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57화 (357/1,000)
  • 358화 선동과 날조 (2)

    <분쟁지대 상황이 심상치 않다 (4)(인증샷X).text>

    ‘무명의 겜덕후 3021’ / (03.21) /20**-**-04/19:03:21/조회 4,576,302/추천 32,982/비추천 4,896

    -대전쟁 날짜는 모레고 인증은 없다. 믿거나 말거나~

    *       *      *

    온 게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게시글.

    이 게시글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대전쟁 신드롬!

    (Great war syndrome)!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썩고 불타는 땅, 제 7분쟁지역’으로 몰려들었다.

    몰려드는 이들의 대부분은 당연하게도 리자드맨들과 오크들이었다.

    인종도, 국적도, 언어도, 장애도, 성별도, 나이도, 기타 현실에 존재하는 그 모든 차이와 차별들도 이 ‘썩고 불타는 땅’ 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이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잣대들로는 감히 나눌 수 없다.

    오로지 하나.

    리자드맨이냐, 오크냐.

    이 물음에 어떤 답을 내놓는가로 나눠질 뿐이다.

    죽음룡 오즈 휘하 ‘불사의 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리자드맨 플레이어들은 레벨과 장비를 떠나 하나의 거대한 집단을 이루었다.

    뛰어난 재생력과 민첩함, 강력한 치명타 공격력을 주 무기로 삼는 리자드맨 전사들이 협곡 북쪽에 포진하자 그 풍경이 가히 장관이었다.

    수많은 대형 길드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중소 길드들, 그리고 가장 숫자가 많은 개개인들이 모이자 그 숫자가 거의 1만에 이르렀다.

    오크들의 수 역시 그에 뒤지지 않았다.

    탐욕성좌 마몬의 휘하 ‘불타는 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오크 플레이어들 역시 레벨과 장비를 떠나 하나의 거대한 집단을 이루었다.

    높은 체력 게이지와 강력한 근력을 주 무기로 삼는 오크 전사들은 협곡 남쪽에 자리를 잡고 눌러앉았다.

    길드 자격으로 참석한 이들과 개인 자격으로 온 이들을 모두 합치면 이들 역시 근 1만에 육박했다.

    의외로 한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지 않았다. 한국인이 적게 모여서가 아니라 외국인들이 그만큼 많이 모인 것이다.

    어제 올라온 일명 ‘3021’의 게시글이 그새 해외에까지 큰 이슈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거의 2만 명이나 되는 전 세계 플레이어들이 한 장소에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거의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 일이었으므로 이를 구경하려 몰려든 구경꾼들 역시도 상당수 존재했다.

    …둥! …둥! …둥! …둥!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각 종족의 언어로 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마몬 님의 지휘를 따라 저 가증스러운 도마뱀 놈들을 으깨 버립시다!]

    [더러운 오크 놈들! 용 진영의 힘을 보여 줍시다! 오즈 만세!]

    [저놈들을 싹 죽여 버리고 종족 킬 수치 확 높여 놓읍시다! 버프 얻을 기회예요!]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황금이 묻혀 있는 곳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다 필요 없고 종족전쟁에서 얻는 경험치는 무조건 두 배라며?]

    2만 명이 넘는 유저들이 각기 자기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

    누구는 돈이 필요했고, 누구는 명예가 필요했고, 누구는 그저 날뛸 자리가 필요했다.

    호기심 넘치는 구경꾼들과 한 몫 잡고 싶은 잡상인, 각종 매체의 취재진들과 어느 편에 가 붙을지 간을 보는 간잽이들까지 모여들자 협곡 안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폭풍전야(暴風前夜).

    누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근 3만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이 협곡의 양편에서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어째 남북 사이에는 기묘한 평화가 흐른다.

    가끔 국소적으로 도발이 터져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전쟁 선포가 나지 않아서 그런가 양 진영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

    […오오 저기 봐! 오크 랭커들이다!]

    리자드맨 진영이 술렁거린다.

    남쪽에 모인 오크 진영이 일순간 반으로 갈라지는가 싶더니 그 사이로 몇 명의 오크 유저들이 걸어 나왔다.

    …쿵! …쿵! …쿵!

    그들이 한번 발을 구를 때마다 옅은 지진과 함께 마른 흙먼지가 풀썩인다.

    고렙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듯 우람한 근육.

    번쩍번쩍 빛나는 고등급 장비들.

    현 오크 랭킹 10위의 초고수 ‘구라이 부랄’과 그가 이끄는 ‘테스토스테론즈’ 길드가 나타났다!

    그들은 현재 오크 길드들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이었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근처에 있던 오크들은 물론 저 건너편 진영에 있던 리자드맨들까지 전율할 정도였다.

    부랄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오크 유저들이여! 썩고 불타는 땅의 기후가 덥다고 축 늘어져 있지 마시오! 곧 눈앞의 저 냉혈동물들의 차가운 피로 우리의 뜨거운 몸을 식힐 것이니!]

    부랄의 외침에 수많은 오크들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뜨겁게 달아오른 심장이 말이다.

    […Orc! …Orc! …Orc! …Orc!]

    온 협곡의 오크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병장기를 높게 들어 올린다.

