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83화 (383/1,000)
  • 384화 죽음룡 오즈(Odd’s) (6)

    [오-오오오오오…!]

    용암의 바다 연안.

    죽음룡 오즈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포효했다.

    하지만 전신을 감싸고 있던 비늘들이 모두 빠져 버린 뒤라서 그런가, 예전과 같은 위엄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오즈를 눈앞에 둔 채 당당하게 외쳤다.

    “비늘 없는 드래곤은 앙꼬 없는 찐빵이요, 소 없는 만두요, 민트 없는 초코요, 파인애플 없는 피자와 같지.”

    이미 계획은 최종단계다.

    오즈는 내가 기획한 함정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1페이즈, 외길 벼랑. 강제 스크롤 방식의 추격전.

    2페이즈, 천장. 도로시의 피 소나기.

    3페이즈, 평지. 여기서부터는 나의 차례인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패턴이 따로 없어! 그냥 딜 퍼부으면 돼!”

    내 오더가 떨어지자 윤솔과 드레이크가 기다렸다는 듯 움직였다.

    파팟!

    윤솔의 신성불가침 특성이 발현되었다.

    하프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선율이 하얀 불꽃이 되어 넓은 범위를 휘감아 조였다.

    천사 특유의 맑은 기운이 서린 이 보호막은 아군에게는 버프를, 적군에게는 디버프를 건다.

    적이 ‘어둠’ 속성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

    …우드득!

    오즈의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놈은 어둠의 화신!

    누구보다도 강력한 어둠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윤솔이 선포한 성역 안에서 오즈의 행동은 미약하게나마 느려지고 또 부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드디어 이 화살들이 임자를 만났군.”

    드레이크는 인벤토리 깊숙한 곳에서 화살 몇 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배드엔딩의 단단한 척추를 깎아내어 만든 것으로 거의 공성병기에 필적하는 위력을 가진 한 방 전용 아이템이다.

    …펑! …퍼펑! …퍼퍼펑!

    맨몸뚱이 상태의 오즈는 드레이크의 저격에 속수무책이다.

    비늘이 있었다면 온갖 종류의 기괴막측한 특성으로 방어와 역공을 가해 왔겠지만… 아까도 말했듯, 비늘을 잃어버린 파충류는 행동에 제약이 많다.

    [그-아아아악!]

    오즈는 이제 비명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놈은 고통에 날뛰는 동시에 거대한 몸을 움직여 용암의 파도를 일으켰다.

    …철썩!

    오즈의 꼬리가 용암의 수면 위를 긁어내며 날아들었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도를 만들었다.

    “용암 파도가 온다!”

    우리는 잽싸게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전면에 있던 잭 오 랜턴이 대낫을 들어 파도를 향해 휘둘렀다.

    쩌억-

    파도가 또다시 두 조각으로 갈라졌고 우리는 피격 판정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오-오오오!]

    용암 파도를 뚫고 날아온 참격에 맞은 오즈가 비명을 토해 냈다.

    오즈 역시도 이제는 용암 자체에 데미지를 입는 듯했다.

    지금도 도로시의 피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고 비늘 역시도 계속 빠지고 있었으니 열기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끝을 낼 시간이다.]

    잭 오 랜턴이 앞으로 나섰다.

    검붉은 광택이 흐르는 불카노스 대낫, 그것이 오즈를 향해 겨누어졌다.

    지금껏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던 불카노스에 의해 역으로 노려지게 되었으니 오즈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번쩍!

    잭 오 랜턴은 참격을 날려 오즈의 가슴팍을 세로로 길게 베었다.

    푸슉-

    용의 혈액, 부글부글 끓는 피가 튀어 잭 오 랜턴의 호박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이건 양철 나무꾼의 몫이다.]

    말을 마친 잭 오 랜턴이 다시 한번 대낫을 역수로 꼬나 쥐었다.

    쩌억- 퓨슈슉!

    또다시 참격이 날았고 이번엔 오즈의 가슴이 가로로 길게 패였다.

