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34화 (334/1,000)
  • 335화 오즈 랜드(Odd’s Land) (2)

    ‘오즈 랜드(Odd’s Land)’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던전 ‘얼어붙은 부패’

    이 얼어붙은 성채 속에는 성불하지 못한 망자들이 득실댄다.

    이 죽음의 벌판을 지배하는 것은 ‘리치왕’!

    ‘데스나이트’와 더불어 최강의 언데드 쌍두마차라고도 불리는 존재다.

    휘이이이잉…

    나는 칼바람을 맞으며 이곳 얼어붙은 성채 앞에 섰다.

    오래 전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그때 리치왕은 정말 사냥 불가능한 괴물이었지.’

    커다란 도끼날이 달린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거구의 마법사.

    놈은 전쟁이 한창 무르익고 있을 무렵 전장 동북부에서 갑자기 등장했다.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을 산하에 거느린 채로.

    가장 귀찮은 몬스터인 ‘냉동 흡혈귀’들과 ‘서리 늑대’ 떼, 그리고 리치왕의 충직한 몇몇 애완동물들이 전장을 순식간에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성가신 점은 놈의 특성 중 하나인 ‘무덤사역’이었다.

    전장에 죽어 나자빠져 있던 리자드맨 유저들의 시체가 뼈만 남은 채로 일어나 광전사처럼 싸우는 것은 정말로 섬뜩한 광경이었지.

    “……리치 왕을 미리 잡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나게 골치 아파진다.”

    이런 연유로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데리고 이곳 얼어붙은 성채 앞에 선 것이다.

    훗날 가장 강력한 장애물이 될 것을 미리 치워 놓기 위하여!

    땅! 따앙!

    자일과 망치, 하켄을 이용해 냉담한 성벽을 넘어가자 이내 그 너머 공터에 뻥 뚫려 있는 싱크홀이 보인다.

    <얼어붙은 부패> -등급: ?

    검은 땅에 난 거대한 싱크홀. 그것의 주변은 하얀 서리로 뒤덮여 있다.

    이상하게도 이 땅만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온도가 압도적으로 낮았다.

    드레이크는 감탄했다.

    “지하로 이어져 있는 던전이었군. 주변이 다 뜨거운데도 여기만 차갑길래 냉기가 어디에서 생겨나는 건가 궁금했었다.”

    지저 탐험이라면 이미 어비스 터미널의 경험이 있어 익숙하다.

    윤솔도 드레이크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로 내려간다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노르딕 페이스에서 사온 공주 드레스들을 잔뜩 껴입고 있었기에 추위도 문제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터엉!

    드레이크가 발을 들이는 순간, 구멍 속의 어둠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안개처럼 뿌연 벽을 만들어 드레이크를 밀어낸다.

    -띠링!

    <진입불가 구역입니다!>

    <입장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렇다.

    이곳은 아직 구현되지 않은 던전, 훗날 이벤트가 열릴 때를 위해 잠겨 있는 공간이다.

    드레이크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자격이 없다니?”

    나는 그런 드레이크에게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선 두 가지 중 한 개 이상의 자격을 만족시켜야 해.”

    “뭔가?”

    “첫째, 이벤트 기간 내에 접속할 것.”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벤트는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 죽음룡 오즈가 전쟁을 벌일 준비를 충분히 끝마쳤을 때나 발동할 테니까.

    그렇다면 두 번째는…….

    나는 두 번째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죽는 것.”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와 윤솔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죽음룡 오즈는 의심이 지독하게도 많아. 살아 있는 것들은 절대 자신의 영역에 들이지 않지. 놈이 유일하게 믿는 것은 ‘망자(亡者)’들뿐이야. 그들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죽은 뒤 시체 상태로 관에 들어가 있어야만 이 던전으로 입장 가능한 것이다.

    …뭐 그렇게 해서 들어가 봐야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드레이크가 손뼉을 탁 쳤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천공섬에서 산 엘릭서가 딱 두 장 남아 있었어! 엘릭서를 이용하면 죽은 직후 한 번은 살아날 수 있으니 죽은 뒤에 던전에 들어가서 다시 살아나면….”

