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40화 (340/1,000)
  • 341화 오즈의 마법사 (1)

    기나긴 인고(忍苦)의 시간이었다.

    -띠링!

    <세계 최초로 ‘중간지대의 괴물 ‘하린마루’’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잭 오 랜턴.>

    <보상이 지급됩니다!>

    <‘중간지대의 괴물’이 죽었습니다. 용 진영 ‘불사의 군단’의 사기가 감소합니다.>

    <중간지대의 생태계가 크게 바뀝니다.>

    <‘중간지대의 괴물’이 부활할 때까지 ‘서리 늑대’의 개체수가 증가합니다.>

    <‘서리 늑대’ 일족이 ‘조력자’를 향해 경의를 표합니다.>

    .

    .

    드디어 S급 몬스터 하린마루 레이드에 성공했다.

    …하지만 공략 난이도에 비해 결과는 썩 대단치 않았다.

    나나 윤솔, 드레이크 모두 약간의 경험치를 얻었을 뿐 레벨 업을 하지는 못했다.

    얻은 호칭이나 특전도 따로 없었다.

    “아마 잭 오 랜턴이 너무 하드캐리를 해서 그럴 거야. 마지막에 서리 늑대들도 엄청나게 몰려들었고.”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동의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래도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팔이랑 다리도 봉인했고! 죽을 뻔한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는데 진짜 너무한다! 포션 값도 안 나오겠어!”

    “어진! 이건 뭔가 부당하다! 내가 절취선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기여도 판정에 오류가 있는 게 틀림없어!”

    둘은 마치 내가 책임자인 것처럼 불평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툴툴대 봤자 소용없다.

    원래 메인 스토리 상 하린마루는 잭 오 랜턴에게 죽는 대적자 포지션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체념했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언데드 몬스터의 경우는 팔이나 다리를 자른다고 해서 기여도가 높게 판정되지는 않아. 머리나 심장 같은 동력원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기여도가 크지. 아니면 거동불가능으로 만들거나.”

    그래서일까?

    하린마루 레이드에서 가장 기여도가 컸던 존재는 역시 잭 오 랜턴, 그 다음은 서리 늑대 일족, 그 다음이 윤솔, 그 다음이 나와 드레이크 순이었다.

    조금 뒤에 상세하게 집계된 딜 미터기를 보자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얼마나 기여도를 쌓았는지 역시도 상세하게 분석되어 그래프와 표로 제시된다.

    의외로 나와 드레이크의 순위가 제일 낮았다.

    그 결과를 보자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아, 이게 생각보다 꽤 정교하구나. 하나 배웠네.”

    “몬스터 종류와 타입, 특성에 따라서 기여도 판정이 유동적이라는 건가.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시무룩해진 친구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린마루는 거지 몬스터로 유명하다고 전에 말했잖아. 잡기는 더럽게 힘들고 주는 건 없지. 그래서 우리도 거르고 가려고 했던 것이고.”

    동시에, 나는 저 멀리서 상념에 잠긴 잭 오 랜턴을 향해 턱짓했다.

    “사실 든든한 아군 NPC가 생긴 것이 제일 큰 보상이지. 그렇게 생각하자구.”

    그렇다.

    황금 던전의 고르딕사를 잡을 때도 최후의 드워프였던 벨럿의 협조 덕분에 일이 훨씬 쉬워졌었다.

    그러자 비로소 윤솔도 드레이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레이드의 가장 큰 보상은 잭 오 랜턴과의 호감도인 것이다.

    드레이크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세상에, 무려 S급 몬스터를 잡았는데도 빈털터리인 경우는 또 처음이군. 아이템이라도 좋은 걸 주려나?”

    하지만 그런 드레이크의 기대 역시 무참하게 배신당했다.

    하린마루는 죽으면서 딱 세 개의 아이템을 떨궈 놓았을 뿐이었다.

    -<악귀대왕의 왼팔> / 한손무기 / A+

    유명한 악귀의 왼팔을 잘라 내어 그대로 말린 것이다.

    사용자에게 불가해(不可解)의 근력을 선사한다.

