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1화 (361/1,000)
  • 362화 공포의 신생구단 (3)

    유창이 내게 구십 도로 인사를 해 왔다.

    “사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19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키에 빡빡 깎은 머리, 얼굴에 난 칼자국 때문에 어째 예전보다 인상이 더 무서워졌다.

    ‘…진짜, 나보다 어린 거 맞아?’

    이런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가면을 써서 표정이 흔들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문을 텄다.

    “머리는 왜… 군대 가니?”

    “면제입니다, 사장님.”

    “…왜?”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사장님.”

    유창이 씩 웃으며 대답하는 것을 듣자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그때.

    내가 당황해 하는 것을 본 유다희는 유창의 정강이를 발로 퍽 찼다.

    “야! 니 마왕님한테 장난치지 마라!”

    “아악! 왜 쪼인트를 까!?”

    유창이 팔딱팔딱 뛰는 것을 본 유다희는 혀를 한번 쯧 찼다.

    덕분에 우리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도 조금 풀렸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셨어서 그래요. 보충역으로 짧게 하다가 저번에 나왔어요.”

    “머리는 새 사람이 된 증표로 밀었습니다, 하핫!”

    유창은 짧게 자른 자기 머리가 우습고 어색한지 껄껄 웃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게임에 유창이 한동안 안 보였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가 그때인가 싶다.

    한편.

    나는 예전에 유창에게 이런 말을 남겼던 적이 있었다.

    ‘불법적인 일에서는 손 떼는 게 좋을 거야. 정식 일자리도 줄 수 있어. 본인이 원한다면 말이야.’

    유다희와 유세희가 나를 노리고 찾아온 살수들에게 대신 죽었을 때 책임감에서 했던 말이다.

    “오케이. 따라와.”

    나는 내친 김에 바로 택시를 잡았다.

    *       *       *

    내가 유창을 데리고 간 곳은 예전에 이태원에 사 뒀던 건물이었다.

    명의가 법인으로 되어 있으니 내 정체가 외부로 탄로 날 일은 아예 없다.

    “오오! 이거 옛날 생각 납니다.”

    유창은 건물 1층을 꽉 채우고 있는 캡슐들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 역시 한때 캡슐방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벌써 놀라기에는 이르다.

    2층, 3층, 4층… 투명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수록 점점 많아지는 캡슐들.

    이 빌딩 전체가 아예 거대한 캡슐방인 것이다!

    그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유창은 입을 딱 벌렸다.

    “이, 이 빌딩 전체가 다 캡슐방입니까?”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나는 대답했다.

    “고층으로 올라가면 개인방송을 할 수 있는 개인 방송 룸들이 구비되어 있지.”

    말 그대로다.

    엘리베이터가 고층에 이르자 모텔처럼 수많은 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우아하게 꾸며진 구획들 안에는 고성능 컴퓨터와 캠, 캡슐 등등 개인방송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었다.

    캡슐방과 개인방송국이 하나로 합쳐진 멀티콘텐츠 작업장인 셈이다.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기획해 오던 사업이 슬슬 현실에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빌딩 상층부는 ‘닳고닳은 뉴비’ 구단 선수들의 숙소와 연습실이야. 네 동생도 거기서 머물게 될 거고.”

    내가 유세희를 언급하자 유창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유세희가 퇴원한 이후 주거할 곳이 아직 마땅하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나 보다.

    나는 다시 한번 빌딩의 내부구조를 설명했다.

    “증축 시공이 마수걸이까지 완료되고 나면 빌딩은 총 17층. 하층부에는 캡슐방이 있고 중층부에는 개인방송 작업장, 상층부에는 구단 선수들의 숙소와 연습실, 각종 팬미팅이나 회의 등등을 할 수 있는 파티룸 겸 회의실이 있지. 최상층부는 오직 나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라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고.”

    그러니 빌딩 1층은 고객들에게 항시개방되는 셈이다.

    개인방송 층부터 해서 하드 게이머를 위한 밀폐공간까지 다양하다.

    물론 화재나 보안 시설도 완벽했다.

    거기에 선수들의 연습 스케줄에 따라서 연습하는 것을 관람할 수 있는 특별 객석까지 마련해 두었으니 모든 프로게이머, 개인방송 스트리머들의 낙원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이내. 나는 엘리베이터로 맨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나만 열 수 있는 비밀 문 앞에 나와 유창이 섰다.

    꿀꺽-

    유창은 문 앞에서 침을 삼켰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여, 여기는 사장님만 들어가실 수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아.”

    “어우, 그런데 한낱 저 같은 게 여기까지 와도 되나요?”

    “이번은 예외로 쳐 두자.”

    나는 문 앞에 선 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직하게 물었다.

    “그리고 이젠 네가 선택을 해야 할 차례지.”

    나는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내들었다.

    이 빌딩의 관리인이 지켜야 할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는 중요한 계약서였다.

    연봉, 복지, 근무환경, 합법적인 노동. 모든 것이 이상적인 근로계약서.

    “여기에 도장을 찍고 안 찍고는 네가 정할 문제야.”

    “…? 여부가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하지만 유창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내가 그의 앞에서 가면과 음성변조기를 벗어 버렸기 때문이다.

    “……!”

    유창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

    한참 뒤에 그가 낸 소리는 이게 다였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유창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밝혀야 했을 일이다.