    그럴수록 잭 오 랜턴의 몸은 더욱 진한 핏빛으로 물든다.

    […이건 겁쟁이 새끼사자의 몫.]

    잭 오 랜턴은 계속해서 대낫을 휘둘렀다.

    쫘아아악!

    오즈의 얼굴 한쪽이 대낫에 의해 너덜너덜해졌다.

    잭 오 랜턴은 그것을 보고 조소를 날리며 한마디 추가했다.

    […이건 도로시의 몫이다.]

    하지만.

    [너. 이 너절한 것아.]

    오즈는 시뻘건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그는 거대한 주먹을 들어 허공에 체류 중이던 잭 오 랜턴의 몸을 후려갈겼다.

    …콰쾅!

    잭 오 랜턴이 벽에 부딪치자 오즈는 그쪽 방향을 향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는 경악하여 외쳤다.

    “피해 잭! 큰 게 온다!”

    내 말이 끝나는 동시에.

    콰-콰콰콰콰콰쾅!

    오즈의 입에서 시커먼 폭풍이 토해져 나왔다.

    죽음의 기운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닿는 것을 죄다 사멸에 이르게 하는 바람.

    우-직!

    잭 오 랜턴은 오즈가 뿜어낸 숨결에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용이 사용할 수 있는 최강 최악의 무기이자 난공불락의 공격패턴 ‘브레스’에 걸려든 것이다!

    [……나를 이 몰골로 만든 것을 평생의 무용담으로 삼거라. 죽음 뒤에 펼쳐질 영원한 나락에서 말이다.]

    죽음룡 오즈는 초토화된 벽을 내려다보며 조소했다.

    하지만.

    쉬이이이익…

    포연이 걷히고 나자 드러난 것은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는 잭 오 랜턴이었다!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대낫을 든 채 당당하게 오즈를 마주보고 있었다.

    비록 전신이 너덜너덜한 걸레짝이 되어 버렸지만 그 기개만큼은 조금도 죽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보며 감탄했다.

    ‘선악과(善惡果)’

    ↳물리공격력 혹은 빛, 어둠 속성 공격력이 10배 증가합니다.

    대상이 죽는 순간 호칭도 곧바로 사라집니다.

    ※이 호칭은 오로지 한 개체의 대상에게만 적용됩니다.

    오로지 한 개체만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희귀특성.

    내가 알기로 이 특성을 보유한 존재는 게임 세계 전체를 통틀어 딱 넷이다.

    ‘하나는 식인황제 보카사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좀도둑 잭 오 랜턴이요, 또 다른 둘은 거인국의…….’

    그때, 잭 오 랜턴이 내 상념을 깼다.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 끝을 보자, 오즈.]

    삶의 끝을 지배하는 존재에게 끝을 보자는 선언을 하다니, 어딘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지금의 잭 오 랜턴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었다.

    양철 나무꾼의 갑옷, 겁쟁이 사자의 갈기, 도로시의 피로 인해 각성한 잭 오 랜턴!

    그의 상태창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선악과 앞에 선 자’ 잭 오 랜턴> -등급: S / 특성: 어둠, 백전노장, 할로윈, 선악과(善惡果)

    -서식지: 죽음길 나락 ‘몰이해지대(沒理解地帶)’

    -크기: 2.5m.

    -‘이제는 도망치지 않는다. 끝을 보자, 오즈.’

    -뇌 없는 허수아비-

    번쩍!

    잭 오 랜턴의 전신에서 사나운 핏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대낫뿐만 아니라 그의 갑옷과 망토, 피로 흠뻑 젖은 전신까지 물들였다.

    먼 옛날 용 사냥에 실패했던 도로시 원정대.

    그들의 전력이 다시 한번 이 허수아비의 손에 의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목 뒤! 목 뒤가 파충류의 급소야!”

    나는 재빨리 오즈의 급소를 말해 주었다.

    …파팟!

    잭 오 랜턴은 대낫을 들고 오즈에게로 도약했다.

