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79화 (379/1,000)
  • 380화 죽음룡 오즈(Odd’s) (2)

    <오즈>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무저갱과 무덤가를 지배하는 위대한 검은 용.

    “죽음이 너를 영원하게 하리라.”

    -오즈- <신약, 흑왕기(黑王記) 하권,, 흑왕 4절>

    일곱 용군주 중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노룡(老龍).

    태어나기를 용족의 유망주, 칠흑 일족의 기린아로 태어나 지금껏 단 한 번도 왕좌에서 내려와 본 적 없는 지하세계의 독재자.

    죽음의 용 오즈(Odd’s)!

    그가 여기에 있다.

    “…….”

    전신에 쥐가 난 듯 저릿저릿하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눈앞에 있는 거대한 생명체를 올려다보았다.

    블랙 드래곤! 이 세상에 단 열일곱 마리밖에 없는 고정 S+등급의 몬스터가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

    늘 장막 뒤에 숨어 세상의 인과율을 조정하던 존재를 눈앞에 두니 그 압박감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편,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우와아, 진짜 엄청나다. 이쯤 되면 그냥 몬스터가 아니라 신 같아…….”

    “……말도 안 되는 크기로군. 분명 잡으라고 만든 건 아니야.”

    죽음룡 오즈는 일곱 용군주 중에서도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존재답게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예전에 만났던 용암룡 모르그마르보다도 훨씬 더 커 보였다.

    “파충류나 갑각류 계열 몬스터들은 세월에 비례해서 덩치가 커지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오즈의 외형을 살폈다.

    산양의 것처럼 휘어진 뿔과 전신에 돋아난 산맥 같은 비늘들, 몸 곳곳의 균열을 타고 흘러내리는 용암.

    지저에 뜬 태양과도 같은 눈동자와 수만 군단의 창검보다도 빼곡한 저 이빨들!

    …그 위압감을 대체 어찌 말로 표현하랴?

    하지만 가장 특이한 것은 놈의 칠흑 비늘 군데군데 보이는 검붉은 광택이었다.

    눈알을 태워 버릴 듯 번쩍거리는 광기(光氣).

    단순히 용암의 반사광에 의해 빛난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밝고 매끄러웠다.

    ‘…불카노스!’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죽음룡 오즈의 검은 비늘은 분명 군데군데 이가 빠졌거나 아예 뽑혀나가 있었고 그 자리를 커다란 불카노스 금속판이 대체하고 있었다.

    심지어 날개 부분은 거의 대부분이 불카노스 비늘로 뒤덮여 있는 상태였다.

    저 모든 불카노스는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이 채굴해 허수아비들에 의해 제련되었던 것들임에 분명해 보였다.

    “으아아, 위에서 금속판에 못 박고 있었던 게… 몸을 코팅하는 거였구나! 던전의 벽 전체가 이 괴물의 날개였어!”

    “어마어마하군, 그동안 위층의 잡몹들이 하고 있던 중노동은 모두 오즈 하나를 위한 것이었나.”

    윤솔과 드레이크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룡 오즈는…사정이 있어서 전신의 비늘들 중 대부분을 잃었거든. 그래서 맨살이 드러난 약점 부위를 덮기 위해 용비늘에 견줄 정도로 가볍고 단단한 불카노스를 선택했지.”

    “사정? 무슨 사정이…?”

    “과거 어떤 악마 성좌와의 세력다툼에서 패했다나 봐. …뭐, 한 끗 차이였지만 말이야.”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 모두 입을 딱 벌렸다.

    이 세계는 대체 얼마나 넓은 것일까?

    세상에 저 무시무시한 괴물을 패퇴시킬 정도의 괴물이 또 있다니!

    나는 오즈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용암의 눈부신 빛에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문제는… 오즈가 자신의 몸을 덮기 위해 선택한 불카노스는 또 다른 악마성좌인 마몬의 구역에서만 채굴되는 희귀 금속이라는 거야.”

