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5화 (365/1,000)
  • 366화 사도세자(思悼世子) (1)

    -띠링!

    -<‘오즈의 3번 용광로’가 파괴되었습니다!>

    -<죽음길 나락 ‘사마외도(邪魔外道)’ 층과 ‘생사경(生死境)’ 층을 잇는 비밀통로가 드러납니다!>

    용암이 전부 배출되고 난 뒤 텅 빈 용광로.

    쿠르르르륵…

    바닥에 살짝 고여 있던 용암마저 와류를 그리며 모두 빠져나간다.

    그 바닥으로 나선형의 지하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구멍이 모험가들을 유혹하듯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용광로 위에 선 윤솔과 드레이크는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이런 곳에 비밀통로가 숨겨져 있으니 사람들이 모를 수밖에 없겠네요.”

    “누구나 오갈 수 있는 1층짜리 던전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한편. 잭 오 랜턴 역시도 끓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안에서 놈의 냄새가 난다. 한층 더 짙어졌어.]

    그야 당연한 일이다.

    이 밑, 가장 깊은 곳에 오즈가 있으니까.

    ‘검은 용 군주’, ‘낮으신 분’, ‘죽음룡’, ‘칠흑의 대왕’, ‘모든 시체들의 소유자’, ‘가장 오래된 일곱 위상’, ‘분쟁지대의 절대자’……

    지하의 영토권으로는 일곱 악마성좌 중 마몬과 겨루고, 시체들의 소유권으로는 일곱 악마성좌 중 벨제붑과 겨루고 있는, 말 그대로 세계관의 정점에 있는 존재.

    더불어 두 명의 악마성좌와 동시에 싸우면서도 밀리지 않는 막강한 세력을 가진, 말 그대로 ‘절대자’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오즈의 목을 따려고 한다.

    “…내려가자.”

    나는 바로 지하 2층을 향해 다이브했다.

    *       *       *

    -띠링!

    <히든 던전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고인물, 윤솔, 드레이크>

    아카식 레코드에 또다시 내 이름이 최초 방문자로서 기록된다.

    나는 남길 이름을 선택한 뒤 지하로 시선을 돌렸다.

    뜨거운 증기로 가득한 동굴. 마치 한증막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곳곳에 용암과 불길이 흐르고 있었고 붉으죽죽한 기암괴석과 반쯤 녹아내린 쇠사슬들이 나선형의 계단 위로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시선을 끌었던 것은……

    “이게 뭐지?”

    윤솔은 계단의 중간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상자 앞에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은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는 상자였는데 네 개의 큰 기둥에 두꺼운 널빤지를 덧대어 만든 것으로 마치 뒤주와도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뒤주가 뭔가 어진?”

    “조선시대 때 쌀을 담아 두던 나무통이야. 좀 특이하게 사용된 예가 있기는 한데……”

    드레이크가 묻길래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바로 그때.

    …꿈틀!

    뒤주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었다.

    나는 날카롭게 경고했다.

    “솔아! 드레이크! 뒤로 빠져!”

    동시에, 나는 윤솔의 허리를 잡아채 잽싸게 물러났다.

    ……우지지직! 콰쾅!

    이윽고, 뒤주의 한쪽 벽면이 폭발하며 그 안에서 거대한 손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근육이 꽉꽉 들어찬 팔뚝, 거대한 손바닥, 팔 전체를 뒤덮고 있는 시커먼 비늘.

    “아하.”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팔뚝, 어딘가 낯익다.

    분명 겪어 본 적이 있는 놈이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커다란 몸을 가진 괴물 하나가 뒤주를 박살내고 뛰쳐나온다.

    <바실리스크> -등급: A+ / 특성: 맹독, 땅, 어둠, 지진, 패륜아, 폐소공포증, 혈족전생

    -서식지: 패륜아의 둥지 8층, 죽음길 나락 ‘생사경(生死境)’, 거인국

    -크기: 44m.

    -검은 용이 낳은 사생아. ‘모든 기어 다니는 것들의 왕’으로 통한다.

    용에 버금가는 덩치와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날개가 없어 용이 되지 못했는데 그 때문에 언제나 속이 썩어 문드러져 있는 상태이다.

