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4화 (364/1,000)
  • 365화 종족의 용광로(Melting pot) (2)

    -띠링!

    -<죽음길 나락 ‘사마외도(邪魔外道)’에 입장하셨습니다>

    나는 던전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아,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엄밀히 말하자면 사람이 아니라 리자드맨과 오크다.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채굴장 안은 리자드맨과 오크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이 되어 버렸다.

    부글부글부글…쾅!

    바닥과 벽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가스 폭발.

    던전 중앙에 높이 솟구쳐 있는 용광로에서 끓는 용암 소리 때문에 장내는 이미 전쟁 전부터 아수라장이었다.

    [꼬리부터 토막 쳐 주마! 이 더러운 생선비늘 놈들!]

    [네놈들 뻐드렁니가 훨씬 역겹다! 전부 뽑아 주지!]

    오크와 리자드맨들은 서로 무자비한 살육전을 벌인다.

    콰쾅-!

    커다란 망치를 든 오크가 리자드맨의 몸통을 후려갈긴다.

    …썩!

    날카로운 손톱을 빼든 리자드맨이 그런 오크의 다리를 베어 갈랐다.

    망치를 놓친 오크는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리자드맨의 허리를 휘감아 조였고 손톱이 부러진 리자드맨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오크들의 목에 박아 넣었다.

    곳곳에서 피와 살점, 뼛조각이 튀고 사망 로그아웃을 알리는 환한 빛무리가 속출하고 있었다.

    ……한편.

    “흠, 어디 보자, 오크 쪽이 조금 유리한가?”

    나는 전장의 기울기를 살피며 다이브 할 각도를 쟀다.

    사실 일일퀘스트 내용만 놓고 보면 리자드맨 쪽이 불리한 입장이긴 하다.

    원래 수비하는 쪽보다는 공격하는 쪽이 더 유리하니까.

    하지만 리자드맨들은 그것을 쪽수로 커버하고 있었다.

    일일퀘스트를 받는 본거지이다 보니 아무래도 저렙부터 고렙까지 다양한 레벨 구간 대의 리자드맨들이 존재한다.

    리자드맨은 레벨에 따라 덩치와 힘이 달라지기 때문에 전투에 있어서 레벨이 차지하는 바가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고렙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이 몇 명만 있어도 오크들의 일일퀘 난이도는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다.

    [싹 다 죽여라! 더러운 도마뱀 놈들!]

    [오크 놈들, 같이 온 NPC부터 조져!]

    두 종족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쯤 해서, 나는 이들의 갈등에 슬쩍 편승하려 했다.

    ‘…잘 보니 역시 오크 쪽이 좀 더 유리해 보이네.’

    오크와 리자드맨 사이에서 인간이 눈치를 보며 간잽이 역할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본디 인간은 중립자니까.

    나는 박쥐처럼 오크 쪽에 가 붙었다.

    “으! 더러운 리자드맨! 마몬의 위엄 앞에 무릎 꿇어라 작은 성기들아! And I Also 오.크.조.아.”

    나는 욕 말고도 익히고 있던 오크어를 하며 오크 진영으로 슬쩍 합류하려 했다.

    하지만, 오크들은 나를 보며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러운 인간 놈! 썩 꺼져!]

    원래 오크들이야 종족 자부심이 대단한 놈들이니 인간의 합류를 달가워하지 않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아무래도 여기 있는 오크들은 오크부심(?)이 유별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재빨리 태세를 전환해 리자드맨 쪽에 붙었다.

    “으! 더러운 오크! 오즈의 위엄 앞에 항상 감사하십시오! And I Also 리.자.드.맨.조.아.”

    그러나, 리자드맨들의 반응 역시도 별로 좋지 않았다.

    [쉬익! 더러운 인간! 저리가라~!]

    그중 몇몇은 내가 개인방송 스트리머라는 것도 알아본 것 같았다.

    예전에 어비스 터미널에서 만인장을 잡는 방송을 했기 때문일까? 그들의 적개심은 대단했다.

    결국 나는 두 종족 모두에게 배척당했다.

    그때.

    나는 오크와 리자드맨 말고도 전장 어귀에서 싸우고 있는 인간 플레이어들을 발견했다.