    “엘릭서도 주문서인데 찢어야 발동하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주문서를 찢어.”

    “음…그런가? 그렇다면 어떻게 들어갈 생각이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나는 드레이크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지.”

    나는 크라켄의 ‘틈’ 특성을 발동했다.

    아주 약간의 구멍만 있으면 어디든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문어의 고유능력!

    거기에, 나는 약간의 버그를 응용하기로 했다.

    나는 구멍 속 어둠과 바깥의 밝은 공간이 맞닿아 있는 경계에 주목했다.

    현실이었다면 깊은 곳의 어둠은 바깥으로 연결되며 아주 천천히 옅어진다.

    하지만 게임 세계에서는 어둠과 빛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 둘은 섞이지 않은 채 마치 물과 기름처럼 대기 속에서 서로 양분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싱크홀도 어느 구간까지는 밝다가 어느 구간부터는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이다.

    나는 빛과 어둠의 경계로 몸을 삽입해 넣었다.

    우직- 우직- 우지직-

    크라켄의 특성이 빛과 어둠의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다.

    ‘타이밍! 타이밍만이 살길이다!’

    나는 아득해지는 시야 속에서 생각했다.

    그때.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밖에서 윤솔이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빛과 어둠의 틈새로 파고들기 전 윤솔에게 큰 소리로 숫자를 세라고 시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나는 뒤틀린 공허 속에서도 시간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이다!’

    나는 어느 정도 내 몸이 공허 속으로 파고들었을 때 재빨리 점프하는 모션을 취했다.

    드디어 버그가 발동되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일정 시간을 보낸 뒤 특정한 타이밍에 점프하는 듯한 모션을 취하면 캐릭터는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게 된다.

    개발자가 설정치를 잘못 삽입해서 벌어지는 오류로 포X몬스터, 혹은 검X사막 등에서 주로 발생해 유명해진 버그.

    원래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션이 뜨게끔 적용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지면 위 평평한 곳에다가 적용하다 보니 이렇게 땅 밑으로 가라앉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기야 개발자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지. 누가 이런 곳까지 도달해서 이런 짓을 하겠냐고.’

    진입불가 구역으로 와서 ‘틈’ 특성을 발동해 안으로 억지로 들어간 뒤 설정치 버그를 악용하는 진상이 상식적으로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굳이 버그가 있음에도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띠링!

    <진입불가 던전 ‘얼어붙은 부패’ 지하 1층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나는 얼어붙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좋았어.”

    나는 머리칼에 붙은 얼음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엄청나게 넓은 지하공간.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나는 이미 이 던전의 구조를 대략 알고 있다.

    ‘…어디 보자, 서리이빨 공격대였던가?’

    회귀 전, 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이 던전을 공략했던 레이드가 있었다.

    유명한 오크 유저들이었던 그들은 엄청난 머릿수와 화려한 장비를 내세워 이 던전을 공략했지만…안타깝게도 결과는 실패였다.

    다만 그들은 리치왕의 던전을 선제공격함으로써 리치왕과 그가 이끄는 불사의 군단 좌익이 전장에 다소 늦게 도착하게 만드는 성과를 올리긴 했다.

    지금부터 내가 이용할 공략법은 전부 그들의 회고록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자, 침착하게 생각해 보자.”

    이 던전은 총 지하 28층…

    서식하는 몬스터들은…

    떨어지는 아이템들은…

    주의해야 할 함정은…

    꼭꼭 숨겨져 있는 히든 피스의 위치는…

    보스 몬스터의 등장 타이밍은…

    모든 공략들이 머릿속에서 점점 형태를 갖춰나간다.

    그때 인터뷰를 진행했던 레이드 멤버들의 발언, 다툼, 논쟁, 아쉬움.

    어떤 점에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다퉜고 어떤 점에서 아쉬웠고 어떤 점에서 깜짝 놀랐는지…기억나는 것들은 모두 되새김질했다.

