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81화 (381/1,000)
  • 382화 죽음룡 오즈(Odd’s) (4)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데미안(Demian)』 中-

    *       *       *

    ‘교활한 협상가’ 특성은 간단했다.

    적을 산 채로 나포한 뒤 적의 동료들에게 인질 거래를 제안하는 것이다.

    죽음룡 오즈의 공격패턴은 이처럼 일반적인 상식과 많이 다르다.

    [어떻게 할 테냐?]

    놈은 나를 비웃듯 내려다본다.

    윤솔을 돌려보내 주는 것도 모자라 드레이크와 잭 오 랜턴의 목숨까지 보장해 준다는 약속.

    하지만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은 나의 목숨이다.

    서포터(supporter)를 인질로 잡고 딜러(dealer)와 교환 요청을 하다니, 상식적으로 이런 요구를 들어줄 리가 없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레이드가 곤란해지지만 굳이 더 중요한 쪽을 꼽자면 딜러 쪽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평범한 파티였을 경우 결국 인질을 포기하게 될 수밖에 없다.

    서로간의 신뢰나 우정에 금이 가기에 충분한, 실로 교활한 이간질 전략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이는 다르다.

    “어진아! 그럴 거였으면 대신 잡히지도 않았어! 그냥 고(GO) 해, 흔들리지 말고! 나는 로그아웃 할게!”

    윤솔은 말을 마친 뒤 재빨리 로그아웃을 위하여 상태창을 띄웠다.

    사방을 옥죄고 있는 압력 때문에 손을 쓸 수 없는 그녀는 음성 인식으로 로그아웃을 시도했다.

    “접속해제!”

    [음성 인식 중……]

    [인식 완료!]

    [동기화 중입니다……]

    [로그아웃 증… 91%… 92%…, 98%… 99%…]

    .

    .

    하지만.

    “……잠깐! 잠깐잠깐잠깐만!”

    나는 손을 뻗어 윤솔의 행동을 제지했다.

    나의 필사적인 손사래를 본 윤솔은 울먹이는 표정으로 로그아웃을 멈췄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윤솔의 코맹맹이 소리 덕분에 음성인식이 늦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윤솔이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니 서둘러야 했다.

    나는 오즈를 향해 말했다.

    “거래에 응하겠다.”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가 경악했다.

    하지만 윤솔의 목숨이 저당 잡혀 있는 마당인지라 뭐라 하지도 못하고 끙 소리를 낼 뿐.

    옆에 있던 잭 오 랜턴은 침음성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나는 동료의 소중함을 알지. 너에게 선택을 강요하진 않겠다. 다만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다오.]

    나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이윽고, 오즈는 비죽 웃으며 손에 힘을 풀었다.

    …쿵!

    윤솔이 땅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힐 마법을 시전 할 기력도 없어서 드레이크가 재빨리 달려가 포션을 먹여 주어야 했다.

    죽음룡 오즈.

    여지껏 그래 왔듯이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되었다. 나의 경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놈은 교활한 협상의 끝에 내 목숨을 거둬 갈 권리를 얻었다.

    [이리 오너라. 나는 여기에 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 그것은 죽음이다.

    츠츠츠츠츠츠츠…

    내 몸에서 HP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간조(干潮)처럼, 일몰(日沒)처럼. 천천히, 천천히 빠져나가는 생기.

    내 말로 한 약속의 결과이니 어길 수 없다.

    더군다나 상대는 이 세계의 절대자들 중 하나가 아니던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오즈 앞에서의 죽음은 단순히 죽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 …! …! …!

    시야가 흐려진다.

    전신에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스멀스멀 번지고 있었다.

    촉각(觸覺)이 날카롭게 섰다.

    수없이 많은 촉각(觸角)이 전신을 어루만진다.

    벌레들이 내 몸을 타고 기어오르는, 아니 숫제 내 몸 안쪽에서 기어 나오는 느낌.

    …뿌득!

    살갗을 찢고 무언가 돋아났다.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새처럼, 내 안의 바뀌어 버린 본질(本質)이 겉껍질에 불과한 인간의 탈을 깨고 부화했다.

    그것은 검은색의 두터운 비늘이었다!

    도마뱀이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도마뱀은 신을 향해 뛰어간다. 그 신의 이름은 오즈! 그 이름도 두려운 죽음룡 오즈!

    …현실은 명확했다.

    리자드맨화(化)!

    나는 죽어서 오즈의 수하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세상에!”

    드레이크는 경악했다.

    인간 족 플레이어가 리자드맨 족 플레이어로 강제 변화하는 광경은 처음 봤다.

    대격변 이후 모두가 변해 있는 것은 봤지만 그 변화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큭! 끄윽!”

    나는 필사적으로 간지러움을 참았다.

    여기서 몸을 긁거나 비틀면 그만큼 인간의 육체는 빠르게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리자드맨으로 변하는 속도 역시도 빨라지겠지.

    이 도중에도 HP는 착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원래 얼마 있지도 않은 체력이었지만 %에 비례하여 차근차근 깎여나간다.

    “어진아! 제발 그냥 도망가! 나는 괜찮아! 내가 대신 죽을게!”