    한껏 오른 그들의 기세에 남쪽 협곡이 쿵쿵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머저리 돼지들이 꿀꿀 시끄럽구만.]

    리자드맨 진영 역시도 두 갈래로 갈라진다.

    그 사이로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리자드맨들이 있었다.

    장비는 허름했지만 그것들을 장비하고 있는 몸뚱이가 다른 리자드맨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육중한 체급을 가진 도마뱀 몇몇이 오만한 걸음걸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스스…

    리자드맨들은 분명 땅 위를 걷고 있었지만 바닥에는 발자국이 거의 나지 않았다.

    그들의 커다란 덩치를 감안하면 굉장히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현 리자드맨 랭킹 8위의 초고수 ‘안티 니에미’와 그가 이끄는 길드 ‘씬 클럽(club SIN)’의 등장이다!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리자드맨들 사이에서는 가장 큰 대형 길드였다.

    니에미는 날카로운 눈매로 눈앞에 있는 오크 연합을 노려보았다.

    부랄 역시도 부리부리한 눈을 떠 눈앞에 있는 리자드맨 연합을 쏘아본다.

    [뭘 봐? 전쟁 시작되면 감히 내 눈도 못 마주칠 놈이. 하여간 더러운 오크 놈들, 허세만 가득해서는…자신 있으면 이리 들어와 봐!]

    [전쟁 선포만 되어라, 당장 철퇴로 네 머리통을 두들겨 줄 테니. 그것 참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겠어. 그것도 게임 BGM으로 써 주지!]

    리자드맨을 대표하는 대형 길드와 오크를 대표하는 대형 길드가 서로 마주본다.

    양 길드의 마스터들이 최선두에 서서 자존심 대결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모든 종족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우왓!? 부랄과 니에미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저쪽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욕 하는 중이겠지?]

    [부랄이 위풍당당한 것을 보니 가슴이 막 떨린다, 늘 동경하던 랭커였는데!]

    [니에미의 포스도 장난 아니야! 개인으로서도 리자드맨 랭킹 최상위급의 랭커지만 집단을 통솔하는 데도 도가 튼 양반이잖아!]

    수많은 리자드맨과 오크들이 각자 경외심을 품은 채 수군거린다.

    아직 전쟁이 선포되지는 않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저 둘과 그들이 이끄는 집단들이 아마 최선봉에 서게 될 것이다.

    이곳에 모인 모두는 곧 터질 상황에 대비하며 심장에 펌프질을 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소문에 의하면 곧 전쟁이 선포될 가능성이 높았다.

    거대한 대형 몬스터들이 등장해 필드를 조여 올 것이고 양 진영의 수많은 병사들이 미친 듯 돌격하게 될 것이다.

    시체의 산이 쌓이고 피의 바다가 넘실거리게 되리라!

    몇몇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들이 이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촉즉발(一觸卽發).

    누군가 피 한 방울만 흘려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협곡에는 핏물의 강이 흐르게 될 운명이었다.

    바로 그때.

    […으아니? 저어기, 협곡 위에 뭔가 있다!]

    어디선가 어눌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남자의 목소리.

    오크 쪽에서 나온 소리였는데 정작 오크 유저들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어눌한 발음.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전쟁! 전쟁 글을 올린 사람! 저기 협곡 위에 등장! 모두들 주목해야 할 필요 느낀다!]

    아까보다 더 어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한 여자의 목소리.

    리자드맨들 쪽에서 나온 소리였는데 마찬가지로 리자드맨 유저들에게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어색한 억양과 발음이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뜻은 전해졌다.

    리자드맨과 오크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점점 크게 번져나갔다.

    일파만파 뻗어나가는 소문.

    결국 그 동요의 움직임은 리자드맨 진영과 오크 진영 맨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두 패자(霸者)들에게도 전해졌다.

    […음?]

    […뭐라고?]

    부랄과 니에미는 길드원들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이 협곡에 모인 3만 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협곡의 까마득한 위에는 하나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주목! 모두 여기를 봐 주세요!”

    정체불명의 존재.

    그는 유창한 리자드맨어와 오크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리자드맨도 오크도 그의 종족을 구분할 수 없었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데다가 태양도 등지고 있었기에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심지어 리자드맨어와 오크어를 둘 다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뭐야? 저놈이 전쟁글 올린 놈이야?]

    [주목하라는 건가? 왜 저기 올라가 있어?]

    […그냥 관심종자 아닌가?]

    [야! 니가 3021이냐!? 내려와! 쏴 죽여 버리기 전에!]

    [다 시커먼데 왜 눈만 누렇게 반짝거리냐?]

    [종족을 밝혀라! 넌 어느 편이냐!]

    협곡 밑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낸다.

    검은 후드 때문에 정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하지만.

    협곡 밑에 모인 3만 명의 플레이어들은 곧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

    [………!?]

    [……!?]

    […!?]

    [!?]

    협곡 위를 노려보던 이들의 웅성거림이 급속도로 잦아든다.

    번쩍-!

    협곡 위에 선 존재의 검은 후드 속.

    “치-즈!”

    불길하게 반짝이는 황금색 눈빛과 시선을 마주하고 난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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