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국가대표 선발전 (1)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게임 접속이 해제되었다.
나는 정신이 완전히 현실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게임 캡슐 안에 누워있었다.
“……진짜 잡았네. 오즈.”
엄청난 환희가 전신을 저릿저릿하게 달궈놓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죽음룡 오즈를 잡다니!
내 인생에서 도출된 결과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성과다.
신살자(神殺者). 나는 한 세상의 신을 거꾸러트린 것이다.
푸슉-
캡슐을 열고 나온 뒤에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귓가에는 오즈가 내지르던 단말마와 신살(神殺)의 성공을 알리는 알림음 소리가 멍하니 메아리치고 있었다.
콸콸콸콸콸…
나는 커다란 욕조 안에 따듯한 물을 가득 받은 뒤 머리까지 담그고 한참 동안을 웅크려 있었다.
욕실 안에 따듯하고 뿌연 수증기가 가득 차 거울을 뒤덮어 간다.
고정 S+급 몬스터를 잡았다는 사실은 따스한 수온과 함께 천천히 피부에 와 닿았다.
그것이 완전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을 때쯤 몸의 떨림도 멎었다.
♬♫♪…
그때. 욕실 밖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거실로 나갔다.
울리고 있는 것은 고인물 전용 핸드폰. 발신 번호는 니아의 박보연이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부! 저 지금 막 귀국했어요! 사부한테 제일 처음 전화 거는 거예요!]
“……어디 갔었니?”
[아 뭐야 진짜! 사부 죽을래요?]
거 쪼끄만 게 되게 공격적이네, 참 여전하다 싶다.
“농담이야. 일본 공연 다녀온 거잖아.”
[앗! 기억하고 있었군요? 근데 왜 기억 안 나는 척 하고 그래!]
“밥 사 준다고 했잖아. 얻어먹는 건 기억 잘해.”
[…기억력이 나쁘신 것 같으니 자주 사드려야겠어요, 아메바 사부.]
“언제 어디로 가면 돼?”
[사부 언제 시간 되는데요?]
“나는 방금 큰 레이드 하나 끝내서 당분간은 괜찮아.”
내가 묻자 박보연은 쾌활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럼 지금!]
* * *
나는 이 근방에서 꽤나 유명한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타고 있는 차는 평범한 벤, 딱 두 대 있던 스포츠카와 세단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는 바람에 최근 이 녀석 한 대를 따로 구입해야 했다.
차를 주차장에 댄 뒤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쓴 채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병풍으로 둘러싸인 큰 방 하나가 보인다.
“싸부! 여기!”
안에서 박보연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걸그룹 ‘니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더인 박보연을 비롯하여 박소담, 배수지, 윤두나. 그리고 임우람 매니저까지.
총 다섯 명이 나를 반기며 생글생글 웃고 있다.
“……옛날 생각나는데? 대머리 황제수리 레이드잖아 딱.”
나는 피식 웃으며 임우람 매니저의 옆으로 가 앉았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그간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부분 박보연이 주도하는 대화였지만 말이다.
“일본 공연 완전 재밌었어요! 일본 팬 분들도 다들 매너 좋고 유쾌한 분들 뿐이었고요. 참! 여기 사부 선물! 요청하셨던 화보집이에요.”
박보연은 재잘재잘 떠들었고 그녀의 평소 과묵한 성격을 아는 임우람 매니저와 다른 멤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덕담을 해 주었다.
“요즘 위상이 하늘을 찌르던데.”
“이게 다 기술의 발전 덕이죠.”
박보연은 싱긋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요즘은 자신이 관심 있는 아이돌을 따로 설정해둔 뒤 해당 아이돌의 콘서트나 TV프로그램 출연 일정 등을 집중 알림으로 받아볼 수 있다.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알림이 뜨니 덕질을 하기 더욱 편해졌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요즘 나도 비슷한 게 생겼거든.”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것은 얼마 전 유다희가 만들어 준 ‘마교 어플’이다.
마동왕의 행사일정이나 광고, 팬미팅 등등의 스케줄을 공지해서 응원을 하기 위함이다.
