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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69화 (369/1,000)
  • 370화 어미 (3)

    상황은 불과 몇 시간 전.

    나는 동그란 모양의 고리를 손에 들고 용광로에 담갔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후욱!”

    내가 고리에 대고 숨결을 불어넣자.

    보글…

    빨갛게 빛나는 점액 방울이 생성된다.

    나는 눈앞의 이 비눗방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글보글’이라는 게임 알아?”

    ‘보글보글’이란 무엇이냐?

    타이토 사에서 1986년 8월에 출시하여 전무후무의 히트를 친 오락실 전용 게임으로 원제는 ‘버블보블(BUBBLE BOBBLE)’이다.

    한국의 90년대 생들에게는 테트리스와 함께 추억의 게임 투탑으로 손꼽히는 고전 게임이기도 하다.

    비눗방울을 쏘아내는 귀여운 공룡 캐릭터를 움직여 화면 위에서 내려오는 적들을 쏘아 맞추는 비교적 단순한 게임.

    비눗방울에 닿은 적은 그 안에 갇혀 둥둥 떠 있게 되며 공룡 캐릭터로 그 비눗방울을 터트리면 안에 갇힌 적이 죽고 점수가 올라간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맵인 ‘죽음길 나락 생사경’의 최종 스테이지는 보글보글에 대한 오마쥬로 이루어져 있었다.

    “후욱!”

    내가 고리에 대고 날숨을 토하자 또다시 끈적하고 뜨거운 불카노스 거품방울이 생긴다.

    점도가 높은 불카노스라면 이런 신비로운 일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뽁!

    내가 만들어 낸 거품에 닿은 허수아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거품 속으로 집어삼켜졌고 이내 그 안에 갇혀 버렸다.

    그리고 그 안의 뜨거운 열기에 의해 화염 데미지를 입다가 그대로 사망에 이른다.

    …쾅!

    나는 그때쯤 고리를 휘둘러 거품 방울을 터트렸다.

    그러면 안에서 허수아비를 잡아먹고 자란 불길이 토해져 나와 주변을 휩쓴다.

    폭발은 아래로만 향했기 때문에 거품 위만 건드려주면 나에게는 피해도 없었다.

    “자, 그럼 보글보글을 해 볼까!”

    내가 기운차게 외치자 옆에 있던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보글보글보글보글……

    우리는 열심히 숨결을 불어넣어 거품 방울을 만들었다.

    극도로 뜨겁고 끈적한 거품방울이기에 불 때 조심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다.

    “거품이 참 예쁘다.”

    윤솔은 눈앞에서 반짝이는 불카노스 거품방울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적빛으로 반짝이는 거품방울은 마치 주물 직전의 유리처럼 뜨겁고 찬란하다.

    마치 작은 태양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거품방울들이 수없이 생겨나 지형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한편.

    용광로는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계단 위에 있기에 맵은 상하로 꽤 넓게 움직여야 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계단의 위층과 아래층을 오가며 허수아비들을 향해 거품방울을 발사했다.

    “보글보글은 규칙이 단순해서 쉬워 보이지만 사실 상당히 어려운 게임이지.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는 것은 쉬우나 마스터하는 것은 어려운… 이상적인 형태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허수아비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거품 하나로 한 마리의 허수아비들을 잡아서는 곤란하다.

    “후욱!”

    나는 숨을 크게 불어넣어 커다란 거품방울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허수아비들이 여러 마리씩 뭉쳐 있는 구역으로 날려 보냈다.

    뽁!

    커다란 거품은 안에 몇 마리인가의 허수아비들을 한 번에 가둔다.

    콰쾅!

    드레이크가 화살을 쏴 거품방울을 터트리자 안에서 불길과 함께 뜨거운 불카노스 융해액이 콸콸 쏟아져 나와 비탈길을 흘렀다.

    …쿠르르르륵!

    불길과 융해액에 휩쓸린 허수아비들은 내리막길 아래로 굴러 떨어짐과 동시에 그대로 불타 버렸다.

    동시에.

    X, E, D.

    몇 마리인가의 허수아비가 죽으며 아이템을 뱉었다.

    그것은 알파벳이었는데 ‘E’자만이 초록색으로 되어 있다.

    “어진아! 나도 여러 마리 잡았어!”

    저 위에서 윤솔이 네 마리의 허수아비들을 한 번에 잡는 것이 보였다.

    콰쾅!

    윤솔이 거품방울을 터트리자 또다시 안의 허수아비들이 우르르 불타 버렸다.

    E, T, N.

    허수아비들은 또다시 알파벳 모양의 아이템을 떨궜다.

