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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41화 (341/1,000)
  • 342화 오즈의 마법사 (2)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빅터 L, 『인류가 했던 최초의 생각』 中-

    *       *       *

    태어나 처음으로 했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곡괭이를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땅…! 땅…! 따앙…!

    채굴장(採掘場).

    정체모를 검붉은 금속 광산.

    돌 부스러기와 불똥이 뒤섞여 튀는 가운데 수많은 지푸라기 인형들이 광물을 나르고 있었다.

    ‘아, 나도 지푸라기 인형 중 하나인가.’

    주위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깡마른 짚 허수아비들을 보자 나 역시 그들과 같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저들과 다르지?’

    나는 곡괭이를 내려놓고 번민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허수아비들은 아무런 고민도 의문도 없이 바위 속의 금속을 캐고 그것을 저 먼 곳에 있는 용광로로 가져간다.

    화르륵!

    가혹한 노동에 지쳐 쓸모없게 된 허수아비들은 스스로 줄을 서 용광로 밑의 아궁이에 몸을 던져 넣어 장작이 된다.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군.’

    나는 다른 허수아비들과 달랐다.

    보람도 없고 영문도 모를 노동에 혹사당하다가 땔감으로 전락하는 신세는 되고 싶지는 않았다.

    쓰윽…

    손을 들어 머리를 더듬어보자 뭔가 묵직하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짚으로 만들어져 가벼워야 할 머리가 무거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안쪽에 뭔가가 들어간 것 같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머리 안을 만져보니 과연 뜨겁고 딱딱한 무엇인가가 만져졌다.

    내가 캐던 금속 파편이 곡괭이에 잘못 맞았는지 내 머리를 뚫고 박힌 것이다.

    ‘뇌가 생긴 기분이네.’

    머릿속에 뭔가가 들어가자 약간은 똑똑해진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된 걸지도.

    나는 설렁설렁 곡괭이질을 하는 동시에 주위를 살펴보았다.

    <오즈의 2번 용광로>

    내가 있는 곳은 2번 용광로.

    ‘…그렇다는 것은, 1번 용광로와 3번 용광로도 있다는 뜻이겠지?’

    이제 제법 논리적인 추론도 할 수 있게 된 나다.

    머릿속에 들어간 금속 파편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

    하지만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못했을 때보다 더욱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괴로울 때가 더욱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왜 나는 이렇게 일만 해야 하지?’

    ‘남들 다 일하면 나도 일해야 하나?’

    ‘진정한 내 모습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일까?’

    ‘이렇게 남들 사는 대로 따라 살아도 되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뭘 잘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인생을 의미 없이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톱니바퀴처럼 금속을 채굴하고, 용광로에 쏟아 넣고, 종국에는 아궁이 속으로 던져지는 저 수많은 지푸라기 인형들 사이에서, 나는 고민했다.

    바로 그때.

    [어라? 이놈은 왜 이렇게 둔하지?]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녀(魔女)’

    나를 만든 창조주이자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허수아비들의 어머니.

    그녀는 나를 들여다보며 신기해했다.

    [너는 몸에 이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별로구나? 이러면 오즈 님을 만족시킬 수 없어.]

    마녀는 깔깔 웃으며 손가락을 뻗었다.

    그녀가 가리킨 방향은 용광로를 달구는 거대한 아궁이의 입구가 있는 곳이었다.

    죽으라는 명령을 받은 순간, 항거할 수 없는 미증유의 힘이 내 발걸음을 강제로 옮겨놓았다.

    나는 무기력한 끄나풀.

    한없이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지푸라기 한 가닥.

    눈앞에 이글거리는 불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나는 덧없는 성냥 한 개비가 되어 저 아궁이 위의 솥을 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뒤로 또다시 수많은 허수아비들이 생겨나 이와 같은 명멸의 과정을 반복하게 되겠지. 영원히.

    내가 모든 것을 체념한 채 아궁이 속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콰쾅!

    기적이 일어났다.

    광산의 천장이 무너지더니 커다란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하늘에서 무언가 무거운 것이 떨어져서 마녀를 짓눌러 죽인 것이다!

    [아이고! 어쨌든 이겼다! 폼은 안 났지만.]

