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78화 (378/1,000)
  • 379화 죽음룡 오즈(Odd’s) (1)

    -띠링!

    -<죽음길 나락 ‘심계(深界)’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우리는 죽음길 나락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왔다.

    나선궤도의 비탈길이 사라지자 어느새 검붉은 평야지대가 나타났다.

    끈적한 용암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는 무저갱.

    부글부글부글부글……

    평지처럼 보였던 것은 기실 평지가 아니었다.

    검고 뾰족한 기암괴석들이 널려있는 아래로 거대한 용암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지평선 아래 펼쳐진 그것들이 너무나도 넓고 광대했기에 땅처럼 보일 정도였다.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찬란하게 타오르는 불길들이 그 위를 망아지처럼 뛰놀고 있었다.

    푸슉! 쉬이이익……

    뜨거운 열기와 가스, 매연들이 벌겋게 젖은 허공을 부유한다.

    용암의 바다 위에는 검은 바위절벽으로 된 외길이 나 있었는데 군데군데 끊어져 있기는 해도 꽤 길게 뻗어나가 있는 모양새였다.

    후두둑… 후둑… 퐁당! 파스스스…

    외길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검은 자갈 몇 개가 용암의 바다 밑으로 끈적하게 빠져든다.

    그것들은 한 줌 매연으로 변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발을 헛디디면 바로 로그아웃 되겠는데?”

    드레이크가 깎아낸 듯 가파른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외길에 진입하는 순간. 눈앞에 섬뜩한 알림음이 떴다.

    -띠링!

    <‘심계의 주인’이 ‘고인물’ 님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죽음룡 오즈(Odd’s)’

    검은 용 일족 중 가장 늙고 강력한 존재.

    놈이 나의 접근을 눈치 챈 것이다.

    “…….”

    나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두 개의 히든 퀘스트를 떠올렸다.

    <히든 퀘스트 ‘불사(不死)의 좌군단장’>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리치 왕’을 처치한 자>

    <히든 퀘스트 ‘불사(不死)의 우군단장’>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데스나이트’를 처치한 자>

    이 두 개의 퀘스트 덕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빼먹었다면 4층 진입 자체가 거부되었겠지.’

    리치 왕과 데스나이트를 잡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중간에 조디악에게 데스나이트를 스틸당할 뻔한 것을 떠올리자 등골이 절로 오싹하다.

    ‘그때만 해도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지.’

    그동안 차근차근 안배해 왔던 것들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갈 뻔 했다.

    윤솔의 기지와 드레이크의 신뢰가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잭 오 랜턴 역시도 든든한 아군이었다.

    결국 나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든 것은 믿음직한 동료들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네.”

    나는 감개무량한 심경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용암의 바다 위로 군데군데 솟아오른 검은 바위들, 그 사이를 굽이굽이 넘어가는 벼랑길 외길.

    뜨거운 적빛이 타오르는 이 살벌한 대지를 밟아 본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때.

    [……!]

    앞서 걷던 잭 오 랜턴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사자의 갈기가 바늘처럼 빳빳하게 곤두선다.

    츠츠츠츠츠츠-

    드넓은 지하공동의 상공에 뜨거운 열기와 가스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탁하게 부유하던 가스와 구름은 한 곳으로 뭉쳐 커다란 소용돌이의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거대한 ‘얼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낡고 오래되어 보이는, 마치 수천 년 묵은 나무의 껍질과도 같은 피부.

    시커먼 오로라에 휘감겨 있는 두 개의 붉은 눈.

    죽음룡 오즈가 홀로그램 속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인간이여.]

    오즈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서부터 산 자는 들어올 수 없도다. 나에게 충성의 맹약을 바치려고 온 것이거든 이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것을 증명하……]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나는 눈앞에 뜬 퀘스트 창에 대고 ‘거절’ 버튼을 연타했다.

    -띠링!

    <히든 퀘스트 ‘리자드맨 용사’를 발견하셨……>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용사 도로시를 처치한……>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낮으신 분’의 제안 수락……>

    <업적 보상: 리자드맨의 상위종인 ‘드레이크맨’으로……>

    <※거절할 경우 ‘낮으신 분’의 불쾌감이 엄습합……>

    눈앞에 나타난 퀘스트창은 내용이 채 뜨기도 전에 사라졌다.

    정말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동시에.

    히든 퀘스트 창에서 경고한 대로, 죽음룡 오즈의 분노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놈이 눈을 부릅뜬 것만으로도 가스와 용암들이 펑펑 터져나간다.

    코로나가 일어나 마그마의 바다 위를 뱀처럼 누볐다.

    천장에서 집채만 한 바윗덩이들이 떨어진다.

    열해(熱海) 전체가 사납게 격동하고 있었다.

    […생각을 다시 하거라. 인간.]

    요동치는 자연재해와는 달리, 죽음룡 오즈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만용을 부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을 것이다. 나를 따르면 하나의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누릴 수 있을지어다. 부디 만족함을 알고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기를 명하나니 이를 가슴에 새겨듣고 명심함에……]

    “아, 거 말 되게 많네.”

    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SKIP] 버튼을 연타했다.

    예전에는 놈의 눈빛을 맞받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덜덜 떨렸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현재 네 개나 되는 S급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는데다가 그중 하나는 최근에 S+등급까지 강화되기까지 했다.

    거기에 등 뒤를 받쳐 주는 든든한 동료들까지 있으니 이제 마냥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었다.

    […….]

