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58화 (358/1,000)
  • 359화 선동과 날조 (3)

    나는 협곡의 가장 높은 곳, 시야가 탁 트인 바위 위에 올라서 있었다.

    ‘윌리엄 레그런드의 풍뎅이 바위’

    커다란 풍뎅이를 연상케 하는 모양의 이 커다란 황금색 바위는 협곡 안의 어디에서도 보이는 지형으로 훗날 수많은 관람객들에 의해 필수 등반 코스로 여겨지게 되는 관광지이지만…사실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서 있는 바위 위가 각도 상 협곡 아래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향해 몰리는 3만 명의 시선.

    의심과 불안, 호기심, 동경, 증오, 탐욕, 애정, 질투, 흠모… 다양한 감정들이 황해(黃海)의 물결처럼 밀려든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밥들이 많아 봐야 밥이지.”

    쌀알들이 많다고 해 봐야 고작 한 공기의 밥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소화시킬 수 있는 양이었다.

    스륵…

    나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황금광의 혈안(血眼)> / 안대 / A+

    황금에 미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눈알을 빼서 건조시킨 것이다.

    이 핏발 선 눈알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시야 -5%

    -집중력 -5%

    -어둠 속성 저항력 -5%

    -특성 ‘실명’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마나 번’ 사용 가능 (쿨타임: 12시간)(특수)

    오늘을 위해 기다려 온 아이템 등★장.

    츠츠츠츠츠…

    나는 고르딕사의 힘이 눈알에 깃드는 것을 느꼈다.

    눈에 무언가 낀 것처럼 뻑뻑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동시에 온 세상의 시야가 황금색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어우, 이거 맨 정신에는 쓰기 힘들겠는데?’

    사용자인 나에게도 이렇게 세계가 일그러져 보일 정도면 부담이 좀 있다.

    아마 시야와 집중력 마이너스 옵션에 의한 영향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딛고 서 있는 풍뎅이 바위는 넓고 튼튼했기에 어지럼증을 느껴 쓰러진다 해도 아래로 떨어질 일은 없다.

    나는 고르딕사의 ‘마나 번’ 특성을 발현한 채로 협곡 아래의 사람들에게 고했다.

    “눈 감으신 분 없죠? 자, 찍습니다! 치-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제대로 박혀 있는 것을 느끼며, 나는 셔터를 눌렀다.

    번쩍-

    동시에.

    콰콰콰콰콰콰콰콰…!

    내 눈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황금의 폭풍이 협곡 전체에 휘몰아쳤다.

    “으아아아아아아-!”

    눈에서 황금 빔을 쏘는 나.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괴랄할 수 있는 광경이다.

    하지만 진짜 괴랄한 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으악! 뭐야! 내 눈!]

    [크아아악! 내 몸이 딱딱해진다!]

    [젠장! 마나 번 특성인가!? 이렇게 강력한 건 처음이야!]

    [안 본 눈 삽니다!]

    [판사님!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살려줘! 몸이 굳어 가고 있어!]

    [끄아아아, 눈부셔! 눈이 부셔진다!]

    협곡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리자드맨들과 오크들은 저마다 자신의 두 눈을 부여잡고 날뛴다.

    갖춰져 있던 대열들이 죄다 무너졌고 길드와 길드 간의 결속, 심지어 길드 속 개인들의 결속까지도 모두 흐트러져 버렸다.

    그때쯤 해서.

    …푸슉!

    오크 진영에서 화살 한 대가 날아올라 리자드맨 진영으로 떨어졌다.

    푹!

    리자드맨 유저 한 명이 화살에 어설프게 빗맞았다.

    하지만 빗겨 맞은 것이 공포감을 조성하기에는 더욱 적절했다.

    [으아아아악! 오크 놈들이 공격해 온다!]

    한두 명의 리자드맨들만 비명을 지르는 게 아니었다.

    곳곳에서 화살에 빗맞은 리자드맨 유저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다들 온몸이 황금으로 변해 가고 있어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던 차라 패닉은 더했다.

    [더러운 오크 놈들! 이때를 노리겠다는 거냐!]

    안티 니에미가 손톱을 뽑아들었다.

    그는 멀어 버린 눈과 뻐근해진 팔다리를 움직여 오크 진영으로 돌격했다.

    [내가 죽어도 네놈들 한 마리라도 더 데리고 가겠다!]

    그러자 오크 진영에서 벼락같이 튀어나오는 이가 있었다.

    바로 구라이 부랄이었다.

    [간교한 리자드맨 놈들아!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마라! 우리를 약해지게 한 다음 공격할 생각이었잖냐!]

    부랄 역시도 두 눈이 멀었다.

    심지어 몸 곳곳이 황금으로 변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콰쾅!