내가 광고를 받으면 해당 광고를 열심히 클릭, 시청한다거나 내 이름으로 봉사활동을 나가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이건 다른 말이지만, 사실 요즘 마동왕 계정은 조회수나 광고료가 약간 하락세에 접어들긴 했다.
고인물로 활동하는 동안 마동왕으로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지. 곧 대박이 터질 테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그날이 오면 마동왕 계정은 또 한 번 날아오를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때를 대비해 몇 가지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었다.
한편.
박소담과 배수지, 윤두나 역시 근황 토크가 활발하다.
‘인권 존중이 최우선!’이라는 기업 분위기답게 니아 멤버들은 다들 활발한 공개연애를 하고 있었다.
박소담이 자신의 연애고민을 풀어놓았다.
“내 남자친구는 사업가인데, 엄청 바빠서 평소에는 잘 못 만나. 한국에 있는 시간이 오히려 더 적은 것 같아. 일본도 가고 러시아도 가고 중국도 가고 미국도 가고……. 연습생일 땐 내가 시간이 많으니까 그나마 연락이 좀 됐는데, 나도 바빠지니까 이제 연락 자체가 쉽지가 않네 진짜. 이번에 일본에서 스케줄 끝나고 잠깐 만날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는 또 언제나 볼지 모르겠다. 하아…….”
그러자 떡갈비를 우물거리던 배수지가 박소담의 등을 팡 쳤다.
“야 이 기집애야. 니 남친은 안전하기라도 하지! 내 남친은 기자라고 막 오만 데를 뽈뽈 돌아다니는데, 저번에는 무슨 수상한 단체 잠입 수사한다고 한 달이나 연락 두절됐었다니까! 나중에 들어보니 글쎄 핸드폰 뺏기고 강제노역하다가 생매장까지 됐었대! 나 미쳐죽어~ 지가 무슨 경찰이야?”
박소담과 배수지가 화가 나서 남자친구를 마구 까고 있자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윤두나가 머리 아프다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너네들은 약과야. 내 남친만큼 속 썩이는 사람이 또 없지. 먹방 BJ하다가 잘 풀려서 연예인으로 데뷔하고 그 이후로도 잘 나가다가… 갑자기 애가 미쳐서는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엥? 아프리카? 거기서 BJ하는 거야?”
“아니! 개인방송 플랫폼 말고! 대륙! 대륙! 진짜 리얼 아프리카! 진짜 남친만 아니었으면 패 죽였다 내가! 그때 우리 응원해 주시던 분들이 얼마나 실망을 많이 하셨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얼굴을 못 들어요, 아주! 어우! 속 터져!”
윤두나의 말에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무튼 우리 셋 다 정상인 남자친구가 없네. 연애는 힘들어~”
“다들 막판에 가서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래도 좋기는 하지만.”
“어휴, 보연아. 너는 연애하지 마라~ 왜냐고? 그냥 하지 마!”
박소담, 배수지, 윤두나는 입을 모아 박보연에게 손사래를 친다.
모태솔로인 박보연을 놀리는 건지, 진담으로 하는 건지.
바로 그때.
위이이이잉…
주머니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마동왕 전용 폰이다.
이 폰으로 전화를 걸어올 사람은 별로 없었기에 나는 바로 발신자를 눈치 챌 수 있었다.
바로 엄재영 감독이다.
“왜요? 지금 밥 먹는 중…….”
하지만, 엄재영 감독의 말에 나는 식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어진아! 지금 아챔 선발전 일정 떴다! 오피셜!]
“……!?”
[지금 연습실로, 아니다 우리 집으로 올 수 있냐? 너 어디야? 내가 지금 태우러 갈게!]
죽음룡 오즈를 잡은 이후로 계속 기다려 왔던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전초전이 열렸다.
한국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국내리그가 드디어 확정된 모양이다.
“……!”
“왜 그래요, 사부?”
나는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벌떡-
“……으어!”
“사부, 뭐 이상한 거 먹었어요?”
“식, 식중독인가?”
후식으로 나온 수정과가 참 아까웠지만 마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니아 멤버들과 임우람 매니저에게 급한 일이 있음을 설명하고는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왔다.
