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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51화 (351/1,000)

352화 용감한 선택 (5)

…콰쾅!

인간 지네가 또다시 벽돌층 뒤로 넘어갔다가 반대편에서 튀어나왔다.

윤솔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미리 안전한 구역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탑이 붕괴해서 떨어지는 동안 위층의 지형지물은 전부 숙지했어. 어떤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어디에 어떤 모양의 벽돌이 튀어나와 있는지 말이야. 그 덕분에 인간 지네가 어디에 부딪쳐서 어디로 튕겨 나올지 모두 예측 가능했지.”

윤솔의 말을 들은 김정은은 이를 악물었다.

“이년! 처음부터 우리를 이용해먹을 작정이었구나!”

“…뭐야 설마 내가 너희와 손을 잡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진심으로?”

윤솔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누굴 바보로 아니?”

”……뭐, 뭐?”

“내 직업이 성직자고 또 어진이랑 있을 때 맨날 헤헤 웃으니까 마냥 착한 호구로 보였나 본데…너희들 생각 크게 잘못했다.”

윤솔이 말을 마치는 순간.

…콰쾅!

또다시 인간 지네가 바닥에 머리를 들이박는다.

거짓말처럼 김정은 파티가 있는 곳만을 노리고 있었다.

푸슉- 퓨슈슉!

인간 지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독 혈액이 사방팔방으로 튄다.

김정은도 방철해도 이 핏방울들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윤솔과 드레이크, 잭 오랜턴은 안전했다.

탄막 슈팅 게임의 세이프존 안에 들어와 있는 듯, 독성 혈액은 모두 절묘한 각도로 빗나가고 있었다.

한편 드레이크는 그 광경을 보며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완전 여자 이어진이로군.’

지네의 돌진 궤도를 몇 수 앞까지 예측하고 있는 것일까?

흡사 리틀 고인물을 보는 듯한 감각이다.

드레이크는 윤솔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가난한 가정형편에서도 독하게 공부해 사교육을 엄청나게 받은 이들도 입학하기 어려워하는 스카이 캐슬 최고 명문대에 진학했을 정도의 근성과 두뇌.

온갖 알바를 하면서 쌓았던 생활력, 대인 관계, 사회성.

윤솔의 사회 커리어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마냥 희생하고 퍼 주기만 하는 바보가 아닌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는 그저 천공섬 퀘스트를 깨기 위해 잠시 함께했던 존재였다.

마냥 보호해 주기만 해야 하는 입장이었을 때는 간혹 보이는 뉴비 특유의 창의력이 참신하다고만 생각하는 정도였는데, 이제 레벨이 오르니 한 사람 몫 이상을 너끈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또한 지금 김정은을 바라보고 있는 윤솔의 싸늘한 표정을 보니 두려움이 절로 느껴질 정도이다.

드레이크는 더듬더듬 말했다.

“평소의 그 표정은 어진에게만 보여 주는 것이었군.”

“네? 제가 어진이 볼 때 표정이 어떤데요? 저는 늘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원래 표정이 좀 없어서…….”

“언제 시간 될 때 거울 한번 봐라.”

한편.

김정은과 방철해는 지금 인간 지네의 폭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콰쾅!

결국 방철해 역시 인간 지네의 박치기에 당하고 말했다.

“크흑!?”

방철해는 부서진 갑옷을 내려다보며 핏물을 내뱉었다.

단 한 방 맞았을 뿐인데 HP가 70% 이상 증발해 버렸다. 이제 다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지네의 스피드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벽돌깨기를 하다 보면 스테이지가 올라갈수록 공의 속도가 빨라지는데 아마도 그런 느낌을 똑같이 재현해 놓은 듯하다.

인간 지네의 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타타탁-

방철해는 재빨리 저 멀리 떨어진 벽의 파편으로 달려갔다.

자신도 윤솔처럼 벽을 패널삼아 인간 지네를 튕겨낼 심산이다.

하지만

퍽!

화살 한 대가 날아들어 방철해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리를 벌려 놓은 이상 움직이기는 힘들 거야. 내가 막을 것이거든.”

드레이크가 두 대의 쇠뇌를 겨누고 있는 것이 보인다.

…콰쾅!

또다시 인간 지네가 천장을 들이받은 뒤 바닥으로 내려온다.

지네는 결국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방철해의 몸을 들이받아 완전히 으깨 버렸다.

“꺄아아악!”

김정은은 눈앞에서 피떡으로 변해 버린 방철해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방철해가 죽자마자 인간 지네는 다시 원래의 스피드로 되돌아갔다.

미친 듯 빠르게 날뛰던 움직임은 처음처럼 느려졌다.

윤솔은 드레이크에게 말했다.

