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47화 (347/1,000)
  • 348화 용감한 선택 (1)

    …짤그랑!

    클릭과 함께 게임머니가 팔려나가는 소리.

    환전된 금액이 내 통장으로 들어온다. 물론 세무사 사무실을 통해 처리한 합법적인 돈이다.

    “이걸로 고르딕사 레이드에서 번 돈은 모두 환전 완료네.”

    나는 핸드폰 화면에 뜬 판매완료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게임머니뿐만이 아니다.

    나는 던전 ‘얼어붙은 부패’에 서식하는 흡혈귀들을 잡고 얻은 B+~A급 아이템들 역시 이참에 모두 경매장에 처분해 버렸다.

    대부분 특별한 옵션이 붙어있지 않은 일반 등급의 아이템들이었기에 별다른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시장의 반응은 열렬하다.

    [email protected]@@상회입찰입니다@@@

    -즉구합니다 무조건 사요!!!!

    -길드 차원에서 일괄구매 손들어봐요~~~

    ↳길드장님! 이건 무조건 사야 해요!

    ↳완전 우리 공대님들 필수템들만 나옴ㄷㄷ

    -불발 시 줄서봅니다^^

    -현장네고 가능한가요?

    ↳겜 아이템으로 먼 현장네고야 ㅂㅅ아

    ↳(현재 신고 된 댓글입니다)

    -형님!! 쿨거래 가능합니다!!! 24시간 대기중이니 언제든 콜,,,010-990...

    -게장 20kg랑 교환 가능??제발ㅠ

    ↳양념인가요?

    ↳간장도 있고 양념도 있습니다,, 갓김치 5kg 덤으로 드립니다,,

    -와;;;이런 템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함??

    -돈이 없어서 눈만 호강하고 갑니다,,,총총(머쓱)

    .

    .

    상위 등급의 아이템에 목말라 하던 랭커들은 눈에 불을 켜고 내가 올린 아이템들을 쓸어 간다.

    경매가는 가만히 내버려 둬도 알아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나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는 잡템들이었지만 일반 유저들이 보기에는 그런 것마저도 좋아 보였나 보다.

    특히나 길드 차원에서 아이템들을 대량구매 해 가는 이들이 많았다.

    팔릴 경우 시장질서나 게임 밸런스를 어지럽힐 만한 아이템들을 모조리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수가 상당했다.

    자연스럽게 내 통장에 쌓이는 금액도…….

    “세상에.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비싸게들 사 가네. 최소 가격이 어지간한 대기업 회사원 월급이라니……. 나중에 게임 후반이 되면 그냥 필드에 굴러다니게 되는 아이템들인데.”

    물론 그것은 2차 대격변이 일어나고 난 뒤의 일이니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짤그랑! 짤그랑! 짤그랑!

    인벤토리에 돈 쌓이는 소리.

    윤솔과 드레이크에게 기여도에 따른 지분을 양도하고 난 뒤에도 상당량의 금액이 내 통장에 남게 되었다.

    나는 핸드폰 화면에 뜨는 실시간 인터넷 뱅킹 메시지를 전부 확인했다.

    내가 핸드폰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자 앞서 가던 부동산 중개업자가 나를 돌아본다.

    “총각, 아니… 사장님! 무슨 좋은 일 있나 봐?”

    그녀는 내가 예전에 오피스텔과 캡슐방 부지를 구할 때 거래했던 부동산 중개업자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씩 웃자 그녀는 내게 곰살맞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것 봐요. 저번에 사장님이 그 캡슐방 하시겠다고 했던 지하층, 그거 가지고만 있어도 가격 꽤 올랐죠? 그대로 매각하셨어도 차익이 얼마에요?”

    “…네, 뭐. 덕분에 이득 좀 봤습니다.”

    나는 말을 마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이태원의 한 깔끔한 빌딩 앞이었다.

    통유리로 된 벽과 하늘 높이 솟구쳐 있는 고층건물.

    그것을 눈앞에 둔 부동산 중개업자는 호호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래 봬도 구십 년대 후반 IMF부터 공팔 년도에 리먼 사태까지 다 겪어 본 베테랑이에요. 저번에 제 말 들으셨다가 익절하셨죠? 이번에도 믿으시면 돼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얼추 알고 있는 미래 지식에도 땅값과 건물 값에 대한 정보는 있다.

