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33화 (333/1,000)
  • 334화 오즈 랜드(Odd’s Land) (1)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일부 몬스터들은 손에 넣게 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의 기후를 조종하기도 합니다. 가령 동대륙은 원래 사막지대였고 지금은 용암지대로 바뀌었지만, 대격변 이후 새롭게 등장하여 세력을 불린 이 ‘리치왕’이라는 몬스터는 인근의 기후를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여…….’

    -처리2반 반장 남세나의 대격변 기자회견 中-

    *       *       *

    ‘오즈 랜드(Odd’s Land)’, 혹은 ‘썩어 불타는 땅’으로 불리는 구역.

    이 황무지의 모든 것들은 죽어서 썩어 있거나 아니면 활활 불타고 있다.

    죽어서 썩은 것들이 가스가 되고 석유가 되기 때문에 불타는 것인지, 불타기 때문에 죽어서 썩는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실로 알 수 없는 기묘한 맵.

    하지만 이 지형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가혹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썩고 불타는 이 가혹한 땅에서도 유난히 더 척박한 구역이 존재했다.

    시시각각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불기둥과 자욱한 유황가스, 온 세상 천지를 뒤덮어 흐르는 용암의 물결.

    이런 불지옥 같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꽁꽁 얼어붙은 구역이 분명 동북쪽 외곽에 존재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부패’

    불지옥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얼음의 성채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지하까지 뻗어 있었기에 실제 규모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던전임에 분명한 곳.

    한편.

    금을 찾아 이곳까지 흘러든 사람들은 이 던전 근처에 마련되어 있는 간이 주점에 모여서 수군거린다.

    “와, 이 땅은 정말 미쳤군. 추웠다가 더웠다가, 아주 정신이 나갔어.”

    “나무들은 죄다 썩고, 화산은 불타고. 정말 지옥이 따로 없는데?”

    “이게 다 죽음룡 오즈와 탐욕의 성좌 마몬이 싸우고 있기 때문이잖아. 언데드들을 조종하는 블랙 드래곤하고 지하광물을 욕심내는 악마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으니 죄다 썩고 불탈 수밖에.”

    “언데드 하고 지하 광물이라. 공통점이 있나?”

    “있지. 망자나 광물이나 다 지하에 파묻혀 있다는 거?”

    너무 척박한 환경이라서 그런가 간이 주점과 NPC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때문에 이곳에 모인 인간, 리자드맨, 오크들은 저희들끼리 싸우지 않은 채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말하자면 일시적인 소강상태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장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세 종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간이주점의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위태롭다.

    저마다 여차하면 무기를 들고 칼부림을 할 준비를 마쳐 놓은 상태.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삐그덕- 쾅!

    …갑자기 주점 안으로 들이닥친 세 명의 공주들만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어이, 춥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주점 문을 열고 들어와 테이블에 앉았다.

    드레이크는 가터벨트를 입은 채 다리를 꼬고 그 위를 드레스 자락으로 덮었다.

    “노출도가 심한데도 보온성이 좋군. 좋은 브랜드야.”

    노르딕페이스에서 제작한 옷들은 대부분 가볍고 보온성이 좋아서 여러 겹 덧입기에 좋다.

    우리 셋은 원피스와 드레스 등을 풍성하게 껴입고 이곳에 앉아있는 것이다.

    주점에 있던 모든 종족 유저들이 우리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음. 내가 리자드맨이라서 그런가. 이해할 수가 없군.”

    “…음. 내가 오크라서 그런가. 이해할 수가 없군.”

    “…음. 내가 인간이라서 그런가. 이해할 수가 없군.”

    주점에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전의를 상실한 채 슬그머니 일어나 천막을 걷고 나가 버렸다.

    원래 힘 쎈 놈보다 무서운 것이 미친놈인 법이니까!

    뭐 아무튼. 간이 주점이 텅 빈 상태라서 좋다.

    우리는 따듯하게 데운 맥주를 시켜놓고 장비를 점검했다.

    화살과 쇠뇌를 점검하던 드레이크가 투덜거렸다.

    “배드엔딩의 몸으로 만든 아이템들은 성능이 좋긴 한데 주변에 있는 다른 쇠붙이들을 녹슬게 해서 골치란 말이지. 세트 아이템인 것마냥 이것들만 써야 할 것 같다. 다른 아이템들이 죄다 녹슬어 버리니 원….”

    “나는 하프하고 안대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아. 뭐… 방어구까지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드레이크와 윤솔의 발언들은 모두 중요한 것이었기에 나는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기로 했다.

    착-

    나는 맥주를 한 잔 마시고는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쳤다.

    -제 7분쟁지역-

    우리는 지금 동대륙의 동북쪽 외곽, 죽음의 용군주 ‘블랙 드래곤 오즈(Odd’s)’의 영역과 탐욕과 광물의 악마성좌 ‘마몬’의 영역이 겹치는 구역에 와 있다.

    나는 친구들에게 설명했다.

    “곧 이 분쟁지역에서 대규모의 종족 전쟁이 벌어질 거야.”

    원래 이곳은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이 지배하는 구역이었다.

    마몬은 이 땅에서 채굴되는 특정 금속인 ‘불카노스’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죽음룡 오즈 역시 같은 광물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죽음룡 오즈는 대격변 이후 지형이 뒤틀림과 동시에 날개를 펴고 마몬의 불카노스 광산을 무단 점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 마몬은 자신을 따르는 ‘불타는 군단’을 이끌고 죽음룡 오즈를 쫓아내려 하고 죽음룡 오즈는 자신을 따르는 ‘불사의 군단’을 이끌고 이에 맞서고 있다.