“인간 지네의 움직임은 아타리 사가 만든 벽돌 깨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1라운드 448번 헤딩에 1라운드 더 하여 896번 헤딩을 하고 나면 뭔가 돌파구가 생길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혹시나 해서 던전에 들어오기 전 어진이한테 물어봤었어요. 준비해 둬서 나쁠 것은 없으니.”

어진은 어차피 잡을 일 없으니 신경 끄라고 했지만 꼼꼼한 윤솔은 굳이 이 귀찮은 ‘중간 보스’에 대해 물어보았던 것이다.

윤솔은 그때 들었던 정보들을 빠르게 복기했다.

“어진이가 그랬는데 이 인간 지네 레이드는 일종의 ‘위험행위 권장 슈팅게임’의 형식을 취하고 있댔어요.”

“…위험행위를 권장하는 슈팅게임이라고? 그게 뭐지?”

“자기 본체가 격파될 가능성이 높은, 즉 위험도 높은 무리수를 던질수록 스코어가 올라가는 형식의 슈팅게임을 말해요.”

이런 특이한 형식의 시스템은 1989년 UPL이 발매한 게임 ‘오메가 파이터’ 이후로 꾸준히 수요가 있어 왔다.

윤솔은 인간 지네의 움직임을 살피며 말을 계속했다.

“위험행위 권장 슈팅게임의 종류에는 ‘근접계’, ‘저화력계’, ‘적탄영향계’, ‘스치기계’, ‘전진계’, ‘자살계’ 등등이 있는데 저 ‘인간 지네’의 경우에는 가장 희귀하다고 할 수 있는 ‘자살계’에 속하는 경우죠.”

“으음, 자꾸 묻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는 한데. …그게 뭐냐?”

“노히트 런을 하는 등 계속해서 고수준의 플레이를 하면 결국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게임 난이도가 상승하는 것을 말해요. 인간 지네가 헤딩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스피드가 빨라지는 것이 바로 그 예죠. 그걸 막기 위해서는 자살을 함으로써 게임의 난이도를 낮춰야 하는데… 뭐, 죽지 않으면 고득점은 물론 클리어조차 불가능한 이율배반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을 마친 윤솔은 생긋 웃으며 저 멀리 죽어 있는 방철해의 시체를 가리켰다.

“하지만 우리가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저들을 이용했죠. 보세요. 인간 지네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어요!”

윤솔의 말은 정답이었다.

결국 죽는 사람이 무조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간 지네와의 싸움.

윤솔은 일찌감치 모든 각도와 궤도를 계산하여 김정은 일당을 제물로 택한 것이다.

말하자면 클리어를 위한 ‘인신공양(人身供養)’이랄까?

“…어진이는 우리 중 누구도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스킵하고 가려던 중간 보스였는데. 결국 이렇게 되네요.”

윤솔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드레이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 했다. 덕분에 나도 살아남을 수 있었군. 큰 도움이 됐어.”

“…너무 잔인했나요?”

“전혀. 저들은 우리의 오랜 적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저들이 먼저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나? 너는 저들에게 함께 살아나갈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드레이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원론적인 대답이기는 했지만  윤솔은 비교적 마음이 풀린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내심 속으로 너무 잔인했나 싶어 고민하고 있던 그녀였다.

한편.

…콰쾅!

인간 지네가 또다시 하강하고 있었다.

전에 비하면 많이 느려진 속도였지만… 마법사인 김정은은 민첩 스탯이 떨어져 그런 인간 지네를 피할 수 없었다.

“꺄아아악! 저 맹랑한 년! 저거 완전 고인물 놈보다 더하네! 다음부터는 네년도 요주의 후보야!”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으직…!

인간 지네의 육탄에 맞은 김정은은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분해되어 버렸다.

…쾅! …콰쾅! …우지끈!

김정은 일당을 모두 으깨 버리고도 한참 동안 장내를 떠돌던 인간 지네는 그대로 약해진 벽의 한 귀퉁이를 뚫고는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총 896번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난 뒤였다.

인간 지네가 밖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을 본 윤솔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시간이 지나면 탑 밖으로 도망(?)가는 몬스터였나 보네요.”

제물만 잘 바쳐 가면서 피하다 보면 굳이 사냥해 잡지 않아도 사라지는 형식의 중간 보스였던 모양이다.

어진의 말대로 ‘하린마루처럼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더 이득’인.

그때.

펄럭…

인간 지네가 사라진 구멍으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한 장의 종이처럼 생긴 아이템이었다.

주문서인가 싶어 아이템을 집어든 드레이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낮으신 분’의 공문> / 주문서 / ?

죽음룡 오즈가 자기 군단 휘하의 장군들에게 보낸 격서(檄書).

안에는 엄청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작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편지였다.

잡지도 않았는데 아이템이 떨어지는 걸 보면 일단 생존한 것에 대한 보상 같았다.

