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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55화 (355/1,000)
  • 356화 용감한 선택 (9)

    “끼야아아아악!”

    조디악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피아식별이 불가능한지라 상대방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었기에 조디악 놈이 처음 입을 여는 순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걸렸구만.’

    나는 조디악을 찌른 손에 힘을 주었고 그대로 몇 번인가 더 쑤셨다.

    “끄르륵… 끄르르륵…”

    조디악은 목에 구멍이 났는지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한다.

    싸아아아…

    내 손에 닿는 놈의 체온이 갑자기 급격하게 낮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피학성애(被虐性愛)’ 특성이 또 발현된 모양이다.

    이 특성은 이론 상 발동 한계가 없지만 사용자의 수준보다 계속 2랭크씩 떨어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소멸에 이를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피학성애 특성이 발동되기까지는 몇 분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사이 시체를 훼손해 버린다면 부활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뼈도 못 추리게 해 줄게.”

    나는 조디악을 그 자리에서 아주 산산조각 내 버렸다.

    살이 없어 좀비로도, 뼈가 없어 스켈레톤으로도 부활하지 못하게끔.

    바로 그때.

    [갸아아아악!]

    갑자기 뒤에서 비명 소리가 하나 더 터져 나왔다.

    “…!?”

    내가 고개를 돌리자 빈사상태의 데스나이트가 잘려나간 손톱으로 벽을 긁으며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급작스러운 상황, 내가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어진아! 내가 잡아 놓을게!”

    “어진! 숙여라!”

    윤솔과 드레이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파팟! 퍼퍼퍼퍼퍽!

    윤솔이 신성불가침 특성을 발현해 데스나이트의 발을 묶었고 드레이크가 작정하고 쏘아 보낸 장전(長箭)들이 다 부서져가는 갑옷을 뚫고 틀어박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스나이트는 움직이고 있었다.

    놀랍게도, 놈이 손톱을 들어 한 최후의 행동은 반격이 아니었다.

    푸욱!

    놈은 부러진 손톱들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써걱…! 썩…! 쓰윽…! 뚝!

    윤솔과 드레이크가 경악하는 도중,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머리를 몸에서 떼어내 손에 쥐었다.

    [큭큭큭큭…]

    적폐망령!

    이 사이코 버그는 숙주로 삼은 데스나이트의 몸이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본체를 떼어 낸 것이다!

    부웅…!

    데스나이트는 자신의 머리, 즉 적폐망령의 본체를 반대편에 있는 천장 벽으로 집어던졌다.

    그곳에는 전에 인간 지네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고 적폐망령의 목은 포물선을 그리며 그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허어.”

    나는 기가 막혀 입만 딱 벌릴 뿐이다.

    하지만 지금 저 높은 곳을 기어 올라가 어디로 갔는지 모를 목을 추격할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은 천천히 붕괴하고 있으니까.

    윤솔과 드레이크가 그런 나를 부축했다.

    “걱정 마 어진아, 내가 계속 힐을 걸면 돼. 아휴, 이거 HP 빠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네. 역시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리치 왕의 심장을 어딘가에 설치하고 왔어야 했을까?”

    “으음, 힐러의 마력에도 한계가 있지. 어서 신관을 찾아보자. 근처에 마을이….”

    하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보상! 보상을 보자!”

    나는 안 그래도 뻘건 눈을 더욱 시뻘겋게 떴다.

    저 앞에 목이 떨어져나간 데스나이트의 육체가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는 플레이어들의 싸움에는 가급적 관여하지 않았던 잭 오 랜턴이 슬픈 기색으로 서서 데스나이트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는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닐세. 그 누구보다도 용감했다네. 마지막까지 말이야.]

    잭 오 랜턴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금 숙연해졌다.

    물론 이번 레이드에서 잭 오 랜턴은 별로 활약한 바는 없다만, 그래도 조디악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 누구보다 고생했을 녀석이 바로 이 호박머리였으니까.

    잭 오 랜턴은 불카노스 대낫을 들었다.

    …퍽!

