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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74화 (374/1,000)
  • 375화 죽여 줘 (2)

    <리자드 맨 용사(勇士)> -등급: S / 특성: 용, 하수인, 어둠, 고속재생, 백전노장, 하극상, 맹독, 증폭, 관통, 자기파괴

    -서식지: 죽음길 나락 ‘불가해지대’, 거인국

    -크기: 9m.

    생각해 보면 그동안 출현했던 중간 보스들의 등급은 대부분 쟁쟁했다.

    리치 왕의 중간 보스는 S등급 악귀타입 몬스터 ‘하린마루’, 데스나이트의 중간 보스는 S등급 융합형 키메라 몬스터 ‘인간지네’.

    당연히 죽음룡 오즈의 밑에도 중간 보스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중간보스가 리치 왕이나 데스나이트보다 훨씬 더 강한 S등급 몬스터라는 것이다.

    [갸아악… 갸아아악… 끄륵!]

    ‘리자드맨 용사’

    이 거대한 파충류형 괴물은 탁한 눈을 들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이드 개시.”

    나는 조심스럽게 지령을 내렸다.

    윤솔이 뒤로 빠졌고 드레이크가 그 앞을 가로막는다.

    동시에 나와 잭 오 랜턴이 이 거대한 리자드맨의 좌우를 점거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때.

    리자드맨 용사가 시작부터 세게 나온다.

    부웅!

    놈은 뜯어먹던 밴시 퀸의 시체를 내 쪽으로 집어던졌다.

    아직 힘이 남아 있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던 밴시 퀸.

    하지만 나는 가차 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몸뚱이를 치워 버렸다.

    팍!

    내가 밴시 퀸을 걷어내는 순간.

    부웅-

    바오밥나무 밑동보다도 굵은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든다.

    ‘…빠르긴 하지만.’

    나는 재빨리 허리를 뒤로 젖히고 머리를 옆으로 꺾었다.

    ‘그뿐이지.’

    리자드맨 용사의 꼬리가 내 귀 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쩌억! 콰콰쾅!

    내 뒤에 있던 지형이 통째로 일그러지는 굉음!

    스르르륵…

    나는 놈의 꼬리가 지나가고 난 뒤 텅 비어 버린 공간에 물처럼 흘러들었다.

    [……!]

    리자드맨 용사는 어느새 옆구리까지 파고든 나의 움직임에 당황하는 듯싶다.

    나는 두 개의 깎단을 X자로 교차하며 리자드맨 용사의 허리를 훝고 지나갔다.

    퍼퍽!

    단단한 비늘 틈으로 깎단 두 개가 쑤셔 박혀 미약한 상해를 가한다.

    데미지는 거의 주지 못했겠지만 일단 도트 데미지를 가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니 딜 교환에서는 이득을 봤다.

    “유효타를 넣었으니 됐다. 빠지자.”

    내가 뒤로 물러나자 잭 오 랜턴을 제외한 모두가 일정 거리 밖으로 물러났다.

    이제 얼추 몇 시간 뒤면 리자드맨 용사의 HP는 바닥을 칠 게 분명하다.

    …녀석의 특성 중 하나인 ‘고속재생’이 아니었더라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츠츠츠츠츠!

    리자드맨 용사는 놀라운 재생력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는 도트 데미지를 회복하고 있었다.

    “으음. 귀찮은 특성이야. 레이드 시간이 길어지겠어.”

    나는 리자드맨 용사를 살피며 연신 뒤로 물러났다.

    놈은 리자드맨 플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들을 무조건 공격하게끔 설정되어 있다.

    우리 파티원들 중에는 리자드맨은 커녕 비슷한 아이템이나 특성을 가진 사람도 없기에 놈의 어그로를 피할 수는 없었다.

    콰쾅!

    리자드맨 용사가 손톱을 휘둘러왔다.

    다섯 줄의 참격이 길게 내리그어져 눈앞의 모든 것을 쪼개 버렸다.

    나는 참격이 미치지 않는 범위 밖으로 정신없이 물러났는데 경사가 가팔라서 그런가 조금만 뒤로 빠져도 참격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었다.

    …문제는 관통 데미지였다.

    퍼퍼퍼퍼펑!

    리자드맨 용사가 가지고 있는 ‘관통’ 특성 때문에 참격 데미지는 자신을 가로막는 흙이나 바위를 뚫고 그 뒤로도 쏟아진다.