    “오랜만이야.”

    나는 간만에 재회한 강적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 몸속에 흐르는 피가 ‘원래 주인’을 만나 뜨거워진다.

    ‘바실리스크(Basilisk)’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최초로 잡았던 A+등급 몬스터!

    검은 용으로 태어났지만 날개가 없어 부모에게 용으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사생아가 아니던가!

    [오-오오오오오!]

    ‘죽음룡의 버린 자식’, ‘오즈의 사생아’ 등의 별명을 가진 이 거대한 괴물은 썩어 문드러진 속을 토해 내며 포효한다.

    용의 머리, 칠흑 같은 몸뚱이, 칼날 같은 비늘, 빽빽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옹골찬 몸뚱이, 뱀처럼 미끈한 하반신.

    하지만 눈은 흰자위 없이 검은자위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입가에서 연신 오염된 혈액이 게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용과는 무언가 다르다.

    ……무엇보다 녀석은 두 날개가 없지 않은가!

    나는 낄낄 웃으며 물었다.

    “네 아비가 너를 뒤주 속에 가두더냐? 나한테 졌다고?”

    뭐 엄밀히 말하면 나에게 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열등감에 잠식당한 바실리스크가 악마와 손잡을 정도로 타락했기에 오즈도 나름대로의 벌을 내린 것이리라.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패드립을 들은 바실리스크는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콰쾅!

    놈은 굵은 팔뚝을 들어 나에게 팔꿈치 샷을 날린다.

    [그-오오오오오오!]

    놈은 지하 전체를 무너뜨릴 기세로 고함쳤다.

    그럴 때마다 목젖이 상하좌우로 흉하게 펄떡거리며 입 안에서 역겨운 토사물들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날개랑 아부지도 없는 게 까불어!? 가정교육도 뒤주 속에서 받은 주제에!”

    나는 거침없이 검정고무신의 레전드 패드립을 날려 바실리스크의 어그로를 끌었다. 한편 뒤로 물러나며 친구들에게 경고했다.

    “날개가 없어서 A+급 판정을 받은 놈이야. 만약 날개가 있었거나 넓은 평야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S급이었겠지. 조심해.”

    내 말을 들은 윤솔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쉽다. 조금만 자유롭게 키웠으면 날아오를 수 있는 아이였을 텐데. 아버지가 자식을 너무 강압적으로 가둬 키웠나 보네.”

    좋은 아버지 밑에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큰 그녀라서 그런가? 바실리스크를 향해 동정이 드는가 보다.

    하지만 상대는 몬스터! 놈의 히스토리는 사실 알 바 아니다.

    나는 그저 몬스터를 사냥하고 경험치와 아이템, 보상을 챙기는 사냥꾼일 뿐이니까.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바실리스크 공략법을 다시 한번 전수하기 시작했다.

    “자,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경고했었지? 그대로만 하면 돼. 지금부터 나를 따라하는 거야.”

    “독액 대포의 움직임은 볼을 부풀리고 목을 움츠린 뒤에 앞으로 뻗으면서 입 안에 머금은 혈액을 대포알처럼 뱉어 내는 패턴이고, 독안개 뿜기는 볼을 부풀리고 몸을 움츠린 뒤에 앞으로 뻗으면서 입 안에 머금은 독안개를 뱉어 내는 패턴이야.”

    “뭐? 두 공격패턴의 모션이 똑같지 않느냐고? 엄연히 다르지. 독액 대포의 목 젖히기는 350프레임이고 독안개의 목 젖히기는 370프레임이라서 독액 대포 쪽의 움직임이 조금 더 거칠고 빠르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 이것도 몇 번 피하다 보면 감이 올 거야.”

    “또 독액 대포의 포효 소리는 3옥타브 솔이고 독안개의 포효 소리는 3옥타브 시, 음계로도 많은 차이가 있으니 구분하기는 쉬워. 눈과 귀, 힌트가 두 개나 있으니 말이야.”

    ???

    내가 주절주절 설명하는 것을 들은 윤솔은 머리 위에 물음표를 세 개 띄웠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드레이크는 무언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어진. 또 하나 있지 않나. …독액 대포를 쏠 때에는 목젖이 상하로만 움직이는데 반해 독안개를 뿜을 때에는 목젖이 미약하게나마 좌우로도 움직인다고.”