    천재소녀 유세희를 알게 되었으니 이들과는 계속 얽힐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거짓말하기도 귀찮고 소모되는 심력도 번거로운 일이다.

    ‘…또 같은 내 구단의 선수가 된 세희에게 예의가 아니지.’

    유다희가 열심히 운영해 주고 있는 마동왕 팬클럽의 회원들에게도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던 차다.

    현실적으로 봐도 나쁠 것은 없다.

    현재 내 팬클럽 회장인 유다희와 그것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유창, 그들의 능력치는 현실이면 현실, 게임이면 게임 모두가 월등하다.

    회귀 전의 악감정만 배제할 수 있다면 아래로 거두어서 결코 나쁠 것이 없는 인재들.

    ‘그리고 다른 것들은 다 제쳐둬도, 그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죽음룡 오즈 레이드’다!

    게임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방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찜찜한 상태로 게임에 접속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가장 컸다.

    …주사위는 던졌다.

    이제 눈의 결과만 기다릴 뿐.

    “…생각 있으면 들어와.”

    나는 최상층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로지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그런데?

    불쑥!

    유창.

    녀석은 내 뒤를 따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와 버렸다.

    “…너?”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자.

    “우하하핫!”

    유창은 유쾌하게 웃어젖혔다.

    “사장님이 고인물이셨군요. 세상에, 이건 좀 충격인데요.”

    “화 안 나냐?”

    “…미묘한 심경입니다.”

    유창은 턱을 짚었다.

    막내동생의 병원비, 그리고 녀석이 병마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게임을 위해 열심히 아이템을 구하고 다니던 시절.

    그동안 고인물에게 얄밉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

    하지만 그동안 마동왕에게 받은 것을 떠올리면 그 화가 누그러질 때도 있다.

    ‘…이거 진짜 미묘하네.’

    유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생을 포기하고 지하방에서 나오지 않던 누나가 게임을 알게 되고, 마동왕 덕질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많이 밝아졌다고.

    하지만 그보다도 누나를 더욱 활기차게(?) 했던 것은 의외로 고인물이었다.

    복수만큼 원초적인 활력이 또 있을까?

    어쩌면 누나를 히키코모리 생활에서 건져 올린 것은 마동왕보다도 고인물의 영향이 더 컸다.

    만약 고인물이 아니었더라면 누나는 게임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기보다는 철저하게 돈을 뜯기 위한 도구로서만 이용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럴수록 더욱 더 남자를 불신하게 되었을 것이고 더욱 더 독하고 악만 남은, 메말라 버린 인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 상황에서 돈이 부족해 막내 동생의 수술마저 시기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 했더라면…

    그야말로 상상도 하기 싫은 미래가 도래했겠지.

    그래서일까?

    유창은 내게 정말로 뜻밖의 말을 꺼냈다.

    “저는 애초에 고인물을 별로 안 싫어했습니다.”

    “……?”

    나는 유창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뭐, 싫어했다고 쳐도 게임에서 몇 번 죽은 게 다니까 애초에 그리 큰 악감정도 없고. 마동왕 정체 숨기신 것이야 좀 섭섭하다지만 그때야 저희가 무슨 신뢰 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팬질도 누나가 시키지도 않은 거 알아서 한 거니 딱히 사장님이 배신을 했다거나 작정하고 우리를 이용해 먹었다거나 한 건 아니죠. 그리고 세희 병원비 문제도 해결해 주셨고.”

    “…….”

    “오히려 믿고 정체를 밝혀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유창은 내 손에 들려 있는 근로계약서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쿵!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오늘부터 진짜 사장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일이 잘 풀린 것…이라고 봐도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창을 일으켰다.

    *        *       *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유창은 꽤나 수다스럽게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다.

    “…와 형님, 아니 사장님! 근데 어떻게 그렇게 졸렬하게 플레이하실 수 있습니까?”

    “…나도 지금에서야 솔직히 까놓고 말한다. 너희들이 자꾸 먼저 방해했잖아. 내가 먼저 너흴 공격한 적은 없어.”

    “그건 그런데, 역으로 엿을 먹이는 수법이 너무 악랄하신 것 아닙니까? 뭐. 그런 만큼 이제 형님, 아니 사장님과 같은 편이 되었으니 든든하기는 하지만.”

    유창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녀석이 그동안 섭섭했던 점을 모조리 토해 내는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창… 일 잘하는 것 하나는 기가 막혔지.’

    이것은 회귀하기 전의 기억이다.

    녀석은 작업장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다.

    남의 머리 위에 서서 아래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도가 튼 남자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피지컬부터 싸움 실력까지 엄청난 놈이라서 만약 누군가 앞에서 길을 잘 잡아 줬다면 경호원으로서도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악연으로 얽히지만 않으면 능력은 확실한 캐릭터.

    누가 주인이 되어 움직이느냐에 따라 양지에서 빛나는 히어로가 될 수도, 음지에서 흉악한 빌런이 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이번 삶에서는 관계를 좀 달리해 보자고.’

    물론 회귀 전에 당했던 게 있으니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좋은 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뭐 정작 유창 본인은 나를 떠날 생각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띵!

    이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내가 막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저, 사장님.”

    유창이 머뭇거리며 나를 불렀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유창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말했다.

    “저 혹시 부탁 하나만 좀 드릴 수 있겠습니까?”

    “…뭔데?”

    내가 묻자, 유창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한테는 정체를 밝히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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