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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72화 (372/1,000)
  • 373화 풀강! (3)

    반짝- 반짝-

    저것은 새로운 아이템의 출현을 알리는 빛.

    “…뭐, 뭐야? 뭐지, 저거!?”

    나도 모르게 솥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다가 거의 거꾸로 떨어질 뻔했다.

    그만큼 나는 흥분해 있었다.

    상황을 가장 빨리 판단한 이는 바로 드레이크였다.

    “어진! 빨리 확인을!”

    그는 침착하고 이성적인 태도로 움직여 재빨리 용광로 입구 부근에 로프를 묶었다. 그리고 그 로프의 끝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충동의 노예가 된 지 오래.

    드레이크가 로프를 채 묶기도 전에 용광로 속으로 다이빙한 뒤였다.

    …쿵!

    나는 식어 버린 용광로 바닥에 착지했다.

    HP가 상당히 깎여나갔지만 이쯤이야.

    아직 뜨끈한 열기가 남아 있는 용광로 바닥 곳곳에는 검붉은 빛을 내뿜고 있는 불카노스 융해액들이 고여 있었다.

    파아앗!

    나는 바닥에 있는 빛무리를 내려다보았다.

    깎단. 깎아내는 단말마.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나는 당장 달려가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그리고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고 억누르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깎단을 향해 다가갔다.

    멀리서 봤을 때는 작게 보였기에 부서진 줄 알았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니 깎단의 크기는 전혀 줄어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니까, 똑같은 크기의 깎단이 하나가 더 생겨나 있는 것이다!

    “…….”

    나는 멍한 표정으로 발 앞에 뒹굴고 있는 두 개의 깎단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보아도 깨지거나 절단 난 게 아니다.

    깎단은 아주 약간 가늘어지고 길어졌을 뿐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오잉!? 깎단의 상태가……!

    -<깎아내는 단말마> / 양손무기 / S(S+) / 강화: +10

    고문기술자들 중에서도 가장 음침하고 흉악한 이들이 쓰는 무기.

    고결한 천사장 조차도 이 칼 앞에서는 신을 모욕할 수밖에 없으리라.

    -공격력 +990 (+990)

    -파괴불가 (특수)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축하합니다! ‘깎아내는 단말마(한손무기)’는(은) ‘깎아내는 단말마(양손무기)’(으)로 강화됐다!

    몸이 절로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 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달그락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두 개의 깎단을 집어 들었다.

    쌍수단도(雙手短刀)!

    한손무기였던 깎단은 풀강을 통해 양손무기로 변화했고 그 와중에 두 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꿈이냐 현실이냐.

    꿈처럼 느껴지는 현실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 현실처럼 느껴지는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마라.

    “……S+.”

    나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0.0001%.

    그 말도 안 되는 확률의 관문들을 연달아 뚫고 풀강에 성공했다.

    너무나도 엄청난 행운이라서 그런가? 당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기야, 아무리 극도로 희박한 확률이라고는 해도 매번 미국의 누군가는 파워볼, 혹은 메가밀리언 잭팟에 당첨된다.

    0.0000000033%라는 확률의 벽을 뚫고 말이다.

    그러니 게임 속에서 풀강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도 현실에서 분명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그 주인공이 내가 된다고 하면 느낌이 확 달라지겠지만!)

    “…….”

    시간이 지나자 호흡도, 맥박도 비교적 정상 수치에 가깝게 안정되었다.

    나는 그제야 온전히 내 것으로 귀속된 이 쌍수단도를 자세히 살펴보고 감정할 수 있었다.

    ‘깎단*2’

    공격력이나 기타 옵션들, 외형 면에서 변화한 것은 그다지 없었지만 능지처참 데미지로 들어가는 도트가 두 배가 된 것은 실로 어마무시한 변화였다.

    ‘능지처참(陵遲處斬)’은 적에게 도트 데미지를 먹이는 특성.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초마다 최대 체력의 0.01%에 해당하는 양의 HP를 깎는 능력이다.