    이번에 나온 ‘E’는 빨간색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바닥에 모인 알파벳들을 바라보았다.

    중구난방으로 널려있던 알파벳들은 이내 한 군데로 모여 하나의 단어를 이룬다.

    “드디어 다 모았군. ‘EXTEND’를!”

    ‘확대하다’, ‘연장하다’, ‘베풀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영단어.

    드레이크는 이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진, 이게 뭔가?”

    “…기폭장치.”

    나는 짧게 대답했다.

    바로 그때.

    [이놈드을! 내 자식들에게 무슨 짓이야!]

    저 밑에서 밴시 퀸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딱히 대답해 줄 말이 뭐가 있겠는가?

    나는 저 밑에 있는 밴시 퀸을 향해 한마디 내뱉었다.

    “…빠요엔.”

    ‘보글보글’이 아닌 ‘뿌요뿌요’라는 게임의 명대사이지만 이럴 때 사용하는 것도 꽤 적절하리라.

    원래의 뜻은 ‘꽃으로 상대를 감동시키다’라는 뜻이지만 보통 한국에서는 ‘뒈져라 이 X끼야’ 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상대방을 끝장내는 콤보와 함께 나오는 효과음이기 때문이다.

    …딱!

    내가 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튕기는 순간, 아까 모은 ‘EXTEND’라는 글자가 시뻘겋게 빛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전장에 가득 차 떠다니면 무수한 거품들이 일제히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뜨거운 불카노스 거품들은 서로 뜨겁게 팽창하며 그 영향력을 맵 전체로 확장해 나간다.

    작렬하는 열기가 모두에게 골고루 베풀어졌다.

    쿠르르륵!

    허수아비들이 모두 불의 파도에 쓸려나간다.

    [……!]

    그 와중에 잭 오 랜턴은 살아남았다.

    양철 나무꾼의 갑옷에서 서릿발이 일어나 불 데미지를 막아 준 것이다.

    우르릉…

    던전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지진이 일어났다.

    수많은 거품들이 모두 터진 뒤,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우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윤솔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와, 엄청나다! 모든 방울들을 한 번에 터트리는 장치였구나! 어진아, 너는 이걸 어떻게 아는 거야?”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지.”

    사실 ‘EXTEND’는 보글보글에도 있는 아이템이다.

    몬스터를 여러 마리씩 처치했을 때 나오는 알파벳들을 조합해 이 단어를 완성한다면 해당 스테이지를 클리어 한 것으로 간주, 다음 맵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제 끝난 건가.]

    잭 오 랜턴. 복수자가 된 좀도둑.

    그는 고개를 들어 텅 비어 버린 작업장을 바라보았다.

    모든 일꾼들이 사라졌고 그들을 부리던 감독관 역시도 이제는 없다.

    비참한 자식과 비정한 어미도 찾아볼 수 없게끔 되었다.

    공허만이 감도는 작업장에는 남은 불카노스 융해액들이 옅게 끓는 소리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한편,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진. 그런데 밑으로 내려가는 길은 어디에 있지? 도무지 길이 안 보이는데.”

    그렇다.

    지하 2층에는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문이 없었다.

    어디를 뒤져도 비밀 통로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 시점에서, 나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걸 잘 따라하라고.”

    잭 오 랜턴을 제외한 모두는 내 말을 주의 깊게 경청했다.

    나는 일단 게임에서 로그아웃했다.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귓가에 들려오는 알림음.

    나는 그것이 들려오는 그 즉시 바로 다시 로그인했다.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로그인을 알리는 환한 빛무리.

    나는 그 빛무리가 사라지기 전에 바로 정면을 향해 공격 모션을 취했다.

    붕-

    깎단이 빈 허공을 향해 휘둘러졌다.

    탁-

    그 이후, 나는 제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펄쩍 뛰어올랐다.

    붕-

    그리고 착지 후 다시 허공을 향해 공격 모션.

    탁-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점프.

    붕탁붕탁-

    그 이후 이것을 앞으로 한 차례 더 반복했다.

    그 다음 아주 짧은 순간, 오른쪽으로 이동한 뒤 로그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로그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ORIGINAL GAME……

    깨지는 듯한 글귀가 눈앞에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우리들의 눈앞에 커다란 싱크홀이 생겨나는 것이 보였다.

    드드드드드…

    바닥이 허물어지며 숨겨져 있던 비밀문이 드러났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깜짝 놀라 입을 벌리고 있는 앞으로 나는 씩 웃어 보였다.

