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화 죽여줘 (5)
쿠르르르륵!
폭발의 여파는 생각보다 거셌다.
지독한 강산성의 혈액이 대지에 잔뜩 스며들었다.
츠츠츠츠츠…
바위와 흙, 모래들이 허물어지며 한 데 뒤엉킨다. 그것들은 그대로 녹아들어 하나의 단단한 덩어리가 되었다.
땅이 허물어졌고 지대가 점점 낮아져 간다.
멜트다운(meltdown)!
용광로가 붕괴되었을 때나 일어날 법한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니 리자드맨 용사의 힘이 얼마나 가공스러운 것이었나 새삼 느껴졌다.
“……후우. 이번 건 진짜 죽을 뻔했다.”
나는 HP가 1남은 상태로 겨우 살아남았다. 데스나이트의 ‘앙버팀’ 특성 덕분이다.
겨우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그 뒤에 바로 몰아닥칠 맹독 후폭풍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은 더욱 더 힘든 일이었다.
털썩!
나는 폭발의 중심부에 주저앉았다.
[호에에에엥…]
내 품 속에서 쥬딜로페가 냅다 튀어나왔다.
녀석은 내 전신 구석구석에 난 상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울먹울먹거리는 표정이 꽤나 귀엽다.
아마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떠나 이 세상에 몇 안 남은 동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리라.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이 세상 남자들의 유언 1위.
나는 쥬딜로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녀석을 다독였다.
그때.
파아앗-
시커먼 독안개를 걷어내는 하얀 불꽃이 있었다.
힐 마법 특유의 온기가 따스하게 물결치는 것이 보였다.
“어진아! 괜찮아!?”
“다들 괜찮은가!?”
독안개를 뚫고 달려온 윤솔이 황급히 내 어깨를 붙잡았다.
폭풍에 날아갔던 드레이크 역시 포션과 독 중화제를 들고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감싸고 더 나아가 잭 오 랜턴까지 구해 주었다.
어차피 앙버팀 특성이 있으니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덕에 징벌방에 있던 잭 오 랜턴 역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저 독에 절어 푹 주저앉은 징벌방의 바닥을 하염없이 내려다볼 뿐이다.
잭 오 랜턴을 포함한 모두의 귓가에는 들리되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웅웅 울리고 있었다.
‘…내가 …너를 …찾아갈게. …한여름 …밤의 …소나기 …처럼.’
용사 도로시. 오즈의 노리개로 전락한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귓바퀴를 타고 맴돈다.
온통 독으로 젖어 버린 대지. 잭 오 랜턴은 고개를 떨군 채 중얼거렸다.
[……도로시는 왜 자폭했을까.]
풀리지 않은 의문이 그의 양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물론 나는 그 해답을 알고 있다.
게임의 대본, 퀘스트의 시나리오, 프로그래밍된 결과만 놓고 보면 단순한 메커니즘이었으니까.
리자드맨 용사가 자폭한 이유는 놈이 가지고 있는 ‘자기학대’ 특성 때문이고 이것은 일정 HP 구간에서 확률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게임 외적으로 보면 이처럼 건조한 분석 결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잭 오 랜턴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는 게임 속 인공지능이고 그가 믿는 운명이란 게임의 시나리오이다.
애초에 NPC의 대사와 감정 상태 역시도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다양한 선택지로 뻗어나가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니까.
잭 오 랜턴은 혼자서 계속 하염없다.
[…왜 마지막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를 죽이고 싶었던 걸까?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그녀는 오즈의 노예였던 것일까?]
그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살점과 뼛조각들을 내려다보며 괴로워했다.
아마 머리카락이 있었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쥐어뜯었을 것이다.
툭-
나는 잭 오 랜턴의 어깨를 짚었다.
“고민은 복수가 끝난 뒤에 해도 늦지 않지.”
[……맞아. 옳은 말이로군.]
잭 오 랜턴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전투 외의 순간에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에 윤솔도 드레이크도 약간은 놀랐다는 눈치였다.
스스스스스…
지독한 독성을 띤 도로시의 피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을 모두 오염시켜 놓았다.
지형이 통째로 변했다.
이 강력한 산성 혈액은 흙을 녹이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었고 이내 맵 전체를 밑으로 푹 꺼지게 만들었다.
바닥 전체가 검게 물들어 버릴 정도였다.
……자폭했기 때문일까?