…아니,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니아 멤버들은 나를 쉽게 놔 주지 않았다.
“아, 뭔데요! 아챔…? 뭔 아챔 선발전 이런 말이 들린 것 같았는데?”
“이름에 무슨무슨 감독님 뜬 거 내가 다 봤는데!”
“흐흥, 똑바로 말해 봐요. 사부 요즘 프로 데뷔 준비해요?”
“아아앙~ 사부~ 우리 사이에 이러기에요?”
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 진짜 아니라니까! 그냥 섭외 전화야!"
나는 짓궂게 파고드는 니아 멤버들을 피해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왔다.
"…어우, 눈치 빠른 것들."
그래도 마동왕과 고인물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고작해야 내가 어느 프로구단과 연락하고 있다는 것 정도겠지.
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1차 대격변 이후 미뤄졌던 아챔 리그가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나 보다.
* * *
한편.
박보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것을 본 박소담, 배수지, 윤두나는 혀를 끌끌 찼다.
“으이그~ 바로 표정 시무룩해지는 것 봐라.”
“우리로는 밥 친구가 부족할까, 보연아?”
“그러게 왜 말을 못해! 당신의 ****가 되고 싶다고 왜 말을 못하냐구!”
모두가 입을 모아 성토하자 박보연은 살짝 당황한다.
“아냐~ 그런 거 아냐~”
“아니긴. 다 티 나는데.”
임우람 매니저가 씩 웃으며 박보연의 말을 받아주었다.
“보연아. 그러면 우리 측에서 한번 공식적으로 손을 써 볼까?”
“…네? 공식적으로요? 어떻게요?”
박보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임우람 매니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띤 채 대답했다.
"아까 슬쩍 보니까 엄재영 감독이라 뜨더라구. 그럼 어느 구단인지는 다들 알았지?"
그 말에 니아 멤버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엄재영 감독님이요?"
"알죠, 알죠! 요즘 엄청 핫한 ‘닳고닳은 뉴비’ 구단이잖아요!"
"그럼 지금 거기서 섭외 온 거예요? 거기 마동왕 있는 곳인데……와! 사부 완전 출세했네."
"바보야, 사부는 원래 그 정도 능력 있었거든? 본인이 안 갔던 거지."
크흠-
임우람 매니저는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다시 가져왔다.
“어느 구단에 섭외되는지는 우리가 알았으니까 회사 측에서 정식으로 저쪽 구단에 오퍼를 넣는 거지. 안 그래도 요새 겜순이 이미지를 더 살리려고 회사 차원에서도 준비 중이거든. 마침 사장님이랑 어제 얘기 끝내 놔서 오늘 말하려 했는데 갑작스럽게 가 버리시는 바람에……. 근데 어진 씨 성격에 프로 데뷔 하실지 모르겠네. 안 하실지도 모르는 건데. 워낙 자유로우신 분이라.”
그러자 니아 멤버들도 눈이 동그래진다.
임우람 매니저는 니아 멤버들의 시선을 받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는 한껏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우리는 걸그룹 최초로 프로구단과 계약을 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니아 멤버들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어렸다.
“꺄악! 나 다시 한번 프로게이머 되는 거야!?”
“확실히 요즘 프로리그 보면 나도 한번 도전할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신생 프로팀들 엄청 난립하잖아. 완전 춘추전국시대 아냐~”
“맞아! 우리도 그동안 게임 열심히 했잖아! 준프로 정도는 된다는 평가 많이 듣는다고!”
“얘들아,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솔직히 2군 정도면 가능성 있지 않냐? 진짜로 빡세게 연습해서 지원해 보자! 나도 다시 사부에게 게임 배우고 싶었던 참이야!”
박보연, 박소담, 배수지, 윤두나는 잔뜩 들떠서는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기뻐하는 것만 봐서는 벌써 프로게이머 시험에 합격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임우람 매니저는 어색한 미소만 띨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하려던 말을 조용히 입 안으로 삼킨 채로.
‘……나는 구단 홍보모델 얘기한 거야,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