    “좋았어. 준비 완료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텅! 터엉!

    입구 쪽에서 두 개의 관이 떨어져 내렸다.

    관은 울퉁불퉁한 얼음굴 입구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려와 바닥에 처박혔다.

    나는 재빨리 관 두 개를 얼음구덩이에서 끌어올려 바닥에 나란히 정렬해 놓았다.

    끼긱…!

    깎단을 들어 관과 관뚜껑 사이에 찔러 넣고 비틀자 이내 관짝 내부의 공간이 드러났다.

    관 속에 창백하게 변한 두 구의 시체가 보인다.

    윤솔과 드레이크.

    내 친구들은 나를 따라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던 것이다.

    “걱정 마. 사망 패널티는 없으니까.”

    시체가 온전하니 엘릭서를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때 이른 매장> / 주문서 / A+

    성급하게 파묻힌 환자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문서.

    일부 연금술사들에게는 ‘엘릭서’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1회만 사용 가능합니다

    -특성 ‘소생’ 사용 가능 (특수)

    천공섬의 야시장에서 딱 3장 있던 것을 샀었다.

    한 장은 식인황제 보카사를 되살려 내는 데 썼으니 이제 두 장이 남았다.

    내가 마지막 엘릭서 두 장을 찢자.

    “…앗!”

    “…엇!”

    이내 윤솔과 드레이크가 눈을 떴다.

    “드레이크 씨 하나, 둘, 셋에 찔러 달라고 했잖아요! 둘에 찌르시면 어떻게 해요!”

    “미안하다. 하도 무서워하기에 그랬다.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둘은 죽음에서 깨어나자마자 툭닥거린다.

    “사이좋게 동반자살을 한 사이에 왜 그래.”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말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지하로 이어지는 나선형의 긴 얼음층계가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얼음굴을 탐험할 차례!

    나와 윤솔, 드레이크가 지하를 향해 내려가려 할 때.

    […뿌앵!]

    마치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는 듯, 품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쥬딜로페였다.

    화려한 드레스를 돌돌 껴입은 이 어린 여왕은 나의 옷깃을 연신 잡아당긴다.

    아무래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아차!”

    나는 벽을 가리키는 쥬딜로페의 손가락을 보고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나의 작은 여왕님을 쓰다듬었다.

    “고맙다. 자칫하면 깜빡할 뻔했어.”

    말을 마친 나는 고개를 돌려 1층의 벽을 바라보았다.

    얼음벽에 잔뜩 늘어져 있는 것.

    그것은 두터운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는 관짝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맵의 일부, 조각상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아니다.

    “벽에 붙은 관은 전부 파괴해야 해. 그냥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인상을 썼다.

    이 관짝 안에는 훗날 용마전쟁에서 활약하게 될 수많은 흡혈귀 영웅들이 냉동된 채 잠들어 있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간 것이 ‘서리이빨 공격대’가 먼 훗날까지 두고두고 아쉬워한 점이다.

    너무 미래만 생각하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현재를 잊어버렸다.

    냉동 흡혈귀가 들어 있는 관을 짚어 준 쥬딜로페의 사려 깊음에 나는 다시 한번 감사했다.

    한편.

    땅땅!

    드레이크는 두터운 얼음 관을 손가락을 두드려 본 뒤 물었다.

    “그런데 이 관을 무슨 수로 봉인하지? 무척이나 단단해 보이는데.”

    “좋은 질문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꽤 많은 수의 아이템들을 꺼냈다.

    달그락- 드르르륵-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챙겨뒀던 아이템.

    -<드워프의 은 말뚝> / A

    그 무엇이든 뚫고 고정할 수 있는 말뚝.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다.

    고르딕사를 처치한 이후 드워프 NPC ‘벨럿’에게서 받아 뒀던 은 말뚝이었다.

    나는 한 손에 망치, 다른 한 손에 은 말뚝을 들고 말했다.

    “말뚝박기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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