    두 전사의 격돌은 곧 두 종족의 격돌을 야기했다.

    [우와아아아! 이게 다 저 놈들의 간계야! 우리가 속은 거라고!]

    [몸이 완전히 황금으로 변하기 전에 저놈들을 죽이자!]

    리자드맨들과 오크들은 협곡의 중앙에서 맞부딪쳤다.

    수많은 마법과 화살이 날고 칼과 창, 도끼, 손톱들이 날아다닌다.

    그리고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잽싸게 빠져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으음. 이거 팔자에 없는 사어(死語)를 다 배웠네.”

    “으아, 저 발음 어땠어요? 좀 어눌하지 않았었나?”

    드레이크와 윤솔이었다.

    그 둘은 내가 알려 준 최단 등산로를 통해서 잽싸게 협곡을 올랐고 이내 내가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었다.

    한편.

    “장관이로군.”

    나는 풍뎅이 바위 위에서 협곡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있었다.

    감탄이 나온다.

    2만 명, 아니 3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죽일 듯 칼을 휘두른다는 것.

    심지어 온몸이 황금으로 굳어 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몇몇 이들은 후방으로 빠져 약물로 자기 몸의 상태이상을 치료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안타깝게도 고르딕사의 마나 번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고르곤이나 메두사 정도의 마나 번이었다면 어찌어찌 치료할 수 있었겠지만…A+급 몬스터가 작정하고 건 특성을 해독하는 것은 마을에 가거나 정말로 값비싼 물약을 먹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지.

    “자, 그럼 이제 수거를 시작해 볼까?”

    나는 쓰고 있던 검은 후드를 젖혔다.

    그러자 그 안에서 무시무시한 모습이 드러난다.

    가끔 빌런 짓을 할 때 사용했던 메타,

    썩은물, 아니 ‘망령’ 모드이다!

    전신을 뒤덮고 있는 시커먼 핏줄과 근육, 두 눈 부위만 허옇게 드러난 피카레스크 마스크.

    그리고 그런 내 몸 전신을 시커먼 철조망들이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세부적인 디자인은 얼마 전 맞붙었던 적폐망령의 비주얼을 참고하여 리메이크한 바 있다.

    그 외 고인물이나 마동왕이 연상될 수 있는 모든 아이템들은 천공섬에서 얻은 히든 피스 ‘오추멜로프의 무한코스튬 반지’의 ‘천면’ 특성 덕분에 전부 클로킹 처리할 수 있었다.

    간혹 시력을 덜 잃어버린 이가 있어 그런 나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으앗!? 저기 봐! 뭐가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나는 검은 바람처럼 날아가 그의 손가락을 뚝 꺾어 버렸다.

    “삿대질하지 마라, 더러운 오크 놈아.”

    나는 유창한 리자드맨어(語)를 구사하며 오크 유저의 목에 철조망을 휘감았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리자드맨 유저가 반색했다.

    [오오! 당신은 리자드맨이었군요! 한데 왜 우리한테까지 마나 번을…?]

    나는 그를 향해 유창한 오크어(語)로 대꾸했다.

    “리자드맨 또한 더럽다. 친한 척 하지 마라.”

    내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취리릭!

    내 몸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철조망들이 나의 의지에 따라 뱀처럼 움직인다.

    그것들은 내게 말을 걸었던 리자드맨 유저의 목에 휘감겼다.

    나는 빠른 속도로 두 가닥의 철조망을 회수했다.

    파팍!

    철조망들이 내 몸을 향해 되돌아오자.

    …뚝! …뚝!

    철조망에 휘감겨 있던 리자드맨 유저와 오크 유저의 목이 그 자리에서 부러진다.

    즉사(卽死).

    그들이 사망 로그아웃된 것은 물론이었다.

    [꺄아아악! 저게 뭐야!]

    [괴물이다!]

    [몬스터 아냐!? 몬스터!?]

    [그렇다기에는 아까 말도 했잖아!]

    [인공지능이니까 그럴 수도 있나보지! 두 종족 언어를 다 쓰는구만!]

    리자드맨 유저들과 오크 유저들은 나에게 맞서기를 포기했다.

    우르르 등을 보이는 그들을 향해 나는 수없이 많은 철조망들을 뻗어나간다.

    “항상 두려워하십시오. 작은 성기들아.”

    계속해서 유창한 리자드맨어와 오크어 욕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마치 매크로처럼.

    *       *       *

    한편.

    은밀한 곳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윤솔과 드레이크는 감탄하고 있었다.

    윤솔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어진이는 진짜 천재인가 봐요. 다른 종족의 말도 저렇게 잘 하네. 이미 사어(死語)가 된 언어를 기반으로 만든 게 다른 종족의 언어라는데… 대체 어떻게 배운 걸까요?”

