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3화 (363/1,000)
  • 364화 종족의 용광로(Melting pot) (1)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로그인을 알리는 환한 빛무리와 함께, 나는 게임 세상에 접속했다.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그리고 이제 최후의 관문인 ‘오즈’를 만날 차례다.

    나는 동대륙의 사막으로 향했다.

    수많은 모래가 복사열로 인해 달아올라 용암처럼 녹아 버린 대지.

    그중에서도 가장 북쪽으로 접근했을 때 만날 수 있는 던전이 하나 있다.

    <죽음길 나락> -등급: ?

    어마어마하게 넓고 깊은 지하굴, 어비스 터미널보다는 깊이가 얕지만 그보다 훨씬 더 열악하고 가혹한 환경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쿠르르륵… 콰쾅! 펑! 화르륵…

    모래가 녹아서 만들어진 용암이 도처에 넘실거린다.

    곳곳에서 지면을 뚫고 가스 폭발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우르릉… 드드드드…

    지저의 뜨거운 대기가 어두운 하늘 위로 뻗어나가 먹구름을 기괴한 모양으로 반죽해 놓는다.

    시시때때로 지면이 옅게 흔들리며 요란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 사막 한복판에 실제로 있는 구멍 '더웨즈(Derweze)'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무시무시한 던전이 바로 이 ‘죽음길 나락’이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나는 구덩이 안에서 불타는 석탄과 가스들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내 옆에서 구덩이를 살피던 드레이크는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진, 정말로 죽음룡 오즈가 여기에 사는가?”

    “응. 그러니까 왔지.”

    내 대답을 들은 드레이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구덩이 안을 내려다본다.

    심지어 옆에 있던 윤솔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 ‘오즈’를 말하는 거지? 진짜 걔가 여기에 사는 거야?”

    “그렇다니까.”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옆에 있던 잭 오 랜턴 역시도 말했다.

    […이 안에서 놈의 냄새가 느껴진다. 나는 느낄 수 있어.]

    복수자가 된 좀도둑, 잭 오 랜턴은 죽음길 나락 안을 들여다보며 대낫을 꽉 움켜쥔다.

    그 모습을 보면 분명 거짓 같지는 않다.

    드레이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놈의 S+급 몬스터가 이런 곳에 있담?”

    지금 드레이크와 윤솔이 의아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yo gi yo! yo gi ro wa!]

    [hahaha bbal li dle a ga ja gu.]

    [ha e ting!]

    이곳은 이미 수많은 리자드맨 유저들로 인해 붐비고 있는 인기 사냥터였기 때문이다.

    세계관의 정점인 S+급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다기에는 너무나도 신비감 없는 모습.

    심지어 왔다갔다 하는 리자드맨 유저들은 대부분 레벨도 낮은 이들이었다.

    기껏해야 20 레벨 안팎의 유저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협동 퀘스트를 하거나 일일 퀘스트를 받는 곳이 바로 이 던전이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지형 데미지만 주의하면 크게 위험한 요소도 없었다.

    돌아다니는 몬스터들 역시 대부분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저렙의 언데드들이다.

    윤솔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일퀘스트를 받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니는 리자드맨 유저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던전은 이름만 무섭지 저렙 유저들을 위한 1층짜리 던전으로 알고 있는데… 초보 티를 갓 벗은 리자드맨 유저들이 일일퀘스트를 깨러 오는 걸로 유명하다고 들었어.”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각 종족 별로 인기 사냥터가 존재했는데 이곳 ‘죽음길 나락’은 중저렙 대 리자드맨 유저들이 즐겨 찾는 곳.

    초보자 마을을 넘어 중앙대륙의 생태계에 완벽하게 적응한 이들은 중앙대륙을 떠나 동북쪽 외곽에 있는 이 던전으로 온다.

    유명한 일일퀘스트인 ‘불카노스 채굴’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이다.

    퀘스트 내용은 별 것 없다.

    리자드맨 NPC에게 곡괭이를 받아 1층 전역에 퍼져 있는 불카노스 원석을 캐서 그것을 맵 중앙에 있는 거대한 용광로에 던져 넣으면 된다.

