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53화 (353/1,000)

354화 용감한 선택 (7)

“뭘 쪼개. 쪼개지고 싶냐?”

나는 데스나이트의 손톱 하나를 콱 움켜쥐었다.

우득-!

손톱 끝부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힘이 넘친다.

“핫챠!”

내가 힘차게 고함을 지르는 동시에.

뚜-욱!

데스나이트의 손톱이 결국 부러져 버렸다.

산산조각으로 쪼개지는 손톱의 파편들.

[……!?]

데스나이트, 아니 적폐망령은 허연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그래, 놀랍겠지. 새로 얻은 육체가 최강인 줄 알고 한껏 자만해 있었을 테니까.

…뚝! …뿌득! …따악!

나는 내 몸을 꿰뚫고 있는 다른 손톱마저 깡그리 부러트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츠츠츠츠츠!

검붉은 아우라가 내 전신을 휘감아 불태우고 있었다.

마치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용암과 매연이 뒤섞인 듯한 기운.

그 뜨겁고도 압도적인 기운 사이로 내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빛이 섬뜩하게 빛난다.

-<이어진 폴다운 모드>

LV: 77

호칭: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버서커, 혹은 베르세르크 모드라고 불리는 여덟 다리 대왕의 타락 버전.

나는 부유섬의 대왕 큘레키움을 잡고 얻은 이 특성으로 인해 죽음에서 되살아났다.

(옷을 하나도 안 입고 다니는 ‘완전 변태’인 내가 ‘불완전변태’ 특성으로 인해 우화한 것은 뭔가 좀 모순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스탯창을 켜 보았다.

“…우와, 이건 진짜 엄청나군.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인데?”

각종 스탯들이 모두 엄청나게 폭증해 있는 상태.

그 광경은 실로 경이로웠지만…여백이 부족하여 굳이 다 설명하지는 않겠다.

뭐, 아무튼.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이 마지막에 그랬듯, 나는 원래 전투력의 10배에 해당하는 뻥튀기 스탯을 갖게 되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버프는 단순히 캐릭터의 각종 수치들만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증가된 수치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엄청나게 새롭다.

마치 50대의 몸이 10대의 몸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전신에 활력에 넘치게 되는 것은 물론 힘이 세지고 체감 몸무게가 감소하며 마력도 충만해진다.

평소라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신위(神威)를 일상 활동처럼 선보일 수 있으며 크리티컬로 인한 치명타를 평타처럼 마구 띄울 수도 있다.

특히나 나의 경우는 버프로 인해 증가하는 수치가 다른 버프들에 비해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날 정도이니, 지금 내가 느끼는 쾌감은 도저히 글로는 서술 불가능한 것이다.

‘게이머한테 참 좋은데…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물론 아무 딜레이 없이 한순간에 얻게 된 이 엄청난 힘에 아무런 제약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간제한 ‘100초’

이 안에 상대를 쓰러트리거나 뭔가 다른 회복수단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죽게 된다.

고작 2분도 되지 않는 시한부 목숨인 셈.

-띠링!

[HP가 감소합니다]

-띠링!

[HP가 감소합니다]

-띠링!

[HP가 감소합니다]

-띠링!

[HP가 감소합니다]

.

.

붉게 물든 상태창이 실시간으로 요동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초당 1%의 HP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힐 마법을 받지 않으면 꼼짝없이 90초 뒤에는 사망 로그아웃될 것이다.

“미안한데, 형이 시간이 별로 없다. 빨리 끝내자.”

그 자리에서 바닥을 박찼다.

…콰콰쾅!

내 몸이 작살처럼 쏘아져 나간다.

볼 살이 뒤로 확 잡아당겨질 정도의 속력!

내가 내 놓고 내가 놀랄 정도의 폭발력이 한 발을 땅에 내리찍을 때마다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끄륵!?]

데스나이트는 감히 내 움직임에 반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쌔애애애앵-!

평소에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 민첩하던 나의 나체는 그야말로 질풍과도 같다.

움직임만으로 폭풍을 만들어 낼 정도로 빠른 달리기!

…퍼펑!

나는 데스나이트의 정면까지 달려 들어갔다가 외발 턴을 돌아 놈의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푸푹!

갑옷과 갑옷 사이의 간극으로 가볍게 깎단을 찔러 넣는다.

[크륵!?]

데스나이트는 그제야 몸을 돌려 나를 향해 손톱을 내리찍으려 했지만…….

“어.딜.보.시.는.거.죠? 그건 제 잔상입니다만. 크큭.”

그때는 이미 내가 그 자리를 떠나 놈의 등을 잡고 있을 무렵이다.

‘몸무게가 거의 안 느껴지네. 하지만 공격을 할 때의 묵직한 감각은 예전 그대로…아니 훨씬 더 무거워졌나?’

나는 바로 시험해 보기로 했다.

콰쾅! 콰콰콰쾅!

나는 마동왕 모드로 변신해 두 주먹으로 데스나이트의 등갑을 두들겼다.

와류와 지진, 넓은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위력의 광역기가 1:1 기술로 변해 데스나이트의 몸 국소부위에 내리꽂힌다.

거의 초당 데미지로 때려박히는 광역기.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지만… 지금 나의 스탯은 불완전변태 특성 탓에 10배로 불어나 있는 사기적인 상태가 아닌가!