    1만 초, 즉 2시간 46분 40초면 체력이 가득 차 있는 적을 거꾸러트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적의 자연 회복력이나 기타 특수한 상황들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대를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늪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시간! 이 특성을 써서 몬스터를 사냥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늘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보스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동안 도트 데미지가 충분히 들어갈 때까지 살아남아 버티는 방식으로 싸워 왔다.

    2시간 46분 40초 만에 끝나는 싸움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 몇 시간, 혹은 며칠씩이나 걸리는 싸움들이었고 나는 그 동안 방어구 하나 없이 몬스터의 격렬한 몸부림으로부터 도망치며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하나의 ‘깎단’을 얻었다.

    이론 상 이것만 있으면 레이드 시간을 무조건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5천 초. 1시간 23분 20초만 버틴다면 적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능력.

    능지처참 특성은 두 배로 강해진 것이다!

    “……! ……! ……!”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말이 안 나온다.

    나락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방에 극락으로 와 버린 느낌.

    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방방 뛰었다.

    그리고 내가 걱정된다는 듯 포르르 따라 내려온 쥬딜로페를 꽉 끌어안았다.

    “너는 행운의 여신이었구나! 이런 금손! 금으로 만들어진 손 같으니!”

    내가 쥬딜로페의 오동통한 볼에 대고 몇 번인가의 뽀뽀를 날리자.

    -띠링!

    <여왕이 과한 스킨쉽에 불쾌해합니다>

    <여왕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했습니다>

    <여왕이 ‘너 왜 그래? 우리 이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라는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쥬딜로페의 표정이 급격히 썩으며 호감도도 뚝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게 있으면 보다 더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가능해지지.”

    나는 양 손에 들린 커다란 송곳 두 개를 바라보며 홀린 듯 중얼거렸다.

    S급 무기가 열 번 강화되어서 한 단계 위인 S+등급과 맞먹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죽음룡 오즈도 크게 두렵지 않았다.

    그 전에 넘어가야 할 ‘중간 보스’ 역시도 이제는 오히려 기다려진다.

    “축하해 어진아! 겹경사네!”

    “겹경사 수준이 아니군. 게임 역사상 이런 대박이 또 있었을까…!”

    막 용광로 바닥으로 내려온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들뜬 기색으로 나의 환희에 화답했다.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던가? 지금 상황이 딱 이와 같았다.

    그때.

    “……?”

    “……?”

    윤솔과 드레이크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진. 지금 뭐 하는 건가?”

    드레이크가 나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저울을 꺼내 깎단 두 개의 무게를 재고 있는 중이었다.

    “아아, 별 거 아냐. 한손무기에서 양손무기로 메타를 바꿨으니 적응을 해야지.”

    “……? 적응을 한다면서 무게는 왜?”

    드레이크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다.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무게나 표면적, 폭, 길이, 부피 등 기초 재원부터 파악한 뒤에 융점, 비중, 인장강도, 경도, 탄성도, 항복점, 신율 검사도 다시 해 보려고.”

    “……그런 걸 왜?”

    “그래야 픽셀 단위의 완벽한 컨트롤이 가능하지. 기껏 좋은 무기를 얻었는데 그것을 완벽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잖아.”

    그러자 윤솔이 혀를 내둘렀다.

    “으아. 컨트롤을 하려면 그런 것까지 파악해야 하는 거야?”

    “그럼~ 양손무기, 그 중에서도 쌍수단도는 가뜩이나 컨트롤이 어렵기로 소문난 무기인데. 사실 이 정도로도 모자라.”

    나는 윤솔을 향해 두 개의 깎단을 들어 보였다.

    “잘 봐. 이 두 개의 깎단은 완전히 동일해 보이지만 사실 미세하게 다른 점이 있지. 뭔지 알겠어?”

    “으음, 글쎄?”

    “바로 ‘무게’야. 들어 보면 모를 수 있지만 저울로 정밀 측정을 해 보면 오른쪽 깎단이 2그램 정도 더 가볍지. 왜일까?”

    “…모, 모르겠어.”

    “개발자의 배려심이 투영된 결과야. 보통 유저들은 오른손잡이니까 밸런스를 위해서 왼쪽의 무게를 더해 놓은 거지. 하지만 만약 양손잡이인 내가 이 사실을 모르고 두 깎단을 똑같이 휘둘렀다면 어떨까? 분명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겠지?”

