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73화 (373/1,000)
  • 374화 죽여 줘 (1)

    -띠링!

    -<‘오즈의 2번 용광로’ 가동이 중지되었습니다>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층과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 층을 잇는 비밀통로가 드러납니다!>

    잭 오 랜턴을 필두로 한 복수 원정대가 심연의 바닥을 향해 출발했다.

    시야가 일순간 암흑으로 물드는거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어마어마한 깊이의 싱크홀 아래로 내려오게 되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은 가파른 급경사가 끝없이 계속되는 나선형의 내리막길이었다.

    “벽이 전부 불카노스로군.”

    나는 오른손을 들어 벽을 두드려 보았다.

    땅땅땅-

    내 손가락이 닿은 검붉은 벽에서는 맑은 금속음이 울려 퍼진다.

    손가락 마디로 되돌아오는 충격은 꽤나 무겁고 찌릿찌릿한 것이었다.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이 불카노스 원석을 녹이던 ‘제 3번 용광로’

    잭 오 랜턴들이 불카노스 금속 판을 제작하던 ‘제 2번 용광로’

    두 개의 용광로를 통과해 내려온 불카노스는 이렇게 커다란 크기의 마름모꼴 매트릭스로 변해 벽에 못 박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수많은 불카노스 판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지하 굴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커다란 생선비늘을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왜 이런 작업을 하는 걸까? 불카노스로 벽을 뒤덮어서 뭘 하려고.”

    “마치 코팅이라도 하는 것 같군.”

    드레이크의 표현이 가장 적절했다.

    리자드맨들과 허수아비들은 이 커다란 지하공간의 벽을 불카노스로 뒤덮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들 개개인은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작은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때.

    쩝쩝쩝…

    저 깊은 지하굴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행을 멈추게 하고는 앞쪽의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짐작하고자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몸을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자 소리는 조금 더 또렷해졌다.

    쩝쩝쩝쩝… 빠각! 아드득! 우적우적…

    무언가가 ‘식사’를 하고 있는 소리였다.

    윤솔은 피부에 와 닿는 오싹한 기운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달그락-

    바닥을 보니 온통 뼈다귀 투성이다.

    거대한 악귀타입 몬스터의 뼈부터 각종 파충류, 어류, 조류형 몬스터들, 심지어 충왕종 몬스터의 외골격까지 둥글어 다니고 있었다.

    드레이크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도 처먹었군.”

    그는 바닥에 반쯤 파묻혀 있는 바실리스크의 뼈다귀를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천하의 바실리스크조차 한 끼 식사거리로 전락할 정도라니, 대체 저 밑에 있는 ‘중간 보스’는 얼마나 흉악하단 말인가!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더더욱 강력한 몬스터들의 사체가 등장한다.

    썩다 못해 말라붙은 내장 조각, 부러져 있는 굵은 뼈다귀, 갈기갈기 찢어진 가죽…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두터운 쇠사슬들은 죄다 처참하게 끊어져 있었다.

    아마 이것들은 먹이가 이곳까지 날라져 오기 전까지 먹이의 전신을 충실하게 휘감고 있었을 것이다.

    이윽고, 죽음길 나락의 지하 3층 끝자락에 거의 근접했다.

    우리는 꽤나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는 어떤 지하공간에 이르게 되었다.

    공간의 용도는 상당히 음흉해 보였는데 흡사 구덩이 같은 외형을 하고 있지만 입구가 좁고 안쪽이 넓은데다가 통로가 길쭉하여 마치 삼각 플라스크를 땅에 묻어 놓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나는 한 눈에 이 구조물의 목적을 눈치 챘다.

    통제가 되지 않은 말썽쟁이를 가두어 훈육하는 어떠한 시설.

    그렇다. 그곳은 ‘징벌방’이었다!

    그 좁은 격리 공간 속에는 죽음룡 오즈를 만나기 위해 넘어가야 할 최후의 관문, ‘중간 보스’가 갇혀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징벌방에 갇혀 있는 중간 보스와 눈이 마주친 윤솔, 그녀는 경악한 채 입을 딱 벌렸다.

    그만큼 적의 외형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으음.”

    나 역시도 불편한 신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저것과 비슷한 외형의 괴물을 마주했던 적이 있다.

    <리자드 맨> -등급: C / 특성: 용, 고속재생, 백전노장

    -서식지: 남대륙 전역, 어비스 터미널

    -크기: 2m.

    -반짝이는 것을 너무 좋아해 다른 종족과 자주 영역 분쟁을 일으킨다고 한다. 때문에 금광 근처에서는 늘 이 괴물을 볼 수 있다.

    오크와 더불어 인간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끼치는 몬스터.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 리자드맨들은 이처럼 하나의 몬스터에 불과했다.

    나는 천공섬으로 가기 전 어비스 터미널을 공략할 당시 다수의 리자드맨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쳤던 전력도 있다.

    ‘으음, 리자드맨들의 세력 분포도가 어떻게 되더라…….’

    그 당시 어비스 터미널에 서식하던 리자드맨들의 등급과 계급은 다음과 같았다.

    C / 리자드맨 일반병

    C+ / 리자드맨 십인장

    B / 리자드맨 백인장

    B+ / 리자드맨 천인장

    A / 리자드맨 만인장

    당시 내가 만났던 리자드맨들 중 가장 강한 개체는 A등급이 끝이었지만 사실 그 위로도 더 강한 상위계급의 리자드맨들은 분명 존재한다.

