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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80화 (380/1,000)
  • 381화 죽음룡 오즈(Odd’s) (3)

    “…그거 가발이죠? 대머리 씨.”

    나는 일부러 대화를 질 낮은 진흙탕으로 이끌었다.

    […….]

    그 고고한 오즈조차 잠시 할 말을 잊어버릴 정도로 수준 낮은 대화였다.

    [예의를 갖춰라 인간. 무엄하구나.]

    본인이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꽤나 모양 빠지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즈는 아직 신사다운 태도를 잃지 않고 있었다.

    ‘…과연 대단한 부동심. 고정 S+등급답다.’

    나는 조금 더 그의 속을 긁어 보기로 했다.

    “당신이 내 소원을 들어주는 것보다는 제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 대머리 씨?”

    내 멘트는 딥러닝 AI의 선택지 알고리즘을 교묘하게 비트는 것이었다.

    놀라운 지능을 가진 오즈는 즉각 나의 화두에 따라 대화 전개방식을 바꿨다.

    [일단 너의 말에는 두 가지 모순이 있다. 첫째, 너는 내 소원을 들어줄 능력이 없으며. 둘째, 나는 대머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머리카락이라는 신체부위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뇨. 필사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을 보니 당신은 대머리가 맞아요. 비늘을 머리카락으로 치면 그렇죠.”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제 관점으로 보면 같아요.”

    [……그것은 너희 하찮은 인간들의 관점일 뿐.]

    “용들의 관점에서도 비늘이 없이 맨들맨들한 건 좀 보기 그렇잖아요?”

    […….]

    내 말을 들은 오즈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암컷 용들이 비늘 없이 맨들맨들한 몸을 좋아하지는 않을 텐데?”

    ‘너 여자들에게 인기 없지?’는 상당히 모욕감이 짙은 인신공격 중 하나다.

    하지만.

    [굳이 너희 인간들처럼 이분법적으로 따지자면 나는 여성체이다.]

    “…….”

    오우야, 고건 몰랐네.

    이번에는 내가 한 방 먹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 문제는 됐고, 소원 문제로 넘어가죠.”

    […….]

    오즈는 일단 들어나 보자는 듯 가만히 서 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 너는 내 소원을 들어주기는커녕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어찌 하찮은 인간이 감히 위대한 용의 숙원을……]

    하지만, 오즈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악마성좌.”

    내 말은 오즈의 말문을 막았다.

    나아가 가슴팍 불카노스 비늘 사이사이의 균열 틈으로 보이는 뜨거운 심장마저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오즈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지하세계의 패권을 놓고 다투는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 이놈을 죽이고 싶은 거 맞죠?”

    [일단은 그렇다.]

    내 말을 들은 오즈는 꽤나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리고 죽음 그 이후의 세계에서 당신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 이놈도 죽이고 싶고요?”

    [그 역시 그렇다. 인간치고는 꽤나 지능이 높구나.]

    오즈는 이번에도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어진 내 말에는 지금까지처럼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오래 전… 용마전쟁(龍魔戰爭) 때 당신을 그 꼴,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은 분노의 악마성좌 ‘사탄’! 그 놈의 목숨을 노리고 있겠죠.”

    [……!]

    그 말에 오즈의 두 눈알이 크게 벌어졌다.

    불타는 눈알 속 세로로 길쭉한 검은자위가 날카롭게 좁혀진다.

    이내, 오즈는 약간이나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첫 번째는 조금 영민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을 바요, 두 번째는 인간들 중에서도 대현자라고 불리는 이의 반열에 오르면 간신히 엿볼 수 있는 뜻이리라. 하지만… 세 번째는 나의 영성으로도 짐작할 길이 없구나.]

    죽음룡의 두 눈알이 노랗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 계획을 어떻게 알아냈지? 네 정체는 무엇이냐 인간.]

    그는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당신의 소원을 이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자 오즈는 웃었다.

    [네깟 것이 감히 나의 숙원을 어찌 들어준단 말이냐? 그것은 누군가의 힘을 빌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나의 손으로만 가능한 것이야.]

    확실히, 아까보다 말이 세졌다. 조금이지만 빈정이 상한 듯한 모양새.

    나는 쐐기를 박았다.

    “그 늙고 흉한 몸뚱이로 뭘 이룰 수 있단 말입니까?”

    [……뭐라?]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오즈, 하지만 나는 거침없다.

