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7화 (367/1,000)
  • 368화 어미 (1)

    [흑흑흑흑흑…….]

    작업장의 마녀.

    이 기분 나쁜 외형의 괴물은 꼬챙이처럼 길쭉하고 빼빼 마른 몸을 비틀며 흐느적거린다.

    썩어서 푸르딩딩한 피부와 허옇게 분칠을 해 놓은 얼굴, 시뻘겋게 빛나는 눈알과 뾰족뾰족한 이빨들.

    <밴시 퀸> -등급: S / 특성: 어둠, 하수인, 소환, 언데드, 맹독, 무덤사역, 피학성애(被虐性愛), 뺑소니

    -서식지: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크기: 3m.

    -이 세상 모든 무덤은 그녀가 기거하는 방과 비밀스럽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녀의 손이 닿지 않는 무덤은 없다.

    생전 7클래스의 흑마법사였던 그녀는 마의 벽 8클래스를 넘기 위해 직접 오즈를 찾아왔으며 자신의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해 지하의 가신(家神)으로 임명되었다.

    오즈에 의해 용광로를 지키는 수문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잠을 자다가 귀중한 보물 하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좌천되었고 그것이 억울하여 스스로 두 눈의 눈꺼풀을 도려냈다고 한다.

    밴시 퀸은 시뻘겋게 물든 두 눈에서 피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다.

    [원망스러워… 원망스러워… 흑흑… 흑흑흑흑…]

    뭐가 그리 원통한지, 썩어 문드러진 속내를 토해 낼 때마다 작업장 전역에 고기 썩은 악취가 풍겨 나온다.

    한편.

    나는 먼 곳에서 작업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당연히 밴시 퀸이다.

    “……저게 아주 귀찮은 몬스터란 말이지.”

    S급 몬스터 치고는 개체값과 특성치가 낮은 편이지만, 실질적인 공략 난이도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높다.

    바로 ‘소환’ 특성 때문이었다.

    [흑흑흑흑흑… 쓰레기 같은 것들… 너희들 때문에… 나는 버림받았다… 그분께…]

    밴시 퀸은 연신 피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린다.

    그러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었다.

    콱! 우드득- 우득! 뚜둑!

    두피의 살점과 더불어 긴 머리카락들이 왕창 뜯겨져 나온다.

    그녀는 노이로제 환자처럼 자신의 긴 머리칼을 마구 쥐어뜯었다.

    [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놈들…!]

    밴시 퀸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자학과 저주를 반복하고 있을 동안.

    차라라락…!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과 두피의 살점들은 한데 모여 변화를 일으켰다.

    […….]

    머리카락 다발 속에서 멍한 표정의 허수아비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잭 오 랜턴!

    썩은 살점으로 된 호박 가면, 지푸라기처럼 퍼석한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인형.

    밴시 퀸에 의해 자연발생되다시피 소환된 이 허수아비는 잠시 동안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

    이내, 허수아비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깨달은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지독한 노동이 기다리고 있는 작업장으로.

    물론 어미 격인 밴시 퀸은 이 허수아비의 존재에 쌀알만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증오하기 바쁘다는 듯 바닥을 쳐다보며, 피눈물과 함께 저주의 언어를 뚝뚝 떨어트리고 있을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방치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용광로로 향했다.

    땅! 따-앙! 깡! 드르륵…

    끌차와 곡괭이, 망치와 대못을 들고 용광로 밑에서 작업을 하는 수많은 ‘잭 오 랜턴’들.

    그들이 하는 일은 간단하지만 힘든 일이었다.

    지하 1층의 리자드맨들이 모아온 불카노스 원석들이 용광로에서 녹아 바닥의 구멍으로 흘러내려 온 것을 지하 2층의 천장에서 받아 제련하는 것이다.

    …꾸르륵! …꾸르르륵!

    불순물이 태워지고 남은 순수한 불카노스 융해액들은 끌차에 담겨 용광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푸집으로 향한다.

    푸쉬이이익!

    거푸집 틀에서 나온 것은 최종 결과물이었다.

    1700mm*2000mm*500mm사이즈의 검붉은 금속판!

    어지간한 라지 킹사이즈 침대 매트릭스의 넓이에 두께만 해도 50센티미터가 넘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물고기의 비늘처럼 생겼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각이 져 있어 마름모꼴에 가까워 보였다.

    네 귀퉁이에는 사람 팔뚝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었다.

    …꾸구국!

