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86화 (386/1,000)
  • 387화 죽음룡 오즈(Odd’s) (9)

    쿠르릉…

    당장이라도 붕괴할 듯 흔들리던 던전이 이제 서서히 진정된다.

    천장에서 내리던 독의 소나기도 요동치던 용암의 파도도 모두 멈춘 무저갱 바닥에는 정적만이 가득할 뿐이다.

    하지만, 오로지 우리들의 귀에만 들려오는 소리들이 있었다.

    -띠링!

    그것은 바로 경쾌한 알림음 소리. 아카식 레코드 관리자의 목소리였다.

    <세계 최초로 ‘죽음룡 오즈’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나락의 종점 오즈’가 쓰러졌습니다>

    <오즈 랜드(Odd’s Land)가 멸망했습니다>

    <온 세상의 절반이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2차 대격변의 ‘두 전쟁군주’들이 고인물 님을 주목합니다>

    <악마성좌 마몬이 당신의 업적을 좋아합니다>

    <악마성좌 벨페골이 당신의 업적을 좋아합니다>

    <악마성좌 사탄이 당신의 업적을……>

    .

    .

    알림음을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죽음룡 오즈가 죽었다!

    “……!”

    나는 두 팔을 들어 올려 쾌재를 불렀다.

    “어진아!”

    “어진!”

    저 멀리서 드레이크와 윤솔이 달려온다.

    굳어서 암반층이 된 용암의 바다 중심에서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환희를 나누었다.

    잭 오 랜턴의 숭고한 희생, 그리고 도로시 원정대와의 시공간을 초월한 파티 플레이가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잭과 함께 이 풍경을 봤으면 참 좋았을 텐데.”

    윤솔은 감성에 젖은 채 황량한 현무암 대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감성에 메마른 나와 드레이크는 정신없이 보상을 챙기기에 바빴다.

    나는 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어진>

    LV: 86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不死)의 우군단장(특전: 선택) /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특전: 혈족전생)

    HP: 860/860

    레벨이 한꺼번에 네 번이나 올랐다.

    필요 경험치량이 극악으로 높아지는 와중에 4번의 연속 레벨 업이라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것이다.

    한데?

    “……혈족전생? 이게 뭐지?”

    나도 잘 알 수 없는 호칭과 특전이 생겼다.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 이라는 호칭은 일단 오즈를 쓰러트렸으니 얻은 보상이 확실하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특전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혈족전생(血族轉生)’ 특성.

    ↳ ?

    회귀하기 전의 삶에서도 전혀 들어본 적 없는 특성이었다.

    “으음. 쉽게 짐작할 수는 없겠는데, ……뭐 고민은 나중에 할까?”

    지금 이것만 놓고 고민할 틈이 없다.

    확인할 보상들이 산더미였다.

    나는 인벤토리로 집어넣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죽음룡 오즈의 죽음비늘> / 갑옷 / S+

    무저갱 속의 왕이 두르고 있던 비늘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불길함이 깃들어 있다.

    나약한 존재들은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방어력 -666

    -‘어둠’ 저항력 +500%

    -‘부패’ 저항력 +500%

    -특성 ‘근묵자흑(近墨者黑)’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부관참시(剖棺斬屍)’ 사용 가능 (특수)

    엄청난 아이템이 드랍되었다.

    S+등급의 아이템.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스펙으로 무장하고 있는.

    내 살아생전 감히 구경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신물(神物)이 나에게로 떨어졌다.

    “……이거 밸런스 괜찮나?”

    스스로에게 걱정이 들 만큼 엄청난 것을 얻어버렸다.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특성이 두 개나 붙어있는 것이 보인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공격해 온 적에게 피해의 100%를 반사합니다.

    적은 그 외에도 초당 최대 체력의 0.01%에 해당하는 체력을 잃습니다. 최대 체력의 10%를 잃을 때까지 이 피해는 계속됩니다.

    ‘부관참시(剖棺斬屍)’

    ↳적의 사망 패널티가 두 배로 적용됩니다.

    ‘근묵자흑’ 특성은 전에 쓰던 바실리스크의 ‘패륜아’ 특성의 상위호환임이 명백했고 ‘부관참시’ 특성은 ‘어떤 누구’에게는 아주 유용한 특성이 될 것 같았다.

    비록 방어력이 형편없는 것을 떠나 마이너스에 육박하지만… 그것을 감안한다 해도 충분히 화려한 특전들이었다.

    4번의 레벨업.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이라는 호칭.

    혈족전생(?)이라는 의문의 특성.

    그리고 S+등급의 새로운 갑옷!

    과연 고정 S+등급 몬스터를 처치한 보람이 있다.

    거기에, 나는 방금 전에 들은 알림음의 내용에도 주목했다.

    <2차 대격변의 ‘두 전쟁군주’들이 고인물 님을 주목합니다>

    이것 또한 상당히 흥미로운 메시지다.

    나는 아무래도 용도 악마도 아닌 두 절대자의 관심을 끌어버린 모양이다.

    나는 얼떨떨한 감정을 겨우겨우 추스렸다.

    그리고 품속에서 손가락을 빨고 있는 쥬딜로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곧 친구들이 늘어나겠구나.”