    그들 역시 오크나 리자드맨들과 동맹을 맺고 있는 인간으로 보인다.

    이런 곳에서 인간을 보자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저들이라면 날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봐요! 나도 인간이에요! 동족! 동포! 역시 믿을 건 같은 인간들뿐이지!”

    내가 해맑게 외치며 인간 진영으로 달려가자.

    “꺄악! 더러운 인간!”

    인간 족 플레이어들은 나를 향해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저게 뭐야! 왜 벗고 다녀!”

    “변태! 더러워!”

    “당장 꺼지지 못해!?”

    그렇게 욕을 한 사발 먹고 나자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아, 이거 설마 종족이 문제가 아닌 건가?’

    하지만 그런 잡생각은 나중에, 일단은 분노하는 것이 먼저였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으아아아!”

    내가 앞으로 질주하자 덜렁덜렁거리는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아, 물론 내 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쥬딜로페의 크고 풍성한 더듬이가 말이다.

    한편.

    [히익!]

    [으…]

    [꺄악-]

    리자드맨, 오크, 인간. 모든 종족이 나를 피해 썰물처럼 갈라진다.

    3종족 공통의 적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그것 봐라, 어진. 나를 재평가할 시점이다.”

    “아하하하, 솔직히 우리 아니면 누가 알몸 덜렁덜렁이랑 같이 다녀 주겠어!”

    [뿌우-]

    내 뒤를 따라오던 드레이크와 윤솔, 심지어 망토자락 속의 쥬딜로페까지 동의하는 부분이다.

    “…됐어, 아무도 내 맘 몰라.”

    나는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모든 플레이어들이 길을 터 준 덕분에 일은 차라리 수월하다.

    나는 오르막길을 달려 곧장 용광로로 향했다.

    그곳에는 불카노스가 섞인 흙을 막 용광로에 쏟아 부으려던 리자드맨들이 있었다.

    부글부글부글부글…

    거대한 솥 앞에 선 나는 용광로를 지키는 리자드맨들에게 물었다.

    “탕수육은 부먹? 찍먹?”

    탕수육을 시킨 뒤에 소스를 탕수육에 ‘부어 먹’는가, 아니면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는가.

    참으로 유구한 시간 동안 수많은 이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철학적 논쟁이다.

    어눌한 일상회화였지만 다행이도 리자드맨들은 아시아 문화권 유저들인지 내 말을 알아들었다.

    [탕수육은 무조건 찍먹이지!]

    한 명이 단호한 표정으로 내게 외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찍먹충 OUT!”

    나는 손을 뻗어 그 리자드맨을 붙잡은 뒤 그대로 용광로 속에 던져 버렸다.

    푸쉬시시식…!

    리자드맨은 용광로 속에서 그대로 사망 로그아웃되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리자드맨은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부, 부먹! 탕수육은 역시 부먹이지!]

    나는 그의 말을 듣고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부먹충 OUT!”

    동시에, 나는 옆에 있던 잭 오 랜턴에게 오더를 내렸다.

    잭 오 랜턴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불카노스 대낫을 높이 들어올렸다.

    부-웃!

    잭 오 랜턴의 대낫이 용광로의 옆구리를 길게 베어버렸다.

    단단한 빙판에 크레바스를 만들어 놓았던 참격이 두터운 무쇠 솥의 허리를 폭파시켜 놓는다.

    탕수육 소스 그릇에 덮인 랲처럼 찢어지는 솥의 허리!

    동시에 그 안에서 시뻘건 소스 국물들이 걸쭉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콰쾅!

    ‘멜트다운(meltdown)’!

    용광로가 터져 나왔다!

    꿀렁…! 꿀렁…! 꿀렁…! 꿀렁…!

    걸쭉한 반 액체 상태였던 불카노스 융해액이 우렁차게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저 아래의 전장, 유저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흩뿌려졌다.

    [끄아아아아아악!]

    인간, 리자드맨, 오크. 3종족 모두 비명소리는 비슷했다.

    마치 소스에 절여지는 탕수육처럼, 모두들 위에서 부어지는 용암을 멍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던 불카노스 융해액들은 이제 아예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폭포와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더 걸쭉하고 광범위하며 뜨겁다는 것…?