    “비늘도 숭숭 빠져 쇠약해진 몸으로는 젊고 팔팔한 악마성좌 마몬을 이길 수 없습니다. 늙고 노련한 벨제붑은 더더욱. 그리고 당신의 몸뚱이를 그 꼬라지로 만든 사탄은 더더더욱!”

    그러자.

    콰콰콰쾅!

    용암의 파도가 격하게 요동쳤다.

    흥분한 오즈가 몸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구구…

    오즈가 몸을 기울여 이쪽으로 다가온다.

    용암의 폭포가 걷히며 그의 몸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윤솔과 드레이크는 그저 입만 딱 벌리고 있을 뿐이다.

    [나를 보라!]

    오즈는 외쳤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화산탄과 용암, 그리고 불길의 소용돌이!

    일반 플레이어였다면 이것들로 인한 지형 데미지만으로도 죽어 로그아웃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오즈의 위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을 똑바로 떴다.

    ‘……이제 거의 다 낚였군.’

    오즈는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다.

    내가 위협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놈이 밑천을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니 길조이다.

    눈앞에 드러난 죽음룡 오즈의 장대한 몸은 온통 검붉은 색으로 번들거린다.

    몸의 절반은 완연한 흑색의 용비늘, 나머지 절반은 검붉은 광택이 흐르는 불카노스 비늘로 코팅되어 있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악마들을 멸종시킬 것이다. 이 최강의 육체로!]

    심장 고동이 오즈의 기운에 맞춰 쿵쿵, 폭발할 듯 동요한다.

    마치 거대한 붐마이크를 심장에 직접 대고 소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윤솔도 드레이크도 심장을 콱 움켜쥐고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

    하지만, 나는 마치 심장이 없는 사람처럼 태연하다.

    “그따위 외부물질에 기대니까 안 되는 거예요.”

    [!?]

    나는 죽음룡 오즈의 폐부를 찔렀다.

    찔렸을 때 제일 아픈 곳.

    그것은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열등감(劣等感)’이다.

    나는 벙 찐 표정의 오즈에게 말했다.

    “나와 싸우다가 죽는 것. 그것이 당신이 적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일 겁니다.”

    오즈의 표정은 점점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내 말에 쐐기가 박혔다.

    “왜냐면, 나는 너를 죽이고 나서 얻은 힘으로 앞에 말한 악마성좌 세 마리를 싸그리 죽여 버릴 거거든.”

    이젠 말도 깠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왜 존댓말을 썼지? 정신계 공격에 당했었나?

    이윽고, 본격적인 죽음룡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오-오오오오!]

    오즈는 커다란 손을 들어 올려 용암의 바다를 철썩 후려갈겼다.

    쾅!

    거대한 용암의 쓰나미가 일어 우리가 서 있는 절벽을 덮친다.

    그때.

    쩌억-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우리를 뒤덮어 가던 용암의 파도가 가로로 갈라졌다.

    허리가 끊겨나간 파도는 우리를 빗겨나가 이상한 궤도로 휘어졌고 이내 저 멀리 있는 수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오즈!]

    잭 오 랜턴.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후후후후. 가당찮구나. 잡졸들이여.]

    오즈가 본격적으로 살의(殺意)를 품었다.

    아무리 벌레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신경을 긁는다면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그는 엄청난 몸집을 이용해 우리를 덮쳐 왔다.

    “…빠지자.”

    나는 친구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벼랑길은 너무나도 위태롭다.

    운신의 폭이 제한적이었기에 적어도 맨 처음 출발했던 평지는 되어야 오즈의 공격을 피해 가며 싸울 수 있다.

    콰쾅!

    오즈는 끊임없이 용암의 파도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쩍! 쩌억!

    잭 오 랜턴이 뒤에서 대낫으로 용암과 불길들을 걷어내지 않았더라면 도주가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앞을 보고 뛰는 동시에 뒤에서 들어오는 공격들을 막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뛰면서 계속해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벼랑길 페이즈는 메탈슬X그의 보스인 ‘휴지 허미트’를 생각하면 편해! 그 패턴이 거의 그대로 오마쥬 되어 있으니까!”

    고전 게임 중 하나인 메탈슬X그는 1996년에 출시된 명작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휴지 허미트라는 거대 소라게가 중간 보스로 나오는데 플레이어는 외길 다리 맵에서 오른쪽으로 도주하는 동시에 총을 쏴 왼쪽 다리를 부수며 접근해 오는 괴물 소라게와 맞서 싸워야 한다.

