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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50화 (350/1,000)
  • 351화 용감한 선택 (4)

    쿠르릉…

    붕괴가 조금 잦아들었다.

    탑은 내부의 형체를 온전히 갖춘 채 붕괴되었는지 잔해물의 안쪽은 꽤 널찍했다.

    “…콜록!”

    윤솔은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 돌가루와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지만 그래도 시야는 꽤 분명했다.

    “…이런. 갇혔나.”

    옆에서 드레이크가 침음성을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갇혀 있는 것에는 익숙하지. 몸도 생각도.]

    윤솔과 드레이크, 그리고 잭 오 랜턴이 같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

    그들이 있는 공간은 칼칩의 탑 1, 2, 3, 4층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위로 길쭉한 공간이었다.

    그 위의 공간은 무너져서 이 공간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듯 보인다.

    그때.

    “젠장! 이게 뭐야! 조디악 놈이랑 떨어졌잖아!”

    저 멀리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정은과 방철해, 방철우. 전 매드독 멤버 세 명이 낙석더미를 비집고 나오는 것이 보인다.

    이내, 윤솔과 드레이크, 김정은과 방씨 형제가 날카롭게 대치하기 시작했다.

    드레이크가 상황을 빠르게 판단했다.

    “…조합은 이쪽이 더 안 좋군.”

    상대측은 강력한 딜이 가능한 마법사에 튼튼한 탱커가 둘이다.

    또한 셋 다 프로리그에서 뛰었을 정도로 기량이 높다.

    반면 이쪽은 NPC를 제외하면 둘. 궁수와 힐러.

    여러모로 상성이 나빴다.

    심지어 김정은은 윤솔의 특성을 일찌감치 눈치 채고는 ‘어둠’ 속성이 들어간 아이템들을 모두 벗어 버린 상태.

    “호호호. 이 성가신 것들은 미리 치워 놔야겠네.”

    김정은은 윤솔과 드레이크를 향해 눈을 빛냈다.

    “…….”

    “…….”

    윤솔과 드레이크는 입을 다문 채 그런 김정은을 노려볼 뿐이었다.

    바로 그때.

    후두둑…

    위에서 돌가루 한 줌이 떨어져 내렸다.

    “……?”

    김정은은 혹시 붕괴가 아직도 진행 중인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탑이 무너져 내리는 것보다 훨씬 더 최악의 재해(災害)였다.

    인간 지네!

    이 괴기스러운 몬스터가 무너진 잔해 속에서 몸을 일으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108개나 되는 다리로 허우적거리며 떨어져 내리는 이 무시무시한 괴물의 등장에 장내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꺄아아악!”

    김정은과 방철해, 방철우는 잽싸게 몸을 던져 다른 곳으로 피했다.

    …콰쾅!

    인간 지네는 박치기로 빈 바닥을 들이받았다.

    동시에 V자 궤도로 꺾여 위로 치솟기 시작했다.

    …콰쾅! …쿵!

    위로 치솟은 인간 지네는 허공에 툭 튀어나온 벽돌 하나를 들이받은 뒤 다시 역 V자로 되튕겨 나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곳은 방금 도망친 김정은 파티가 있는 곳이었다.

    “꺄아아악! 또 온다!”

    김정은이 비명을 지르자 방철해, 방철우 형제가 그런 그녀를 껴안고 몸을 던진다.

    …콰쾅! …투웅!

    인간 지네는 또다시 박치기로 빈 바닥을 들이받은 뒤 V자로 튕겨나가 천장을 향한다.

    이처럼 인간 지네는 바닥과 천장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도중에 벽에 튀어나온 벽돌에 부딪치면 그 벽돌이 부서질 때까지 들이받고 또다시 튕겨나간다.

    그 모습은 흡사…….

    “벽돌 깨기네요!”

    윤솔이 짧게 말했다.

    ‘벽돌 깨기(break out)’란 무엇이냐?

    이것은 고전 게임의 한 장르이다.

    1976년 5월 13일에 아타리(Atari)에서 만든 것이 원조로 그 뒤로 꾸준히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이 히트했다.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성과 가벼운 용량 덕분에 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학교 컴퓨터실에서 흔하게 발견되었으며 오락실 한 구석에도 늘 비치되어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기본적인 형태는 스쿼시처럼 벽을 향해서 공을 쏘아 보내 천장을 부수는 것이다.

    천장이나 벽에 맞고 되돌아온 공을 패들로 받아서 다시 되튕겨 보내 또다시 천장의 벽돌을 부수고 결국 벽돌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될 때까지 공의 방향과 각도를 잘 설정해야 한다.