    […뿌?]

    쥬딜로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래, 네가 내 깊은 뜻을 어찌 알겠니?’

    멀리 보는 자는 으레 과묵한 법.

    나는 그저 조용히 쥬딜로페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다.

    한편.

    “와아! 레벨 업이다! 엄청 많이 하네, 이번엔.”

    “어진. 이번 보상은 정말 엄청나군!”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상당히 만족스러운 보상을 얻었다.

    우선 드레이크는 자그마치 여섯 번의 연속 레벨 업을 해서 현재 79레벨까지 올라왔다.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레벨 80은 넘지 못했지만 그래도 엄청난 성과였다.

    윤솔 역시 일곱 번의 연속 레벨 업으로 인해 레벨 77이 되었다.

    보스 몬스터 레이드 성공 시 모든 파티원에게 같은 호칭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나와 달리 ‘검은 용 사냥꾼’ 이라는 호칭을 얻었고 이는 용 계열 몬스터, 혹은 용 산하의 몬스터들과 전투 시 두 배의 피해를 줄 수 있는 특전으로 어마어마하게 좋은 특전 보상 중 하나였다.

    “부럽다. 다들 엄청 좋은 거 얻었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의 호칭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얻은 혈족전생이라는 특성은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딜 미터기를 보면 1위는 잭 오 랜턴, 2위가 나, 3위와 4위가 각각 드레이크와 윤솔이었는데 어쩌면 내가 얻은 특전이 더 좋은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이번엔 아이템이었다.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윤솔과 드레이크에게는 별도의 장비류 아이템이 따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불카노스> / 재료 / ?

    용비늘에 견줄 정도로 가볍고 단단한 물질.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정도로 극히 희소, 희귀한 광물이다.

    죽음룡 오즈가 남긴 대량의 순(純) 불카노스 주괴(鑄塊)들이 각각 윤솔과 드레이크의 몫으로 배정되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이 죽어라 캤던 튼실한 원석을 S급 몬스터인 밴시 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제련한 결과물.

    그 순도와 정성은 감히 미루어 짐작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리라.

    사실 이것만 해도 수많은 대형 길드들이 부러워 입에 거품을 물 정도의 보상이었다.

    드레이크는 이것들로 화살촉을 만들 것이라며 기뻐했다.

    마침 배드엔딩의 외골격으로 만든 화살대에 상점에서 산 화살촉이 어울리지 않아 고민이었다나?

    “배드엔딩의 외골격으로 만든 화살대에 불카노스 화살촉을 끼우면…… 크! 그 위력이 볼 만 하겠군!”

    나름대로 많이 기쁜 눈치인 드레이크다.

    한편, 욕심이 전혀 없는 윤솔은 그저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나는 어디에 쓸지 모르겠는데. 그냥 어진이 너 가져~ 아니면 우리 구단 사람들 중에 필요한 사람 있으면 쓰라고 하거나.”

    천사와 함께 다니더니 천사가 되어 버린 걸까?

    넙죽 받고 싶었지만 그것은 곤란하다.

    “솔아. 네 몫을 분명히 챙겨야 할 줄도 알아야 해. 넣어둬~ 넣어둬~ 다 쓸 데가 있다니깐.”

    회귀 전의 나이가 있으니만큼 나는 사리분별 정도는 할 줄 안다.

    나는 윤솔의 인벤토리에 직접 불카노스 주괴들을 넣어 주었고 윤솔은 쓸 일이 있으면 쓰고 없다면 내 구단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좋았어!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군!”

    드레이크는 텅 빈 죽음길 나락 몰이해지대를 바라보며 외쳤다.

    검붉은 용암바다는 이제 완전히 식어 현무암 암석지대로 변했다.

    모든 것이 클리어된 던전만큼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 또 있으랴?

    윤솔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진아. 오즈도 잡았는데… 우리 이제 뭐 해?”

    그동안 죽음룡 오즈를 향해 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왔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날은 저무는데 아직 갈 길은 멀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려온 이 길도 이제는 끝이 났다.

    ‘황천의 유극’부터 시작해 ‘경매장’, ‘얼어붙은 부패’, ‘칼침의 탑’, 그리고 ‘죽음길 나락’까지.

    실로 많은 곳을 거쳐 오며 준비한 결과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화력을 키워 놨으니 뭘 해야겠어?”

    윤솔이 고개를 갸웃하자, 나는 말을 이었다.

    “국격(國格)을 높여야지.”

    한때 E스포츠 강국이었던 한국.

    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영광일 뿐, 사회 지도층들의 잘못된 인식과 비합리적인 규제 탓에 점점 E스포츠 경쟁에서 뒤쳐져 이제는 후진국 소리까지 듣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이 흐름을 확 뒤집어 엎어버릴 계획이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Asia Champions League)’에 출전할 거야.”

    내 말을 들은 윤솔도 드레이크도 입을 딱 벌렸다.

    “…어진아, 너무 밸런스 붕괴 아닐까?”

    “벌레 씨름에 코끼리가 출전하는 격이로군.”

    그렇다.

    나는 대회에 나가서 모든 것을 쓸어버릴 것이다.

    다시 한번 나와 내 나라가 왕좌에 앉을 시간이 되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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