    그렇게 하루 노다가를 뛰고 나면 푸짐한 일당과 하루짜리 버프를 주니 이틀에 한 번씩 퀘스트를 받아서 깨도 사냥 효율이 좋다.

    드레이크와 윤솔은 고개를 갸웃했다.

    “던전으로 가는 길이나 주변 풍경이 살벌하기는 해도…저렙 리자드맨들이 이렇게 바글바글거리는데 이런 곳에 전 세계 최강의 몬스터가 있다니. 뭔가 이상하잖나?”

    “맞아. 그리고 이곳에서 받을 수 있는 일일퀘스트도 엄청 시시콜콜하고 쉬운 거야. 별 반 개짜리 난이도던데. 뭔가 S+급 몬스터가 숨어있는 던전의 퀘스트라기엔 너무 아기자기하달까….”

    아무리 내 말이라도 이번만큼은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

    나는 별 수 없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 던전은 원래 저렙 유저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야.”

    당연한 말이다.

    천하의 죽음룡 오즈가 기거하는 곳인데 저렙 유저들이 얼씬거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것은…….

    “즉, 이곳에 몰려든 저렙 리자드맨 유저들은 죽음룡 오즈가 일부러 불러 모은 것이지.”

    나는 눈을 빛냈다.

    그리고는 깎단을 들어 땅에 그림을 그렸다.

    쓱- 쓰윽-

    내가 그린 것은 던전의 내부 지도였다.

    그림을 본 윤솔과 드레이크는 깜짝 놀라야만 했다.

    “…이게 뭐야? 총 4층이라구? 이 던전은 1층이 끝 아니었어?”

    “저렙 리자드맨 유저들이 여기 모인 게 오즈의 계략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길 나락’이 1층짜리 던전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1층은 감히 비교도차 되지 않을 정도로 깊고 살벌한 공간이 그 밑으로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그 깊이는 감히 ‘어비스 터미널’과 ‘황천의 유극’에 견줄 정도.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 그리고 객원 멤버 잭 오 랜턴을 향해 눈을 빛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길 나락’을 1층짜리 던전으로 착각하는 이유, 그리고 죽음룡 오즈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저렙 리자드맨들로 득실거리게 만든 이유. …곧 알게 될 거야.”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말로 하는 것보다는 겪어 보는 게 더 좋을 것이다.

    *       *       *

    -죽음길 나락 ‘사마외도(邪魔外道)’-

    깡! 따-앙!

    곡괭이가 움직일 때마다 불똥들이 튀긴다.

    우형근(42세, 무직).

    별다른 특색 없이 평범한, 레벨 29짜리 리자드맨 플레이어 하나가 곡괭이로 열심히 암벽을 때리고 있었다.

    시커먼 자갈들이 잔뜩 섞여 있는 땅, 툭하면 커다란 암석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바람에 땅을 파는 것은 아주 고역이다.

    재수 없으면 지저의 공동에 갇혀있던 고압의 가스나 펄펄 끓는 지하수가 터져 나와 화상 데미지를 입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일일퀘스트 보상이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젠장. 여기는 채굴량이 적네. 다른 놈들이 다 캐 갔나?”

    우형근은 별 수 없이 로프를 잡고 암벽지대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손톱이 길고 날카로워서 벽을 푹푹 찍고 올라가기에는 좋다.

    질긴 근육으로 몸을 지탱하고 날렵한 꼬리로 균형을 잡는다.

    우형근은 추락 데미지를 감수하고 높은 지대까지 올라가 망치를 들고 벽을 때리기 시작했다.

    땅! 따앙- 딱!

    이내.

    검은 암반층 아래 검붉은 기운을 띄는 토맥(土脈)이 드러났다.

    “찾았다!”

    우형근이 기쁜 표정으로 외치자 근처에 있던 수많은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다.

    수많은 리자드맨들이 우형근의 뒤로 모여들었다.

    거대한 지하세계에 우글우글 모여든 이 수많은 리자드맨들이 모두 이 검붉은 토맥을 찾아 망치와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땅! 따-앙! 퍽! 파삭…!

    그들은 검붉은 흙을 파헤쳐 메고 있던 가죽 포대에 담는다.