    …쾅! …콰쾅! …콰지지직!

    지금 인간 지네가 날뛰고 있는 궤도를 보면 꼭 벽돌깨기의 공과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녀석은 천장이 아닌 바닥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깨부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 정도?

    [끼에에에에에…!]

    인간 지네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윤솔은 생각했다.

    ‘…어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들었다.

    “드레이크 씨! 이 상황을 해결할 뚜렷한 방법 있으세요?”

    “어? 나, 나 말인가? 으음, 글쎄. 딱히 방법이 안 보이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그렇다면 그동안 제 의견에 잠시 어울려 주실 수 있으실까요?”

    윤솔은 아무래도 무언가 방법을 생각해 낸 것 같다.

    탁!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커다란 벽 조각에 손을 올렸다.

    “이 벽 파편을 패들로 써서 인간 지네를 되튕겨 보내려고요.”

    “…그렇군! 벽돌 깨기를 하자는 건가?”

    윤솔과 드레이크는 커다란 벽 파편을 함께 들어올렸다.

    그것으로 인간 지네의 다이브를 튕겨 낼 생각이었다.

    빈 공간 내부를 이리저리 튕기며 부딪치던 인간 지네는 결국 어딘가 벽 한쪽에 구멍을 뚫어 놓을 것이 분명하니 그리로 나가면 되겠다는 계획이다.

    그때.

    “어이. 뭔가 해결책을 찾은 것 같은데.”

    그곳에는 김정은이 나른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와 손을 잡지 않겠어? 그 벽, 꽤나 무거워서 둘이 들기에는 벅차 보이는데. 이쪽에는 근육 덩치가 둘이나 있다고.”

    그녀는 자기 뒤에 있는 방철우, 방철해 형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 같이 신의 없는 것들은 믿을 수 없….”

    드레이크가 거절의 의사를 밝히려는 순간, 윤솔이 그것을 제지하며 말했다.

    “좋아요.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니까.”

    “이봐 솔, 저치들은 어진의 적이야.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요. 상대는 S급 몬스터! 비록 적이라고 해도 동침해야 하는 순간이라구요.”

    윤솔의 말은 꽤나 타당한 것이어서 드레이크 또한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다.

    별 수 없이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윤솔이 모든 사람들에게 오더를 내린다.

    “이 중에서 제가 제일 그래프를 많이 다뤄봤을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그러자 김정은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소싯적엔 그래프 꽤나 만졌는데. 은퇴한 지 오래 되어서 말이야.”

    “전에 무슨 일 했는데요?”

    “게임 관리자…라고나 할까? 지금은 그냥 백수.”

    김정은은 윤솔에게 윙크를 해 보이며 웃었다.

    이윽고. 윤솔과 드레이크, 잭 오랜턴, 김정은과 방씨 형제가 손을 잡았다.

    그들은 무너진 벽 하나를 집어 들고 앞으로 떨어져 내릴 인간 지네의 다이브에 대비했다.

    “탑의 우측 벽, 뾰족한 벽돌과 뭉툭한 벽돌 사이로 보낼게요! 벽을 45도 가량만 기울여 주세요!”

    윤솔의 오더에 따라 모두가 힘을 주어 벽을 기울였다.

    그러자.

    …콰쾅!

    벽에 부딪친 인간 지네는 몸을 꺾어 다시 천장으로 향했다.

    콰콰콰콰쾅!

    뾰족한 벽돌을 반쯤 부순 인간 지네는 다시 바닥으로 하강해 왔다.

    윤솔이 다시 외쳤다.

    “이번엔 벽의 각도를 5도 가량만 더 기울이시면 돼요! 드레이크 씨가 힘을 좀 빼시면 되겠네요!”

    벽이 윤솔의 오더대로 기울어졌다.

    …콰쾅!

    또다시 인간 지네는 벽을 들이받은 뒤 천장으로 향했다.

    우지지지직!

    애당초 윤솔이 노렸던 뾰족한 벽돌 하나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제 인간 지네는 뾰족한 벽돌을 뚫고 그 너머에 있던 뭉툭한 벽돌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엑…!]

    인간 지네는 앞머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다시 바닥으로 다이브했다.

    “같은 각도로 한 번 더 갈게요!”

    윤솔이 외쳤다.

    …콰쾅!

    또다시 굉음이 일었고 인간 지네가 천장으로 튕겨져 올라간다.

    우직-

    드디어 뭉툭한 벽돌도 파괴되었다.

    동시에, 윤솔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오오!”

    드레이크가 탄성을 질렀다.

    무한궤도.

