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89화 (389/1,000)
  • 390화 국가대표 선발전 (3)

    “갈게요. 나오지 마세요.”

    나는 엄재영 감독의 집을 나왔다.

    “주무시고 가시지.”

    “그래 자고 가지. 늦었는데.”

    오희선 씨와 엄재영 감독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지만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동생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 나오지 마셔요, 괜찮아요. 요 앞에 바로 차 대놨으니까.”

    나는 자고 가라는 엄재영 내외의 권유를 사양하고는 마당으로 나섰다.

    “…….”

    문득, 나는 대문을 나서기 전 마당에 있는 연못에 주목했다.

    밤에 젖은 마당. 연못은 검게 물들어 있다.

    휘영청 밝은 달 하나가 조용히 일렁이는 수면.

    낙엽 몇 장이 달 위를 천천히 흐른다.

    “…….”

    나는 연못가로 걸어가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바둥바둥

    벌레 한 마리가 물에 빠져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새끼 귀뚜라미가 바람에 날아와 물에 빠진 모양이다.

    내가 연못을 가만히 보고 있자.

    …퐁당!

    이내 검은 물 밑에서 무언가가 슥 올라와 귀뚜라미를 한 입에 집어삼켰다.

    그것은 빨간 몸을 가진 금붕어였다.

    포식자(捕食者)와 피식자(被食者).

    이 작은 연못 안에서도 힘의 상하관계가 명확하게 나뉜다.

    나는 금붕어의 입속으로 단숨에 빨려 들어가는 귀뚜라미를 보며 생각했다.

    ‘…누가 귀뚜라미가 되고 누가 금붕어가 될 것인가.’

    이번 대회에 나간 누군가는 분명 다른 누군가를 잡아먹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간단하다. 덩치를 불리고 힘을 키우면 된다.

    만약 저 작은 귀뚜라미가 조금만 더 덩치가 컸다면, 외골격이 단단하고 뒷다리의 장딴지가 굵었다면 금붕어에게 먹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전에 연못을 빠져나갔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힘을 키워도 압도적인 격차. 차원이 다른 힘에는 소용없지.’

    대격변 이후 수많은 랭커들이 프로로 데뷔했다.

    그들은 강해진 몬스터들과 가혹해진 던전 생태계를 상대로 레이드를 치르며 노하우를 축적했고 이내 새롭게 얻은 육체에 익숙해져 갔다.

    오크와 리자드맨. 그들은 강해진 육체와 능숙해진 경험에 한껏 자만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할 일은 그렇게 해서 높아진 콧대들을 꺾어 부러트려주는 것이다.

    ‘한국 프로리그, 아니 세계 프로리그야, 기다려라. 격(格)이 다른 힘을 보여 줄 테니.’

    나는 연못을 등지고 돌아섰다.

    순간.

    …풍덩!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못 중앙에서 물무리가 튀어 올랐다.

    엄재영 감독이 키우는 거대한 열대어 ‘블랙 아로와나(黑龍)’가 수면 위의 금붕어를 한 입에 집어삼켜 버렸던 것이다.

    *       *       *

    엄재영 감독의 자택 앞.

    나는 담장 옆에 주차되어 있는 세단의 뒷좌석 문을 열고 안에 탔다.

    “아, 볼일 끝나셨습니까 형님?”

    운전석에 앉아 있던 유창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뒷좌석에 몸을 깊게 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집으로 가자. …아니다, 조금만 있다가 가자. 쉬게.”

    “집에서 쉬면 되지 않으십니까?”

    “집에 가면 또 일이 산더미라서. 요즘은 차가 제일 편해.”

    자연스럽게 유창과 보내는 시간 또한 많아졌다. 우리는 그간 부쩍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유창은 눈을 감고 쉬는 나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라디오를 작게 틀었다.

    이내 라디오에서 듣기 좋은 미성이 흘러나온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한밤중의 뎀 라디오 개인방송 채널~ 오늘의 게임 사연은~]

    어라?

    나는 눈을 반개했다.

    그러자 유창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형님 쉬시는 데 방해되려나요? 끌까요?”

    “아냐. 소리 좀 키워 보라고.”

    내 말을 들은 유창은 씩 웃으며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러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졌다.

    [유다희의 유다이 쇼입니다. 네 오늘의 사연이 또 들어왔네요. 클리어 직전 당한 억울한 죽음! 아 이건 정말 읽어드리는 제가 다 화나는 케이스인데요~]

    유다희가 라디오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원래 미래에는 없던 일이었다.

    “누나가 요즘 활기차져서 다행입니다. 하고 싶은 것 소소하게 이것저것 많이 해 보는 것 같아요.”

    유창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유세희가 병마에서 완전 회복된 이후 유창희가 마음잡고 내 밑에서 열심히 일하자 유다희의 성격은 많이 달라졌다.

    게임 방송을 하거나 라디오 진행, 가끔 마동왕과 마교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나가거나 후원회를 개최하는 등 하고 싶은 일을 소소하게 하면서 사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는 큰 기획사에서 연습생 제의도 들어왔는데 싫다고 했답니다. MS엔터였나?”

