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70화 (370/1,000)
  • 371화 풀강! (1)

    황금색으로 빛나는 양피지 세 장이 내 손 안에 들어왔다.

    -<한계돌파 강화주문서> / 주문서 / A+

    금기의 영역인 10단계 강화의 벽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

    -1회만 사용 가능합니다

    -9단계 이상의 강화된 아이템에만 사용 가능합니다.

    10강 주문서.

    이 세계에 현존하는 주문서들 중 두 번째로 가치가 높은 주문서이다.

    하지만 ‘가장 가치가 높은 주문서’는 일부 헤비 유저들 사이에서만 전설처럼 회자되는 것이고 미래에서도 봤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고로 지금 내 눈에 있는 주문서가 사실상 가장 좋은 주문서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어진아, 이게 좋은 거야?”

    아직 게임 세상의 물정을 잘 모르는 윤솔은 그저 큰 눈을 깜빡거리기만 할 뿐이다.

    나는 그런 그녀를 위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템은 ‘강화’라는 것을 통해 더욱 강하게 제련할 수 있어. 강화석만 있으면 가능하지. 강화석 자체는 귀하긴 해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편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고.”

    지금 당장만 해도 나에게는 십 수 개의 강화석이 있다.

    정예 몬스터만 잡아도 일정 확률로 떨어지는 것이라서 시중에서는 귀하게 여겨지지만 나는 이미 꽤나 많은 물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쥬딜로페가 공기놀이나 구슬 꿰기 놀이를 하고 싶어 할 때 유용한 장난감으로 쓰인다)

    “한 아이템은 최대 10번까지 강화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10강화에 성공한 아이템 한 등급 위의 아이템과 필적하게 되지.”

    즉 C급 아이템을 10번 강화하면 C+급 아이템과 비슷한 성능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바닥에 걸터앉아 손에 든 10강 주문서를 옆에다 내려놓았다.

    “하지만 아이템을 강화석만으로 강화할 수 있는 한계는 9번까지야. +9강부터는 단순히 강화석 뿐만 아니라 이 주문서가 있어야 강화가 가능해.”

    나는 예전에 ‘인검’이라는 아이템을 9강까지 강화했던 적이 있었다.

    10강 주문서도 없이 마지막 강화를 질렀다가 깨트려 버린 비운의 아이템이다.

    ‘……뭐, 그때는 악의 고성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필요해서 일부러 깨트린 것이지만.’

    한편, 내 말을 들은 윤솔은 흥분한 기색으로 박수를 친다.

    “와아! 그럼 엄청 좋은 거네! 마침 강화석도 있다고 했으니 어진이 너 아이템을 여기서 9번 강화한 다음에 이 10강 주문서를 이용해서 +10강으로 만들면 되겠다! 마침 여기 맵도 용광로이니 제련할 장소도 널렸고!”

    그녀는 내 손에 들린 ‘깎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깎아내는 단말마> / 한손무기 / S

    고문기술자들 중에서도 가장 음침하고 흉악한 이들이 쓰는 무기.

    고결한 천사장 조차도 이 칼 앞에서는 신을 모욕할 수밖에 없으리라.

    -공격력 +990

    -파괴불가 (특수)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깎단, 깎아내는 단말마.

    튜토리얼의 탑 11층, 숨겨진 구역에서 ‘용옥의 고문기술자’를 잡고 얻은 히든 피스.

    당시 나는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이 몬스터를 잡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깎단은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는 충분했다.

    현재의 변태 메타를 있게 한 일등공신이자 나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템.

    그리고 이는 원래 회귀 전 앙신 조디악을 상징하던 성명절기였다.

    하지만 이 깎단을 +10강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회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조디악조차도 결국 이 깎단을 풀강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이유가 뭘까?

    ‘……그건 너무도 명확하지.’

    그것은 바로 ‘강화 확률’ 때문이다.

    10강 주문서는 열 번째의 강화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지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1강부터 시작해서 +7강까지야 어느 정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면 가능하다.

    (실제로 내가 회귀하기 전에도 이 정도 단계까지는 밟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8강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8강 성공확률= 0.0110%

    +9강 성공확률= 0.0004%

    +10강 성공확률(주문서가 없을 경우)= 0%,

    +10강 성공확률(주문서가 있을 경우)= 0.0001%

    참고로 로또복권 2등 당첨 확률이 0.0001%이다.

    경마에서 삼쌍승식이 터질 확률이 0.139%.

    카지노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뜰 확률이 0.0003%.

    마작에서 국사무쌍(國士無雙)이 맞춰질 확률이 0.043%.

    포커에서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가 나올 확률이 0.0032%.

    ‘……이쯤 되면 사행성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지 말라는 거지.’

    조디악은 사이코이긴 해도 멍청한 놈은 아니다.

    놈이 이런 천문학적인 확률에 도박을 할 리가 없다.

    나는 세 장의 주문서 중 한 장을 윤솔에게, 다른 한 장을 드레이크에게 넘겼다.

    물론 나도 내 몫으로 한 장을 따로 챙긴 뒤다.

    “나는 그냥 경매장에 처분하려고. 이 주문서라면 대형 길드들이 서로 매입하겠다고 난리를 칠  거야.”

    “어? 그러면 강화는 안 하는 거야?”

    “…그럴 바엔 차라리 도박이나 복권을 하는 게 나아.”

    도저히 내 아이템을 강화할 엄두는 안 난다.

