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43화 (343/1,000)

344화 오즈의 마법사 (4)

<리치 왕> -등급: S / 특성: 어둠, 언데드, 하수인, 소환, 지진, 동상(凍傷), 여벌의 심장

-서식지: ‘얼어붙은 부패 끝자락’

-크기: 4m.

-‘나는 심장이 없다네 잭. 아픈 걸 느끼지 못하지. 그러니 어서 가게.’

-니콜라스 초퍼-

얼어붙은 옥좌, 철갑과 같은 서리를 두르고 있는 자.

리치 왕을 본 잭 오 랜턴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양철 나무꾼? 설마 자네인가?]

그렇다.

옥좌에 얼어붙어 있는 이는 분명 도로시 원정대의 전 멤버이자 호박머리 잭의 절친한 동료 ‘니콜라스 초퍼’, 일명 양철 나무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리운 얼굴에 잭 오 랜턴은 그만 현실감을 잊어버린 듯 보였다.

[자네가 왜 여기서 나오나? 설마 오즈 놈에게 포로로 잡힌 건가? 그래! 그런 것이로군!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잭 오 랜턴은 서둘러 양철 나무꾼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내가 막아서는 바람에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진 못했다.

“정신 차려. 뭐가 양철 나무꾼이야.”

[저 녀석은 내 동료다! 오래 전 원정대에서 함께 싸웠던…!]

“이젠 아니야.”

나는 고개를 돌려 눈앞의 적을 바라보았다.

양철 나무꾼, 아니 이제는 리치 왕.

후우우욱…!

리치 왕의 양철 투구에서 파아란 불길이 흘러나온다.

보기만 해도 차가움이 느껴지는 불꽃이었다.

어째서 복수자가 노예가 되어 있는가!

수백 년 전,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약혼녀의 죽음 이후 죽음룡 오즈를 향해 증오의 도끼날을 벼리던 니콜라스 초퍼, 가련한 양철 나무꾼.

하지만 옛 동료는 말이 없다.

사자무언(死者無言).

본디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

애초에 죽음룡 오즈는 의심이 많아 절대로 살아 있는 존재를 부하로 들이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일찌감치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

이윽고, 리치 왕은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도끼 창을 앞으로 휘둘렀다.

콰콰콰콰쾅!

무시무시한 참격이 뻗어 나와 바닥에 깊은 크레바스를 만들어 놓았다.

저런 걸 맞았다간 그대로 한 줌 가루가 되겠지.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쩌저저저적!

크레바스의 양 옆으로 뾰족한 얼음가시들이 무수히 생성되기 시작했다.

찔리면 빙결 데미지가 훅 들어오고 스친다고 해도 동상 데미지를 도트로 입게 된다.

참격에 맞으면 당연히 어마무시한 물리 데미지를 입게 되고 그것을 피했다고 해도 강력한 마법 데미지에 노출될 것이다.

“…이런, 이건 히드라로도 못 막겠는데.”

나는 반지를 쓰다듬으려다가 말았다.

제아무리 재생능력이 뛰어난 히드라라고 해도 리치 왕이 만들어놓은 도끼자국을 보면 망설여지는 것이다. 녀석은 물리 데미지에는 약하니까.

[정신 차려라, 나무꾼!]

잭 오 랜턴이 대낫을 들고 리치 왕에게 달려들었다.

쩌-엉!

리치 왕의 도끼와 잭 오 랜턴의 대낫이 맞부딪친다.

물리 데미지로는 호각이었지만, 리치 왕은 강력한 마법 공격력을 추가로 가지고 있다.

퍼퍼퍼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리치 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서릿발이 잭 오 랜턴의 전신을 날카롭게 저며 들었다.

[…! …! …!]

순식간에 넝마조각이 되어 나가떨어지는 잭 오 랜턴.

콰지직! 콰쾅!

그는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고드름 두 개를 부수고는 빙벽에 몇 번 튕겨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나는 혀를 차며 충고했다.

“리치 왕은 마법+물리 데미지가 반반씩 섞인 공격을 하니 주의해. 가까이 다가가면 동상 데미지를 입는다.”