    -공격력 +4,444

    -<악귀대왕의 오른팔> / 한손무기 / A+

    유명한 악귀의 오른팔을 잘라 내어 그대로 말린 것이다.

    사용자에게 불가해(不可解)의 근력을 선사한다.

    -공격력 +4,444

    -<악귀대왕의 뿔> / 투구 / A+

    유명한 악귀의 뿔을 도려내어 박제한 것이다.

    사용자에게 불가해(不可解)의 근력을 선사한다.

    -공격력 +4,444

    아무런 특성도 특징도 없는 세 개의 아이템.

    하지만 잘 보면 유일한 특징이 하나 보인다.

    …바로 깡 공격력이 미친 듯이 높다는 것!

    “……흐음. 아무런 특성도 없지만 물리 공격력 하나는 정말 엄청나군.”

    드레이크는 눈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보통 A+등급의 한손무기, 특히나 건틀릿 류의 공격력은 3천 초중반 선이면 높은 축에 든다.

    내가 마동왕 메타일 때 사용하는 ‘대왕게 집게해머 건틀릿’의 물리 공격력이 3,600. ‘아귀 메기 이빨너클’의 물리 공격력이 3,000(+물 속성 데미지 200)이었으니 저 무구들의 공격력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새롭게 얻은 ‘악귀대왕 세트 아이템’들을 수거했다.

    그리고 그것을 윤솔에게 내밀었다.

    “솔아. 이건 네가 장비하는 게 좋겠다.”

    “…응? 내가?”

    윤솔은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으쓱했다.

    “나는 마동왕 메타일 때 쓰는 아이템들이 이미 있어서 말이야. 자연재해 특성 옵션이 없는 아이템은 쓸 수가 없어.”

    “아하, 그런데 이 아이템들이 나랑 어울릴까?”

    “…뭐, 예상치 못한 복병 정도는 되겠지.”

    사실 윤솔은 힐러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위험에 제일 먼저 노출되었었다.

    그녀의 게임 센스가 생각보다 좋지 않았더라면 이미 몇 번은 발목을 잡았을 것이다.

    나는 그 점을 고려하여 말했다.

    “너에게 이런 물리 공격력이 숨겨져 있다고 누가 생각하겠어?”

    깡 공격력 13,332…!

    이 세상 어떤 서포터가 이렇게 공격력이 셀까?

    단순히 공격력만 놓고 보면 현재 세계랭킹 정상급 딜러들의 공격력에도 밀리지 않는다.

    방심한 채 다가오는 적을 힘으로 찢어 죽이는 힐러라니.

    ‘…상상만 해도 오싹하네.’

    힐러가 이렇게 괴랄한 근력을 가지고 있다고 그 누가 생각할 수 있으랴?

    서포터부터 잡겠답시고 가까이 달라붙는 놈이 있다면 높은 확률로 윤솔의 손에 잡혀 두 조각으로 확 찢어질 것이다.

    “알겠어. 그러면 이건 내가 쓸게.”

    윤솔은 내게서 아이템들을 넘겨받았다.

    츠츠츠츠츠츠츠…

    두 개의 건틀릿을 착용하자 작고 곱던 그녀의 두 손이 순식간에 솥뚜껑만 한 크기의 괴물 손으로 변한다.

    하린마루의 육중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폭발적인 힘이 윤솔의 양손에 깃들었다.

    그녀의 깡 공격력은 레이드 자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언젠가는 분명 함정 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고맙다, 친구들.]

    어느새 다가온 것일까?

    껑충 큰 키의 잭 오 랜턴이 허리를 굽히고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덕분에 얼추 복수는 할 수 있었어. 아직 진짜 적은 만나지도 못했지만. 큭큭큭…]

    그는 음침하게 소리죽여 웃더니 내게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오, 간만에 보는 아이템이로군.”

    나는 반색을 하며 잭 오 랜턴의 호의를 받아들었다.

    -<할로윈 구름과자> / A

    할로윈의 마녀들이 피우곤 하던 담배.

    지독한 마약성분이 있는 잎사귀를 건조한 뒤 빻아서 만든 것이다.

    -흡입 시 1초에 100의 HP 회복 (특수)

    -총 60분간 사용 가능 (특수)

    이번에도 제한시간이 있다.