    “아하! 그래서 오즈가 갑자기 마몬의 영역에 둥지를 틀고 영역 선포를 했군!?”

    “맞아. 당연히 탐욕스러운 마몬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고 둘 사이에는 분쟁지대가 만들어졌지. 그게 바로 리자드맨과 오크들의 전쟁터가 된 제 7분쟁지역이다.”

    모두가 아는 내용대로, 대격변 이후 용과 악마 사이에는 본격적인 전쟁 기류가 일기 시작했고 최초로 죽음룡 오즈가 움직이기 시작함에 따라 분쟁지역이 만들어졌다.

    그 와중에 타락정령 고르딕사가 얽혀 있는 황금광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분쟁지역으로 몰려든 모든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종족에 따라 자연스럽게 메인 퀘스트에 휘말렸고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겪어 왔던 종족 갈등에 불씨를 당긴 셈이 되었다.

    리자드맨 유저들과 오크 유저들이 일일퀘스트로 서로를 습격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분쟁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바로 우리다.”

    나는 두 개의 쌍수깎단을 빼들고 절벽 끝에 도사리고 있는 거대한 죽음을 마주했다.

    대격변 이후 최초의 움직임을 보인 절대자 중 하나를 말이다!

    한편.

    […….]

    잭 오 랜턴. 그 역시도 대낫을 굳게 움켜쥔 채 오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오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아, 기억이 난다. 너는 그때의 그 ‘좀도둑’이로군.]

    […….]

    [너를 기억하는 이유는 네가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내 기억력이 위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

    [벗들과의 해후는 나누었는가? 오면서 만났을 텐데?]

    오즈의 무덤덤한 질문에 결국 잭 오 랜턴이 폭발하고 말았다.

    번쩍!

    불카노스 대낫이 섬뜩한 핏빛을 뿜어낸다.

    [오즈-!]

    잭 오 랜턴은 대낫을 높게 들어올렸다.

    복수자가 그토록 오랜 시간 벼려 온 칼날을 빼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치켜든 대낫을 미처 내리찍기 전.

    …펑!

    죽음룡 오즈가 먼저 움직였다.

    움직였다고 해도 큰 동작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용암 밑에 가라앉아 있던 손을 들어 가볍게 한번 휘저었을 뿐이다.

    마치 과일을 집기 전 그 위에 꼬인 날파리들을 한번 쫓아 보내는 동작.

    …그러나 그 여파는 무시무시했다.

    콰콰콰콰콰쾅!

    잭 오 랜턴은 그 한 방에 나가 떨어졌다.

    커다란 용암 파도 두 개에 구멍을 뚫고 날아가 그 뒤에 있던 검은 종유석들을 일곱 개나 부수고 절벽에 길고 깊은 구멍을 내 놓았다.

    [자, 이제야 대화의 장이 열렸도다.]

    잭 오 랜턴을 가볍게 치워 버린 오즈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의외로 싸울 마음이 별로 없어 보였다.

    ‘하기야, 벌레가 좀 덤벼든다고 죽자사자 맞서 싸우는 것도 웃긴 일이겠지.’

    나는 일단 자세를 낮추고 오즈의 말을 기다렸다.

    놈을 전투 페이즈로 만들려면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이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오즈는 말했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 부? 명예? 권력? 인간이여. 네가 그 모든 것들을 얻는 대가로 바쳐야 할 것은 오로지 하나, 목숨뿐이로다. 인간이라는 하등 종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삶의 무게를 덜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복과도 같은 일. 부디 들어라 인간아! 생각하라 인간아! 네 삶에는 얼마나 얼룩 같은 오욕이 많았던가! 비루함을 원죄삼아 살아가는 것은 슬픈 일……. 그러나 그것은 본디 네 죄가 아니리라.]

    죽음의 용은 달콤한 말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물론.