    “이게 보글보글에도 있는 히든 피스거든. 전원을 껐다가 켜고 1초 뒤에 공격 버튼을 누르고, 점프하고, 공격 버튼 누르고, 점프하고, 공격 버튼 누르고, 점프한 다음에 조이스틱을 오른쪽으로 짧게 한번 움직여 주고, 그 다음에 시작 버튼을 누르면 비밀의 문이 나타나게 되지.”

    억지에 가까운 히든 피스다. 이걸 대체 누가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발견하는 미친놈이 있긴 있지.’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 누군가 발견한 놈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고전 비디오 게임 고인물이 우연히 여기까지 내려왔다가 추억에 젖어 보글보글 놀이를 했고 그것이 묘하게 이 던전의 공략과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또 이 공략이 오마쥬된 보글보글의 원본 공략은 또 누가 발견한 것일까?

    새삼 경외감이 든다.

    “자, 이제 들어가 볼까?”

    이제 지하 3층으로 내려갈 시간이다. 죽음룡 오즈가 혼자 살고 있는 지하 4층까지는 불과 한 층 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그때.

    [히히! 못 가!]

    그런 우리를 막아서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밴시 퀸이었다!

    그녀는 불길에 휘감겨 만신창이가 된 몰골로 펄쩍펄쩍 뛰며 이리로 달려오고 있었다.

    [오즈 님께는 보낼 수 없다! 그분에게 갈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이힛! 에헥헥헥!]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뛰어오는 밴시 퀸.

    그 앞을 막아선 것은 잭 오 랜턴이었다.

    [잘 가시오. 남길 말은 없소.]

    동시에, 불카노스 대낫이 날아 밴시 퀸의 허리를 두 동강 내 버렸다.

    퍼엉-

    밴시 퀸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는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네.”

    지하 2층의 네임드 몬스터를 잡았으니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

    ‘오즈의 2번 용광로’ 역시도 가동 종료되었으니 사실상 파괴된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그럼 이제 밴시 퀸의 특성을 흡수할 차례로군.”

    S급 몬스터인 밴시 퀸을 죽였으니 분명 호칭이 생길 것이다.

    그로 인한 특전이 뭐가 있을까?

    나는 밴시 퀸에게서 빼앗을 수 있는 유용한 특성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하수인 특성은 됐고, 뺑소니 특성도 필요 없고, 언데드 특성은 이미 있고, 맹독도 이미 있는 것이고, 소환, 어둠, 무덤사역 정도가 쓸 만할 것 같은데. 뭐, 피학성애 특성도 나쁘지 않……잠깐? 피학성애?”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기억!

    “…아차!”

    나는 실수했다 싶어 잽싸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힉힉힉힉힉!]

    밴시 퀸, 그녀는 피학성애 특성으로 인해 2랭크가 하락한 상태로 되살아난 것이다!

    ‘조디악에게 그렇게 호되게 당해놓고도 방심을 하다니, 나는 참 구제불능이구나.’

    이제부터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각오했지만 이미 늦었다.

    밴시 퀸은 우리가 당황해하는 사이 잽싸게 달려가 비밀 문으로 다이빙했다.

    […오즈 님! 제가 갑니다아아! 히히히히히!]

    밴시 퀸은 우리와 더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만 그동안 벽에 가로막혀 다가가지 못했던 오즈를 향해 달려갈 셈인가 보다.

    [쳇!]

    잭 오 랜턴이 대낫을 휘둘렀지만 아깝게도 밴시 퀸의 발목 하나를 잘라내는 것에 그쳤다.

    부웅-

    밴시 퀸은 내가 만들어 낸 비밀문 안으로 다이브했고 이내 어둠에 먹혀 사라져 버렸다.

    “뭐, 비밀 문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딱히 상관은 없다만….”

    나는 싱크홀 아래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어진아! 저기!”

    윤솔이 내 어깨를 잡은 채 손가락을 뻗었다.

    밴시 퀸이 한번 죽었던 장소였다.

    그곳에서는 환한 빛무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밴시 퀸이 아이템을 떨어트렸다!

    완전히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나 선전한 것에 대한 보상일까?

    “……!”

    순간.

    내 동공이 사정없이 떨린다.

    바닥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무려 3장이나 되는 주문서였다!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주문서.

    그 안에 기록된 내용들을 확인하자 입안의 침이 바싹 마르고 손아귀가 축축해진다.

    ‘밴시 퀸을 죽이지도 못했는데 이런 좋은 보상을 받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아이템.

    무슨 미사여구가 더 필요하랴!

    …현존하는 주문서 중 가장 좋은 주문서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그것도 세 장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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