    멋쩍게 웃으며 머리에 붙은 돌 부스러기와 흙먼지를 털어내던 여자.

    용사(勇士) ‘도로시’와의 만남은 그것이 시작이었다.

    *       *       *

    도로시.

    그녀는 죽음룡 오즈가 광산을 만들기 위해 파괴한 작은 산골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가끔 운명이 유독 편애하는 인간이 있어 모든 축복과 기연, 사랑들이 한곳에 쏠리곤 하는데 도로시가 바로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도로시는 한 늙은 용사냥꾼에게 검술과 마법을 배웠고 자신의 마을을 멸망시킨 죽음룡 오즈에게 복수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왔다고 했다.

    그녀는 시종일관 유쾌한 성격이었다.

    도로시는 함께 긴 여행을 떠난 이래 첫 번째로 맞이한 어떤 마을의 할로윈 축제에서 내게 호박 가면을 사 주었고 그 뒤로 나를 ‘호박머리 잭’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나 역시 그 별명이 꽤 마음에 들었기에 도로시가 유쾌한 어조로 나를 부를 때마다 늘 기뻐서 웃곤 했다.

    그래 봤자 말라붙은 지푸라기가 비틀리는 듯한, 어딘가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만 낼 뿐 도로시처럼 만인의 사랑을 이끌어 내는 맑은 웃음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       *       *

    도로시와 나는 죽음룡 오즈의 한 병참 기지를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진짜 뇌가 없어 제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내게, 도로시는 전략을 일러 주었다.

    [죽음룡 오즈는 강해. 뿐만 아니라 우수한 부하들을 산하에 많이 거느리고 있지. 정면으로 쳐들어가면 승산이 없어.]

    따라서 도로시는 나와 함께 죽음룡 오즈의 핵심 산하기관들을 먼저 파괴할 생각이었다.

    전에 말했던 대로, 우리는 오즈의 용광로에 땔감을 공급하는 한 숲지대 요새를 먼저 공략하기로 했다.

    울창한 나무들이 즐비한 숲.

    이곳에 있던 모든 인간들의 마을은 전부 파괴되었다.

    남은 것은 오즈의 하수인들로 전락한 거인과 악귀들뿐.

    놈들은 숲의 나무들을 베어 용광로로 향하는 마차에 실어 보낸다.

    아궁이 속으로 들어갈 땔감들을 공급하려는 것이었다.

    도로시는 용맹하게 싸웠다.

    그녀를 가로막던 커다란 악귀들은 모두 놀라서 도망쳐야 했다.

    나는 자랑스럽게 도로시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뒤에 설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가슴 벅차는 일이었다.

    한편.

    도로시는 모든 나무들이 다 베어져 나간 민둥산에서 한 나무꾼을 만났다.

    그는 팔과 다리, 몸통, 머리가 없는 남자였다.

    대신 양철로 된 신체 부품들이 그의 육체를 대신하고 있었다.

    한평생 숲과 마을을 사랑했던 남자.

    소꿉친구 때부터 함께 자란 약혼녀가 있었던 그는 죽음룡 오즈의 방문에 모든 것을 내놓아야 했다.

    오즈와 싸우며 자신의 몸을 기계화했던 이 남자는 결국 최후의 전투에서 패배했고 약혼녀와 숲, 마을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정열과 사랑, 순수함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뜨거운 심장마저도.

    [우리랑 함께 가지 않을래요?]

    도로시는 기꺼이 이 양철 몸의 나무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역시도 그의 사정에 간절히 공감하고 있었기에 내심 그가 우리의 동료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양철 나무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즈에게 빼앗긴 심장을 되찾기 위해, 피와 기름이 섞인 눈물을 흘리며, 그는 우리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       *       *

    …전쟁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식량’과 ‘무기’이다.

    배와 손이 든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싸울 수 없다.

    죽음룡 오즈는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수인족(獸人族)’의 영토를 침략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인족이란 동물과 인간의 모습이 절반씩 섞여 있는 독특한 종족을 뜻한다.

    사자 계열 수인, 물소 계열 수인, 기린 계열 수인, 돌고래 계열 수인…다양한 동물 인간들이 모여 있는 사회.

