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84화 (384/1,000)
  • 385화 죽음룡 오즈(Odd’s) (7)

    휘이이이이잉…

    속절없는 포연.

    잭 오 랜턴은 당당히 선 자세 그대로 소멸했다.

    먼 옛날 오즈에게 맞았어야 할 최후를 이제야 맞이한 것이다.

    선고를 유예(猶豫) 받았던 자.

    그는 이제 옛 동료들의 곁으로 떠났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그리운 동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악의 고성에서부터 시작되어 얼어붙은 부패, 칼침의 탑을 지나 죽음길 나락에서 끝난 인연.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의 원래 소속은 ‘고인물 파티’가 아닌 ‘도로시 파티’일 것이니 어찌 보면 섭리대로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레이드를 성공시키는 일 뿐이지.”

    나는 잭 오 랜턴을 향해 묵념을 해 보인 뒤 그의 유지를 이었다.

    턱-

    그가 남긴 불카노스 대낫을 인벤토리에 넣은 뒤, 나는 죽음룡 오즈를 돌아보았다.

    [오-오오오!]

    오즈는 정말로 화가 많이 나 있었다.

    겉보기에는 침착한 듯 보였지만 사실 전신의 비늘들이 죄 빠진데다가 그동안 몸을 웅크리며 준비해 놓은 모든 대사업들이 죄다 망해 버렸으니 침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콰쾅!

    오즈의 손톱이 날아와 용암지대에 깊은 상흔을 내 놓는다.

    …퍼펑!

    빠르고 강력한데다가 광역 공격 패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단순 물리 데미지다.

    나는 오즈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낸 뒤 반사 데미지를 뿌려 반격했다.

    [……이놈!?]

    죽음룡 오즈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반사데미지를 뿌리면서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때, 익숙한 힘이지?”

    그렇다. 나의 몸을 휘감고 있는 것은 시커먼 핏줄로 된 갑옷.

    -<패륜아의 심장> / 갑옷 / A+

    바실리스크의 심장 가죽을 도려내어 잘 말린 것.

    세상 그 모든 것들을 증오하고 저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방어력 +500

    -특성 ‘패륜아’ 사용 가능 (특수)

    ……바실리스크!

    죽음룡 오즈의 사생아가 심장만 남아 여기에 왔다!

    오즈는 나에게서 느껴지는 아들의 기운에 양 어깨를 으쓱했다.

    [쓰레기 같은 놈.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되는구나. 뒤주에 가둬 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죽여서 인간 지네로 만들어 버렸어야 했는데…….]

    그러자, 내 전신을 휘감고 있는 바실리스크의 심장이 움찔한다.

    …두근! …두근! …두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단 한 번도 인정해 주지 않았고 무저갱 나락으로 유배까지 보낸, 심지어 끝끝내는 좁디좁은 뒤주 안에 가둬 죽이려 한 부모.

    심지어 자신에게 사랑을 줬던 유일한 대상인 메두사까지 내쫓아 버리지 않았던가!

    그런 어미를 만났기 때문일까? 바실리스크가 가진 고유특성 ‘패륜아’가 극한까지 개화되었다.

    츠츠츠츠츠…

    검은 핏줄들이 내 몸 전체를 뒤덮는 것도 모자라 그 위까지 층층이 감싸 조인다.

    그 때문에 나는 덩치가 상당히 불어난 것처럼 보였다.

    쾅!

    죽음룡 오즈가 꼬리를 휘둘러 나를 후려쳤다.

    나는 극한까지 개화한 패륜아 특성으로 이에 맞섰다.

    패륜아 특성은 평소 90%대의 데미지 반사율을 보이지만 본인보다 상위 등급에 있는 적에게 한해서는 100%의 데미지를 그대로 반사한다.

    뿌지직!

    질긴 근섬유가 찢어지는 소리.

    [크아아아악!]

    오즈가 비명을 지른다.

    붉은 혈액이 사방팔방으로 튀며 거대한 고깃덩어리 하나가 지면에 철썩 떨어졌다.

    잘려나간 오즈의 꼬리였다.

    “……후.”

    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부러지지 않고 버티는 데스나이트의 마음을 느꼈다.

    사자심왕의 ‘앙버팀’ 특성 덕분에 나는 또다시 HP가 1남은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진아! 힐!”

    윤솔이 재빨리 나에게 힐을 걸어 준다.

    또다시 얼마 되지 않는 체력이 완벽하게 차오른다.

    패륜아 특성으로 인한 반사 데미지와 앙버팀 특성으로 인한 버티기, 그리고 어둠 대왕의 혈액포식자 특성과 윤솔의 힐 덕분에 나는 계속해서 죽음의 문턱을 밟기 직전 다시 되돌아온다.