    “잘했네. 거긴 안 가는 게 나아.”

    원래 회귀 전 세상에서의 유다희는 MS엔터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걸그룹으로 데뷔한다.

    당장 계약금이 급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특유의 자신감과 성격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예계는 나 하나 능력 있다고 잘될 수 있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고 유다희는 그곳에서 더 심하게 망가져 가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아니다.

    나비효과일까? 내가 일으킨 작은 변화는 점점 내 주변 사람들의 미래를 바꿔 놓고 있다.

    나는 유다희의 긍정적인 변화를 듣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는 까닭에 회귀 전보다 오히려 더 잘 나가고 있었다.

    [와오! 거기서 그냥 당하고만 있었어요!? 나 같으면 그 PK충 다리몽댕이를 그냥 확……! 하여간 양민학살 하는 XX들은 전부 다 XX해서 XX해야 해! 진짜! 제보자님 울지 마세요! 천벌 받을 거예요 그 양민학살범!]

    그 특유의 성격은 어디 안 간 것 같았지만 말이다.

    유창은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요즘 누나 엄청 바빠요. 아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마동왕 응원단끼리 모여서 응원 준비한다고…….”

    “음, 이거 어째 좀 미안하다. 마동왕이 나인 걸 알면 실망 많이 할 텐데.”

    “엄청 충격 받을걸요?”

    “그렇지? 아무래도 은근 마음이 여리니.”

    “힘도 좀 여렸으면 좋겠네요.”

    유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 역시 한때 유튜뷰 연말파티에서 족발 뼈를 손으로 쥐어 부수던 유다희의 악력을 떠올리자 오싹 소름이 돋는다.

    “세희는 요즘 뭐하나?”

    “저보다는 형님이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요즘 막내랑 대화를 잘 안 해서. 걔 요즘 거의 연습실에만 붙어 있잖아요.”

    내가 묻자 유창은 어깨를 으쓱했다.

    유세희는 요즘 내 소유의 빌딩 안, 구단 멤버들의 연습실과 숙소만 왔다갔다한다.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마태강과 붙어 다니는 편이었다.

    둘이 뭐 그리 할 게 많은지 아무와도 만나지 않은 채 게임 세상 속 깊은 곳에서 아옹다옹 뭔가를 하는 모양.

    현실 세계에 있을 때는 거의 식사와 잠, 운동만 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게임 속에서 보내는 것 같았다.

    유창은 턱을 슬슬 쓸었다.

    “듣기로는 무슨 아이템을 구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뭐였더라? ‘살아 있는 화석’ 이었던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살아 있는 화석’? 그 아이템을 구하고 있다고?”

    “예. 그 마태강이라는 녀석이 필요로 한다고 그러더군요. 세희가 그걸 돕고 있는 모양입니다. 자식, 그런 기생오래비 같이 생긴 놈이 뭐가 좋다고…….”

    유창은 막내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마태강이 영 탐탁치 않은 기색이다.

    가만 보면 이 녀석도 은근 팔불출 기질이 있다니까.

    그나저나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하면 나도 아는 아이템이다.

    -<살아 있는 화석> / 재료 / ?

    오래 전부터 모습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온 고대의 존재.

    “흐음. 이걸 구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아는 눈치를 보이자 유창은 ‘역시’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희 말로는…‘그린헬’이었나? 저기 서쪽 정글 오지에서나 드랍되는 워낙 희귀한 아이템이라서 아마 형님도 모를 것이라고 하던데, 역시 형님은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그럼. 내가 아주 잘 아는 히든 피스지.”

    나는 피식 웃었다.

    마태강 이 녀석. 딴에는 나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남몰래 준비를 하는 것 같은데, 그래 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그래도 의도가 좋다는 건 알겠네.’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서 나를 놀라게 해 주려는 의도는 확실히 전해졌다.

    나에게 뭔가를 보여 주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심이 느껴져서 모른 척 해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시간이 얼마 없단 말이지.’

    가능한 스스로 하게끔 지켜보되 여차하면 내가 구해 줄 요량이었다.

    “어차피 세희에게 줄 선물도 있으니 태강이에게도 선물해 주는 겸 해서 한꺼번에 줘도 되겠군.”

    나는 검지로 이마를 톡톡 두드렸다.

    마동왕의 부활.

    대격변 이후에도 한국 프로리그를 지배하는 것은 나라는 걸 이참에 확실히 못박아둬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게 다가 아니다.

    국가대표는 팀 단위로 정해지는 것이니만큼 나 하나만 날뛰어서는 곤란하다.

    이번에 새롭게 데뷔할 유세희의 기량 역시도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증명해줘야 할 때였다.

    “…그 누구도 우리가 국가대표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거야.”

    나뿐만이 아니라 내 사람들 전원이 인정받게 될 것이다.

    ‘닳고 닳은 뉴비’ 구단이 한국을 대표함에 있어서 아무런 이견도 나오지 않게끔 확실한 ‘퍼포먼스’를 준비해 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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