    [살려 줘! 저 미친놈이 용광로를 부쉈어!]

    [꺄아아악! 여기서 나가야 해! 모두 도망쳐!]

    [작업을 중지합니다.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으아 앙대! 안 되잖아!]

    [두고 보자! 이 더러운 휴먼! 뻐킹 네이키드 휴먼!]

    설상가상으로, 폭포처럼 쏟아진 불카노스 융해액들은 유황과 가스가 범람하는 대지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극도로 뜨거운 상태의 이 물질은 땅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러 인화물질들과 만나 더 큰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쾅! 쿠르르르륵…!

    불이 붙은 유황과 가스가 어마어마한 불길을 일으켰다.

    빠바바바방!

    폭발과 함께 비산하는 무수한 융해액 방울들.

    한 방울 한 방울이 극도로 뜨겁고 또 단단하기까지 한 파편들이다!

    익힌 뒤에 다시 튀겨지는 운명.

    가엾게도 출구는 좁아서 탈출에 성공한 플레이어들은 별로 없다.

    [아아아악! 밀지 마! 깔려 죽는닷!]

    [꺄아아악 비켜! 내 몸이 타들어간다고!]

    [이제부터 탕수육 부먹도 찍먹도 안 해! 그냥 소스 없이 먹을 거야!]

    인간이고 오크고 리자드맨이고 뜨거움 앞에서는 모두 공평했다.

    ‘모두 탕수육이 되어 버려랏!’

    나는 아비규환이 된 전장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게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더럽다고 욕을 하나!

    모든 플레이어들이 전부 융해액에 파묻히는 순간, 나는 영상 녹화를 종료했다.

    동시에, 귓가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알림음이 있었다.

    -띠링!

    -<‘오즈의 3번 용광로’가 파괴되었습니다!>

    -<죽음길 나락 ‘사마외도(邪魔外道)’ 층과 ‘생사경(生死境)’ 층을 잇는 비밀통로가 드러납니다!>

    이후 상황은 알림음 그대로 흘러갔다.

    쿠르륵…

    파괴된 솥 안의 용암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바닥에 얕게 고인 용암의 수면 위로 와류가 일어난다.

    꾸르르르르륵…

    얼마 없던 용암들이 저절로 사라진 뒤, 용광로 밑에 뚫려 있는 거대한 구멍이 드러났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이 깊은 지하로 이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하 2층으로 통하는 길 같았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솥 안을 보며 감탄했다.

    “그렇구나! 중앙의 솥 밑에 구멍이 있어서 액체 상태의 불카노스가 아래로 천천히 흘러내려가는 구조였어! 정말로 비밀통로가 있었네!?”

    “…그렇다면 밑에는 제련을 위한 공간이 있겠군.”

    다들 판단력이 좋다.

    죽음길 나락의 1층 ‘사마외도(邪魔外道)’는 원석 상태의 불카노스를 채굴해 용광로에 넣고 녹이는 공간.

    죽음길 나락의 2층 ‘생사경(生死境)’은 녹아서 흘러내려온 불카노스를 본격적으로 용도에 맞게 제련하는 공간.

    죽음길 나락의 3층 ‘불가해지대(不可解地帶)’는 중간 보스가 도사리고 있는 공간.

    죽음길 나락의 4층 ‘심계(深界)’는 우리가 목표로 하는 최종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던전을 1층짜리 던전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이유는 지하 2층으로 가는 비밀통로가 이 거대한 용광로 바닥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경고했다.

    “이제부터는 조심해. 지하 1층은 죽음룡 오즈가 허드렛일을 시키기 위해 불러 모은 저렙 플레이어들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지만……지하 2층부터는 그 난이도의 차원이 달라져.”

    그리고 내 경고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요란한 알림음들이 우리의 귓가를 때린다.

    -띠링!

    <‘낮으신 분’이 ‘3번 용광로’의 파괴를 눈치챘습니다>

    <죽음룡의 분노가 엄습해 옵니다>

    나는 고정 S+급 몬스터를.

    이 세계를 열일곱 등분으로 나누어 지배하는 절대자 중의 하나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 버린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