    윤솔이 울먹이며 내게 매달렸지만 나는 이미 도망칠 기력도 모두 잃어버렸다.

    죽음룡 오즈는 내가 몸을 배배 꼬는 것을 즐겁다는 태도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쌍살벌의 날개를 떼고 바닥을 기게 만드는 아이의 천진난만함이 묻어난다.

    [왜 버티는 것이냐? 나의 힘을 받아들이거라. 죽음이 너를 영원하게 하리라.]

    오즈의 말이 가슴을 두드린다.

    하지만 나는 그 전언이 심장까지 파고드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이나 조금 끌어 볼까 했지만…….

    “리자드맨이 되는 것이 좋지 아니하는 쪽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지 않은 느낌이 싫지 않으면서도 그 반대의 감정이 정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간 좋지 아니한 바가 아니지 않으며…….”

    [좋다는 것이군.]

    죽음룡 오즈는 놀라운 연산력으로 나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아니면 그냥 남의 말을 안 듣는 성격이거나.

    …쩌저저적!

    이제 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의 목숨은 경각에 이르렀고 전신에는 비늘이 돋아났다.

    손톱, 발톱과 이빨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으며 엉덩이에는 꼬리 비스무리한 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뿌애애애앵!]

    내 낯선 모습을 보고 놀란 쥬딜로페가 울어제낀다.

    호감도가 낮아지고 있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어진! 어떻게 할 거냐! 차라리 로그아웃하는 게…!”

    “…아직! 아직은 몰라!”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나는 그저 미련하게 버티고 또 버티고 있을 뿐이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당최 내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그저 속만 끓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켜보는 동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지금 설명할 힘도 시간도 없는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긁고 싶다!’

    나는 미칠 듯한 간지러움 속에서 필사적으로 인내하고 있었다.

    중세에는 사람의 몸을 형틀에 꽁꽁 묶어 놓고 죽을 때까지 깃털로 간지럽게 하는 고문이 있었다던가?

    나는 지금 흡사 그런 고문을 받고 있는 듯하다.

    내가 괴상한 표정으로 괴로워하자 윤솔이 다급하게 외쳤다.

    “어, 어진아! 차라리 이쯤에서 그냥 기브업하는 게 낫지 않을까? 너 리자드맨 돼도 게임 잘 할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오즈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넘버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리자드맨이라는 종족 역시 각종 특전과 혜택들이 존재하니까.

    …심지어 나는 오즈에게 직접 오염된 특별한 개체가 아니던가!

    막 돋아나기 시작한 비늘 색 부터가 오즈의 것처럼 시커먼 것이 다른 리자드맨 유저들의 황록색 비늘과는 질적으로 다른 느낌을 풍긴다.

    ‘……다만 마동왕 메타나 썩은물 메타는 포기해야 되겠지?’

    이대로 리자드맨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온 보람이 없다.

    차후 상대하게 될 수많은 용 계열 몬스터와 그것들을 잡고 나서 얻는 화려한 보상, 특전들도 싸그리 포기해야 할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오즈만 해도 영원히 죽일 수가 없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도저히 아까워서 굴복할 수가 없었다.

    [너는 좋은 리자드맨이 될 것이다. 알몸이라 비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제대로 달려 있는 것을 보니 조금 의외지만 말이야.]

    죽음룡 오즈는 이제 아주 노골적으로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오즈에게 반격했다.

    “알몸은 너 아니냐?”

    [아니다 인간, 나는 비늘로 몸을 덮고 있다.]

    “……불카노스 말이지?”

    나는 힘겹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한 마디 했다.

    “원래 진정한 고수는 알몸으로 다니는 거야, 겁쟁아.”

    그 말과 동시에.

    …쿵!

    이변이 일어났다.

    천장이 옅게 떨리고 있었다.

    [……?]

    죽음룡 오즈는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위로 들어올렸다.

    오즈의 머리보다도 높은 곳, 던전의 천장 꼭대기가 미약하게나마 흔들린다.

    아까 외길 페이즈에서 쏘아 보낸 화산탄과 불덩이 때문일까? 지반이 조금 약해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뿐만이 아니다.

    오즈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 것은 바로 천장의 ‘색깔’이었다.

    츠츠츠츠츠츠츠…

    시커먼 빛으로 물들어 가는 암반.

    죽음길 나락 몰이해지대의 천장이 온통 다 검고 축축한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뭐냐 이게?]

    오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귓가를 스쳐가는 작은 목소리가 있었다.

    ‘괜찮아, 잭. 내가 너를 찾아갈게. 한여름 밤의 소나기처럼.’

    여리디 여린 한 소녀의 목소리.

    그 소리를 들은 잭 오 랜턴의 두 눈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만큼 확 커졌다.

    나는 지금껏 기다리고 참아왔던 말을 큰 소리로 내뱉었다.

    “…왔다!”

    동시에.

    …후두둑 …후둑

    천장의 축축한 흙에서 배어나온 검은 색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오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쏴아아아아아-!

    그것은 이내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는 것을 넘어 왁- 하고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산성비 장마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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