    ‘밟을까~ 말까~ 밟을까~ 말까~’

    죽음의 문턱 앞에서 까치발을 한 채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넘을락 말락 널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죽음의 신도 분통이 터져 죽고 말 것이다.

    …지금 오즈가 바로 그랬다.

    [크아아아아악! 이 얄미운 벌레 놈이!?]

    죽음룡 오즈. 놈은 전신에서 시커먼 아우라를 뿜어내며 포효했다.

    원래대로라면 놈의 주 무대는 드넓은 전쟁터가 되었어야 한다.

    그곳에는 시체가 많은지라 오즈의 전투력이 100% 발휘될 수 있겠지만… 이 무저갱 속은 아니다.

    “주변에 아무도 두지 않는 편협함이 결국 네 목을 조르는구나.”

    나는 오즈의 앞에 섰다. 아니, 어쩌면 오즈가 나를 앞에 세운 걸지도.

    자잘한 인과관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 오즈가 나를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인 브레스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정도…?

    콰콰콰콰쾅!

    시커먼 숨결이 마치 광선빔처럼 날아든다.

    그 주위로는 오로라와도 같은 검은 기운이 사납게 출렁이고 있었다.

    …퍼펑!

    나는 또다시 오즈의 화력을 맨몸으로 막아내었다.

    데스나이트, 사자심왕 리차드의 용맹스러운 패기가 나의 전신을 죽음으로부터 지켜낸다.

    그리고 열등감과 애정결핍만을 물려받은 가엾은 사생아 바실리스크가 부모를 향해 해묵은 원한을 토해 냈다.

    콰콰콰콰쾅!

    자기가 쏘아 보낸 살(殺)을 그대로 되돌려 받은 오즈는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전신을 꿈틀거렸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

    나는 쌍수단도 깎단을 쥐고 앞으로 내달렸다.

    이대로 도트 데미지를 걸어서 승부를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즈는 노련했다.

    [어딜 감히……!]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리던 오즈는 이내 나를 향해 브레스를 발사했다.

    단 한 번이 아닌 짧고 굵은, 여러 번에 나누어진 브레스였다.

    퍼퍼퍼퍼펑!

    허공에 몇 개인가의 구멍이 뚫렸다.

    “……!”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죽음룡 오즈는 나의 ‘앙버팀’ 특성을 간파한 것이다!

    브레스 중 몇 발은 시간차를 두고 나에게 쇄도했고 다른 몇 발은 뒤에서 힐 지원을 해 주고 있던 윤솔에게 날아들었다.

    “……쳇!”

    드레이크가 놀라운 민첩성으로 몸을 날려 윤솔을 저 멀리 대피시킨다.

    하지만 나는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오즈의 브레스를 피하지 못했다.

    쾅!

    첫 번째 브레스는 버텼다. 비록 HP가 1남은 상태였지만.

    나는 재빨리 허리춤의 포션을 꺼냄과 동시에 혈액포식자를 시전했다.

    그러나.

    쿠르륵!

    오즈는 용암을 발로 세차게 밟아 불의 벽을 만들었고 그 때문에 오즈에게서 빨아들이던 핏물이 불길에 익어 선지로 변해 버렸다.

    그렇게 해서 HP를 채우지 못한 내게.

    콰쾅!

    두 번째.

    콰콰쾅!

    세 번째.

    콰콰콰쾅!

    네 번째 브레스가 연달아 날아들었다.

    휘이이이잉…

    시커먼 포연이 아스라진다.

    “어진아!”

    “으음…….”

    윤솔과 드레이크가 절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죽기 마련이다. 나에게 맞서는 경우는 더욱 그렇지. 인과율의 법칙 상 당연한 현상이니 달게 받아들이거라.]

    죽음룡 오즈는 나의 죽음 앞에 조소했다.

    마음에 드는 언데드 재료가 생겨서 기쁜 모양.

    …하지만!

    퍼펑!

    자욱한 포연을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바람!

    연기 중앙에 뻥 뚫린 구멍으로 등장한 것은 바로 나였다!

    -<이어진 폴다운 모드>

    LV: 82

    호칭: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전신이 검붉게 물들어 있는 모양새.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 나는 데스나이트 전 때와 같이 베르세르크 모드로 변한 것이다.

    모든 스탯이 10배 가까이 폭증했다.

    나는 그 상태로 쌍수단도가 된 깎단을 움켜쥐었다.

    …파팟!

    몸이 너무 가벼워져서 용암의 바다 위도 그냥 밟고 달릴 수 있을 정도다.

    나는 물수제비처럼 열해(熱海)의 수면 위를 스치며 질주했다.

    오즈가 비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그 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용암룡 일족의 애송이가 탐내던 서해의 큰 거미가 아마 그 힘을 가졌었지?]