    그렇기에 일부러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비슷한 예측을 하는 중개업자를 골랐고 그것이 지금의 결과였다.

    내가 빌딩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중개업자는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보자. 이 구역은 보통 50억 이하의 5층 빌딩이 가장 인기가 많은데, 우리 사장님 같으신 경우에는 대출 좀 더 끼고 매물 폭 좀 더 다양하게 할 수 있겠어요. 지금 이 빌딩이 제일 핫한데 전층 근생이고 주택 하나도 안 껴있어요. 2011년 신축에 깨끗하고요.”

    “괜찮네요.”

    “어휴, 최근에 대출규제에 금리인상에 RTI에 얼마나 빡센가요. 시세차익 노리시는 것보다는 안정되게 수익률 따먹는 게 제일 좋아요. 다들 그렇게 하시구요.”

    “네. 저도 차익 노리고 사는 것 아니에요. 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서.”

    “좋죠, 좋죠, 너무 좋죠, 이 건물. 요즘 성수동, 연남동, 이태원 전망이 아주 좋아요. 예전에도 좋았지만 요즘은 더해요. 특히 이 빌딩은 역세권이지, 대로변이지, 코너에 있지, 입지 좋지… 지금 사두셔서 3년 정도 뒤에 되파셔도 충분하죠.”

    “얼만데요?”

    “평당 1.5에요. 총 108! 이건 뭐 거의 전례가 없어요. 여기만 가격이 2019년도에 머물러 있다니까요?”

    나는 더 들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미래 그대로 흘러간다면 이 건물은 반년 안에 가치가 50% 이상 뛴다.

    내가 가방에서 도장을 꺼내자 중개업자의 양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걸렸다.

    “정말 잘 생각하신 거예요, 어린 사장님. …한데, 이번 업종은 뭘로?”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에 하려던 거 조금 더 크게 해 보려고요.”

    그동안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사업.

    게임 속에서 2차 대격변이 터졌을 때 가장 현실에 영향이 무지막지할 곳.

    바로 ‘캡슐방’ 사업이다!

    *       *       *

    유튜뷰 광고 수익과 조회수 수익까지 모두 확인한 뒤, 나는 게임에 접속했다.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환한 빛무리가 걷히자 시야 너머로 동료들의 얼굴이 보인다.

    윤솔과 드레이크, 양철 갑옷을 입은 잭 오 랜턴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어진아! 일은 잘 끝마쳤어?”

    “바로 데스 나이트를 잡으러 갈 것처럼 굴더니 왜 이리 늦었나!”

    우리가 모인 장소는 어비스 터미널에서 북동쪽으로 꽤 떨어져 있는 장소.

    북서 방향 ‘얼어붙은 부패’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는 던전인 ‘칼침의 탑’이었다.

    <칼침의 탑> -등급: ?

    커다란 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부가 통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탑이다.

    과거 십자군 전쟁을 이끌었던 영웅 ‘사자심왕(獅子心王) 리차드 1세’가 유폐되었던 ‘뒤른슈타인 성’을 거의 똑같이 재현해 놓았다.

    낡고 오래된 탑 전역에는 검은 안개가 흐르고 있었고 말라붙은 넝쿨식물의 군락이 마치 거대한 뱀처럼 탑을 휘감아 조인다.

    탑 곳곳에 뚫린 작은 창문들은 검은자위만 있는 귀신의 눈처럼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에 언데드 쌍두마차 중 하나인 데스나이트가 살고 있어.”

    나는 말을 마친 뒤 잭 오 랜턴을 힐끗 돌아보았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잭 오 랜턴은 이미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군. 리치 왕의 정체가 양철 나무꾼이었으니 데스나이트의 정체도 알 만해. 아마 겁쟁이 사자 리차드가 여기에 있겠지.]

    그렇다.

    사자심왕 데스나이트.

    그 정체는 바로 겁쟁이 새끼사자였던 리차드일 것이다.

    사자는 본디 백수의 왕.

    그리고 리차드는 한때 수인제국을 다스렸던 사자왕 헨리의 아들이다.

    사자 아비 밑에 고양이 새끼 없다.