    그러자 드레이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진이 다른 종족의 언어를 다 잘 하는 건 아니다.”

    “그럼요?”

    “자기는 욕밖에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윤솔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럼 지금 저게 다 욕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어지는 드레이크의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사실 뭐, 더러운 리자드맨과 오크들에게는 욕밖에 할 게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마이너 종족인 인간 족에 깊이 감정이입하고 있는 드레이크였다.

    애초에 리자드맨도 오크도 고르지 않아야 될 수 있는 것이 인간 진영이니 그들은 늘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들은 유독 동족 간의 유대감이 깊은 편이었다.

    윤솔은 다시 협곡으로 시선을 돌렸다.

    …콰콰콰쾅!

    벌써 황금 석상이 되어 버린 유저들 사이로 아직 살아남은 이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력도 이제는 한계에 이른 듯싶다.

    하나둘씩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황금으로 변해 가는 사람들.

    청운(靑雲)의 꿈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해 버렸다.

    “우와, 진짜 아수라장이네.”

    윤솔은 입을 열어 감탄했다.

    3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살당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학생 수가 1000명인 큰 학교로 따지면 자그마치 30개 학교의 전교생들이 모여 있는 규모다.

    어지간한 콘서트 장 규모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파.

    그렇게 바글바글한 사람들이 오직 한 명에게 쫓겨 다니고 있는 모습은 가히 전율적이었다.

    [두고 보자! 절대로 이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리자드맨 놈아!]

    오크 길드 ‘테스토스테론즈’를 이끄는 길드마스터 ‘부랄’이 울부짖는 소리.

    하지만.

    뻐엉!

    부랄의 몸은 이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다.

    나의 철조망이 부랄의 몸을 꽁꽁 묶은 뒤 확 잡아당겼고 그대로 단단한 암벽에 찧어 버린 것이다.

    [반드시 복수한다! 찾아내서 죽여 버릴 거야!]

    리자드맨 종족 최대의 길드 ‘씬 클럽’의 길드마스터, 온 몸이 황금으로 변해 버린 니에미가 마지막 분노를 토해 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해 줄 뿐이었다.

    결국.

    협곡 안은 번쩍이는 황금 조각상과 시체들만 즐비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새통을 이루었던 협곡 안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 움직이지 않는 죽음의 공간이 되었다.

    …….

    오싹한 정적이 황금 조각상들 사이를 기괴하게 부유한다.

    하나같이 다 일그러진 표정의 황금상들.

    그 무시무시한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지막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지 절로 짐작이 간다.

    나는 협곡 안을 계속 두리번거리며 배회했다.

    저벅… 저벅… 저벅…

    협곡에는 내 발소리만이 고요하게 울린다.

    나는 협곡의 끝에서 끝까지 모두 돌았다.

    살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들이 다 황금에 갇혀 죽었다.

    혹은 철조망에 휘감겨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거나.

    이 시점에서, 나는 시스템 창을 열어 아이템을 점검했다.

    -<피카레스크(Picaresque) 마스크> / 가면 / A+

    사이코 연쇄살인마의 얼굴 가죽을 도려내어 그대로 건조했다.

    쓰는 순간, 집계는 시작된다.

    -특성 ‘연쇄살인’ 사용 가능 (특수)

    -공격력 +13,021

    ※이 가면은 착용자의 카르마 수치를 대신 적용받습니다.

    ※가면을 착용한 순간부터 Kill 수에 따라 공격력이 증가합니다.

    ※1Kill 당 상승하는 공격력은 1입니다.

    ※Kill 수의 집계는 오로지 플레이어 캐릭터에 한정되어 이루어집니다.

    “…끝났네.”

    작업 완료다.

    깡 공격력 1만 3천이라는 엄청난 위업이 그 결과물이었다.

    -<이어진>

    LV: 81

    HP: 810/810

    레벨이 1 상승한 것은 덤이다.

    1만이 넘는 수의 유저들을 학살한 것 치고는 경험치가 조금 짜긴 하지만…개중에는 레벨이 낮은 유저들이 많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오크와 리자드맨들이 서로 죽이거나 도망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을 몰살시켰더라면 조황이 더 좋았겠지만 일단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확이다.

    물이 절반밖에 안 남은 게 아니라 절반이나 남은 것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제 최종단계야.”

    나는 목표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17마리의 고정 S+등급 몬스터.

    이제 정말 그중 하나의 위치에 손이 닿는 곳까지 올라섰다.

    이제는 놈을 끌어내릴 차례다.

    ‘칠흑의 용군주’

    ‘낮으신 분’

    ‘모든 시체들의 소유자’

    ‘불사의 군단이 섬기는 왕’

    ‘분쟁지대의 절대자’

    ‘죽음의 용’

    바로 ‘오즈’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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