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2화 (362/1,000)
  • 363화 공포의 신생구단 (4)

    나는 유창에게 이것저것을 고지했다.

    캡슐방 운영에 대한 대부분은 유창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많았기에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판이었고 내가 알려 줄 부분은 대부분 급여나 복지에 관한 것들이었다.

    “주요 안건들은 나에게 결재 올리고, 그 외에 다른 팀원들이랑 협조 잘하면 돼.”

    “다른 직원들은 있나요?”

    “아직은 없어. 곧 뽑아야지.”

    개인적으로 윤솔을 우선순위에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그녀의 전공도 행정 관련이니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걔는 이제 거의 준 연예인이라서… 수락해 줄까?’

    그것이 조금 걱정이긴 하다.

    나는 직원 채용 공고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말했다.

    “급여는 고정급+인센티브제야. %단위이니 잘해 봐.”

    “액수는 상관없습니다. 목숨 걸고 하겠습니다.”

    “…목숨까지는 걸 것 없고. 불법적인 일만 안 하면 돼.”

    “이제는 그럴 일 없죠. 형님 밑에 있는데.”

    유창은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은근슬쩍 호칭이 사장님에서 형님으로 변했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단순한 녀석이라 그런가 그간의 앙금이나 회포는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다만, 궁금한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왜 다희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한 거야?”

    내가 묻자 유창은 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뭐랄까. 누나가 형님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음.”

    “근데 형님을 진짜 싫어하기도 합니다.”

    “…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어진 유창의 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그런데, 고인물을 싫어하는 감정이든, 마동왕을 좋아하는 감정이든. 둘 다 누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랄까. 설명하기는 애매한데요. 고인물 욕을 할 때가 마동왕 덕질을 할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느낌…?”

    “?”

    …이게 뭔 소리래?

    유창도 자기가 말해 놓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사실 누나는 그 누구보다 고인물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마동왕보다 고인물을 더 신경 쓰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도 종종…….”

    “??”

    “가령, 예전에 썩은물 사태 때 고인물이 욕먹으니까 그 누구보다 분개하면서 썩은물 잡으러 간다고…까도 자기가 까야 한다면서….”

    이게 대체 무슨 심리람?

    내가 헷갈려 하자 유창도 뒷머리만 벅벅 긁는다.

    “잘은 모르겠는데, 약간 배트맨이랑 조커, 손오공이랑 베지터, /(김첨지와 인력거)/ 같은 느낌 아닐런지… 싫은데 좋은….”

    “???”

    내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유창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쳤다.

    “으,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나 마음을. 여자 마음은 복잡해요. 적이면 적! 친구면 친구! 의리면 의리! 복수면 복수!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건데.”

    “…세상 일이 참 쉬운 게 없지.”

    나와 유창은 기묘한(?) 유대감을 느끼며 건물을 나섰다.

    *       *       *

    한산한 저녁. 공원 벤치.

    나는 유다희와 만났다.

    유창의 간곡한 만류 때문에 정체를 밝히진 않았다.

    다만 그간의 상황을 정리했을 뿐.

    “…늘 신세만 지네요.”

    그녀는 내게 죄스러움과 고마움을 표했다.

    고인물 입장에서 만났을 때의 괄괄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악몽아귀의 뱃속에서 만났던 ‘작고 초라한 유다희’가 떠오른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동생들은 걱정 마. 둘 다 바르게 잘 클 거야.”

    “…하하, 이제는 저만 남았네요. 제가 제일 문제일 듯.”

    유다희는 누가 누굴 걱정하겠느냐는 듯 웃었지만 그래도 많이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 외, 우리는 팬클럽 운영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다희는 여전히 마교 관리를 똑 부러지게 하고 있었다.

    페이 한 푼 없이도 이 정도 정성이라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그렇다고 관리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라서 정말 임금이라도 챙겨 주고 싶은 심경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뭐, 신경 쓰지 마세요.”

    본인이 한사코 거부하니 어쩔 수 없지만.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동생들 많이 챙겨 주시는데 이렇게라도 도와야죠.”

    “하지만 팬클럽 관리에 시간을 이렇게 쓰는데… 생계는 어쩌고?”

    “어머? 지금 저 생계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이런 남자는 또 처음이다.”

    유다희는 새삼스럽다는 듯 웃었다.

    하기야. 그녀는 미모의 여자 BJ로도, 게임 방송 스트리머로도 꽤 유명하니 수익은 괜찮을 것이다.

    ‘하긴,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는 외모 하나로 연예계까지 진출했던 몸이니.’

    지금까지 내가 실제로 만나본 사람 중 비주얼만 놓고 따지면 단연코 원탑이다.

    유다희는 나를 향해 씩씩하게 웃어 보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억지로 받았던 외제차만 반납했을 뿐이지 제가 모았던 적금통장 사정은 아직 괜찮아요! 막내도 건강해져서 이제는 병원비 들 일도 없구… 군식구였던 둘째 놈도 숙식제공 직장을 얻었으니. 크크, 다 마왕님 덕이네요.”

    그녀는 차량 앞유리를 향해 주먹을 콱 쥐어 보였다.

    “이제 고인물, 그 X끼만 잡아 족치면 숙원 풀겠어요. 집중해야지 집중!”

    순간 나는 오싹함을 느끼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마왕님 추워요?”

    “…음, 좀 쌀쌀하네.”