    인간지네는 아주 큰 각도를 그리며 튕겨져 나갔기 때문에 좌측의 벽과 우측의 벽 사이를 지그재그로 촘촘하게 왕복하기 시작했고 그 끝에 천장에 나 있는 벽돌과 벽돌 사이의 작은 틈으로 들어가 그 너머에 갇혀 무한 뺑뺑이를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윤솔이 절묘한 각도로 뾰족한 벽돌 하나와 뭉툭한 벽돌 하나를 제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벽돌에 가려진 저 위층에서 요란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벽돌로 격리된 공간을 맴돌며 날뛰는 모양.

    “이제 위쪽의 벽돌이 거의 다 파괴될 때까지 내려오지 못할 거예요.”

    윤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인간 지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는 것은 자신의 진로를 가로막는 벽돌들을 모두 부수고 난 다음이 될 것이다.

    바로 그때!

    퍼-억!

    드레이크의 몸이 옆으로 확 젖혀졌다.

    방철해!

    인간 시절 ‘블랙 옥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한때 한국 랭킹 10위까지 올라갔었던 고수.

    이 근육질의 오크 전사가 들고 있던 도끼를 이용해 드레이크를 내리찍어 버린 것이다.

    “꺄악! 드레이크 씨!”

    윤솔이 경악했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가만히 당하지 않았다.

    따앙!

    방철해의 도끼날을 단검으로 받아 낸 드레이크는 그대로 그의 머리를 걷어찼고 뒤로 물러섰다.

    “…호오, 궁수 주제에 꽤 하는데? 과연 랭커는 달라.”

    김정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방철해는 워낙에 방어력이 높아서 그런가 드레이크의 킥에 큰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그저 벌겋게 변한 볼을 몇 번 쓱쓱 문질렀을 뿐이다.

    윤솔이 눈을 치켜떴다.

    “…지금 배신한 거야?”

    그러자 김정은은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배신이라니? 우리가 언제부터 같은 편이었다고.”

    인간 지네로 인한 위협에서 조금 벗어나자마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매드독 일당이다.

    콰쾅! 쾅!

    방철해, 방철우 형제가 돌격해 오는 동시에 김정은이 강력한 염계 마법을 흩뿌렸다.

    “이런!”

    윤솔과 드레이크는 재빨리 자리를 피해야만 했다.

    잭 오 랜턴이 대낫을 휘둘러 마법을 걷어 내기는 했지만 상대가 플레이어이니만큼 큰 적극성은 기대할 수 없었다.

    윤솔이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그래도 내 덕에 인간지네를 피할 수 있었으면서.”

    그러자 김정은은 무릎을 치며 웃었다.

    “꺄하하하, 이렇게 순진한 아가씨는 또 처음 보네. 얘, 우리는 그냥 원래의 관계에 충실해지기로 한 것뿐이야. 너무 나쁘게 생각 말라고, 이게 우리 진짜 모습이니까.”

    그녀는 방철해, 방철우 형제와 함께 윤솔을 포위했다.

    반격을 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압박할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윤솔이 어깨를 으쓱하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급반전되기 시작했다.

    콰쾅!

    천장을 뚫고 인간 지네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헉!?”

    김정은이 공격을 하다 말고 헛바람을 토해 냈다.

    너무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것이라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심지어 인간 지네는 벽돌층 너머로 사라지기 전보다 훨씬 더 빨라져 있는 상태였다.

    …콰콰쾅!

    벼락처럼 내리꽂힌 인간 지네의 박치기에 결국 방철우가 맞고 말했다.

    “KUHUK…!”

    방철우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뒤편에 있던 돌기둥 두 개를 부수고 나가 떨어져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리타이어(retire).

    방철우 정도 되는 탱커가 일격에 뻗어 버릴 정도로 인간 지네의 전투력은 강력했다.

    …콰쾅! …쾅!

    또다시 천장으로 튕겨나가 벽을 들이받은 뒤 바닥을 향해 돌격해 오는 인간지네.

    놈은 이번에도 기묘한 각도로 몸을 틀어 김정은 파티를 향해 쇄도해 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김정은의 안색이 헬쓱해졌다.

    ‘……설마?’

    그녀는 재빨리 윤솔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김정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은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계략의 결과라는 것을.

    윤솔.

    평소 방실방실 웃거나 감탄하는 표정, 혹은 울상만 짓던 귀여운 인상의 여자.

    눈엣가시 같은 고인물 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어리버리한 서포터.

    하지만 지금 그녀는 김정은이 전에 알던 것과는 180도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윤솔은 극도로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그래, ‘진짜’ 모습으로 돌아가자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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