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8화 (368/1,000)
  • 369화 어미 (2)

    […어머니.]

    ‘좀도둑’ 잭 오 랜턴.

    오래 전, 머리에 박힌 불카노스 파편을 가지고 달아났던 탕아가 돌아왔다.

    하지만 되돌아온 목적은 회개(悔改)가 아닌 회의(懷疑)!

    어미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기 위함이다.

    [흑흑흑흑흐힉힉히히히히힛히히힉힉힉……]

    피눈물을 흘리던 밴시 퀸이 고개를 들었다.

    썩어서 흘러내리는 눈밑살이 다크서클처럼 검게 내려온다.

    불길하게 들려오던 곡소리가 어느덧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로 변했다.

    도려내어진 눈꺼풀 속으로 시뻘건 눈알이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밴시 퀸은 커다란 입을 길게 찢으며 말했다.

    자식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어미의 심경이 진하게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드디어 잡았구나, 이 좀도둑 자식!]

    [내가 좀도둑 자식이라 하면, 나를 낳은 네년이 좀도둑이 아니더냐?]

    […아참!]

    잭 오 랜턴은 불카노스로 만든 대낫을 들어 자신의 어미를 겨눈다.

    밴시 퀸의 낯빛이 변했다.

    [이히힉힉힉힉힉…! 좋아, 좋아! 훔쳐 갔던 불카노스도 거기 그대로 있군!]

    […….]

    […한데 어째 양이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원래 손잡이 부분도 불카노스였던가?]

    밴시 퀸은 잭 오 랜턴이 들고 있는 대낫의 요모조모를 뜯어본 끝에 흡족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저 정도면 훌륭해. 도둑맞았던 분량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어!]

    […….]

    [그렇게 된다면 나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분’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거야!]

    순간, 잭 오 랜턴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의 위치?]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원래 밴시 퀸은 죽음룡 오즈의 심복 중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한때는 언데드 쌍두마차인 리치 왕과 데스나이트보다도 더욱 더 신임받는 위치에 있었던 신하가 바로 밴시 퀸이다.

    밴시 퀸은 죽은 자를 언데드로 되살려 내는 힘이 있었기 때문에 악마성좌 마몬과의 전쟁 당시 군단의 심장부에 위치해 있었어야 했다.

    전쟁으로 인해 죽어 나가는 병사들을 빨리빨리 언데드로 부활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리치 왕과 데스나이트의 등장으로 인해 군단을 좌익과 우익으로 나누지 않았더라면 아마 불사의 군단을 진두지휘했을 존재는 바로 여기 있는 밴시 퀸이다.

    그만큼 그녀의 지위는 확고부동한 것이었다.

    […그런데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잭 오 랜턴은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밴시 퀸은 원래 오즈와 가장 가까운 곳, 그러니까 지하 3층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최고의 심복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밴시 퀸은 현재 지하 2층에 머물러 있다. 지하 3층에서 지하 2층으로 ‘좌천’된 것이다.

    불카노스 한 조각을 잃어버린 죄 치고는 과도한 처벌이었다.

    한편, 잭 오 랜턴의 말을 들은 밴시 퀸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네놈 때문에 불카노스 조각을 잃어버린 죄도 컸지만… 그보다는…]

    그녀는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다가 흠칫했다.

    드물게도, 밴시 퀸의 얼굴에는 공포의 빛이 어려 있었다.

    이내 그녀는 잭 오 랜턴을 향해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캬아아아아악!]

    갑자기 손톱을 세워 들고 달려드는 마녀!

    하지만 잭 오 랜턴은 당황하지 않고 대낫을 들어 밴시 퀸의 공격에 응수했다.

    …쩡!

    밴시 퀸의 손톱과 잭 오 랜턴의 대낫이 한곳에 맞부딪쳤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잭 오 랜턴의 승리였다.

    손톱의 이가 빠진 것을 확인한 밴시 퀸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녀는 다크서클 짙은 시뻘건 눈을 들어 잭 오 랜턴을 노려보았다.