    나는 분명 돌기둥 뒤에 숨었건만 참격 데미지는 돌기둥을 뚫고 뻗어와 내 복부에 칼집을 내 놓았다.

    “으헉!?”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데미지 범위에 기겁해야 했다.

    다행이 경상으로 그쳤지만 내 최대 체력이 워낙 낮았기에 이것 한 방으로 죽을 뻔 했다.

    앙버팀 특성이 아니었더라면 정말로 죽었을지도…….

    [크르르륵…!]

    리자드맨 용사는 눈앞에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버린다.

    설령 베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을지라도 관통 특성이 있어 아주 성가시기 그지없었다.

    해당 궤도의 공격을 아예 피해버리지 못한다면 어디로 숨거나 도망쳐도 참격 데미지는 계속해서 따라온다.

    드레이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관통 특성이 저런 놈에게 붙으니 아주 성가시군.”

    드레이크 역시도 관통 특성을 가진 무기를 사용한다.

    …파팡!

    그는 두 개의 쇠뇌를 들어 연달아 발사했다.

    연사가 가능한 두 한손쇠뇌가 엄청난 속도로 화살들을 쏘아 보낸다.

    퍽! 퍼퍽! 퍽! 퍼퍼퍼퍽!

    리자드맨 용사는 자신의 몸에 부딪치는 화살들을 보며 쇳소리를 냈다.

    드레이크의 화살은 리자드맨 용사의 단단한 비늘들을 뚫진 못했지만 한번 맞을 때마다 상당한 흠집을 내고 있었다.

    ‘백전노장’ 특성 때문에 재생된 부위는 더욱 더 단단해졌지만 드레이크는 교묘하게 관절이나 눈, 코, 입 안 등 무른 부위만 노리고 있었기에 리자드맨 용사로서는 아주 귀찮을 것이다.

    [갸아아악!]

    리자드맨 용사는 드레이크의 화살이 성가셨는지 손톱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따앙!

    리자드맨 용사의 손톱은 허공에서 반쯤 내리그이다가 멈칫한다.

    잭 오 랜턴.

    그가 벼려온 복수의 대낫 날이 리자드맨 용사의 손톱을 허공에 붙잡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방해 말고 꺼져라.]

    잭 오 랜턴은 그대로 발을 날려 리자드맨 용사의 배를 걷어차 뒤로 날려 버렸다.

    [갸아아아악!]

    리자드맨 용사가 손톱을 휘둘렀으나 잭 오 랜턴은 양철 완갑을 이용해 참격을 퉁겨냈다.

    동시에 사자갈기 망토가 사납게 펄럭였다.

    콰콰쾅!

    크게 도약한 잭 오 랜턴이 대낫을 들어 리자드맨 용사의 품 안으로 바싹 파고든다.

    “목 뒤를 노려, 잭!”

    나는 황급히 오더를 내렸다.

    리자드맨 용사의 목 뒤에 돋아나 있는 세 조각의 역린(逆鱗)!

    모든 신경 다발이 밀집되어 있는 이 부위야말로 파충류 계열 몬스터들의 최대 약점이다.

    부웅!

    잭 오 랜턴은 대낫을 들어 리자드맨 용사의 목 뒤를 노렸다.

    불카노스 대낫은 날의 끝이 기형적으로 휘어 있었기에 적의 정면에 있으면서도 뒷목의 허를 찌르는 공격이 가능하다.

    …그러나.

    따앙!

    단단한 것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한 번.

    [크르륵…!]

    리자드맨 용사는 양 손으로 뒷목을 감싸 손등의 비늘로 잭 오 랜턴의 참격을 막아 낸 것이다!

    동시에.

    푸확!

    리자드맨 용사는 정면을 향해 입 안의 독액을 분사했다.

    역하고 끈적한 독액이 나와 잭 오 랜턴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젠장! 독 뿌리기 패턴도 있었지 참.”

    나는 쏟아지는 독액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때.

    번쩍!

    리자드맨 용사의 몸이 일순간 검붉은 아우라로 뒤덮이는가 싶더니.

    콸콸콸콸콸!

    놈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액의 양이 몇 배로 늘어났다.

    나는 물론이요 저 뒤에 있던 윤솔과 드레이크에게까지 튈 정도로 엄청난 양의 독액 분사였다.

    “으악! …퉷! …퉷!”

    나는 입 안으로 들어간 독액을 뱉어내며 연신 뒤로 물러났다.