    단신으로 능히 백만 마리의 리자드맨을 통솔할 수 있는 무력.

    그리고 그럴 정도의 힘을 갖춘 강자를 야생에 가만히 놔둘 군주들은 없다.

    죽음룡 오즈는 리치 왕, 데스나이트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최강의 부하를 손에 넣었던 것이다.

    <리자드 맨 용사(勇士)> -등급: S / 특성: 용, 하수인, 어둠, 고속재생, 백전노장, 하극상, 맹독, 증폭, 관통, 자기파괴

    -서식지: 죽음길 나락 ‘불가해지대’, 거인국

    -크기: 9m.

    일반적인 리자드맨들과는 차원이 다른 덩치.

    사람의 허리보다도 두꺼운 쇠사슬에 꽁꽁 묶여 있는 거대한 도마뱀 인간이 징벌방 가장 깊숙한 곳에 갇혀 있는 것이 보인다.

    아그작… 으적- 뿌득!

    놈은 쇠사슬 자락 아래로 한쪽 손을 빼내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입 안으로 잔뜩 우겨넣고 있는 먹이의 정체는 우리도 익히 하는 것이었다.

    창백하다 못해 푸르딩딩한 피부, 깡마르고 긴 팔다리, 바닥에 뒹굴고 있는 챙이 넓은 고깔모자.

    비록 머리통부터 시작해 상반신이 거의 다 사라져 있었지만 눈에 띄는 특징들 탓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밴시 퀸…여기서 죽어 있었나.”

    나는 끙 소리를 냈다.

    지하 2층에서 도망쳐 온 밴시 퀸은 이런 곳에서 리자드맨 용사의 먹이가 되어 있었다.

    명실공히 죽음룡 오즈 군단의 최강 화력, 리자드맨 용사의 앞에서는 밴시 퀸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으리라.

    한편 그제야 밴시 퀸이 지껄였던 대사가 이해가 된다.

    ‘좋아. 저 정도면 훌륭해. 도둑맞았던 분량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어! 그렇게 된다면 나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분’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거야!’

    환희와 두려움이 공존하던 그녀의 표정.

    원래의 직급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리자드맨에 대한 공포가 뒤섞여 있던 표정이었다.

    …쿵!

    리자드맨은 몸에 걸쳐져 있는 사슬들을 훌훌 벗어 버리고는 위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식은땀이 마음속에서부터 배어나온다.

    나는 회귀 전 지식을 열심히 뒤져 죽음룡 오즈 휘하 ‘불사의 군단’의 전력 분포도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리치 왕이 이끄는 냉동 흡혈귀 군단의 전력이 약 30%… 데스나이트가 이끄는 칼잡이 군단의 전력이 약 30%… 리자드맨 용사와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의 전력이 약 40%…’

    그리고 나머지는 죽음룡 오즈 본인과 그가 이끄는 검은 용 군단으로 플레이어들은 아예 범접할 수도 없는 위치에 있어 사실 전쟁에서 마주칠 일은 없다.

    절그럭- 절그럭- 뚜뚝! 펑!

    요란한 소음이 내 상념을 깨트려 놓았다.

    리자드맨의 손목과 발목, 목에 채워져 있던 수갑과 족쇄들이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지는 소리였다.

    [갸아-아아악!]

    이내 리자드맨이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튀어나왔다.

    콰쾅!

    좁은 구덩이 입구를 뚫듯 솟구치는 모습을 보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조심들 해. 이놈 아주 골치 아픈 놈이니까.”

    나는 동료들에게 경고했다.

    회귀 전의 전장, 저놈이 날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놈의 강력함은 말 그대로 악명 높은 것이었다.

    모든 게임 커뮤니티에 리자드맨 용사의 밸런스를 욕하는 글이 72시간 내내 올라왔을 정도.

    오로지 오즈와 함께 있을 때만 얌전하고 그 외에는 너무나도 난폭하여 도저히 통제가 안 되는 생물.

    심지어 리치 왕이나 데스나이트조차 이놈처럼 공략 난이도가 높지는 않았었다.

    전장에 풀려나오자마자 눈앞에 있는 오크 군단의 탱커 라인에 구멍을 내고 파고들어 심층부까지 그대로 밀고 들어갔던 용자왕.

    그 당시 놈의 발아래 곤죽이 된 오크들의 수가 네 자리를 넘어갈 지경이었다.

    백 단위 머릿수가 모인 오크 랭커들의 합공으로도 당해낼 수 없었던 전설의 보스 몬스터.

    시간이 꽤 지난 뒤, 놈의 상위호환 몬스터인 ‘용옥의 고문기술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용 진영에서 공략 난이도가 극악으로 평가되던 보스 몬스터가 바로 이 리자드맨 용사이다.

    퍼석-

    리자드맨 용사는 뜯어먹던 밴시 퀸의 사체를 땅바닥에 패대기친 뒤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필드 전체가 조여 오는 듯한 압박이 느껴진다.

    과연 죽음룡 오즈 군단의 최종병기다운 위엄이었다.

    하지만.

    턱-

    그런 리자드맨 용사의 기세에도 전혀 기죽지 않는, 실로 든든한 아군이 하나 있다.

    […오즈가 코앞이다. 방해 마라.]

    어미의 죽음 이후 거칠 것이 없게 된 자식

    좀도둑, 아니 ‘복수자’ 잭 오 랜턴이 대낫을 들어 원수의 목숨을 추수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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