    당연히 어른이 된 리차드는 제 아비인 헨리처럼 강력한 육체와 고결한 정신을 가진 무인(武人)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상위레벨의 데스나이트가 되었겠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생전의 무예가 고강하면 고강할수록, 생전의 정신이 고결했으면 고결했을수록 더욱 더 강력한 데스나이트가 생성된다.

    밸런스 상 데스나이트가 된 리차드의 힘은 리치 왕이 된 양철 나무꾼의 힘에 필적할 정도로 강할 것이다.

    나는 뒤에 있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신신당부했다.

    “데스나이트는 리치 왕과 달라. 뚜렷한 공략 패턴이 없으니 죽을 각오를 하고 레이드를 뛰어야 해. 요컨대 정공법(正攻法)이라는 것이지.”

    내 경고를 들은 모두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잭 오 랜턴의 분위기가 제일 심각했다.

    ‘하긴 그렇겠지. 친구의 목을 자르러 들어가는 것이니….’

    리치 왕 때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맞닥뜨렸다고 해도 지금은 다르다.

    모든 것을 알고 들어가는 복수자의 발걸음은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각오는 됐다.]

    잭 오 랜턴은 양철 갑옷의 가슴팍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옛 친구의 따듯한 심장고동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잭 오 랜턴은 불카노스 대낫을 바짝 끌어당겨 단단히 쥐었다.

    겁쟁이 새끼사자 리차드.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그토록 갈구하던 것은 바로 ‘용기’였다.

    한 순간의 용기가 부족해 아버지의 목숨을 허무하게 잃게 만든 그날 밤의 기억.

    무수한 악몽에 몸서리치던 새끼 사자.

    옛 친구의 모습을 떠올린 잭 오 랜턴은 몸을 가늘게 떤다.

    […이제는 네 몫까지 내가 용기를 내마.]

    잭 오 랜턴은 두려움을 잊으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로 도망치지 않겠다는 듯 눈에서 시뻘건 불길을 피워 올렸다.

    “좋아. 그럼 다이브다.”

    나는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칼침의 탑’ 안으로 뛰어들었다.

    타탁…!

    나는 입구로 뛰어드는 동시에 바로 외쳤다.

    “칼침의 탑은 정상까지 가는 동안 몬스터 웨이브가 계속 일어난다! 버틴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무조건 밀고 나가야 보스전을 치룰 수 있어! 히든 피스도 엄청 많이 숨겨져 있으니 신중하게 주위를 살피라고!”

    탑 1층에 도착하면 바로 몬스터들이 우글우글 쏟아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이미 회귀 전의 기억을 토대로 공략 전술을 짜둔 지 오래!

    나는 바로바로 오더를 내렸다.

    “솔아! 바로 신성불가침 보호막을 걸어 줘! 드레이크! 좌측을 엄호해 주고! 잭 오 랜턴은 중앙에서 중장거리 횡자 참격 위주로! 그리고 내가 우측에서 광역 딜을 맡는다!”

    윤솔의 신성력이 어둠 계열 몬스터들의 발을 묶으면 교통정체 때문에 웨이브에 혼선이 올 것이 분명하다.

    그 틈을 타서 드레이크가 일점사 공격으로 버프를 걸어 주는 몬스터들, 혹은 체력만 무식하게 높은 탱커들을 재빠르게 제거한다.

    후에 나와 잭 오 랜턴이 광역기를 이용해 잡몹들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쭉쭉 뻗어나간다면 비교적 수월하게 1층을 클리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층, 3층, 4층, 5층…등등, 각 층을 단계별로 각개격파한 뒤 맨 위의 보스방으로 다이브하면 되는 정석적인 일이다.

    …하지만.

    나름 철저하게 준비해 왔다고 생각한 나의 모든 계획은 시작부터 망해 버리고 말했다.

    “……?”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1층으로 들어가자마자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좀비, 스켈레톤, 고스트, 구울, 미이라, 흡혈귀, 키메라, 마녀, 벤시, 트롤, 오우거, 츄파카브라, 하이에나, 샐러맨더, 타락 정령, 악귀, 골렘, 가고일, 만티코어, 그 외 각종 언데드들…

    실로 충격적인 광경.

    탑 전역에 고루 퍼져 있어야 할 온갖 종류의 암흑 괴물들이 죄다 1층에 모여 득실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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