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82화 (382/1,000)
  • 383화 죽음룡 오즈(Odd’s) (5)

    쏴아아아아아-

    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죽음길 나락 심계 ‘몰이해지대’ 전체에 쏟아진다.

    용암지대의 지독한 뜨거움에 익어가던 우리의 눈에는 이 미지근한 빗방울조차도 시원한 소나기로 보였다.

    하지만.

    치이이이익…

    그것은 단순히 시원하기만 한 비가 아니었다. 엄청난 강산성을 띠고 있는 산성비였다.

    “어엇?”

    드레이크는 후두둑후두둑 빠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당황했다.

    또다시 팔자에 없는 맨드레이크가 되었다.

    “까악!?”

    윤솔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샌드웜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붉은 망토로 머리를 휘감아야 했다.

    온 용암호수에 내리는 비는 윤솔과 드레이크의 아이템까지 벗겨 버릴 정도로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가, 갑자기 웬 비가…?”

    “아이템이야 다시 입으면 된다지만, 머리카락은 정말 너무하는군.”

    한편,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변에 죽음룡 오즈는 인상을 찌푸렸다.

    [……보기 흉하구나 인간들이여.]

    그는 대머리와 알몸이 된 모두를 내려다보며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부터 알몸이었기에 주눅들 것 없이 당당하다.

    머리카락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지는데 좋지 뭐.

    “천장 누수가 심한데, 집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이러나? 구상권 청구해야겠는데.”

    나는 죽음룡 오즈에게 관리소홀을 따져 물었다.

    민법상 이럴 때에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내부공사를 해 주어야 한다.

    오즈는 내 말을 듣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하다.

    [이만 내려놓거라. 그 하잘 것 없는 삶이나마 영위하고 싶다는 어리석은 미련과 집착을.]

    그러나. 그는 이 이상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쑥-

    몸을 움직이는 순간, 머리 위 뿔 근처에 있던 비늘 한 장이 벗겨진 탓이다.

    풍덩!

    불카노스로 된 비늘. 검붉은 광택을 뿌리던 그 단단한 인조 비늘이 오즈의 몸에서 빠져나와 용암의 바다 위로 떨어져 내렸다.

    [……?]

    오즈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것이 시작이었다.

    쑥- 쑤욱- 쑥- 쑥- 훌러덩!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산성비에 닿은 비늘들은 못과 이음부가 헐거워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힘없이 뽑혀 나온다.

    정확히는 비늘과 살갗이 맞닿는 부분의 못이 점점 가늘어지고 힘이 없어지다가 그대로 빠져 버리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불카노스 비늘들이 오즈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

    오즈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빠져나가는 불카노스 비늘들을 보며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깜짝 놀라 거대한 몸을 숙이고는 용암의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불카노스 비늘들을 손으로 허겁지겁 긁어모으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건져 올린 비늘들을 다시 머리나 목 등에 얹어 봐도 한번 빠진 불카노스 비늘들은 다시 제자리에 붙지 않았다.

    [……???]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오즈를 향해, 나는 말했다.

    “보기 흉하군.”

    아까 내 대머리를 보고 놀렸던 것을 그대로 갚아 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머리카락에는 머리카락이다.

    ‘흑막(黑幕)’, ‘검은 용 군주’, ‘낮으신 분’, ‘칠흑의 대왕’, ‘모든 시체들의 소유자’, ‘가장 오래된 일곱 위상’, ‘분쟁지대의 절대자’, ‘교활한 협상가’, ‘일곱 용군주 중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노룡(老龍)’, ‘무저갱의 독재자’, ‘고정 S+등급 몬스터’…….

    죽음의 용 오즈(Odd’s).

    명실공한 이 세계관의 정점(頂點).

    그런 오즈조차 경악시킨 필멸의 힘이 바로 이것이다!

    ‘탈모(脫毛)’

    아아, 이 얼마나 무서운 저주란 말이냐!

    죽음조차도 피해 갈 수 없어 부끄러운 맨낯, 아니 맨머리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 이 저주라면 나는 기꺼이 이것을 운명으로 짊어지리라!

    [오-오오오오오오!?]

    오즈는 자기 전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깨닫고 경악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또 준비했던 힘!

    단 한 번의 도약을 위해 까마득한 무저갱 속에서 웅크리고 웅크리며 그동안 때를 기다려 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불카노스 코팅이 남김없이 벗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위치가 좋았지. 나이스 타이밍이었어.”

    나는 고개를 들어 비를 내리고 있는 천장을 향해 엄지를 척 세워 보였다.

    위층에 있던 ‘조력자’가 아니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함정이었다.

    […….]

    잭 오 랜턴 역시 천장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스프링클러가 터진 듯,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빗방울.

    그것은 죽음길 나락 3층 ‘불가해지대’에서부터 스며들어 두꺼운 지반을 뚫고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도로시?]

    잭 오 랜턴은 황망한 기색으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렇다.

    저 위는 죽음길 나락 3층 ‘불가해지대’, 우리는 그곳에서 용사 도로시를 꺾고 이곳으로 내려왔다.

    리자드맨으로 변화한 용사 도로시는 죽기 직전 내가 만들어 낸 탈모빔에 맞아 모든 비늘을 잃어야만 했고 결국 광역에 독을 뿌리며 자폭해 버렸다.

    자폭하기 직전, 용사 도로시는 자신의 특성을 극한까지 증폭시키는 ‘증폭’ 특성을 발현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내가 쏘아 보낸 탈모빔과 융합되어 어마어마한 광역 효과를 가진 탈모의 저주가 완성된 것이다!

    “……원래 산성비 맞으면 머리 빠진다는 말도 있지.”

