께 지형이 격변했다.
구운 흙과 나무로 된 건물들이 죄다 가루로 변해 무너져 내렸고 거대한 바위와 나무들이 풍압만으로 뽑혀 나온다.
그들의 합격술은 1+1이 단순히 2가 아님을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 합은 3이 될 수도 있고 4 혹은 5가 될 수도 있다.
뒤섞임으로서 훨씬 더 배가된 충격파가 오직 한 사람, 나를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때.
“아앗!”
“늦었나!?”
저 멀리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윤솔과 드레이크, 막 코너를 돌아 뛰어오던 그들이 내지른 소리였다.
한편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헉!?”
“엇!?”
마태강과 유세희. 그들 역시도 비슷한 시간에 이곳에 도착했다.
닳고 닳은 뉴비 구단이 한 지점에 모인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힘을 합친 32명의 랭커들은 온 힘을 쏟아낸 뒤다.
[후후후후… 제일 성가신 적을 제거했으니 됐다. 이제 너희들 차례야.]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오크 랭커 하나가 맨 앞에 있던 유세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옆에는 마찬가지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랭커 네 명이 서 있었다.
신생 팀 ‘바스터즈’, 이례적으로 다섯 명 전원이 마동왕 사냥에 참여한 팀이다.
“…….”
마태강은 이마에 힘줄을 세운 채로 눈앞에 있는 검은 로브들을 노려보았다.
드레이크가 윤솔과 유세희, 마태강을 하나로 모았다.
“상황이 별로 안 좋다. 집중포격을 당할 수 있으니 일단 뒤로 물러서는 게…….”
하지만.
“아냐. 그럴 것 없어.”
포연이 걷히고 드러나는 그림자.
나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대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
나를 공격했던 모든 랭커들이 입을 딱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그것은 드레이크나 윤솔, 마태강, 유세희까지도 마찬가지였다.
‘…놀라긴.’
나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들었다.
현재 나는 ‘오추멜로프의 무한코스튬 반지’의 특수효과를 사용해 본모습을 감추고 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아이템의 효과를 발동시킨 상태였다.
-<죽음룡 오즈의 죽음비늘> / 갑옷 / S+
무저갱 속의 왕이 두르고 있던 비늘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불길함이 깃들어 있다.
나약한 존재들은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방어력 -666
-‘어둠’ 저항력 +500%
-‘부패’ 저항력 +500%
-특성 ‘근묵자흑(近墨者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부관참시(剖棺斬屍)’ 사용 가능 (특수)
전에 사용하던 바실리스크의 심장의 상위호환 아이템.
나는 내 몸에 가해지는 데미지의 100%를 반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뭐지? 내 몸이 검게 물들고 있는데? 헉? 설마 썩는 건가!?]
[어억!? 내 체력이 깎여나가고 있어!]
[으악! 뭐야!? 무슨 일이야 이게! 왜 공격을 한 쪽이 HP를 잃는 거야!]
나를 공격한 적은 초당 최대 체력의 0.01%를 상실한다.
이 저주는 적이 최대 HP의 10%를 잃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 진짜 힘은 쓰지도 않았다.
파지지지직-!
반사 데미지.
적으로부터 축적한 반사 데미지가 아직 내 양손에서 펄떡펄떡 날뛰고 있는 것이다.
쩌적! 쩌저적! 우지지직!
아귀메기 너클과 대왕게 건틀릿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S+등급 아이템의 효과를 뒷받침하기에 A+등급 아이템의 내구도로는 조금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부서져 가는 양손 건틀릿을 내색하지 않은 채 앞으로 움직였다.
…움찔!
서른둘이나 되는 맹수들이 나 하나의 기세에 짓눌려 뒤로 반 보 물러섰다.
내가 한 발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서른 두 명이 두 발 뒤로 물러서는 것은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이 들게 만들 것인가?
그 와중에도 나와 적들의 거리는 차츰차츰 좁혀지고 있다.
이윽고.
나는 두 주먹을 들었다.
“…잘 보라고 이제 어떻게 되나.”
말을 마친 나는 온 힘을 다해 양 팔을 내뻗었다.
시원한 한 방! 통렬한 일격!
와지지지직-!
두 주먹의 건틀릿이 응축된 반사 데미지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간다.
동시에 무시무시한 풍압이 주변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A+등급 아이템이 가루가 될 정도로 강력한 힘!
누가 그 압도적인 기운에 저항할 수 있단 말인가!
[…으, 으아아아아!]
서른두 명의 랭커들은 나에게 다가오지도, 도망가지도 못한 채 선 자리에서 비명을 질러댔다.
탱커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방패를 들었고 마법사와 궁수들은 본능적으로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주저앉는다.
오크고 리자드맨이고 뭐든 간에 그냥 죽기 싫으면 그냥 몸을 웅크리고 사려야 할 것이다.
……누가 감히 나를 퇴물이라 할 것인가?
단순히 기세만으로 모든 것을 압도하는 광경!
하지만.
콰-쾅!
내 두 주먹이 향한 곳은 랭커들이 아니었다.
[……!?]
모든 이들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그들의 시선은 이내 땅에서 하늘로 향한다.
부웅-!
창공을 향해 마치 로켓처럼 솟구치는 것.
그것은 바로 ‘화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