    ‘듣다 보니 기분 나쁘네, 어? 화나네.’

    역효과만 났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 뒤에 있는 윤솔의 두 눈은 몽롱하게 풀리고 있었다.

    스스스…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휘감아 조인다. 천천히. 서서히. 본인도 본인의 손을 눈치 채지 못하게.

    탁!

    나는 그녀의 어깨를 힘주어 내리쳤다.

    “솔아, 정신 차려.”

    “……헉! 나 지금 졸았어? 순간 멍했는데. 아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즈의 특성 중 하나인 ‘교활한 협상가’ 때문이야. 너는 방금 오즈에게 설득당해서 자살할 뻔했어.”

    죽음룡 오즈의 공격 패턴 중에는 오묘한 자살이론이 있다.

    놈의 무저갱 속 태양과도 같은 두 눈알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정말 인간의 삶 따위는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차라리 죽은 뒤 오즈에 의해 언데드로 부활하는 게 더 값진 삶이 아닐까 싶은, 어딘가 사이비 교주 같은 신앙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런 정신공격에는 당하지 않는다.

    -<이어진>

    LV: 82

    호칭: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예전에 유다희와 함께 잡은 크라켄, 그때 특전으로 얻은 고생물 특성이 나를 정신계 데미지로부터 지켜 주기 때문이다.

    ‘고생물’

    ↳태고 시절부터 살아 온 존재들은 늘 묵직하게,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킵니다.

    ‘고생물’ 특성은 정신계 마법에 저항하는 카운터 특성.

    세뇌나 최면, 환각, 자학 등의 정신계 마법 저항력을 거의 100%에 가깝게 올려 주는 패시브 특성이다.

    드레이크 역시 이 특성이 있었기에 오즈의 자살이론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크라켄 레이드 당시 함께하지 않았던 윤솔이 약간 걱정되기는 했으나.

    지이잉…

    윤솔에 손에 들린 하프 ‘아기천사의 쿠잉’이 가볍게 떨리며 그녀의 손에 진동을 주었다.

    동생 네티를 지키고자 하는 언니 베티의 마음이 담겨 있는 아이템.

    타고나길 어둠 속성에 반하게 태어난 천사의 의지가 윤솔의 몸에 깃든다.

    그 덕에 윤솔 또한 흩어지려는 정신을 다잡고 오즈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공격 못 하나? 더 이상 말을 들으면 현혹될 것 같은데. 잭 오 랜턴도 이미 당해 버린 것 같고.”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오즈가 싸울 마음을 먹지 않았잖아. 지금은 데미지가 안 들어가.”

    놈을 전투 페이즈로 끌어내려면 일단 저놈의 ‘교활한 협상가’ 특성부터 파쇄 해야 한다.

    즉. 말싸움, 논리 싸움에서 이겨야 놈을 진심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나를 벌레가 아니라 ‘적수’로 인식하게끔 해야 레이드가 가능할 것이리라.

    ……뭐, 단순하게 말하자면 화나게 만들어서 끌어내겠다는 계획이었다.

    윤솔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용을 상대로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어?”

    죽음룡 오즈는 개체값으로 봐도 사기적인 OP몬스터이지만 사실 그만큼이나 뛰어난 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다.

    엄청나게 세련된 수준의 딥러닝 시스템으로 인해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사고하고 연역하는 몬스터.

    …그런 상대를 논리로 이긴다고?

    “가능하지. 충분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나를 존경스럽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말싸움을 벌일 것인지 궁금하다는 눈치다.

    하지만, 내 전략이라는 것은 사실 별 게 없다.

    나는 오즈에게 말했다.

    정확히는 오즈의 거대한 두상 군데군데 벗겨져 있는 용비늘과 그것을 덮고 있는 불카노스 비늘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거 가발이죠? 대머리 씨.”

    자고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상대를 빡치게 만드는 데에는 인신공격만 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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