    나는 허둥거리는 오즈를 보며 씩 웃었다.

    용사 도로시.

    그녀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자폭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피로써 잭 오 랜턴을 돕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 것뿐이었다.

    ‘괜찮아, 잭. 내가 너를 찾아갈게. 한여름 밤의 소나기처럼.’

    도로시의 말이 귓가를 스친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모두가 그것을 들었다.

    용사(勇士)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뜨거운 용암지대에서는 미지근하게 내리는 이런 비조차도 무척이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시원하게 벗겨진 머리를 두드리는 노크소리, 자유의 빗방울이었다.

    바로 그 순간.

    후욱!

    잭 오 랜턴의 몸이 꿈틀했다.

    도로시의 유지(遺志)를 느낀 것일까?

    양철 나무꾼의 갑옷과 겁쟁이 사자의 갈기가 이 말라비틀어진 허수아비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거기에 용사 도로시의 마지막 의지가 온 세상에 뿌려진다.

    [오-즈!]

    좀도둑, 뇌 없는 노예, 말라빠진 허수아비.

    하지만 허수아비는 뇌도, 마음도, 심장도, 그리고 동료들도 손에 넣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는 이제 더 이상 좀도둑이 아니다.

    [오오오오오-즈!]

    잭 오 랜턴은 커다란 대낫을 들어 넘치는 힘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콰쾅!

    거대한 참격이 뿜어져나가 용암의 바다를 가른다.

    …쩌억!

    엄청난 충격파가 오즈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마침 비늘이 빠져나가고 없어 텅 빈 부분이었다.

    [……! ……! ……!]

    죽음룡 오즈. 그는 눈 주변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입을 쩍 벌렸다.

    인간의 머리로는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높은 자존심.

    그 탓에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그것은 명백히 비명을 내지르는 자세였다.

    쑥! 쑤욱! 풍덩! 풍덩! 풍덩!

    스트레스를 받아서일까?

    전신에서 빠져나가는 비늘들의 수가 급격히 확 늘어났다.

    쏴아아아아아아아…

    계속해서 내리는 산성비에 불카노스 비늘들이 쓸려 나간다.

    그것들은 너무도 무력하게 떨어져내려 용암의 바다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해 온 위업이…!]

    오즈는 후두둑 후두둑 빠지는 비늘들을 손으로 건져 올리며 절규했다.

    가슴의 흉터 때문에 표정 역시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보며 비웃을 뿐이다.

    “가발 맞추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위업이라고.”

    거 머리 좀 빠지면 어떻다고, 대머리도 꾸미기 나름이다.

    요즘은 자기 어필의 시대 아닌가?

    옷을 잘 입거나 몸을 키우는 것으로 얼마든지 만회 가능하다.

    탈모는 그냥 단순한 생리현상이며 부끄럽게 생각하며 꽁꽁 숨길 일도 아닌 것이다.

    나는 외길 벼랑을 완전히 벗어났다.

    넓고 평탄한 대지 위에 두 발을 딛고 서자 이제 내 전문 분야인 ‘기동성’이 완벽하게 되살아났다.

    이제 피할 곳이 생겼다.

    쿠오오오오…

    각성한 잭 오 랜턴은 동료들이 걸어 준 버프에 휘감겨 기세등등하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 역시 이제야 마음 놓고 싸울 수 있는 안전지대에 서게 되었다.

    [우-오오오오오!]

    망연자실해 있던 오즈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쿵! 콰쾅!

    놈은 엎드려 비늘을 긁어모으던 것을 멈추고 거대한 몸을 일으켜 우리에게로 접근해 왔다.

    “화는 나나 보네. 비늘은 안 나면서.”

    “두 발로도 잘 걷네. 두발도 없으면서.”

    “용암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는가 보네. 그러니 헤어(hair)가 안 나오지.”

    나는 그런 오즈를 계속해서 도발해 어그로를 끌었다.

    15년 뒤의 내가 들었을 때 펄펄 뛰었을 만한 드립들만 골라 모았다.

    [필멸하라! 인간이여!]

    오즈는 나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돌진해 왔다.

    예나 지금이나, 고결한 아성을 무너트리기에 저열한 인신공격만큼 적합한 것이 없다.

    설사 상대를 무너트리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는 있으니까.

    풍덩-!

    오즈는 내가 만들어 놓은 진흙탕 안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분노에 눈이 먼 것이다.

    동시에.

    번쩍!

    잭 오 랜턴의 전신이 붉게 타올랐다.

    ‘분노’한 오즈.

    그리고 그의 ‘분노’는 잭 오 랜턴의 마지막 특성 하나를 개화시킬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오-오오오오오!]

    용의 분노에 전신이 노출된 잭 오 랜턴의 상태창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좀도둑’ 잭 오 랜턴> -등급: A+ / 특성: 어둠, 백전노장, 할로윈, 선악과(善惡果)

    ‘선악과(善惡果)’

    밴시 퀸이 만들어 낸 평범한 잭 오 랜턴과 달리, 용사 도로시를 따르던 잭 오 랜턴이 가지고 있던 이상한 특성.

    천공섬 멸망 당시의 ‘식인황제 보카사 바리새인’이 관련되어 있는.

    ‘죽음룡 오즈’의 격렬한 분노 역시도 관련되어 있는.

    그런 핵심적인 특성 중 하나가 지금 여기 있는 좀도둑의 몸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각성 상태의 잭 오 랜턴의 뒤에 섰다.

    두 개로 늘어난 쌍수단도 깎단을 양 손에 들고 얼굴에는 공격력이 극한까지 개화된 피카레스크 마스크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이제 3페이즈 시작이다.”

    전쟁이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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