    [애미에게 낫을 들이대다니! 이런 패륜아 새끼를 봤나!]

    [내가 패륜아 새끼라 하면, 나를 낳은 네년이 패륜아가 아니더냐?]

    […아참!]

    잭 오 랜턴은 대낫을 들어 밴시 퀸을 향해 달려들었다.

    쩡! 쩡! 쩡! 쩡! …쩌억!

    몇 번의 정면대결 끝에, 결국 불카노스 대낫이 밴시 퀸의 삐뚤빼뚤한 손톱을 세로로 쪼개 버렸다.

    제아무리 밴시 퀸의 손톱이 단단하다고 해도 용비늘에 버금갈 정도로 견고한 불카노스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잘려나간 손톱을 본 밴시 퀸은 경악하여 외쳤다.

    [꺄아아악! 내 네일아트! 이거 젤네일 어제 받은 건데! 거기다 큐빅 있는 부분만 잘라내에에웩네이노오옴! 이 애미 없는 놈! 느금마랑 같이 지옥에나 떨어져라!]

    [내 엄마는 너잖나.]

    […아참!]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가?

    잭 오 랜턴은 엄청난 기세로 대낫을 휘둘러 밴시 퀸을 수세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쿠오오오오!

    잭 오 랜턴의 불카노스 대낫도 대단하지만 전신을 견고하게 감싸고 있는 양철 갑옷과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사자갈기 망토의 위압감도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밴시 퀸은 마법사형 몬스터. 가뜩이나 근접전에 약한 그녀로서는 잭 오 랜턴의 속사포 같은 공세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밴시 퀸이 괜히 S급 몬스터가 아니다.

    그녀의 다소 떨어지는 무력은 소환 메타로 충분히 충당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다.

    [이힉히히히히! 이거 안 되겠구나. 오래간만에 자식과 놀아 주려 했더니만… 육아가 이렇게 진절머리 나는 것일 줄은 몰랐어!]

    승리를 확신한 밴시 퀸은 여유로운 태도로 두 팔을 벌렸다.

    […오너라 나의 아이들, 적의 형제들아!]

    그러자 밴시 퀸의 뒤편으로 검은 물결이 출렁거린다.

    와사사사사사삭…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마치 지푸라기와도 같은 것들이 잔뜩 모여든다.

    허수아비, 잭 오 랜턴!

    불카노스 대낫만 안 들었다 뿐이지 잭 오 랜턴과 똑같이 생긴 외형의 허수아비들이 밴시 퀸의 뒤로 우글우글 모여들었다.

    <‘평범한’ 잭 오 랜턴> -등급: B+ / 특성: 어둠, 하수인, 백전노장, 할로윈

    -서식지: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크기: 2.5m.

    -악의라고는 없는 ‘평범한’ 허수아비.

    그대의 목을 베는 것도 악의라고는 전혀 없는, 그저 ‘평범한’ 행동일 것이다.

    […….]

    좀도둑 잭 오 랜턴은 아무런 말없이 자신의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좀도둑’ 잭 오 랜턴> -등급: A+ / 특성: 어둠, 백전노장, 할로윈, 선악과(善惡果)

    -서식지: 악의 고성, 냉동 나락

    -크기: 2.5m.

    -잡혀 버린 좀도둑.

    죄는 아직 뉘우치지 않았다.

    좀도둑 잭 오 랜턴은 평범한 잭 오 랜턴에 비해 등급이 두 단계 더 높다.

    또한 ‘하수인’ 특성이 없는 대신 ‘선악과’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통짜 불카노스 대낫, 양철 나무꾼의 양철 갑옷, 겁쟁이 사자의 갈기털 망토가 잭 오 랜턴에게 버프를 걸어 주고 있다.

    [힉힉힉힉힉! 그런 너저분한 것들을 걸친다고 뭐가 달라질 줄 아느냐! 가라 자식들아! 가서 너희들의 저 불경한 형제를 무릎 꿇려라!]