    죽음룡 오즈는 이들의 우수한 식량 생산력과 전투력을 눈여겨보았다.

    여자들은 젖과 기름, 알, 고기 등을 빼앗기 위해 끌려갔고 남자들은 전쟁의 무기로 쓰이기 위해 징집 당했다.

    레지스탕스(Résistance)들은 모두 도륙당해 몇 점의 고기로 변해버렸다.

    수인의 나라를 다스리던 현명한 군주 ‘사자왕 헨리’ 역시도 죽음룡 오즈의 군단 앞에 비참하게 무릎 꿇어야 했다.

    …그때 벽장 안에서 사자왕의 몰락을 지켜보던 눈이 있었다.

    ‘새끼 사자 리차드’

    아버지 헨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무릎 꿇은 것을 보면서도 그는 벽장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저 죽음룡 오즈가 풍기는 압도적인 기운에 덜덜 떨며 숨어 있을 뿐이었다.

    한편.

    죽음룡 오즈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헨리를 보며 즐겁게 웃었다.

    그리고는 벽장으로 손을 뻗어 그 안에서 덜덜 떨고 있던 리차드를 끄집어냈다.

    오즈는 말했다.

    [나와 네 아비. 둘 중 하나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마.]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지가 아닌가?

    하지만 리차드에게 주어진 시련은 가혹했다.

    오즈는 리차드의 눈을 가린 뒤 제자리에서 수백, 수천 바퀴나 돌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자신의 몸을, 다른 한 쪽에는 사자왕 헨리의 몸을 가져다 놓았다.

    리차드에게는 칼 한 자루가 주어졌다.

    둘 중 하나. 증오스러운 적과 사랑하는 아버지.

    50%의 확률로 둘 중 하나가 죽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 리차드는 눈물을 흘리며 칼을 들었다.

    그리고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 앞으로 걸어갔다.

    …….

    눈앞에 있는 이가 아버지인지 오즈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킬킬거리는 웃음. 사악한 꼬드김. 돈 거는 소리.

    자기 일이 아닌 비극에 환희와 조롱, 연민을 보내는 눈빛들.

    땅그랑…!

    결국 리차드는 아무도 찌르지 못한 채 칼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러자 리차드의 시야가 다시 돌아왔다.

    마지막 순간 그의 칼 앞에 있던 이는 바로 원수(怨讎).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는 죽음룡 오즈였던 것이다!

    사자왕 헨리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간절한 시선으로 아들인 리차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리차드는 칼을 휘두르지 못했다.

    …결국, 사자왕 헨리는 잘게 다져진 고기조각이 되어 오즈 군단의 전투식량이 되었다.

    죽음룡 오즈는 리차드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겁쟁이’라고 멸칭했다.

    오즈는 리차드를 병사로 만들지 않았다. 겁쟁이는 필요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죽여서 고기로 쓰지도 않았다. 겁쟁이는 고기조차 더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자왕의 마지막 핏줄은 그렇게 철저하게 농락당했고 멸시당했다.

    수인족이 정신적으로도 멸종당하는 순간이었다.

    오즈가 이끄는 불사의 군단은 초토화된 수인족의 나라를 뒤로하고 떠나 버렸고 폐허에 우두커니 혼자 남은 새끼 사자는 스스로를 끝없이 자책했다.

    [내게 용기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피눈물은 새끼 사자가 보는 세상 전체를 붉게 물들인다.

    …그 붉은 폐허에 도로시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조금 뒤의 일이다.

    *       *       *

    도로시 원정대가 완성되었다.

    대낫을 든 허수아비. 양철 옷을 입은 나무꾼. 겁쟁이 사자.

    우리는 우리 모두를 필멸에 이르게 한 죽음룡 오즈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이내 여행의 최종장이 다가왔다.

    거대한 악(惡)!

    검은 비늘의 황제! ㅛ

    죽음의 대왕!

    오즈를 눈앞에 둔 우리는 지금껏 갈고 닦아온 증오를 여과 없이 터트리며 덤벼들었다.

    그리고 오즈는 우리를 비웃었다.

    …….

    그 비웃음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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