    낫 끝이 데스나이트의 가슴팍에 꽂혔다.

    츠츠츠츠츠-

    이내 데스나이트의 몸이 검은 가루로 변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잭 오 랜턴은 소멸한 데스나이트의 육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은 부분은 갈기털이다.

    예전에 겁쟁이 새끼 사자가 목에 둘러 주었던 갈기털 목도리를 떠올린 잭 오 랜턴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묵묵히 서 있었다.

    한편.

    우리들의 귓가에는 요란한 알림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링!

    <세계 최초로 ‘불사(不死)의 우군단장 데스나이트’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불사의 우군단장’이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는 영영 부활하지 못합니다.>

    <용 진영 ‘불사의 군단’의 사기가 감소합니다.>

    <불사의 군단 우익의 세력구도가 크게 바뀝니다.>

    <‘흡혈귀’ 일족이 두려워합니다.>

    <‘좀비’ 일족이 두려워합니다.>

    <‘구울’ 일족이 두려워합니다.>

    <‘미이라’ 일족이 두려워합니다.>

    <‘몽마(夢魔)’ 일족이 두려워합니다.>

    <‘고스트’ 일족이 두려워합니다.>

    <‘...’ 일족이...>

    <‘...’ 일족...>

    드디어 ‘낮으신 분’ 휘하의 두 맹장(猛將)을 꺾었다.

    죽음룡 오즈가 부리는 ‘불사의 군단’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기로 소문난 언데드 쌍두마차의 목을 모두 따 버린 것이다.

    동시에.

    <‘낮으신 분’이 ‘고인물’ 님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올 것이 왔다.

    벌써 두 번째 겪는 일이다.

    츠츠츠츠츠…

    이내 내 앞에 죽음룡 오즈의 얼굴이 형상화되기 시작했다.

    [너, 나의 좌군단장아.]

    오즈는 내게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의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어찌하여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너는 응당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오즈는 내게 구구절절한 설교를 늘어놓고는 마지막에 용건을 말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너라.]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오즈의 환영은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고 장내에는 다시 공허함만이 남았다.

    “이제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었군. 뭐,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지.”

    나는 오즈의 핏발 선 눈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어서 데스나이트가 떨어트린 보상을 챙겨 오즈와 싸우러 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 제일 먼저 할 일은 언제나 상태창 점검이지.”

    상태창을 열어 보는 것은 언제나 분량을 꽤나 잡아먹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좀 봐줘야 한다. 기껏 엘리트 보스 몬스터를 거꾸러트린 참이니.

    -<이어진>

    LV: 80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不死)의 우군단장(특전: 선택)

    HP: 800/800

    리치 왕을 잡았을 때보다 경험치가 더 올랐다. 적폐망령 때문일까?

    총 3번의 연속 레벨 업.

    거기에 ‘불사(不死)의 우군단장’이라는 칭호가 새로 생겼다.

    새롭게 얻은 특전은 ‘선택’

    예전에 어둠 대왕을 잡고 얻은 특성과 성능이 동일하되 그 효력은 더욱 강해졌다.

    ‘그러고 보니 어둠 대왕을 잡고 얻은 특전은 사라졌네.’

    아무래도 특성이 중복되다 보니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먹어치운 것 같다.

    문득 여덟 다리 대왕의 특성 ‘불완전변태’를 발동했을 때 어둠 대왕의 특성 ‘선택’이 무효화되었던 것이 떠오른다.

    그때 나를 도와주었던 목소리는 분명 사자심왕 리차드의 것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니 겁쟁이 새끼사자 역시도 오즈와 아버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던 적이 있었지.’

    데스나이트가 준 특전은 이런 히스토리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의 ‘선택’ 특성을 계승했으니 예전보다 더욱 더 강한 힘을 손에 넣게 된 셈이다.

    이제는 불완전변태 모드에서 윤솔과 조디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 와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드레이크 역시 두 번의 레벨 업을 했고 윤솔도 세 번의 레벨 업을 했다.

    이제 둘의 레벨은 각각 71과 68.