읽어 볼 시간이 없었기에 이 아이템은 일단 윤솔이 보관했다가 나중에 어진에게 보여 주기로 했다.

“이제 어진이를 찾아야겠어요. 어디에 있을까?”

윤솔이 편지를 둘둘 말아 인벤토리에 넣는 순간.

콰쾅!

깜짝 놀랄 만한 일이 터졌다.

드레이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날아가 저 멀리 돌기둥에 처박힌 것이다.

“…커헉!?”

드레이크는 입에서 피를 한 사발 토해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에 고개를 든 그는 이내 경악해야 했다.

방철우!

맨 처음 인간 지네의 공격에 리타이어 된 줄 알았던 놈이 만신창이의 몸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Grrrrrr…!”

김정은과 방철해의 시체를 본 그는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몸통박치기를 이용해 드레이크를 멀리 날려 버린 뒤, 그가 고개를 돌려 본 이는 바로 윤솔이었다!

“…아, 안 돼!”

드레이크는 눈을 가리는 피를 닦으며 외쳤다.

윤솔을 여기서 잃으면 훗날 어진을 볼 면목이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기습에 너무 많은 데미지를 입어 버렸다.

이렇게 멀리 날아와서야 당장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

“…na yak han healer nyun!”

방철우는 커다란 손을 뻗어 윤솔에게 가져갔다.

이대로 한 방에 짓눌러 버릴 생각인가 보다.

“…크윽!”

드레이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연약한 윤솔이 저 거대한 덩치의 몸무게에 뭉개지는 것을 차마 두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턱-

윤솔은 너무도 태연하게 방철우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우두둑!

방철우의 손을 마치 소프트 아이스트림을 움켜쥐듯 그대로 으깨 버렸다.

“…Ae?”

방철우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이 죄다 꺾여 뒤로 돌아갔다.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으깨져 버린 손.

이내, 윤솔이 그런 방철우의 몸에 주먹을 날렸다.

-<악귀대왕의 왼팔> / 한손무기 / A+

유명한 악귀의 왼팔을 잘라 내어 그대로 말린 것이다.

사용자에게 불가해(不可解)의 근력을 선사한다.

-공격력 +4,444

-<악귀대왕의 오른팔> / 한손무기 / A+

유명한 악귀의 오른팔을 잘라 내어 그대로 말린 것이다.

사용자에게 불가해(不可解)의 근력을 선사한다.

-공격력 +4,444

-<악귀대왕의 뿔> / 투구 / A+

유명한 악귀의 뿔을 도려내어 박제한 것이다.

사용자에게 불가해(不可解)의 근력을 선사한다.

-공격력 +4,444

어느덧 윤솔의 두 팔은 무시무시하게 커졌고 이마에도 커다란 뿔이 네 개나 돋아 있는 상태.

바로 하린마루의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근력 하면 어디 가서 절대로 뒤지지 않는 S급 몬스터 하린마루의 물리공격력이 깃들어 있는 윤솔의 주먹.

그런 것을 복부에 정통으로 맞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다.

뻐-엉!

방철우의 육중한 몸 한가운데에게 시뻘건 구멍이 뚫렸다.

깡 공격력 13,332의 위엄.

어지간한 정상 급 탱커도 한 방에 보내 버릴 파괴력!

가뜩이나 인간 지네에게 피격당한 뒤인 방철우는 윤솔의 주먹 한 방을 미쳐 견뎌내기도 전에 죽어 버렸다.

“…허어.”

드레이크는 입을 딱 벌리고 감탄했다.

하긴, 애초에 무너진 벽을 패들처럼 휙휙 휘두르던 윤솔이다.

“저 게임 센스에 신성력, 거기에 근접전에서도 꿇리지 않는 깡 공격력이라니……. 어진, 괴물을 키워 냈군.”

드레이크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런 여자가 이제 프로게이머로 데뷔했으니 한국, 나아가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의 프로리그가 어떻게 격변할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바로 그때.

우르릉…!

건너편으로 날아간 방철우의 시체가 벽에 부딪치자 또 다른 구멍이 생겨났다.

인간 지네에 의해 약해진 벽이 무너져 내리자 그 건너편의 공간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순간.

“아앗!?”

“헉!?”

윤솔과 드레이크의 눈이 휘둥그렇게 벌어졌다.

건너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상황이 그들의 시선을 확 잡아끌었던 것이다.

“푸스스스스…”

조디악 번디베일!

피투성이가 된 사이코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보인다.

놈은 손에 자기 것이 아닌 목을 쥐고 있었다.

…손이 두 개니 쥐어 있는 목도 두 개리라.

그러니 지금 두 패배자의 목이 조디악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다.

하나는 적폐망령 모드로 변한 데스나이트의 것.

…다른 하나는 바로 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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