    원래 잭 오 랜턴을 죽인다면 반영구적인 구름과자를 얻게 되지만, 그것보다는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 될 것이다.

    결국 하린마루 레이드는 이런 식으로 종결되었다.

    …아니, 하나의 보상이 더 있었다.

    [크르르릉!]

    전리품 분배와 보상 확인을 완료한 우리의 앞에 수많은 늑대들이 나타났다.

    우리를 둥글게 포위한 서리 늑대들. 수가 언제 이렇게 불어났는지 깜짝 놀랄 정도다.

    드레이크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쇠뇌를 들었다.

    “이런, 이놈들 기척도 없이 언제 여기까지…아무리 C+급 몬스터라고 해도 이 정도 마릿수라면….”

    얼추 기천 마리는 되어 보이는 숫자.

    하지만 드레이크의 걱정은 기우였다.

    [끼잉…]

    제일 앞에 있던 우두머리 늑대가 내 앞으로 오더니 납작 엎드렸다.

    나는 손뼉을 짝 쳤다.

    하린마루를 처치할 당시 들려왔던 알림음이 생각난 것이다.

    <‘서리 늑대’ 일족이 ‘조력자’를 향해 경의를 표합니다.>

    그렇다.

    하린마루는 서리 늑대 일족의 오랜 천적이자 숙적이었다.

    우리는 그런 하린마루를 해치워 준 공신, 의도치 않게 서리 늑대들과의 호감도가 엄청나게 두터워진 것이다.

    [크르릉!]

    [캐앵!]

    [컹! 컹!]

    그 외에도 수많은 늑대들이 내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다른 모든 늑대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뿌우!]

    쥬딜로페도 자신의 볼을 핥는 새끼 늑대와 놀며 기뻐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하린마루가 부활하기까지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

    보스 몬스터의 부재(不在).

    그 공백의 시간 동안 서리늑대들은 엄청난 부흥을 누릴 것이다.

    안 그래도 개체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몬스터가 아닌가?

    먼 훗날 하린마루가 리젠되었을 즈음이면 놈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서리 늑대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정말…아무리 C+급 몬스터라고 해도 개체수가 그만큼 많으면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힘들지…거기에다가 서리늑대들에겐 ‘백전노장’ 특성까지 붙어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투를 겪으면 겪을수록 강해지는 서리 늑대의 특성상 보다 상위의 몬스터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다.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지만…하린마루는 어쩌면 다음 세대에서는 이 던전의 보스 자리에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뭐 근데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지.”

    나는 자연스럽게 서리 늑대들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 고고하고 자존심 높기로 소문난 서리 늑대들이 자발적으로 탈 것을 자처해 오는 것은 실로 드문 광경이었다.

    윤솔과 드레이크 역시 이 진귀한 광경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윽고, 우리들은 서리 늑대를 타고 던전의 중심부를 돌파했다.

    물론 나는 서리 늑대들을 이동수단으로 삼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녹화하고 있다.

    “…이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북대륙에 사는 서리 늑대들보다 훨씬 더 큰 개체들입니다! 그런 놈들을 타고 달리고 있어요, 지금 제가! 이거 기분 진짜 상쾌합니다 형님, 누님, 동생님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 구독, 즐겨찾기, 별점, 댓글, 하트, 좋아요 부탁…”

    화려한 공주 드레스를 휘날리며 늑대를 타고 달리는 남자.

    훗날 시청자들이 보일 반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한편.

    친화력 좋은 윤솔은 옆의 늑대에 타고 있는 잭 오 랜턴을 향해 말을 걸고 있었다.

    “호박 씨는 왜 리치왕을 죽이러 가는 거예요?”

    […리치왕뿐만이 아니다. 놈의 주인인 ‘오즈’까지도 죽일 것이다.]

    “와, 각오가 대단하세요. 혹시 사유를 여쭤보아도 될까요?”

    이미 윤솔과 잭 오 랜턴의 호감도는 상당히 높다.

    잭 오 랜턴은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윤솔에게 자신의 히스토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먼 옛날. 한 마녀가 있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먼지 냄새가 풍기는 낡고 오래된 동화(童話).

    바로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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