    촤악-

    거대한 용암 파도가 일어 잭 오 랜턴을 덮쳤지만 그는 허공을 몇 번인가 딛고 점프해 하늘하늘 내려앉았다.

    바로 오즈의 정면(正面)으로!

    번쩍!

    불카노스 대낫이 휘둘러졌다. 기형적으로 휘어진 참격이 뱀처럼, 채찍처럼 휘어져 오즈의 측면을 에둘러 감았다.

    퍼-억! 뿌드드득!

    오즈의 목 뒤, 원래라면 역린(逆鱗)이 돋아나 있었을 급소가 쪼개지며 시뻘건 핏물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실로 가공스러울 만한 한 방 공격력이었다.

    “…됐다!”

    “들어갔어!”

    윤솔과 드레이크가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콰쾅! 우지지직!

    오즈는 반쯤 잘려나간 목으로도 쓰러지지 않았다.

    다만 쓰러지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잭 오 랜턴을 후려쳤을 뿐이다.

    또다시 벽에 구멍을 내고 틀어박힌 잭 오 랜턴.

    오즈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은 없다.]

    그게 끝이었다.

    번쩍-

    또 한 번 시커먼 폭풍, 죽음룡의 브레스가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우르릉…

    묵직한 지진이 무저갱 전체를 뒤흔들었다.

    “헉! 잭 씨!”

    “이봐 호박머리!”

    윤솔과 드레이크가 깜짝 놀라 외쳤다.

    하지만.

    휘이이이이잉…

    검은 포연이 흩어져 가는 구덩이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너덜너덜해진 검은 망토 한 자락과 검붉은 불카노스 대낫 한 자루만이 남아 있었을 뿐.

    “……잘 가라, 친구.”

    나는 아스라지는 불똥과 포연 너머로 잠시 묵념을 해 보였다.

    실로 장엄한 최후였다.

    [이젠 네놈들 차례다.]

    죽음룡 오즈. 놈이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아니 우리를 돌아보았다.

    목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오즈의 기세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츠츠츠츠츠…

    고속재생 특성이 있는지 목의 상처에 벌써 새살이 차오르고 있었다.

    산성비에 의해 강제로 뽑혀 나온 비늘들도 어느 정도는 다시 돋아나는 모양인지, 검은 반점들이 점점 오즈의 전신에 늘어간다.

    “……으음.”

    나는 침음성을 삼켰다.

    방금 전. 그동안 오랜 시간을 함께해 왔던 동료 잭 오 랜턴이 사망했다.

    NPC의 사망은 플레이어의 사망과 다르다.

    플레이어의 죽음은 최소 몇 시간에서 최대 몇 십 시간의 접속불가와 아이템, 돈, 레벨의 하향 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NPC의 죽음은 존재의 말소(抹消), 즉 완전한 소멸을 뜻한다.

    리치 왕이 된 양철 나무꾼, 데스나이트가 된 겁쟁이 사자, 리자드맨이 되었던 용사 도로시, 그리고 한 많은 복수자로서 삶을 마감한 잭 오 랜턴.

    도로시 파티의 전멸은 나에게 많은 상념을 안겨 주었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우리 힘만으로 헤쳐 나가야 해.”

    든든한 딜러였던 잭 오 랜턴의 부재(不在), 하지만 적 역시도 그만치 약해진 상태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잭의 뜻을 헛되게 하지 않을 거야. 꼭 복수하고 말겠어!”

    “NPC는 그저 인공지능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사정에는 가능한 공감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건 정말 참을 수 없군.”

    친구들의 각오 역시 남다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눈앞에 있는 최후의 보스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 승부수를 띄울 때야.”

    왕좌가 눈에 아른거린다.

    이제 그것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까지 다가왔다.

    ‘……할 수 있다!’

    이젠 막연한 꿈이나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이었다.

    눈앞에 피부로 느껴지는, 숨결이 닿는 곳까지 다가온 목표!

    파팟!

    나는 죽음룡 오즈를 향해 다이브했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칠흑의 왕좌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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