    우형근은 기쁜 표정으로 검붉은 흙을 가지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드넓은 채굴장 중앙에는 달팽이 껍질처럼 나선형으로 길게 빙글빙글 뻗어있는 오르막길이 있었고 그 위에는 거대한 아궁이와 솥이 위치한다.

    용광로.

    엄청난 크기의 솥 안에 검붉은 쇳물이 끓고 있다.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우형근을 비롯한 리자드맨들은 가죽포대 속의 검붉은 흙을 용광로 안으로 쏟아 부었다.

    …풍덩! …풍덩! …풍덩!

    검붉은 흙들이 용광로 속으로 쏟아진다.

    용암은 더욱 더 걸쭉해졌고 더욱 더 검붉어졌다.

    부글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요란해진다.

    동시에.

    -띠링!

    <일일 퀘스트 ‘불카노스 채굴’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죽음룡의 가호’를 받았습니다!>

    .

    .

    일일퀘스트의 내용은 이처럼 간단하다.

    땅을 파서 불카노스 광맥을 찾아내 검붉은 원석들을 파내어 용광로에 던져 넣으면 그만.

    하지만 난이도에 비해 보상은 제법 짭짤했다.

    우형근은 자신의 육체가 미약하게나마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상태창을 열어 스탯을 확인하자 공격력과 방어력, 체력이 총 10%씩 증가한 것이 보인다.

    “좋았어!”

    이렇게 강해진 몸뚱이로는 더 세고 흉악한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

    버프의 지속시간은 24시간, 우형근은 잽싸게 용광로에서 멀어져 던전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한시라도 빨리 사냥을 시작해야 버프의 이로운 효과를 최대한 길게 누릴 수 있으니까.

    바로 그때.

    [공습이다! 공습이 시작됐다!]

    저 밑에 작업장을 감독하는 리자드맨 NPC가 확성기에 대고 외친다.

    땡땡땡땡땡-!

    차임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던전 입구에서 쿵쾅거리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울러 퍼졌다.

    [더러운 도마뱀 놈들아! 우리도 일일퀘 하러 왔다!]

    오크 전사들이 작업장에 난입했다.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의 일일퀘스트는 금속을 채굴해 용광로에 던져 넣는 것이지만 오크 플레이어들의 일일퀘스트는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귀찮은 오크 자식들, 또 왔네.]

    [어이! 밖에서 망 보던 길드들 다 어디 갔나?]

    [경고하기도 전에 뚫렸대! 오크 놈들, 이번에 작정하고 온 듯!]

    벌집저럼 빽빽하게 나열된 석굴들 속에서 대못과 망치를 든 리자드맨들이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썩 불쾌한 표정은 아니다.

    오히려 잔뜩 흥분한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크 플레이어를 죽이면 동렙의 몬스터를 사냥한 것보다 많은 경험치를 주기 때문.

    더불어 종족 킬 수도 높일 수 있고 죽음룡의 버프 말고도 추가 보상도 주어진다.

    무엇보다 버프로 인해 강해진 육체를 시험해 보기에는 제격이었다.

    우형근 역시 기분 좋게 손톱을 뽑아들었다.

    “죽음룡의 버프는 한 번도 못 받은 놈은 있어도 한 번만 받은 놈은 없다지? 이게 아니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릴 정도라는데…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구만.”

    그 외에도 다른 수많은 리자드맨들이 오크들에 맞서 싸운다.

    오크들 입장에서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격해 오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리자드맨들의 작업장에 발을 들여 놓는 것만으로도 경험치가 오르는데다가 살아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쏠쏠한 보상들이 주어진다.

    어디 숨어 있든 도망만 다니든 간에 리자드맨들의 작업을 방해할 수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보상을 받는다.

    게다가 만약 일일퀘스트를 아직 완료하지 못한 리자드맨을 죽이는 것에 성공했을 경우 그 보상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무식한 근육돼지 놈들! 꺼져 버려라!]

    [더러운 도마뱀 자식들! 방해해 주마!]

    리자드맨과 오크들은 채굴장 중앙에서 맹렬하게 맞붙는다.

    광산은 더욱 더 붉고 뜨겁게 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휴, 개판이구만 이거.”

    리자드맨도 오크도 아닌 존재가 여기 하나.

    지금 막 던전 입구로 들어온 인간.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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