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60화 (360/1,000)
  • 361화 공포의 신생구단 (2)

    부웅-

    차를 몰고 온 곳은 용산 이촌동.

    예쁜 정원을 품고 있는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늘상 오곤 했던 엄재영 감독의 집.

    나는 오늘 이곳에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대해 토의하기 위해 왔다.

    나는 자동으로 열리는 현관문을 지나 대나무밭을 가로질렀다.

    연못에 노니는 잉어들이 그새 수가 불어나 있었다.

    퐁퐁퐁…

    연못가에서 잉어 밥을 주고 있던 여자가 나를 보며 반색을 했다.

    “어머? 생명의 은인 오셨네!”

    오희선.

    그녀는 나를 보며 매우 반가운 기색으로 다가왔다.

    맨 처음 내가 무턱대고 건강검진 받으러 가자고 떼를 쓸 때만 해도 나를 미친놈 바라보듯 하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갑상선암 1기.

    본인도 몸의 이상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충격은 컸다.

    오희선은 내 덕에 아주 초기에 암세포를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은 수술과 재활치료로 인해 완벽하게 건강해진 상태였다.

    주기적으로 계속 병원을 오가며 관리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돌계단을 올라 집 안으로 들어가자 거실에 앉아 있는 엄재영 감독이 보인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 이어진이~ 좋아 보이네.”

    “게임만 하느라 근육도 다 빠지고 아주 죽을 맛인데요?”

    “…자식이 뭔 빈말을 못 해요.”

    엄재영 감독은 짐짓 투덜거리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소파의 앞에는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나를 향해 연신 투덜거린다.

    “마! 네가 마동왕으로 행세할 때 신원보증 불완전 때문에 밀린 서류들이야! 이제는 이어진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했으니 네가 알아서 다 서명해. 안 들키게 하는 건 이제부터 알아서 하고.”

    미루고 미뤄 왔던 신원등록 철퇴를 지금에서야 맞는다.

    나는 인감도장을 든 채 투덜거렸다.

    “거, 선수 서류처리도 못 해 줍니까? 감독이 되어서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한 거야 인마. 이제 구단주인 네가 검토해야지.”

    “…아니 내가 선수인데 또 뭘 검토해요?”

    “구단주도 너고 선수도 너니까 네가 너 자신을 고용한 셈이지.”

    “…….”

    “그런데 너는 거기에 법인도 차렸잖냐? 네가 법인의 소유주이면서 또 대표이고 거기에 구단의 소유자이자 거기에 소속된 선수이기도 하고…… 너는 게임 속에서 마동왕, 고인물, 썩은물 캐릭터 나눠서 자아분열하고 놀더니 현실 속에서도 이러냐? 뭐가 진짜 너야?”

    “……다 진짜 나죠. 으음, 귀찮은데. 그냥 법무사, 세무사에게 떠넘길까나.”

    “으이그, 이놈아. 고용주로서 고용인의 신상정보를 꼼꼼히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 자아성찰 한다고 생각하고 꼼꼼히 봐~”

    나는 끙 소리를 내며 서류들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엄재영은 껄껄 웃으며 다른 구단 선수들의 프로필과 전적, 지난 경기 영상들을 홀로그램 화면으로 띄워 놓았다.

    “그나저나, 너 진짜 이것들 안 봐도 돼?”

    “이미 봤어요.”

    “…뭐? …진짜? …언제? 나도 이 자료들은 최근에 입수한 건데?”

    엄재영 감독은 내 대답에 깜짝 놀라워했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앞으로 펼쳐질 10여 년간을 미리 살면서 어지간한 건 다 봤다고 말해도 믿어 줄 리 없으니까.

    이윽고, 시간이 지나 나는 서류정리를 대부분 끝냈다.

    그러자 엄재영 감독은 찬장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집어 든다.

    꽤 예쁜 병에 담긴 호박색 액체.

    엄청 고가의 싱글몰트 위스키인가 보다.

    엄재영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자고 가라. 술도 좋은 거 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선약 있어요.”

    “…엥? 뭐? 누구랑?”

    “여자요.”

    “아, 이 자식은 맨날 약속 두 탕으로 잡아~ 바람둥이 놈!”

    “한 달 전만 해도 여기 일주일에 세 번씩 와서 잤잖아요. 이럴 거면 그냥 이 집에 제 방 하나 놓으시든가.”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은 껄껄 웃었다.

    “하 자식! 선수가 이제 아주 감독이랑 맞먹으려고?”

    “어허, 선수이기 이전에 구단주입니다.”

    “…그럼 이 자식아, 나는 감독이기 이전에 구단주 형이다!”

    엄재영 감독은 내에게 헤드락을 걸며 익살맞게 외친다.

    그 장난스러운 동작 속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가득 배어 있었기에 나도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       *       *

    나는 엄재영 감독의 집을 나와 한적한 교외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뻥 뚫린 도로를 지나 병원에 들어서자 로비에 커다란 TV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공교롭게도 TV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처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윤솔. 그녀가 화장품 CF에 출연하고 있다.

    “이야, 유튜뷰 스타에서 광고여신으로 진화하겠네.”

    슬슬 윤솔도 준 연예인에서 진짜 연예인으로 거듭나는 것 같다.

    이제 현실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나?

    ‘흠, 나도 대격변이나 S급 몬스터 레이드 영상을 풀면 인지도가 탈 아시아 급으로 올라갈 텐데…….’

    하지만 굳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김치도 동영상도 익어야 제맛인 법!

    아직은 대기할 때다.

    나는 화장실로 가 얼굴을 가린 가면과 목에 부착한 음성변조장치가 제대로 되어 있나 점검했다.

    ‘…세희가 시력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주의해야지.’