[…으음, 일찍도 말해 주는군.]

보통 일반적인 리치는 마법사가 변태한 괴물이다.

따라서 물리 방어력에 취약한 경우가 많은데 리치 왕은 그런 통념을 완벽하게 무시하는 OP몬스터였다.

두르고 있는 양철 갑옷은 그 자체로도 막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심지어 그 위에 두터운 서릿발이 덧대어져 한층 더 강력한 방어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 서리는 그냥 서리가 아니라 마법의 기운이 깃든 서리라서 마법 방어력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근접해 오는 이들에게 저절로 동상 데미지를 입히게 설정되어 있다.

그야말로 완벽한 공방일체!

[…안타깝다. 안타까운 일이다.]

잭 오 랜턴은 한동안 바닥에 드러누운 채 일어나지 못했다.

방금 당한 일격이 뼈아프기도 했지만 사실 그보다는 마음에 패인 상처가 더욱 더 깊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잭 오 랜턴이 그렇게 센치해져 있는 동안 리치 왕의 어그로는 온전히 내가 다 끌고 있었다.

“우아아아앗!? 이봐 호박! 동료가 이렇게 돼서 슬픈 건 알겠는데! 그래도 빨리 털고 일어나! 이러다 내가 털리게 생겼다고!”

나는 맨몸으로 리치 왕의 도끼를 막아 내며 외쳤다.

…퍼펑!

반사 데미지를 먹였지만 리치 왕의 몸에 자생하고 있는 서릿발들이 그것을 흩어 버린다.

‘젠장! 깎단이 파괴불가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

나는 리치 왕이 대포알처럼 쏘아 보내는 고드름을 피하며 생각했다.

[…알겠다. 추억보다는 상황을 먼저 정리해야겠군.]

드디어 잭 오 랜턴이 일어났다.

화르르르륵-!

그는 호박 가면을 벗고 그 안에서 거대한 화염을 쏘아 보냈다.

…저런 재주가 있는 줄은 나도 몰랐는데?

퍼퍼펑!

리치 왕의 서릿발과 잭 오 랜턴의 화염방사가 한곳에서 맞물렸다.

공기가 끓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수축 팽창하더니 이내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냈다.

얼음 벌판의 지형이 크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뾰족하게 돋아 있던 고드름들이 녹아 물이 되었다가 다시 얼어붙으며 지형이 점차 완만해졌으며 대기 중에는 뿌연 습기들이 넘실거린다.

“젠장, 깎단을 먹일 틈이 없네.”

나는 리치 왕의 견고한 갑옷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부웅…!

또다시 리치 왕의 도끼날이 휘둘러진다.

콰콰콰쾅!

바닥에 깊은 도끼자국이 패였다.

크레바스를 만들어 낼 정도의 참격!

나는 그것을 몸으로 받은 뒤 다시 반사 데미지로 되튕겨냈다.

퍼퍼펑!

리치 왕의 갑옷 곳곳의 서릿발들이 깨져 나간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나에게 눈보라를 들이부었다.

“으헉!?”

나는 재빨리 바닥을 굴러 피했다.

도중에 뾰족한 얼음 부스러기들에 찔려 죽을 뻔했다.

하지만.

HP가 1 남은 상태인 나는 그리 재빨리 움직일 수 없다.

그런 내 앞으로 도끼를 든 리치 왕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으아악!”

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도끼날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콰쾅!

이내, 리치 왕의 도끼가 내 머리통 위에 정확히 떨어졌다.

우지끈!

나는 도끼에 맞은 채로 바닥에 처박혔다.

얼음바닥이 움푹 패였고 나는 그 밑까지 파고들게끔 되었다.

“…음?”

하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가 고개를 들자 HP가 여전히 1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어진아!”

크레바스 위에서 윤솔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윤솔이 시기적절하게 도착해 나에게 힐을 걸어 준 것이다!

“나이스 타이밍!”

나는 재빨리 히드라를 소환했다.

[쉬익!]

히드라는 머리 위에 나를 태우고 긴 몸을 뻗어 크레바스 바닥에서 위까지 순식간에 이동했다.