    지금 세계랭킹의 탑 티어 랭커들과 비교해 봐도 까마득히 높은 수준이다.

    “자, 이제 아이템을 챙겨 볼까.”

    나는 윤솔에게 힐을 받으며 재빨리 바닥을 뒤졌다.

    잭 오 랜턴이 서 있는 옆으로 아이템 두 개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데스나이트 사자심왕(獅子心王)의 갈기> / 망토 / S

    목을 둘러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갈기.

    그 풍성한 망토를 걸친 자는 모든 이들로부터 거룩한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민첩 +5,000

    -이동속도 +50%

    -파괴불가 (특수)

    -특성 ‘앙버팀’ 사용 가능 (특수)

    더 말해 무엇하랴? 그야말로 최고의 아이템이다!

    가뜩이나 희귀한 민첩 스탯이 어마어마하게 붙었다.

    거기에 이동 속도를 50%나 상승시켜 줄 뿐만 아니라 ‘파괴불가’에 ‘앙버팀’ 특성까지 따라오니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이 아이템을 보는 순간 윤솔도 드레이크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널 위한 맞춤 아이템이네.”

    “축하한다, 어진.”

    모두의 암묵적인 동의와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나는 망토를 착용했다.

    데스나이트의 압도적인 기운이 서린 사자갈기가 나의 몸을 시커멓게 감싼다.

    마치 마왕이라도 된 듯한 위엄.

    ‘…알몸만 아니었어도 더 간지가 나려나?’

    하지만 뭐 상관없다.

    나는 드레이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드레이크, 망토 안 필요해?”

    내가 그에게 건넨 것은 ‘앙버팀’ 특성이 붙어 있는 망토였다.

    -<샌드웜의 가죽> 망토 / A+

    샌드웜은 충왕족(蟲王族) 몬스터 중 가장 크고 강하며 또한 고고한 존재이다.

    여지껏 수많은 세력들이 이 거대한 존재를 붙잡아 전술적으로 이용하려 하였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한 사례가 없다.

    -방어력 +500

    -특성 ‘흙장난’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앙버팀’ 사용 가능 (특수)

    예전에 샌드웜 레이드에서 얻은 것으로 무려 ‘삼신기(三神技)’ 중의 하나로 통하는 아이템.

    이 아이템 하나를 얻기 위해 몇 명의 경쟁자가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가!

    하지만 나는 그보다 상위호환인 데스나이트의 망토를 얻었으니 이제 샌드웜의 망토는 필요 없다.

    한편,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고개를 저었다.

    “나보다는 이 친구에게 더 어울릴 것 같군.”

    드레이크는 윤솔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윤솔이 힐러이다 보니 위기에 자주 노출되기에 한 말일 것이다.

    ‘…그도 그렇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드레이크는 샌드웜 망토를 윤솔에게 넘겼다.

    “고, 고맙습니다. 아휴 저는 이번에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무슨, 네가 없었다면 나는 벌써 인간지네에게 죽었을 것이다.”

    윤솔은 겸손하게 배꼽인사를 하며 드레이크가 건네는 망토를 받았다.

    한편.

    드레이크가 두 번째 아이템을 습득했다.

    -<임모탈(immortal)> / 재료 / ?

    맨들맨들한 그 모습은 ‘불멸(不滅)’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것은 반으로 쪼개진 구슬이었다.

    전에 리치왕을 잡고 나온 아이템과 완전히 동일해 보였다.

    윤솔과 드레이크는 서로가 얻은 반쪽짜리 구슬을 하나로 합쳤다.

    <……아이템 융합 중입니다. 전원을 끄지 마세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의 알림음이 떴다.

    불멸의 구슬.

    나는 완전히 합쳐진 이 정체불명의 검은 구체를 향해 눈을 빛냈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

    고정 S+급 몬스터, ‘죽음룡 오즈’

    이 세계를 17조각으로 나누어 지배하는 ‘장막 뒤의 존재들’ 중 하나를 무대 밑으로 끌어내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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