    오즈의 공격 패턴은 지금 그것과 상당 부분 비슷했다.

    …쾅! …콰쾅! …퍼퍼펑!

    외길을 부수며 쫓아오는 동안 오즈는 세 발의 불덩이를 발사했는데 한 발은 플레이어를 향해 날아들고 다른 한 발은 용암의 바다에, 다른 한 발은 천장에 가 맞았다.

    “무조건 뒤로 가면 불덩이에 맞으니 적당한 거리를 두며 빠지라구! 불덩이는 플레이어의 위치보다 약간 뒤를 향해 떨어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으니까!”

    내 말에 윤솔도 드레이크도 고개를 끄덕인다.

    앞에서 직접 날아드는 불덩이는 잭 오 랜턴이 전부 커버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우리와 함께 동행하지 않았더라면 레이드는 정말로 힘들어졌을 것이다.

    [오-오오오오!]

    용암 파도가 전부 빗나가자 오즈는 포효와 함께 돌격해 왔다.

    콰콰콰쾅!

    외길 벼랑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용암과 불길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빠른 속도로 물러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어떻게 보면 강제 스크롤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뒤로 빠지다가 평지가 나오면 그때부터 제대로 사냥을 시작하자고!”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내, 저 멀리 외길 벼랑이 끝나고 검붉은 평지 지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우리가 밟았던 곳이다.

    그때.

    콰쾅!

    변수가 일어났다.

    천장에 맞은 불덩이 파편들이 불규칙적으로 난반사되는 도중 내 발목을 때린 것이다.

    “……!?”

    내가 아무리 고인물이라고 해도 이런 식의 변수까지는 예측할 수 없다.

    쿵!

    나는 순간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그 와중에도 고인물답게 앞으로 굴러 도주거리를 최대화시키기는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 때가 마침 오즈가 폭주하여 돌격할 타이밍이었다.

    콰콰콰콰쾅!

    오즈의 거대한 몸이 외길을 부수며 달려든다.

    ‘…어쩌지?’

    내가 이 막막한 상황에서 탈출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때.

    “어진아! 피해!”

    등 뒤에서 윤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윤솔이 바로 내 뒤에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 보인다.

    “바보야! 안 도망가고 뭐…”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하린마루의 팔을 이용해 나를 뒤로 홱 집어던졌다.

    “어진!”

    윤솔보다 약간 뒤늦게 달려왔던 드레이크가 그런 나를 받아들었다.

    결국.

    …콰쾅!

    윤솔은 오즈의 돌격 여파에 휘말리고 말았다.

    “솔아!?”

    나는 경악하여 외쳤다.

    나를 대신해 오즈의 돌격을 몸으로 받아낸 윤솔.

    …하지만, 놀랍게도 윤솔은 죽지 않았다!

    쿠구구구구…

    오즈는 격돌의 순간 속도를 줄였고 죽음을 각오한 윤솔을 손아귀 안에 부드럽게 움켜쥐었던 것이다.

    “……!?”

    윤솔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오즈를 올려다보았다.

    순식간에 맞이할 줄 알았던 죽음은 오지 않았다.

    다만 그 죽음의 손아귀에 갇혀 바동거리는 신세가 되었을 뿐이다.

    나도 드레이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인지라 벙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오즈가 입을 열었다.

    [……어디, 동료간의 우애가 얼마나 끈끈한지 볼까?]

    그는 비죽 읏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콰긱!

    오즈가 손에 힘을 주자 윤솔의 몸이 살짝 으깨졌다.

    눈 깜짝할 새 줄어드는 HP!

    “꺄아아악!?”

    윤솔이 놀라 소리를 지르자 오즈는 껄껄 웃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그렇지.’

    도로시 파티를 궤멸로 이끈 것이 바로 오즈다.

    이 교활한 노룡이 윤솔을 그냥 살려 줄 리가 없었다.

    놈은 나를 향해 웅웅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여자의 목숨을 대신할 기회를 주마.]

    오즈는 윤솔을 움켜쥔 손을 높게 들었다. 여차하면 이대로 용암의 바다 밑으로 처박을 기세였다.

    [거래에 응한다면 여기 있는 모두를 살려 보내주겠다. ……오직 너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교활한 협상가’ 죽음룡 오즈의 제안.

    그것은 정확히 나를 지목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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