    회귀 전, 집행검을 강화하다가 터트려먹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날의 기억만 떠올리면 아직도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

    ‘……이번 생에서는 절대로 그런 짓 안 해.’

    나는 강화의 ㄱ자도 꺼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몸이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그런 내 결정이 못내 아쉬운 눈치다.

    “그럼 나는 A+등급 아이템을 한번 강화해 봐야겠군. 혹시 아나? 될지.”

    “내가 비슷한 짓 했던 녀석을 하는데…잘 안 되더라.”

    “비슷한 짓? 그게 누군가?”

    입이 찢어져도 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진짜 그때는 왜 그랬지?’

    가진 모든 재산을 강화 가챠에 쏟아 붓고 파산하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드레이크의 질문을 식은땀을 흘리며 외면했다.

    바로 그때.

    “…어? 어진아. 너 깎단은 어쨌어?”

    윤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강화 확률에 대해 윤솔에게 설명하기 전에 분명 주문서랑 함께 옆에 놔뒀…….

    “…응?”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까 분명 10강 주문서를 바닥에 두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깎단으로 눌러 놨었다.

    ……근데 이게 지금 어디 갔다냐?

    지금 내 옆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눈알이 제 기능을 하고 있나 잠깐 의심을 하는 순간.

    “헉! 어진! 저기!?”

    드레이크가 기겁을 하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 친구가 이렇게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오랜만이다.

    나 역시도 드레이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밴시 퀸이 사라지고 난 뒤 텅 빈 솥. 주인을 잃어버린 용광로가 있는 방향이었다.

    [뿌앵!]

    그곳에는 쥬딜로페가 매달려 있었다.

    [아부! 뿌우-]

    녀석은 어느 정도 식은 솥 입구에 걸터앉아 있는 상태였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싶은 듯, 내가 하던 보글보글 동작을 흉내 내면서.

    …문제는, 녀석이 비눗방울을 만들기 위한 고리 대신 내 ‘깎단’을 쥐고 있다는 것!

    “으악! 내 아이템을 언제 가져간 거야!?”

    나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펫으로 삼은 녀석이라서 그런가? 내 아이템을 내 허락 없이 점유이탈할 수 있는 모양이다.

    하필 쥬딜로페의 목에는 강화석으로 만든 목걸이까지 걸려 있었다.

    평소에 예쁘다고 가져다가 공기놀이나 구슬치기 등등을 하기에 몇 개 쥐어 준 것이 실책이었다.

    팔랑- 팔랑-

    깎단에 꿰인 10강 주문서가 바람에 나폴거릴 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나폴거리는 것 같았다.

    용광로 위에 앉은 쥬딜로페는 솥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바닥에 약간 남은 불카노스 융해액을 향해 버둥거린다.

    손이 닿지 않으니 10강 주문서가 꿰인 깎단을 길게 뻗어 휘적휘적 젓고 있었다.

    달그락-

    쥬딜로페가 머리를 길게 빼고 바둥거릴 때마다 그녀의 목에 걸린 강화석 목걸이가 헐겁게 덜렁거린다.

    …정말 공교롭고 작위적이게도, 강화석의 수는 딱 열 개였다.

    육아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겠지만, 어린아이들이란 자고로 보호자의 눈길이 조금만 느슨해도 그 틈을 타 상상도 하지 못할 거대한 사고를 치곤 한다.

    지금 이 상황이 바로 그렇다.

    내 안색은 절로 파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아, 안 돼! 용광로 안에 들어간 재료들은 자동으로 제련 처리된다고! 저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자칫하면 쥬딜로페까지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윤솔이 솥 위에 매달린 쥬딜로페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애기야~ 이리 온~ 거기는 위험해요~ 내려와서 언니랑 놀자~ 웃쭛쭈쭈쭈… 우리 착한 쥬딜로페… 언니 말 들어야지? 제발…….”

    하지만 윤솔의 필사적인 구슬림에도 불구하고 쥬딜로페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솥 안을 향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뽀애앵…]

    아무라도 솥 밑 바닥에 약간 고여 있는 불카노스 융해액의 찬란한 적빛이 쥬딜로페를 유혹하는 모양.

    마치 등불에 유혹당한 불나방처럼, 쥬딜로페는 스르르 솥 아래로 몸을 기울인다.

    “으아아아아!”

    이쯤 되면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마치 바람과도 같은 속도로 비탈길을 달려 올라갔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후앵!?]

    내 비명에 깜짝 놀란 쥬딜로페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거의 솥 안으로 떨어질 뻔한 위기에서 벗어나 쏠려 있던 상체를 벌떡 일으켜 솥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던 깎단과 그 끝에 꿰어 있던 10강 주문서, 그리고 목에 걸려 있던 아홉 개의 강화석 목걸이는 그렇지 못했다.

    스르륵…

    강화석 목걸이가 벗겨짐과 동시에, 그것을 잡으려던 쥬딜로페의 손이 헛놀림을 했고 그러던 도중 멀티가 되지 않는 그녀는 다른 손에 쥐어져 있던 깎단과 주문서까지 놓쳐 버렸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천천히. 용광로. 안으로. 떨어지는. 깎단. 오 마이 깎단.

    “안-돼-애애애애애애애애!”

    내가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팟!

    강화를 알리는 환한 빛무리가 솥 안에서 폭발해 올랐다.

    ……그것도 열 번 연속으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