쭉! 쭉쭉쭉! 쭉! 쭉쭉쭉!

이게 무슨 소리냐고?

대학생들이 MT가서 술 마시는 소리가 아니다.

이건 데스나이트의 HP바가 요동치는 소리다.

[크아아아악!?]

데스나이트는 눈 깜빡이기가 무섭게 폭락하는 자신의 체력을 보며 경악해야 했다.

하지만 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놀라는 것이 전부다.

부웅-

손톱을 휘두르거나 발길질을 할라 치면 나는 이미 그 자리를 훌쩍 벗어나 있으니까.

[끄륵!?]

데스나이트는 이를 갈았다.

놈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또다시 갈기털을 바늘처럼 폭사한다.

피피피피피픽!

장침과도 같은 털오라기들이 돌기둥이나 바닥, 벽면에 퍽퍽 틀어박혔다.

내 몸뚱이 역시도 수많은 털바늘들에 피격당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넌 이제부터 내 모습을 볼 수 없다.”

나는 데스나이트의 뒤에 서서 중학교 2학년도 읊조리지 않을 대사들을 내뱉을 뿐.

쓰지도 않은 안경을 고쳐 쓰는 시늉을 하면서 말이다.

‘…이런 대사 한번쯤 해 보고 싶었어.’

나는 데스나이트의 피지컬을 말 그대로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각종 스탯 수치의 평균치를 놓고 보자면 데스나이트가 나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놈은 S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특성치나 종족값 면에서 최상위권에 위치하는 엘리트 몬스터이니까.

하지만 싸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요소.

바로 ‘민첩’!

이 스탯의 압도적인 격차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주요인이다.

아무리 공격력이 강하면 뭘 하나? 상대를 맞출 수가 없는데.

아무리 방어력이 강하면 뭘 하나? 그저 맞기만 할 뿐인데.

“느.려.”

데스나이트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품질 좋은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쾅!

나는 두 주먹으로 무한궤도 그리며 계속해서 데스나이트의 전신을 두들겼다.

“어휴, 데 사장님. 많이 뭉치셨네.”

데스나이트의 목과 어깨, 등과 허리를 비롯하여 다리 전반에 걸친 전신경락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기관총이 탄알을 발사하듯 뻗어나가는 주먹, 동시에 내 몸에서 피어오르는 검붉은 아우라가 마치 기관차가 폭주하며 내뿜는 증기처럼 펑펑 뿜어져 나간다.

주먹 한 방 한 방이 자연재해에 필적하는 내 주먹을 이렇게 무수히 받아내고 있는 데스나이트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이놈은 조디악 레이드에 의해 이미 상당한 체력이 깎여나간 뒤가 아닌가!

‘조금만, 조금만 더……!’

한편 나 역시도 꽤나 초조한 심경이었다.

벌써 내가 버서커 모드에 들어간 지도 40초가 넘게 흘렀다.

이제 시간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1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흘러가는 1분이 될 것 같다.

“밤 10시가 되면 데승년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데스년 여러분은 호흡을 종료하고 운명해 주십시오. 빨리 좀!”

나는 사력을 다해 데스나이트를 두들겼다.

그 누가 그랬던가?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고.

내 간절한 기원이 통한 것일까?

…휘청!

난공불락으로만 보이던 데스나이트가 몸을 휘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끝났다!’

머릿속에 이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S급 몬스터들은 자존심이 세서 절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탑 급에 위치한 놈이 바로 데스나이트!

언제나 위엄을 중시하는 이놈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숨기지도 않을 정도면 이미 빈사상태라고 봐도 좋다.

굳이 상태창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바로 확인사살에 들어갔다.

쾅! 콰쾅! …우지지직! 퍼펑! 펑! 콰쾅!

나는 계속해서 주먹을 날려 데스나이트의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발, 무릎, 발, 머리, 어깨, 무릎, 귀, 코, 귀를 모조리 뭉개 버렸다.

와자작! 와작! 빠드작!

데스나이트의 검은 장갑(裝甲)이 서서히 가루가 되어 흩날린다.

츠츠츠츠츠…

그와 동시에 내 몸도 부서져 가는 것이 느껴진다.

검붉은 연기로 변해 스러져 가는 나의 육체.

하지만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놈은 데리고 가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라 내 몸뚱이야!’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

데스나이트, 아니 적폐망령 이놈도 사력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이 보인다.

프로그램, 인공지능의 한계를 넘어. 오로지 나를 향한 살의(殺意) 하나로 말뚝처럼 버티는 것을 보니 경이로울 정도.

몬스터를 상대로 미약하게나마 존경이라는 감정을 품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다!”

나는 건틀릿의 내구도가 한계에 이른 것을 확인하고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콰쾅!

대기가 몇 겹으로 수축했다가 팽창하기를 반복하며 격렬하게 뒤틀린다.

검붉게 물든 내 주먹이 자욱한 증기를 뿜어내며 데스나이트의 안면 정중앙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천원돌파(天元突破)’

내 주먹은 하늘을 뚫을 주먹이다!

나는 주먹의 끝, 극점(極點)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벽이든 데스나이트의 중장갑이든 이 한 방으로 뚫어 버릴 생각이다.

그때.

[…푸스스스. 고생했어. 거기까지야.]

내 귀에 들려온 이 기분 나쁜 속삭임만 아니었어도 분명 그것이 가능했을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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