    허수아비들은 이 무거운 불카노스 금속판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향한다.

    쿵!

    불카노스 금속판을 작업장에서 멀리 떨어진 벽에 댄 허수아비들은 이제 망치와 대못을 이용해 금속판을 벽에 박아 넣기 시작했다.

    땅! 따앙! 땅!

    불카노스 금속판의 네 귀퉁이에는 구멍이 있었고 그것이 바로 못이 들어갈 자리였다.

    허수아비들은 망치를 들고 불카노스 대못의 머리를 때려 거대한 금속판을 벽에 박아 넣었다.

    대못은 굵고 길었으며 한번 박힌 뒤에는 절대로 빠지지 않게끔 못 끝에 수많은 미늘들이 돋아나 있었다.

    금속판의 네 귀퉁이에 망치질을 한 허수아비들은 다시 금속판을 만들기 위해 용광로와 거푸집으로 되돌아간다.

    이미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엄청난 양의 불카노스 금속판들이 벽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었다.

    바로 그때.

    따앙!

    망치질을 하던 허수아비 하나가 행동을 우뚝 멈췄다.

    …제련이 잘못된 것일까?

    망치질을 하자 불카노스 대못이 부러져 위로 튀어 올랐던 것이다.

    퍽-

    깨진 못의 파편 하나가 우연히 허수아비의 머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러자, 아무 생각 없이 노동을 하던 허수아비가 무언가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허수아비는 자신의 머리에 박힌 불카노스 금속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자신과 같은 수많은 허수아비들.

    무한한 노동에 혹사당하다가 쓸모없어지면 장작이 되어 폐기처분되는 삶.

    허수아비는 이에 새삼 충격을 받은 듯 하던 일을 내려놓았다.

    바로 그때.

    [쓰레기 놈!]

    밴시 퀸. 허수아비들의 어미.

    그녀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쓰레기-잇…!]

    밴시 퀸은 ‘생각을 할 줄 알게 된’ 허수아비에게 엄청난 증오심을 보이고 있었다.

    어머니의 날카로운 손톱에 의해, 자식은 갈기갈기 찢겨졌다.

    땔감으로도 쓰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씨익 …씨익 …씨익]

    밴시 퀸은 이미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자식을 내려다보며 저주의 일갈을 내뱉었다.

    [네놈 때문에 내가 그분에게 버림받았어! ‘좀도둑’! 머릿속에 불카노스 조각을 훔쳐 달아난 네놈 때문에! 꺄아아아악!]

    밴시 퀸은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하늘에서 폭풍이 일고 웬 여자가 자신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자기가 ‘용사’라고 주장하던 그 이상한 여자.

    …이름이 ‘도로시’랬던가?

    하여간, 그녀에게 깔린 밴시 퀸은 그대로 기절했고 깨어나 보니 용광로는 처참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그리고 허수아비들 중 그 여자를 따라 도망친 불량품이 하나 있다.

    머릿속에 귀중한 불카노스 조각을 박은 채로 도망쳐 버린 괘씸한 ‘좀도둑’

    그때의 생각만 나면 밴시 퀸은 증오와 분노 때문에 미쳐 버릴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영향 탓일까?

    밴시 퀸은 허수아비들이 실수로 뇌를 얻게 되는 사태에 대해서 극도로 민감하게 되었다.

    방금처럼 파편이 머릿속에 들어가 뇌를 얻게 된 허수아비가 나오면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을 하는 것이다.

    대체로, 소환수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그녀였지만 그래도 특정 개체가 변이를 일으킨다면 손쉽게 알아챌 수 있다.

    애초에 허수아비들을 만들어 낸 마녀가 바로 그녀 본인이니까.

    밴시 퀸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기가 갈가리 찢어버린 자식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자식의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작은 불카노스 조각을 회수했다.

    [……단 한 조각의 파편도 귀히 여겨야 하지. 다 ‘그분’의 몸이 될 것인데.]

    말을 마친 밴시 퀸은 그것을 다시 저 위의 용광로로 던져 넣었다.

    퐁당!

    시뻘건 용해액 위로 번지는 작은 파문.

    그리고.

    […어머니.]

    이 작업장에도 작은 파문이 일었다.

    밴시 퀸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둠 너머로 으스스한 실루엣이 드러난다.

    [……!!!]

    눈꺼풀이 없어 가뜩이나 혐오감을 자아내던 밴시 퀸의 눈이 더욱 더 흉물스럽게 벌어졌다.

