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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52화 (352/1,000)
  • 353화 용감한 선택 (6)

    드레이크가 당황해 외쳤다.

    “…어진!?”

    나는 대답했다.

    “진정해. 아직 안 잘렸어.”

    그렇다.

    내 목은 조디악에게 잡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몸에서 아직 떨어져 나가지는 않았다.

    다만 무기력한 상태로 조디악에게 멱살을 잡혀 있을 뿐이다.

    ‘우와, 이거 진짜 큰일 났네.’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눈알을 굴렸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몰렸더라?

    *       *       *

    나와 조디악, 그리고 적폐망령 데스나이트는 붕괴물 속 넓은 공동에 갇혀 있었다.

    [그르르르륵…!]

    데스나이트는 돌아 버린 눈으로 나와 조디악을 향해 열 자루의 칼날을 겨눴다.

    사자 계열 수인의 손톱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A+등급의 칼과도 같다.

    저것들에 맞으면 활어시장에서 고른 횟감마냥 당장에 몸이 토막 쳐지겠지.

    나는 옆에서 신음하는 조디악을 향해 핀잔을 주었다.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어. 왜 마지막에 스틸을 당해서는.”

    “…버그 몬스터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별 수 없다. 이 상황에서는 일단 조디악과 손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콰쾅!

    데스나이트가 열 자루의 칼날로 나의 공간을 좁혀 온다.

    쿠르륵…!

    조디악이 시커먼 불길을 일으켜 방화벽을 만들었지만 데스나이트는 그것을 그대로 뚫고 달려왔다.

    나는 조디악에게 또다시 핀잔을 주었다.

    “야, 멍청아, 불로 돌을 막을 수 있냐? 속성 방어로 물리 공격을 막으려고 하면 어떡해.”

    “이 지랄맞은 놈아, 좀 닥쳐!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단 말이다!”

    조디악은 그답지 않은 실수가 민망한 듯 불의 벽을 거두고는 다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붕괴물 곳곳에 있던 시체들이 몸을 일으켜 한 곳으로 모여든다.

    …우드득! …우득!

    일전에도 봤던 솜씨다.

    조디악은 시체들의 살점과 뼈를 모아 커다란 육벽(肉壁)을 만들어 세웠다.

    하지만.

    콰-쾅!

    데스나이트는 조디악이 세운 시체의 벽을 너무나도 쉽게 뚫어 버렸다.

    나는 조디악에게 또다시 핀잔을 주었다.

    “멍청아, 언데드는 되살려 낼 때마다 1~2랭크씩 떨어지잖아. 너는 너무 여러 번 되살려 내서 시체들이 다 흐물흐물해졌겠다. 곰탕 뼈도 한두 번 우려먹어야 국물이 진하지. 이거 완전 맹물 벽이네.”

    “…이 빌어먹을 훈수충 자식, 진짜 열 받게 하네. 너는 반드시 내가 죽여서 언데드로 되살려 주마.”

    하지만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니다.

    데스나이트는 어느새 나와 조디악의 바로 앞까지 쳐들어왔다.

    조디악은 내게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정말 싫은 일이지만 일단 너와는 손을 잡아야 할 것 같…?”

    하지만 그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사사삭-

    나는 ‘흙장난’ 특성이 있는 샌드웜의 망토로 전신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50%의 확률이 적중했다.

    나는 데스나이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고 놈의 눈앞에 남은 상대는 오직…

    “젠장! 이 변태 놈! 너는 진짜배기 쓰레기다!”

    조디악은 데스나이트에게 쫓기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아니었더라면 그는 탑 밖으로 훌훌 도망갔을 테지만 어쩌다 보니 이런 좁은 공간에 갇혀 버린 것이다.

    “테, 텔레포트 스크롤이 어디 있지?”

    조디악은 인벤토리를 뒤져 스크롤을 찾았다.

    하지만 물론 그것을 꺼내 찢고 발동되기를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그아아아악!]

    데스나이트가 한쪽 손에 달린 다섯 개의 손톱을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쩌저저저적-

    돌기둥이 세로로 잘게 쪼개졌다.

    마치 스파게티 면처럼 빽빽하게 잘려나가는 기둥들.

    그 빼곡한 세로의 사이로 데스나이트가 뛰쳐나온다.