    내가 계속해서 말을 씹자 오즈의 환영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사사사사사…

    오즈의 환상이 구름과 가스, 먼지로 변해 사라져 간다.

    화광에 젖은 어둠 속에서 오로라만이 정처 없이 떠돌 뿐.

    지진이 멎고 용암의 바다도 다시금 잠잠해졌다.

    용암이 끓는 소리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주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정적에 잠겼다.

    “푸아!”

    그러자 계속 숨을 참고 있던 윤솔이 그제야 해묵은 날숨을 몰아 뱉었다.

    “후!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압박감 진짜 장난 없다! 이게 고정 S+급 몬스터의 위엄일까?”

    “…역시 그렇지?”

    “응. 두 번째인데 전혀 적응이 안 됐어. 식은땀 때문에 등이 엄청 축축해. 로그아웃하면 캡슐 청소 한번 해야겠다.”

    윤솔은 짐짓 엄살을 떨며 웃는다.

    한편, 드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어진. 그런데 오즈가 원래 저렇게 친절한 성격이었던가?”

    “응? 왜?”

    “…음 아니.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는 게 신기해서. 나는 분노해서 바로 공격해 올 줄 알고 긴장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오즈는 우리를 벌레 정도로 여기고 있어.”

    “…벌레?”

    “응.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밟아죽일 수 있는 벌레.”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갑자기 작은 벌레가 나타나서 너희들의 물건, 가령 물 컵이나 아령, 모니터, 화분 같이 적당히 무거운 물건을 밀어 쓰러트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러자 윤솔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벌레가 물컵을 쓰러뜨리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아…….”

    음, 이건 내가 원하던 반응이 아닌데.

    하지만 드레이크가 딱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

    “현실에서? 으음, ‘이 녀석. 벌레 주제에 제법 힘이 센데? 신기하다’ 라고 생각할 것 같다.”

    “…바로 그거야.”

    나는 드레이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즈의 입장에서 우리는 그냥 작은 벌레야. 리치 왕이나 데스나이트, 리자드맨 용사는 오즈가 평소에 쓰는 물컵이나 아령 같은 도구지. 작은 벌레가 그것들을 밀어 넘어뜨리거나 처치하거나 하면 당연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흐음. 그런 건가?”

    “그렇지. 심지어 그 작은 벌레가 말까지 하면서 자기가 힘이 꽤 세니 부하로 삼아 달라고 한다면?”

    “으음. 매우 흥미로울 것 같기는 하군. 일단은 부하로 삼아 볼 것 같다.”

    “그렇지. 그런데 부하로 삼은 그 벌레가 때때로 내 명령을 잘 따르지 않는다면? 하극상이라고 화를 내면서 그 벌레를 한 주먹에 내리쳐 죽일까?”

    “아니, 벌레가 반항하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신기하겠지. 가능한 좋은 말로 설득해 볼 것 같기는 하다. 뭘 원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지. 벌레가 기껏 원하는 게 있어 봐야 설탕 몇 스푼이나 젤리 쪼가리 아니겠어? 그런 걸  주는 것으로 살살 유혹해서 달래겠지. 굳이 이 신기하고 힘센 벌레와 다투고 싶지는 않을 거야.”

    오즈의 관점에서 본 우리의 상황은 대략 이렇다.

    놈은 나를 적은커녕 그저 신기한 장난감거리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벌레에 물려서 죽어 봐야 정신을 차리지.”

    적이 방심하고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 나는 이번 기회에 우리가 얼마나 독한 벌레인지 보여 줄 생각이었다.

    플라스틱 통 안에서 얌전히 젤리나 먹는 애완용 풍뎅이가 아니라 길들여지지 않는 쌍살벌 같은 존재라는 말씀!

    드레이크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우리는 나락 외길의 가장 끝자락에 도달했다.

    -띠링!

    -<죽음길 나락 ‘심계(深界), 몰이해구역(沒理解區域)’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 던전에서 가장 깊은 곳. 가파르게 이어지던 외길이 끊기는 지점. 최후의 장소.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시뻘건 용암이 끓고 있는 바다.

    마치 천연 그대로의 용광로.

    ‘오즈의 제 1번 용광로’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치 무한한 기름층, 가스층, 석탄층에 불이 당겨진 모양새.

    태양을 반으로 잘라 그 안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쿠구구구구구구…

    그 시뻘건 수면 밑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융기해 올랐다.

    거대한 용암의 산! 그것이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콰쾅! 우르릉…!

    용암의 바다가 사납게 요동침과 동시에 근처의 벽도 무너져 내렸다.

    뿌지직! 빠득! 꽈드드득!

    그 짧은 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린 용암의 표면에 균열이 가더니 이내 뜨거운 파편들이 바스라져 내린다.

    불카노스 금속판들이 빼곡하게 뒤덮고 있던 벽.

    그동안 무수히 스쳐 지나왔던 그 모든 벽들이 점차 장막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두 장의 거대한 날개처럼 보였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스케일!

    그 무시무시한 대분화 속에서 묵직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시 살아 있는 것들은 당최 이해할 수 없구나.]

    이윽고, 용암들이 폭포수처럼 쓸려나가며 그 안에 있는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먼 비늘 군데군데 검붉은 불카노스 코팅이 반들반들 빛난다.

    <오즈>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무저갱과 무덤가를 지배하는 위대한 검은 용.

    “죽음이 너를 영원하게 하리라.”

    -오즈- <신약, 흑왕기(黑王記) 하권,, 흑왕 4절>

    칠흑 비늘의 용군주 오즈(Odd’s)!

    그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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