    밴시 퀸은 저 멀리 있는 용광로의 아궁이를 가리키며 외쳤다.

    사사사사사삭…

    엄청난 수의 허수아비들이 잭 오 랜턴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유감.]

    잭 오 랜턴은 대낫을 치켜들었다.

    뇌가 없어 생각을 할 수 없는 허수아비들에게는 딱히 동질감이나 연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잭 오 랜턴 역시 무감정하게 대낫을 들어 열심히 추수를 반복해 나갔다.

    부웅-!

    대낫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허수아비들의 목이 우수수 떨어진다.

    일반적인 지푸라기보다 훨씬 더 질기고 지독한 밴시 퀸의 머리카락이었지만 전설의 금속인 불카노스를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쩍! 쩌억! 쩌적!

    잭 오 랜턴은 사자와 같이 박차고 나가 나무꾼처럼 베어 버린다.

    그를 막을 수 있는 허수아비는 한 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밴시 퀸은 여전히 여유만만이다.

    [힉힉힉힉! 내가 낳은 자식들은 끝이 없지! 네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녀의 말마따나, 몰려들고 있는 허수아비들의 수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허나, 잭 오 랜턴은 결코 물러서지 않은 채 허수아비들을 착실히 베어나간다.

    일인군단(一人軍團)!

    만부부당(萬夫不當)!

    동료들의 유품으로 무장한 잭 오 랜턴은 절대다수의 적들을 상대로도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혼자 살아남는 게 의미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으니까!]

    모든 것들이 사라진 세상, 동료들이 없는 세상,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

    …그런 세상이 무에 의미가 있을까?

    잭 오 랜턴은 절규하듯 용을 쓰며 대낫을 휘둘렀다.

    우수수수…

    수없이 많은 목숨들이 추수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 오 랜턴은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흡사 나무꾼의 우직함, 사자와도 같은 위엄.

    잭 오 랜턴은 단순한 좀도둑이 아니었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그렇게 좀스러운 멸칭으로 부를 수 있으랴?

    잭 오 랜턴은 달려드는 허수아비들의 파도를 가르고 점차 밴시 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힉힉! 이힉힉!]

    적의 기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밴시 퀸은 상황을 조금 더 빠르게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힉! 힉! 히히히… 적당히 데리고 놀려고 했지만 안 되겠군. 자식들아! 이제는 전력을 다하거라!]

    밴시 퀸은 뒤에 대기하고 있을 수많은 허수아비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

    밴시 퀸은 뜻밖의 정적에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병력이 충원되지 않고 있었다.

    [??]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이내 이상한 것이 눈에 보인다.

    보글보글…

    웬 커다란 비눗방울 같은 것이 눈앞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

    밴시 퀸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이 비눗방울을 쳐다보았다.

    엄청나게 뜨거운 거품.

    이것은 액체 상태의 끈적한 불카노스로 되어 있는 거품 방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안에는 허수아비 한 마리가 갇힌 채로 바둥거리고 있었다.

    ‘할로윈’ 특성 탓에 허수아비는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고 덩달아 불카노스 거품방울 역시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안에 있는 허수아비가 거품방울 속의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죽어 버리면 거품 방울은 뻥 터지며 주변으로 불길을 뿜어낸다.

    심지어 안에 조금씩 고여 있던 불카노스 융해액이 사방팔방으로 튀며 격렬한 불 데미지를 뿌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보글……

    그런 거품 방울이 지금 수백, 수천, 수만 개씩이나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

    밴시 퀸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반쯤 벌렸다.

    그리고.

    뜨거운 거품방울의 중심

    나른한 표정으로 전장을 내려다보는 남자가 하나.

    …딱!

    그가 손을 들어 엄지와 중지를 튕기는 순간.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전장에 가득 차 떠다니면 무수한 거품들이 일제히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빠요엔.”

    고인물.

    나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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