    …콰쾅!

    마치 폭탄이 터진 듯 사방팔방으로 돌조각이 비산한다.

    “…젠장.”

    조디악은 한때 무투가 메타였던 몸. 휘둘러지는 데스나이트의 손톱을 피해 머리를 숙이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데스나이트의 무기는 단순히 손톱 하나뿐만이 아니다.

    퍼퍽!

    묵직하게 내리꽂히는 미들킥!

    단단한 갑주 위에 돋아난 뿔과 각종 요철들은 조디악의 허리 근육을 끊고 그 안쪽의 뼈를 부러트려 놓기에 충분했다.

    “크학!?”

    조디악의 입 속에서 내장 조각과 핏물이 뒤섞여 튄다.

    예전 금광 레이드 당시 리자드맨들에게 기습당했을 때의 경험으로 고등급의 갑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만약 방어구가 변변찮았더라면 이 일격에 상반신과 하반신이 양분되었을 것이다.

    우지지직!

    조디악은 돌 벽에 내팽개쳐졌다.

    “끄아아아악!”

    놈은 두 손으로 벽을 긁으며 바둥거렸다.

    데스나이트의 발길질에 걷어차인 것도 큰 데미지이지만 그보다 더한 것이 있었다.

    하필 벽에는 툭 튀어나온 가고일 석상이 있었는데 그 날카로운 뿔끝이 조디악의 배를 뚫고 튀어나온 것이다.

    [큭큭큭큭…]

    데스나이트는 그런 조디악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긴 손톱을 들어 조디악과 가고일 석상을 동시에 썰어버릴 기세로 손을 휘두른다.

    부웅-

    손톱보다 앞서서 다가오는 날카로운 바람에 조디악의 전신에 얕은 잔상처들이 생긴다.

    찰나의 순간, 조디악은 판단을 내려야 했다.

    “…크윽!”

    조디악은 가고일의 뿔에 꿰뚫린 몸을 그대로 옆으로 이동했다.

    뿔에서 몸을 빼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뿌지직-

    허리의 살점이 뭉텅이로 찢어졌다.

    그러니까 허리의 거의 3분의 1가량이 잘려나간 셈.

    현실과 게임의 육체가 동화율이 높아 고통이 상당할 것이다.

    일반인이었더라면 이런 방식의 탈출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조디악 역시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레쉬 나이한 증후군이 아니었더라면 고통에 겨워 기절했겠지.

    하지만 지금 그는 통증이 아니라 분노에 겨워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끄아아아아! 뒈져라! 이 새끼!”

    조디악은 달려드는 데스나이트를 향해 손바닥을 쫙 뻗었다.

    …쿠르륵!

    이글거리는 불꽃이 데스나이트의 안면을 가차 없이 지졌다.

    언데드 병사들을 부리는 흑마법사가 모든 병사들을 잃었을 때 단신으로 낼 수 있는 최대의 화력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언데드계의 정점에 서 있는 데스나이트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

    퍼-억!

    불길을 가른 다섯 자루의 손톱이 조디악의 몸을 파고들었다.

    “켁!”

    조디악은 변변찮은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축 늘어져 버렸다.

    명백한 리타이어.

    데스나이트는 시체가 된 조디악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츠츠츠츠…

    그곳에는 망토자락을 걷고 모습을 드러낸 내가 있었다.

    “간만이야, 적폐망령.”

    고인물을 넘어서 기괴하게 변질되어 버린 놈을 부르기에 적절한 호칭이다.

    [크르륵…크큭!]

    기괴한 신음소리를 내며 나를 노려보는 망령.

    놈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데스나이트에게 기생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본디 처음 시작은 나를 카피했던 도플갱어에서 출발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데스나이트는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콰쾅!

    놈은 묵직한 진각(進脚)을 밟으며 나를 향해 쇄도했다.

    “와 봐.”

    나는 자세를 낮추고 그런 데스나이트와 정면으로 맞섰다.

    쩌-엉!

    놈의 손톱이 내 몸을 토막내려 드는 순간, 내 심장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패륜아’ 특성이 한계까지 개화되었다.

    콰쾅!

    나는 반사데미지를 뿜어내 데스나이트의 전신을 요격했다.