    죽음룡 오즈 역시도 부유섬의 지배자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을 아는 모양이다.

    당시 용암룡 모르그마르와 부패성좌 벨제붑이 그녀를 영입하기 위해 다퉜을 정도이니 뭐, 오즈의 귀에도 그 위명이 전해졌을 수도 있겠지 싶다.

    [나의 힘을 거부하고 받아들인 것이 고작 하찮은 거미 년의 힘이라니. 실로 황당하구나! 역시 하등한 벌레의 사고는 이해도, 공감도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오즈는 용암의 수면 위를 박차고 다가오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네놈의 실체를 안다. 서쪽 거미의 힘은 꽤나 주목할 만한 것이지만… 결국 미물(微物)은 미물!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지.]

    놈은 내 목숨이 고작 100초밖에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촤아아악-

    오즈는 뒤로 물러났다.

    놈은 빙글빙글 웃는 낯짝으로 용암의 바다를 가르고 계속해서 뒤로 빠진다.

    그 교활한 두뇌로 내 이동속도를 계산한 뒤 100초 안에 달려오지 못할 거리만 딱 벌려 놓을 속셈이다.

    거리가 너무 멀어 윤솔의 힐 마법도 닿지 않는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용암의 바다 위를 뛰어갔다.

    [너는 내게 닿을 수조차 없다.]

    그러나 오즈는 너무나도 멀리 있었다.

    놈은 정밀한 계산을 거친 결과 나에게서 딱 101초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했다.

    나의 목숨이 다하는 시간은 100초.

    즉 나는 오즈에게 닿기 직전, 1초의 거리 차이를 남긴 채 놈의 눈앞에서 물거품처럼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오즈는 나와는 싸울 가치조차 없다는 듯 비죽비죽 웃고 있었다.

    [네놈이 죽는 순간 뒤에 있는 네 동료들은 전부 내 부하가 될 것이다. 천사 출신의 리치 킹, 활을 쏘는 데스나이트 역시도 매력적이겠군.]

    놈은 당장 펼쳐질 몇 초 뒤의 미래를 그리며 나를 조소했다.

    이윽고.

    내 HP가 경각에 이르렀다.

    얼마 남지 않은 체력, 앞으로 한 10초 정도는 버텨 줄까?

    […오라! 나는 곧 죽음이요 불멸이라! 너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오즈는 방어할 생각도 없다는 듯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이제 놈과 나의 거리는 고작 11초 안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내 체력은 앞으로 딱 10초밖에는 버티지 못한다.

    나는 온 힘을 쥐어짜 오즈의 품속으로 달려갔다.

    죽음의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됐다.

    1. 2. 3. 4. 5. 6. 7. 8. 9……

    세상에서 가장 긴 10초가 지나간다.

    10!

    카운트다운의 끝.

    하지만 나는 오즈의 몸에 닿을 수 없었다.

    고작 1초의 차이로 말이다.

    오즈의 교활한 지능은 조금의 실수도 없이 딱 1초의 간극을 남겨 놓고 나를 리타이어 시켰다.

    마치 육상에서 1초의 차이가 하늘과 땅의 차이와도 같듯, 나 역시 결국 10초 주파를 완주하지 못한 것이다.

    ….

    …….

    ……물론.

    그렇다고 내가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11!

    카운트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

    죽음룡 오즈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평소에 내지 않던 헛바람 소리까지 낸다.

    “놀라긴.”

    나는 윙크 한 번을 날렸다.

    그리고는 시뻘건 궤적을 그리며 오즈의 품 안에 안착했다.

    자만심에 빠져 무방비 상태를 고수했던 오즈의 가슴팍, 심장부에 두 발의 깎단이 거침없이 박혔다.

    퍼퍽!

    쌍살벌처럼 날아 쌍살벌처럼 쏜다!

    잭 오 랜턴이 헤집어 놓은 십자 모양 흉터가 벌어지며 피 분수가 폭발했다.

    [크학!?]

    오즈는 입으로도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왜 내가 죽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

    나는 데스나이트의 갈기를 펄럭이며 오연한 자세로 서 죽음룡 오즈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바실리스크의 검은 핏줄들 일부를 뿌직 뜯어내고는 가슴팍을 열어 보인다.

    놀랍게도,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단지 포션이 기화된 듯한 붉은 수증기만이 내 텅 빈 가슴 구멍에서 피어오르고 있을 뿐.

    나는 오즈의 조소를 그대로 되갚아 주었다.

    “나는 심장이 없다네 오즈. 아픈 걸 느끼지 못하지.”

    양철 나무꾼의 마지막 대사.

    아직 도로시 원정대의 반격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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