    그러자 유다희는 내게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덮어 준다.

    고인물일 때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상냥한 모습.

    나는 잠시 어색함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

    “…….”

    우리 둘 다 말없이 가로등 아래 앉아 있을 뿐이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유다희였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나를 돌아본다.

    “아참, 마왕님. 요즘 걸리는 게 하나 있는데….”

    “뭔데?”

    내가 묻자, 유다희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문을 듣자하니 이번에 ‘큰형님’이 뿔이 많이 난 것 같더라고요.”

    ‘큰형님’이라 하면 유다희, 유창희, 유세희 삼남매 아버지 사후 쭉 그들의 후견인이었던 남자다.

    사실상 경제권을 쥔 채 착취해왔던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유다희는 아버지가 죽은 것을 큰형님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감정은 자연히 좋지 않다.

    그것과는 별개로 유다희에게 개인적으로 찝쩍거리기 까지 한다니 여러모로 빌런이라면 빌런.

    내가 의아한 기색을 보이자, 유다희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큰형님’이라는 사람이 이번에 게임 산업 쪽에 투자를 많이 해서 좀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이번에 협회를 통해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선발전에 개입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낭만 주먹의 시대를 넘어 이제는 폭력배도 기업형인 시대다. 돈 되는 산업에 뛰어들지 않을 리가 없다.

    나는 회귀하기 전, 게임 협회가 대중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고 외면당했던 이유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막대한 로비로 선수 선발전에 개입해서 감독 권한 침해하고, 여차하면 외국 선수들의 숙박 시설 예약을 뒤틀어서 컨디션 난조 일으키고, 특정 구단을 매수해서 승부조작 및 브로커 노릇에, 선수 매수해서 빼 가고, 구단이나 선수를 해외자본에 팔아먹고 입 싹 닦고, 기계 오작동을 일으켜 찍힌 선수들 피지컬 저하시키고, 심판 매수에, 각종 언론 플레이에, 사설도박에, 불법 주식 내부자 거래에, 심지어 고위 임원들 불륜 및 성추행 스캔들까지……아주 온갖 E스포츠 비리를 다 저질렀지.’

    그러던 와중 협회의 불합리한 판정 결과에 불복해 은퇴를 선언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기자회견장에서 비리를 폭로하는 용감한 내부고발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억울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지금 유다희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그 ‘큰형님’이라는 자는 협회의 본질적인 존재의의에 있어,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건전한 발전에 있어 걸림돌이 되는 인물인 것 같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을 거야.”

    나는 피식 웃었다.

    “…네?”

    유다희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 반문한다.

    나는 절대적인 자신감으로 그에 화답했다.

    “중요한 건 ‘이빨’이야.”

    아무리 보스 급 빌런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나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게임 실력.

    이것만큼은 현실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비틀 수 없는 법칙.

    즉 다른 세계의 차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절대 힘은 ‘돈’이지만 그것은 정글에 가서는 아무런 효력도 없다.

    정글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빨’과 ‘손톱’이 더 대접을 받는다.

    게임 속에서는 현실의 권력이나 음모가 통하지 않는다.

    ‘큰형님’이라는 자가 이번 아챔 선발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되든 상관없다.

    그것은 선수들 간의 실력이 ‘비등비등’할 때의 이야기니까.

    “모든 도박이나 저질스러운 흉계들은 이미 꿰고 있어.”

    회귀 전, 수많은 내부고발자들과 기자들이 파헤친 ‘악당들의 수법’들.

    어떤 비리가 어떤 교활한 방법으로 통용되는지 나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중 굵직굵직한 것들만 미리 대비해 놔도 나는 현실의 악당들을 역으로 공략해 털어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기다려지는데?’

    나는 손바닥 안을 보며 웃었다.

    게임 산업에 관련된 비리 뉴스라면 늘 관심을 가지고 주시했던 터라 거물 급 악당들의 흉계도 손금 보듯 훤하다.

    협회가 욕먹는 이유도 뭐 사실 늘 다 비슷하지 않은가?

    회귀 전의 세상에서 내부고발자들이 터트렸던 충격 비리들, 이번 세상에서는 내가 그것들을 전담마크 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전 삶의 내부고발자들이 겪었던 비참한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게 해 줄 계획이었다.

    이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사랑해 마지않는 게임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결정이기도 했다.

    ‘…엄재영 형님도 그중 하나셨었지.’

    내가 법인을 차리는 데 보증까지 서 준 엄재영 감독 역시 (회귀 전에는) 게임계의 비리를 기자들 앞에 폭로하고 장렬하게 은퇴한 산증인이 아니던가!

    한편, 유다희는 여전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조심하셔야 해요, ‘큰형님’은 교활한 사람이니까. 자기를 대신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수없이 감옥에 보낸…그리고 그 자식들까지도 대대로 착취해서 먹고사는…….”

    그런데 그 와중에 유다희한테 외제차까지 뽑아 주면서 찝적거렸단 말이야? 자기 대신 감옥 간 부하의 딸래미한테?

    ‘사탄이 보면 은퇴하고 사업 물려줄 정도로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안에 떨며 조심하는 건 딱 질색이야.”

    “…네?”

    유다희가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조심을 안 해도 되게 만들어야지.”

    이제는 정말 때가 되었다.

    고정 S+등급 몬스터 ‘죽음룡 오즈’

    이놈만 잡으면 나는 현실에서도 절대자가 된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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