    ‘좀도둑’ 잭 오 랜턴!

    오래 전, 오즈의 불카노스 조각을 훔쳐 달아난 탕아(蕩兒)가 여기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       *

    한편.

    잭 오 랜턴이 자신의 어머니와 묵은 빚을 해결하는 동안 우리는 따로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잭 오 랜턴이 밴시 퀸의 주의를 끄는 사이 작업장의 뒤로 돌아갔다.

    백도어(backdoor).

    전문 용어로 ‘뒤치기’라고도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대상은 밴시 퀸이 아니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수많은 쇠사슬에 의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솥.

    이 ‘오즈의 2번 용광로’가 바로 나의 진짜 목적이다.

    “…우리 오즈 님께서 제대로 열 받으시겠군.”

    나는 용광로를 허공에 고정시키고 있는 수많은 쇠사슬들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큭! 크큭!]

    […키키킥!]

    […그그그극!]

    뒤에서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고개를 돌리자 엄청난 수의 허수아비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본능에 의해 용광로를 지키게끔 설계된 존재들.

    대낫이 없어 A급에 불과한 몬스터들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수가 모이자 조금 부담스럽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내게 말했다.

    “어진아, 다 상대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이 용광로를 깨 버리면 불카노스 융해액이 쏟아져서 알아서 다들 불타 버리지 않을까?”

    “맞다. 이 솥을 연결하고 있는 사슬들을 끊어 버리면 어떻게 될 것도 같은데.”

    나는 조금 감탄했다. 이제 이 친구들도 이런 식으로 창발적인 플레이를 생각할 줄 알게 되었구나.

    “…하지만 아직 멀었어.”

    나는 검지를 저으며 말했다.

    “제 2용광로 속의 융해액은 제 3용광로 속의 융해액보다 훨씬 더 순도가 높지. 애초에 불카노스 자체가 점도(粘度)가 높은 금속이라서 용광로를 파괴한다고 해도 막 폭포수처럼 흐르진 않을 거야.”

    말을 마친 나는 용광로 속을 돌아보았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거대한 솥 안에서 끓고 있는 순도 높은 불카노스 융해액은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하게 끈적해 보였다.

    수면이 끓을 때마다 끈적한 액체 방울들이 일어나고 있을 정도니 솥을 엎어도 안의 내용물들이 콸콸 쏟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끈적하고 길게 늘어질 뿐.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그러면 하나하나 잡는 수밖에 없겠네?”

    “…수가 상당히 많군. 고되겠어.”

    윤솔과 드레이크는 각오를 단단히 하는 듯싶다.

    그러나.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불카노스로 만들어진 동그란 고리를 하나씩 선물해 주었다.

    아까 작업장에서 대충 모양에 맞는 것들을 주워온 것이다.

    “…이게 뭐야?”

    윤솔이 묻는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금속 고리를 솥 안에 담갔다.

    질척…

    둥그런 고리에 끈적한 불카노스가 묻었다.

    찬란한 적빛으로 타오르는 거품막이 둥근 고리 사이에 얇게 생겨났다.

    ……무슨, 금속이 비누거품도 아니고 이렇게 방울이 지냐고?

    불카노스라는 환상 속 희귀 금속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후욱!”

    내가 고리에 대고 숨결을 불어넣자.

    보글…

    빨갛게 빛나는 점액 방울이 생성된다.

    마치 비누방울과도 같은 모양새.

    보글보글…

    하지만 이 비누방울은 극도로 뜨겁고 또 무겁다.

    생성되자마자 밑으로 하늘하늘 가라앉아 허수아비 하나의 몸에 닿을 정도로.

    그러자.

    […캬아아악!]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불카노스 거품방울은 허수아비의 몸에 닿자마자 허수아비를 그대로 거품 안으로 삼켜 버린 것이다!

    배고픈 불씨가 장작을 살라먹듯, 거품방울은 허수아비를 뱃속에 가둔 채 그 안의 뜨거운 열기로 불태운다.

    퍼펑!

    거품방울이 터지자 안에서 연소된 재와 가스, 열기가 산소를 만나 격렬하게 폭발했다.

    쿠르르륵…

    그 불씨에 괜히 옆에 있는 허수아비들까지 휘말려 타 죽고 말았다.

    상대를 삼킨 뒤 안에서 불태워 죽이는 거품이라니.

    “……!?”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솔과 드레이크.

    나는 그런 친구들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보글보글’이라는 게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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