    “…어. 그, 그런가? 2그램 차이인데?”

    “노노노. 2그램의 초과무게, 피격 시 미세하게 구부러졌다가 돌아올 때의 탄성, 혹은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 강성, 운동 시 가장 공기의 저항이 적은 궤적들이 모이고 모여서 결국 결정적인 한 방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내 말은 아주 허언이 아니다.

    실제로 골프선수들은 자신의 스윙을 미세하게 조절하기 위해 클럽에 납으로 된 테이프를 붙여 두기도 한다.

    1998년 마스터스 대회가 열렸을 당시 골프선수 ‘필 블랙마르(Philip Arnold Blackmar)’는 드로샷의 미세한 조정을 위하여 드라이버에 납 테이프를 감기도 했다.

    인간의 근육으로는 도저히 조절할 수 없는 극한의 미세영역을 도구의 철저한 재원 분석으로 커버하는 것이다.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말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이머들은 많아. 하지만 결국 롱런하고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게이머들은 피지컬 타입보다는 이론에 충실한 타입이지. 시간이 지나면 피지컬은 결국 경험으로 대체되기 마련이거든. 언젠가는 말야.”

    그 말을 들은 윤솔은 나를 향해 눈을 반짝인다.

    그녀는 드레이크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어진이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저도 얼른 저런 장인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요!”

    그때.

    나는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참, 친구들. 용광로에 남은 불카노스 찌꺼기들을 좀 모아와 주겠어?”

    “…응? 그건 왜?”

    “정밀검사를 좀 더 하려고.”

    “엥? 아까 이것저것 자세하게 다 하지 않았나?”

    “무슨 소리야, 그건 기초 중의 기초 검사고. 열 전달률, 냉기 전달률, 전도율 검사도 해 봐야지.”

    “…….”

    “불카노스 금속은 표면 거칠기를 측정할 때 쓸 거야. 중심선 평균 거칠기, 최대높이 거칠기, 10점 평균 거칠기를 측정할 계획인데… 아무래도 KS에서 하는 표면 거칠기 측정방법을 응용해 봐야겠어.”

    말을 마친 나는 다시 깎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헤헤, 깎단아 나랑 거칠기 놀이 하자~"

    그것을 본 윤솔의 눈밑살이 살짝 떨린다.

    “…저런 경지까지는 도달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음, 동감이야.”

    드레이크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이제 시간이 됐군.]

    잭 오 랜턴은 밴시 퀸이 사라진 비밀문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죽음길 나락의 지하 3층으로 내려갈 차례가 되었다.

    지하 4층의 ‘심계(深界)’에 도사리고 있을 죽음룡 오즈.

    여기에 닿기 위해서는 우선 이 아래 지하 3층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를 우선 건너야 한다.

    “그 아래에는 중간 보스가 있지. 각오는 됐어?”

    나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잭 오 랜턴은 대답 대신 불카노스 대낫과 양철 갑옷, 사자갈기 망토를 두른 채 형형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 잭 오 랜턴. 모두는 준비가 되었다. 넘칠 정도로!

    이제 곧 튀어나올 중간 보스를 잡고 바로 그 뒤에 있을 죽음룡 오즈를 잡으면 이번 레이드는 깔끔하게 종료다.

    더불어 나는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왕좌에 오를 수 있게 될 것이다.

    천하의 그 누가 고정 S+등급 몬스터를 사냥할 엄두를 낼 수 있단 말인가!

    회귀 전의 세상에서도 2차 대격변이 열리기 전까지는 어림없던 일이다.

    츠츠츠츠츠츠츠…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잭 오 랜턴이 대낫을 든 채 구덩이 앞에 섰다.

    죽음룡 오즈의 존재를 앞두고 바짝 날이 서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 역시 잭 오 랜턴을 따라 그 뒤에 섰다.

    […가자.]

    그는 우리를 향해 짧게 턱짓하고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심연(深淵). 복수자의 복수행이 시작되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