리자드맨 용사, 아니 용사 도로시는 죽은 이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아이템도, 호칭도, 심지어 그 흔한 알림음 하나 울려 퍼지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원래부터 없던 존재인 듯, 그렇게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녀가 남긴 것이라고는 오직 지독한 냄새가 나는 피뿐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잭 오 랜턴뿐만이 아니라 플레이어들까지 허탈하게 만드는 것 같아.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아무런 보상이 없다니.”
“여지껏 싸워 왔던 중간 보스들 중에 제일 힘들었는데 아무것도 안 떨어지다니. 거지도 이런 거지가 없군. 게임 개발자들이 보상을 만들기 싫었나? 이건 거의 억지에 가까운 거지다. 어거지…….”
하지만 나는 이런 결과가 벌어진 것에 그리 이견은 없었다.
“냉정하게 따지면 핵심적인 딜은 잭 오 랜턴이 혼자 다 넣었고, 게다가 놈이 마지막에 자폭해 버렸으니 기여도로 따지자면 할 말 없지 뭐.”
굳이 보상이라고 한다면 경험치가 약간 오른 것 정도다.
따로 호칭이나 아이템 등의 보상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어진>
LV: 82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不死)의 우군단장(특전: 선택)
HP: 820/820
간만에 열어보는 상태창, 호칭 칸에 라는 문구가 뜨지 않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경험치 바가 거의 채워질락 말락 한 상태에서 결국 레벨이 올라가 버렸다
“……레벨은 올랐는데, 뭔가 허울만 좋은 것 같군.”
드레이크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역시도 그동안의 수라장을 거쳐 오며 레벨이 73으로 상승한 상태.
그러자 윤솔이 짐짓 쾌활하게 화답했다.
“너무 실망 마세요. 어진이 말 들어보면 레벨이 높은 것도 다 나중에 특전이 있다는데.”
의외로, 이번 전투에서 가장 기여도가 적었던 윤솔 역시 레벨이 올라 마의 70의 벽을 넘게 되었다.
여기까지 내려오는 동안 경험치가 많이 쌓였던 모양이다.
아마 보글보글 대전에서 수많은 허수아비들을 싹쓸이한 보상이 아닐까?
그러나 윤솔도 드레이크도 사실 레벨이 오른 것으로는 그다지 만족을 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이 게임에서 인간 종족을 고른 이상 레벨이 높아도 별다른 특전이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벤토리의 확장, 포션이나 식량 등 소모품을 사용했을 때의 효율 상승 정도?
리자드맨이나 오크는 레벨에 따라 기본 피지컬이 확 차이가 나니 고렙 유저일수록 강하지만, 아이템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인간은 레벨보다는 템빨에 좌우되는 부분이 크다.
아무리 레벨이 올라갈수록 아이템의 숙련도가 높아지고 특성치가 상승한다지만 그래도 가시적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성장이 아닌지라 인간 유저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밖에.
(심지어 우리들은 레벨을 공식 랭킹에 등록하지 않아 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힘들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조용히 다독였다.
“레벨 많이 올려 두면 다 나중에 쓸모가 있어. 나아아중에.”
그 말 한 마디면 충분했다.
“…….”
“…….”
윤솔도 드레이크도 더 이상의 투덜거림을 멈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다고 하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한편. 이번 레이드의 보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츠츠츠츠츠…
도로시의 피는 지반 전체를 잠식해 들어간다.
검게 변한 땅이 강력한 산성 독에 의해 녹아내리며, 암반층에 나 있는 거대한 동혈(洞穴)이 붉으죽죽한 흙 밑으로 드러났다.
-띠링!
-<최후의 수문장 ‘용사 도로시’의 죽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죽음길 나락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 층과 ‘심계(深界)’ 층을 잇는 비밀통로가 드러납니다!>
‘심계(深界)’, 죽음룡 오즈가 도사리고 있는 최후의 공간.
지하 3층과 4층을 잇는 비밀통로가 드디어 내 눈 앞에 등장한 것이다!
“……여기가 마지막 승부처야.”
나는 심계로 이어지는 심연 앞에 섰다.
나락으로 통하는 입구. 이 밑에는 ‘진짜’가 존재한다.
무대 뒤, 흑막(黑幕) 너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세계관 정점에 군림하는 열일곱 대군주 중의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검은 용 군주’, ‘낮으신 분’, ‘칠흑의 대왕’, ‘모든 시체들의 소유자’, ‘가장 오래된 일곱 위상’, ‘분쟁지대의 절대자’…….
고정 S+등급 몬스터 ‘죽음룡 오즈’!
…찌릿!
전율이 발가락 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를 관통해 달린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놈을 잡는 순간, 나는 정점에 군림하게 될 것이다.
게임과 현실.
두 세계의 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