    곧 용군주와 악마성좌가 이끄는 거대한 군단이 이곳 분쟁지대에서 맞붙을 것이고 이에 따라 플레이어들 역시도 각각 ‘용의 부하로서의 리자드맨’, ‘악마의 부하로서의 오크’로 갈라져 싸우게 될 것이다.

    “…사실 모든 건 우리 때문이야. 우리가 천공섬을 떨군 것을 용은 악마들의 소행이라 여기고 악마들은 용의 소행이라고 여기거든. 서로가 서로에게 선제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내가 쏘아내린 작은 천공섬이 결국 어마무시한 파급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나는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눈을 빛냈다.

    “약 한 달쯤 뒤. 이곳에서 거대한 전쟁이 벌어질 거야. 수없이 많은 플레이어들도 휘말릴.”

    윤솔과 드레이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한다.

    나는 다시 한번 선언했다.

    “그리고 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고정 S+등급의 몬스터를 죽인다.”

    말을 마친 나는 단도를 들어 지도를 팍 찍었다.

    칼날이 박힌 곳은 바로 ‘오즈 랜드(Odd’s Land)’!

    검은 비늘의 드래곤 오즈가 다스리는 광활한 영토였다.

    “죽음룡 오즈. 우리가 정상에서 끌어내릴 첫 번째 타깃이다.”

    내 말에 드레이크는 오싹 몸을 떨었다.

    고정 S+등급 몬스터의 위엄을 조금이라도 겪어 본 적 있기에 느끼는 전율이리라.

    그는 내게 물었다.

    “이놈을 무슨 수로 잡지? 바로 가서 덤비려는 건가?”

    “그럴 리가. 모든 일에는 절차라는 게 있는 법이지.”

    나는 다시 지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내가 단검으로 찍은 곳, 그곳으로부터 동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나온다.

    ‘얼어붙은 부패’

    불지옥 같은 주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꽁꽁 얼어붙어 있는 성채.

    나는 간이 천막 입구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성벽을 응시하며 말했다.

    “죽음룡 오즈는 마몬에게 맞서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제 7분쟁지역으로 내려갈 거야. 그리고 그 군사들을 지휘하게 될 강력한 지휘관 하나가 이곳에 잠들어 있지.”

    예전에 부패의 악마성좌 벨제붑이 동맹 군주를 구하기 위해 부유섬의 여덟 다리 대왕을 찾아왔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죽음룡 오즈 역시도 꽤나 유능한 부관들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데 막상 전쟁이 시작되면 이것들이 거의 범접 불가능할 정도로 날뛰는 통에 플레이어들은 부지기수로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죽음룡 오즈의 부하들을 제거하고 갈 생각이었다.

    미래를 아는 나로서는 가장 성가신 녀석들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좌익 병참기지의 리치왕. 이놈이 오즈의 왼팔이지. 그리고 우익 병참기지의 데스나이트. 이놈이 오즈의 오른팔이고.”

    던전 ‘얼어붙은 부패’를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 ‘리치왕’.

    던전 ‘칼침의 탑’을 지배하는 보스 몬스터 ‘데스나이트’.

    이 최강 최악의 언데드 쌍두마차를 미리 제거해 놔야 훗날 죽음룡 오즈를 잡을 때 조금 수월해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죽음룡 오즈를 제거한 뒤 그 특전을 이어받아 그대로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을 잡을 거야.”

    서로 반목하고 있는 고정 S+급 몬스터 둘을 스트레이트로 격퇴한다는 계획.

    누가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비웃을 법한 소리였지만 드레이크와 윤솔은 웃지 않았다.

    …아니, 웃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정말로 그 계획을 현실로 이뤄낼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과 그로부터 오는 전율 때문이리라.

    그때.

    윤솔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어진아.”

    “응?”

    “…음, 그렇게 되면 오즈랑 마몬의 부름에 의해 이곳으로 몰려온 플레이어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렇다.

    죽음룡 오즈와 탐욕성좌 마몬이 붙는 것은 단순히 몬스터들 간의 분쟁이 아니다.

    아마도 거대한 메인 퀘스트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메인 퀘스트가 발동되면 월드맵 전체에 동원령이 내려질 것이고 수많은 리자드맨과 오크들이 자신들의 왕을 찾아 움직일 것이다.

    또한 수많은 인간들이 그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뭔가 이득을 챙길 게 없을까 싶어 몰려들겠지.

    이 대규모 종족 전쟁은 메인 퀘스트임과 동시에 일일 퀘스트로 모든 종족의 유저들이 고루 참여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세 종족 다 나름의 퀘스트 보상을 위해 움직일 건수가 충분하다.

    결국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어비스 터미널을 건너 이곳 썩어 불타는 땅, ‘제 7분쟁지대’로 몰려들 것이다.

    …그런데 막상 왔더니 자신들을 부른 죽음룡 오즈와 탐욕의 성좌 마몬이 이미 누군가에게 잡혔다면?

    “다들 충격이 엄청나겠군.”

    “되게 황당할 것 같아.”

    드레이크와 윤솔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손가락을 저었다.

    “그럴 틈도 없을 거야.”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친구들이 말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기에, 나는 굳이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모두 죽을 테니까.”

    나는 탁자 위로 아이템 하나를 올려놓으며 씩 웃었다.

    탁-

    그것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가면.

    바로 ‘피카레스크 마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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