    “오오, 맞아. 제법인데 드레이크?”

    “후훗. 한국 속담에도 있지 않나. 서당 개 3년이면 바실리스크도 잡는다고….”

    그런 속담은 없지만 일단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다.

    나는 계속해서 공략법을 진행해 나갔다.

    “…자, 상대가 공격을 자꾸 피하기만 하면 바실리스크는 육탄 돌격을 해 오는데 그 전 공격 자세가 빈틈이 많아서 옆으로 살짝 피해 주기만 해도 피격 판정 범위를 벗어날 수 있지. 또 돌진을 마친 뒤 전신의 비늘이 수류탄 파편처럼 터져 나오는 ‘비늘 수류탄’ 패턴이 오는데 이건 전부 각도가 45도 방면으로 튀기 때문에 바닥에 드러눕기만 해도 피할 수 있어. 그 뒤에 약 0.8초간 스턴 상태가 올 건데 이때가 딜 타이밍이지!”

    익숙하다.

    이미 회귀 후에도 한번 겪어 본 패턴이 아니던가?

    …뿍!

    나는 깎단을 들고 달려가 냅다 바실리스크의 몸에 꽂았다.

    패륜아 특성에 의한 반사 데미지가 전해져 왔지만 깎단은 도트 데미지를 제외한 깡 공격력 자체는 별로 크지 않아서 상관없다.

    [오…오오오오!]

    죽음룡 오즈의 사생아.

    이 추악한 괴물은 자기가 갇힌 뒤주로 되돌아가기 싫은 듯 자꾸만 앞으로 전진해 왔다.

    하지만 깎단에 찔렸으니 이제 승패는 갈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야 시간만 끌면 이기는 게임이었으니까.

    파앗!

    윤솔이 신성불가침 특성을 이용해 보호막을 쳤다.

    보호막은 우리에게 쾌적한 기분을 안겨 주고 적에게는 무력감을 선사한다.

    혹시나 재수 없게 눈 먼 독방울에 피격당해 중독되어도 윤솔의 힐이라면 금세 회복할 수 있으니 더욱 든든하다.

    (애초에 내 몸 속에는 바실리스크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중독될 염려가 없지만 말이다)

    이윽고.

    …쿵!

    바실리스크는 마비와 공포, 환각, 실명, 과부하 상태이상에 중첩 피격당해 무릎을 꿇었다.

    거기에.

    [……네 아비를 원망하라.]

    어마어마한 한 방 공격력을 가진 잭 오 랜턴의 대낫이 사형선고처럼 떨어져 내렸다.

    깎단의 도트 데미지와 드레이크의 꾸준한 딜, 윤솔의 신성불가침 특성에 약해져 있던 바실리스크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퍼-엉!

    하지만, 바실리스크는 목으로 떨어져 내리는 잭 오 랜턴의 공격을 피해 버렸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난 것일까?

    놈은 초인적인 힘으로 목을 꺾어 대낫을 피했고 그것은 바실리스크의 목을 절반쯤 자르는 것에 그쳤다.

    [가-아아아아악!]

    바실리스크는 덜렁거리는 목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뒤주가 있는 곳으로.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한때 그토록 위풍당당했던 A+급 몬스터가 이런 꼴이라니.

    “갈 때라도 편히 가게 해 주마.”

    나는 손가락의 반지를 쓰다듬었다.

    퍼펑!

    이내 반지 속에 잠들어 있던 나의 충실한 펫이 소환되었다.

    <히드라 ‘유생체(幼生體)’> -등급: A / 특성: 무한성장, 백전노장, 과식, 맹독, 고속재생, 마법 면역

    -서식지: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巳念)

    -길이: 32m.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다는 신화 속의 뱀.

    성장폭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나는 히드라에게 명령했다.

    “…삼켜 버리렴.”

    히드라의 뱃속에서 강력한 수면독에 의해 잠든 채 모든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

    그렇게 태아와도 같은 자세로 죽는 것.

    그것이 열등감에 속이 썩어 문드러진 이 가엾은 사생아에게 어울리는, 그나마 가장 안락한 죽음이리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