    유다희의 동생 유세희가 우리 구단에 합류한 이상 고인물과 마동왕의 구분을 잘 해야 한다.

    윤솔과 드레이크, 마태강은 이미 두 캐릭터 다 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유세희는 아니니까.

    나는 계단을 올라가 유세희가 있는 17층 병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기 위해서!

    이내 병원 복도가 드러난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환자들과 항상 미소에 지쳐 보이는 간호사들의 사이를 지나 제일 안쪽의 특실로 들어갔다.

    한데?

    방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조금 의외의 광경이 보인다.

    “……자, 이제 알겠어?”

    마태강. 투신이 여기에 와 있었던 것이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가 고르딕사 레이드를 갈 동안 투신 마태강은 엄재영의 지시에 따라 유세희에게 게임 전반의 요모조모들을 알려 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아무래도 둘이 많이 친해졌는지 이렇게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잠시 둘의 대화를 엿들어보았다.

    마태강은 유세희에게 자신의 무투가 스타일을 알려 주며 그동안 겪었던 강적들의 패턴에 대해 분석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토뎀 나이트’라는 불법 PVP리그에 나갔었지. 거기서 서초패왕 커제라는 녀석을 만난거야. 그놈은 원래 큰 참마도를 사용하는 중장거리 폭딜러 타입이었는데 정체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근접 딜러 스타일로 변신해서 출전했지.”

    마태강은 유세희의 두 손을 잡은 채 허공에 이런 저런 궤도를 그리며 열띤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그때 커제가 들고 있던 레이피어는 일정 거리 안에 추가 피해를 입히는 아이템이었어.”

    “오호, 그럼 그 사람은 오빠한테 가깝게 붙어서 싸우려 했겠네요. 갑옷은 가벼운 걸 걸쳤거나 안 입은 상태였을 것이고.”

    “맞아. 나 역시도 스타일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아웃복서 스타일로 싸웠거든.”

    “그럼 상대의 전략을 역이용해서 다이브한 뒤에 바짝 붙어 한 방 딜로 승부를 내는 게 좋았겠네요.”

    “맞아. 그럼 여기서 킬각을 어떻게 재야 하지?”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배를 노려야죠! 배가 제일 면적이 넓은 부위니까. 정타를 꽂는다면 그것으로 게임 끝이고 스치기만 해도 내장들이 줄줄 흘러 나올 테니 얼마 못 가죠. 상대방이 나보다 덩치가 컸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음, 그렇지. 그랬다면 바로 킬각이지. 당시 나는 판단을 잘못해서 턱을 노렸다가 실패했지만 말야.”

    “에~ 바보~ 턱은 아무리 덩치가 큰 사람이라고 해도 면적이 그리 넓지 않고 배보다 훨씬 더 피격판정 내기가 어려워서 민첩 스탯이 부족하면 MISS 뜨기가 십상인데…! 왜 그랬어요!”

    과연 천재들의 대화는 다르다.

    척 하면 척 알아듣고 똑 치면 똑 하고 반응한다.

    과연 유세희의 재능은 대단했다.

    그녀는 투신의 실력을 물 만난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문득, 유세희가 마태강에게 물었다.

    “근데 오빠. 오빠는 그거 언제 쓸 거야?”

    “…그거?”

    “응, 그거 있잖아. 오빠가 ‘비장의 무기’라고 했던 거.”

    “어, 그건 형님께 비밀이라서. 나중에 서프라이즈로……”

    바로 그 순간.

    “사이좋네.”

    내가 병실 문을 열고 등장했다.

    마태강은 나를 보며 약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녀석 나름대로는 최대한 반가운 티를 낸 것이다.

    한편 유세희는 혼자 얼굴이 새빨개진다. 뭐지?

    나는 녀석들을 향해 씩 웃어 주었다.

    “둘이 뭐야? 묘한 기류가 흐르는데.”

    그러자 마태강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장난치지 마세요, 형님. 나이 차가 몇인데.”

    “…몇인데?”

    내가 보기에는 둘 다 애다. 그래서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 보였다.

    그때.

    “저 이제 14살이니까 그리 차이도 안 나요.”

    유세희가 당당하게 외쳤다.

    “…….”

    “…….”

    나도 마태강도 딱히 할 말이 없어 입만 반쯤 벌리고 있을 때.

    삐걱-

    병실 문이 한 번 더 열렸다.

    “어?”

    유다희. 그녀가 들어온 것이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완전.”

    예전에 유세희가 큰 수술을 받기 전 나눴던 대화 이후로 나와 유다희는 어딘가 약간 어색해져 있었다.

    당시 그녀는 울음을 참으며 화장실로 달려간 이후 한동안 내 눈을 똑바로 보기 힘들어했다.

    그리고 유다희는 원래 투신 마태강과는 어색한 사이다.

    예전에 우는 천사 공략 때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던 탓.

    짝짝…!

    병실 안의 공기가 급격히 어색해졌기에 나는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사이좋은 애들은 사이좋게 놀게 두고. 우리는 일단 커피나 한잔하러 가지.”

    “…혀, 형님! 누가!”

    마태강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싹 무시하고는 병실 밖으로 나섰다.

    유다희는 묘한 시선으로 동생 유세희와 마태강을 번갈아 바라본 뒤 나를 따라 나왔다.

    우리는 병원 1층 로비에서 커피를 한 잔씩 샀다.

    그때.

    “아메리카노 한 잔 더 주세요. 샷 추가해서요.”

    유다희가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내가 의아해하자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마왕님을 꼭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누군지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수락의 의사를 표했다.

    안 그래도 한번 보려고 했던 참이다.

    이내, 유다희가 손을 흔드는 방향에서 큰 키의 남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빡빡 깎은 머리, 살벌하게 난 이마의 칼자국.

    “사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바로 유창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