    물론 나는 앙버팀 특성이 있는 덕에 HP가 1남은 상태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데스나이트도 앙버팀 특성이 있었지.’

    뭐 어차피 데스나이트 정도 되는 몬스터를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이 세계관 속에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앙버팀 특성은 데스나이트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특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혈액포식자 특성으로 데스나이트에게서 HP를 흡수했다.

    얼마 되지 않는 체력이 다시 확 늘어난다.

    까락…

    깎단이 데스나이트를 향해 겨누어졌다.

    틈을 봐서 잘 찔러 넣은 뒤 무한 앙버팀, 패륜아, 혈액포식자로 버티기만 한다면 나의 승리다.

    하지만.

    [큭큭큭큭…]

    데스나이트는 내 기억에 없던 공격 패턴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차라락!

    놈의 사자갈기가 빳빳하게 서기 시작했다.

    내가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데스나이트의 갈기털이 사방팔방으로 쏘아져 나간다.

    피피피피피피피핏…!

    하나하나가 대바늘에 필적할 정도로 길고 빳빳한데다가 날카롭기까지 한 털오라기다.

    잔 데미지를 넓게 뿌리는 이런 무작위의 종류의 공격이 내가 가장 성가셔하는 패턴.

    풀 HP 상태에서만 발동되는 앙버팀 특성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데다가 운 좋게 HP가 1남은 상태로 살아남는다고 해도 혈액포식자 특성을 발동하기 전에 잔 데미지를 입어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으윽! 첫 클리어라 그런가? 이런 패턴은 계산에 없었는데…!’

    나는 이를 악물고 털 바늘들을 피해 달렸다.

    하지만, 이 적폐망령 놈은 교활하게도 내가 도망칠 궤도를 미리 딥러닝으로 학습해 둔 상태였다.

    예전에 도플갱어, 도플갱어 카이저 시절 나와 붙었던 데이터가 있었기에 이미 어느정도 나의 움직임 궤도를 간파했던 모양.

    …퍽!

    도망치던 내 종아리에 데스나이트의 손톱 한 자루가 꽂혔다.

    “큭!?”

    단순히 종아리를 찔린 것뿐이지만 HP는 순식간에 1로 떨어졌다.

    나는 한쪽 손으로 포션을 꺼내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혈액포식자를 시전했다.

    ‘할로윈 구름과자라도 있었다면!’

    하지만 그것은 리치 왕 레이드에서 전부 소진해 버린 지 오래다.

    까락- 우적!

    막 포션 병 하나가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다.

    코르크 마개를 뽑을 시간도 없었기에 병 주둥이를 이빨로 깨물어 부숴야 했다.

    달짝지근한 액체와 유리 부스러기들까지 함께 삼켜야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별 수 없다.

    꿀꺽… 꿀꺽…

    동시에 데스나이트에게서 뽑아낸 혈액이 내 손가락으로 빨아들여진다.

    허나 데스나이트의 손톱이 떨어져 내리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뿌각!

    결국 나의 몸은 데스나이트의 손톱에 의해 관통되었다.

    어떻게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공격이었다.

    HP 0.

    내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큭큭큭큭큭.]

    적폐망령 데스나이트.

    이놈은 드디어 오랜 숙원을 풀었다는 듯 허리를 굽히고 목소리를 낮춰 웃어댔다.

    실로 교활하고 음흉한 환희였다.

    ……하지만.

    “쪼개긴.”

    이내 들려온 내 목소리가 데스나이트의 희멀건한 두 눈을 찢어질 듯 벌어지게 만든다.

    벌떡!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튀어 오르듯, 죽자마자 제자리에서 힘차게 일어나는 나를 본 데스나이트의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가 떴다.

    한편.

    나는 전신에서 미칠 듯이 펄떡거리는 생기(生氣)와 활력(活力)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오오오!”

    죽었다 깨어난 기분이 이럴까? 말로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기분.

    유소년 시절, 햇살이 잘 드는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의 어느 주말 아침처럼 전신에 힘이 넘친다.

    고개를 돌리자 붉은 색으로 변한 상태창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진 폴다운 모드>

    LV: 77

    호칭: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을 쓰러트리고 얻은 특성 ‘불완전변태’

    일명 ‘버서커’ 모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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