    바실리스크의 ‘맹독’ 특성 덕분에 심하게 중독되는 것은 면했지만 그래도 저놈의 독액이 더 독하기에 HP 감소는 피할 수 없었다.

    “증폭 특성 때문인가. 독액의 양이 엄청 많네.”

    나는 윤솔의 힐을 받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리자드맨 용사의 특성 중 하나인 ‘증폭’, 이것은 말 그대로 한 가지의 특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증폭으로 배가 된 ‘관통’ 특성은 그 범위가 몇 배로 늘어나고 ‘맹독’ 특성은 그 독성이 몇 배로 독해지는 것이다.

    푸화악!

    리자드맨 용사는 지금 맹독 특성을 증폭시켰고 그로 인해 차고 넘치게 된 독액을 온 세상 천지에 죄다 흩뿌려 놓고 있었다.

    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독 기운이 검붉은 대지를 온통 검게 적실 정도였다.

    번쩍!

    윤솔이 고르딕사의 ‘마나 번’ 특성을 사용해 리자드맨 용사에 맞섰다.

    [크르르륵!]

    하지만 리자드맨 용사는 황금의 저주를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황금조각상으로 변하지 않는다.

    “아아, 역시…….”

    윤솔은 나지막이 탄식했다.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다.

    리자드맨 용사의 두 눈알.

    가득한 눈곱 너머로 흰자위만 퀭한 저 두 눈은 이미 오래 전에 제 역할을 상실했다는 것을.

    콰콰콰콰쾅!

    리자드맨 용사가 또다시 손톱을 휘둘러 참격을 날려 온다.

    놈은 이제 손톱을 허공에 찔러 넣어 일직선의 거대한 참격 작살을 만들어 쏘아 보내고 있었다.

    드레이크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관통, 맹독, 증폭. 이 세 가지 연계특성이 엄청나게 골치 아프군. 거기에 고속재생과 백전노장 특성 때문에 깎단의 도트 데미지에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 않나. 거기에 기본적인 체력과 방어력, 공격력, 민첩성까지 고루고루 뛰어나다니…….”

    여지껏 많은 보스 몬스터들을 상대해 봤지만 이렇게 골치 아픈 존재는 처음이었다.

    일단 더 단단한 비늘부터 뚫어야 뭘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방법을 찾는다.

    “그래도 잡을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회귀 전 수많은 고인물들이 찾아냈던 공략법이지만 말이다.

    나는 인벤토리를 뒤져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임모탈(immortal)> / 재료 / ?

    맨들맨들한 그 모습은 ‘불멸(不滅)’ 그 자체를 상징한다.

    예전에 리치 왕과 데스나이트를 잡고 얻은 반쪽짜리 구슬 두 개를 하나로 합친 아이템.

    시커먼 구슬 하나가 내 손 위에서 불길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그런 내 선택에 주목했다.

    “이걸 여기에 쓰는 거야?”

    “그런데 어떻게 쓰면 되지?”

    둘 다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표정.

    나는 검지를 저었다.

    “이 아이템만으로는 힘들지. 함께 사용해야 할 보조도구가 있어.”

    말을 마친 나는 불멸의 정수 외에 한 가지 아이템을 추가로 꺼내들었다.

    -<거꾸로 정수> / 재료 / D

    거꾸로 뒤집는 힘이 담긴 구슬이다. 다양한 곳에 응용된다.

    내가 꺼내든 것은 흐물흐물하게 생긴 반투명한 구슬이었다.

    “…?”

    “……?”

    너무 존재감이 없는 아이템이다 보니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표정.

    나는 친절하게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줬다.

    “그 왜, 예전에 고르딕사를 잡으러 갈 때 ‘황천의 유극 1층’에서 얻었던 아이템들이잖아. 거꾸로 타는 귀뚜라미랑 황금 청개구리를 잡고 대량으로 얻었던.”

    그제야 친구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자드맨 용사를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물었다.

    “‘임모탈(immortal:불멸의)’의 반대는 뭘까?”

    그러자 윤솔과 드레이크 모두 손쉽게 답했다.

    “그야 ‘모탈(mortal:필멸의)’이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맞지. 하지만 반만 맞는 대답이군.”

    “……?”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눈앞의 리자드맨 용사(勇士)을 바라보았다.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놈의 전신을 빽빽하게, 풍성하게, 수북하게 뒤덮고 있는 저 견고한 비늘이었다.

    이내, 나는 임모탈의 반대말을 입에 담아 읊조렸다.

    “…정답은 ‘탈모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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