밖으로 나오자 리치 왕이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반사한 데미지가 때마침 얼음이 녹아 밖으로 노출된 갑옷 부분을 때렸나 보다.

[동토(凍土)의 전우여. 길 잃은 벗이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말해 주게!]

잭 오 랜턴은 피 끓는 목소리로 외치며 대낫을 들었다.

쩡!

잭 오 랜턴의 불카노스 대낫이 리치 왕의 갑옷에 떨어져 내렸다.

빨간 불똥과 함께 얼음가루들이 흩날린다.

[…….]

하지만, 리치 왕은 묵묵하게 도끼를 휘두를 뿐이다.

퍼펑!

잭 오 랜턴 역시 리치 왕의 공격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하린마루의 목을 일격에 잘라 버렸던 불카노스 대낫도 리치 왕의 서릿발에 가로막혀 고작 갑옷을 몇 센티미터 가량 긁어 냈을 뿐이었다.

파팟!

윤솔의 신성 보호막이 발동했다.

[…!]

천하의 리치 왕도 이번만큼은 반응을 보였다.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젓는 것을 보니 효과는 별로 없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이런, 상태이상이 1차만 들어갔나 봐. 운도 없지!”

윤솔이 울상이 된 채 외쳤다.

드레이크가 약간 뒤늦게 내 뒤를 따라붙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장의 판도가 크게 기울지는 않았다.

[…….]

리치 왕.

놈은 모든 것들이 녹아내리고 얼기를 반복하는 이 공간에 홀로 우뚝 서 있다.

나도 윤솔도 드레이크도, 심지어 옛 동료인 잭 오 랜턴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다.

공방일체의 완벽한 밸런스형 OP캐릭터.

다른 S급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일반 몹으로 보이게 만드는 초엘리트 타입이다.

…하지만!

‘그래도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몬스터가 아니냐! 약점은 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포션을 입 안으로 털어 넣으며 모두에게 오더를 내렸다.

“……다들 조금만 더 버티자. 곧 페이즈(phase)가 끝날 것 같다.”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페이즈?”

“리치 왕에게 그런 게 있나?”

으레 페이즈 공격 패턴을 갖는 몬스터들은 1차, 2차, 3차, 4차… 등등 회차에 따라 규격화된 공격을 한다.

사실 이 점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게 없다.

수많은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대부분 이런 식의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쉬는 시간이 있다는 거지.”

나는 눈을 빛냈다.

리치 왕. 말도 안 되는 공방일체의 참격과 마법을 뿌리는 몬스터.

하지만 이놈이 무한정 이런 공격을 쏟아내는 것은 아니다.

1페이즈가 끝나고 2페이즈가 시작되기 전, 분명 그 짧은 시간 동안 ‘쉬는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동안 리치 왕을 최대한 많이 움직이게 만들어.”

나는 리치 왕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으스스한 물안개를 주시했다.

얼음이 녹고 얼기를 반복하며 엄청난 양의 습기가 우리가 있는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이윽고.

콰쾅!

리치 왕이 도끼를 든 채 우리에게 쇄도해 왔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마법사라고 생각하겠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리치 왕에게 맞섰다.

…퍼펑! …펑!

반사 데미지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며 리치 왕의 갑옷을 때린다.

잭 오 랜턴 역시 불카노스 대낫과 호박 가면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로 끊임없이 리치 왕을 견제하고 있었다.

윤솔은 신성 방어막을 이용해 리치 왕의 움직임을 둔화시켰으며 적절한 타이밍에 계속 나에게 힐을 걸어 주었다.

드레이크는 배드엔딩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커다란 화살로 리치 왕의 관절 부근을 끈덕지게 노리고 있었다.

이윽고.

‘…됐다!’

나는 목표로 한 시간이 다 되었음을 느꼈다.

고인물 특유의 감(感), 오로지 게임에 한해서만 발휘되는 생체 시계 능력!

파팟!

내가 잽싸게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삐그덕…! 끼긱…!

듣기 싫은 정체불명의 소음과 함께, 리치 왕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놈의 움직임이 육안으로도 관측될 정도로 현저하게 느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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