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28화 (328/1,000)
  • 329화 애완남의 일상 (3)

    -<와두두 여왕의 알> / ?

    벌레도 식물도 아닌 존재의 알.

    안에는 꿈 많은 소녀 ‘쥬딜로페’가 잠들어 있다.

    -5% 확률로 시끄러움

    -부화조건: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

    원래 그녀는 캡슐처럼 투명한 알껍질 속에 잠들어 있었다.

    ‘설마 부화 조건이 대격변이었을 줄이야.’

    나는 끙 소리를 내며 머리를 짚었다.

    예전에 프로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해 와두두 군락지대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받은 버프로 나는 결국 우승컵을 거머쥐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덤으로 얻게 된 것이 바로 이 쥬딜로페가 든 알이다.

    부화조건이 ‘???’로 처리되어 있어 뭘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대격변의 화염폭풍으로 인해 대기의 온도가 일정 수치까지 상승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빼애애애앵!]

    쥬딜로페는 바닥에 엎드려서 계속 울고 있었다.

    그것을 본 마더 테레라는 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네가 떠난 바로 그 순간부터 계속 저렇게 울기만 하고 있다고! 제발 좀 그치게 해 봐! 벌써 직원 서른두 명이 청력을 잃었어!]

    그녀의 말로는 쥬딜로페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동원하지 않은 수단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골칫덩이 꼬마 공주는 계속해서 이 세상에 하나뿐인 동족(?)이자 가신(?)을 찾으며 울어재꼈다고….

    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하긴, 울음이 나올 수밖에.’

    대격변 이후 와두두라는 종족은 멸종했다.

    오로지 하나, 어린 여왕 쥬딜로페를 제외하고 말이다.

    알에서 깨어나 보니 그 많았던 동족이 모두 사라진 것을 느낀 여왕. 그녀의 심경이 어떠할까?

    그러던 도중 유일한 가신이자 펫(?)인 나까지 눈에 안 보이자 그 불안함이 절정에 이른 것이다.

    “자, 자. 네 펫 여기 있다.”

    내가 박수를 치자.

    [……!]

    쥬딜로페가 울음을 뚝 그쳤다.

    호다다다닥-

    그녀는 이내 맹렬한 기세로 달려와 내 품에 안긴다.

    다시는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조막만 한 손으로 내 망토자락을 꼭 쥐는 걸 보니 애는 애구나 싶었다.

    [……호에엥.]

    나는 히끅히끅 딸꾹질을 하는 쥬딜로페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런 나를 보며 윤솔이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어진아. 얘도 네 펫이야?”

    “아니. 내가 얘 펫이야.”

    “응? 아니, 그러니까. 얘가 네 펫이냐고.”

    “아니라니까. 내가 얘 펫이라고.”

    “……?”

    윤솔 역시도 맨 처음 드레이크가 보였던 것과 같은 반응이다.

    아무튼.

    나는 히드라와 쥬딜로페를 펫 호텔에서 되찾아 왔다.

    쥬딜로페는 자신을 떼어 놓고 간 것에 굉장히 화를 내고 있었다.

    찰싹찰싹찰싹찰싹찰싹…

    앙!

    꾸욱- 꾸욱- 꾸욱-

    내 머리를 쉴 새 없이 손바닥으로 때리는가 하면 볼이나 귀를 물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등 아주 심술 맞은 꼬맹이다.

    “아야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호감도가 굉장히 낮네.”

    나는 잔뜩 심통이 난 쥬딜로페의 눈치를 살폈다.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나를 노려보는 그녀.

    그 빠알간 눈동자에 내 난처한 표정이 담긴다.

    “그러지 마라. 이제 우리는 같은 처지라고.”

    나는 쥬딜로페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고는 둥게둥게 안아들었다.

    인간의 문명 역시도 대격변 이후 크게 몰락했다.

    와두두의 문명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용과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겉도는 쩌리 종족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었다.

    [호에에엥…]

    새삼 세상에 의지할 곳이 아무도 없게 되었음을 안 쥬딜로페는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쥬딜로페를 향해 다짐했다.

    “걱정 마라. 나 역시 명예 와두두(?)잖냐. 내가 책임지고 다시 너의 일족을 부흥시켜 주마.”

    원래라면 이 쥬딜로페 역시도 대격변의 여파에 휘말려 이 세상에서 사라졌어야 한다.

    하지만 나로 인해 미래는 바뀌었다.

    지금 여기 살아남은 한 명의 여왕 덕에 와두두라는 종족은 다시 한번 영광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내가 책임지고 그렇게 도울 것이니까.

    ‘그리고…이 아이는 새로운 대규모 업데이트, 즉 ‘2차 대격변’의 열쇠가 되지.’

    나는 훌쩍이는 어린 여왕 쥬딜로페를 보며 눈을 빛냈다.

    바로 그때.

    [사라져라 이 악마들아! 다시는 오지 마!]

    그동안 쥬딜로페의 울음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려 버린 마더 테레라가 나를 향해 지팡이를 휘두른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더 이상 조절할 수 없게 된 모습.

    ‘어쩔 수 없지. ‘분노 조절 장애’를 ‘분노 조절 잘해’로 바꾸는 방법은….’

    나는 그런 마더 테레라에게 가죽 자루 하나를 건넸다.

    짤그랑-

    현실 돈으로 환전을 하고도 한참 남은 고르딕사의 금화이다.

    나는 짧게 감사를 표했다.

    “이거 양육비에요. 고생하셨을까봐 좀 더 넣었어요.”

    그러자 금화 주머니의 무게를 슬쩍 달아 본 마더 테레라의 표정이 급변한다.

    그녀는 예전의 그 천사 같은 미소를 되찾은 채 우아하게 머리 숙여 인사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손님. 어휴, 우리 쥬딜로페 예쁜 것 좀 봐~]

    역시 인간 종족이 재밌다니깐.

    *       *       *

    한편.

    나는 단단히 삐쳐 있는 쥬딜로페를 바라보며 난감해하고 있다.

    [흥!]

    쥬딜로페는 평생 나에게 뒷모습만 보여 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굴었다.

    슥-

    내가 슬쩍 발걸음을 옮겨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라치면.

    빙글-

    쥬딜로페는 마치 팽이처럼 빙그르 돌아서 나를 외면한다.

    슥- 빙글- 슥- 빙글- 슥- 빙글- 슥- 빙글- 슥- 빙글-

    쥬딜로페는 항성처럼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나는 그런 쥬딜로페를 중심으로 행성처럼 뱅글뱅글 돈다.

    내가 발걸음을 빠르게 할수록 쥬딜로페 역시 빠르게 회전한다.

    우리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마치 토성 하나가 훌라후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

    결국 쥬딜로페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 자리가 움푹 패일 때까지 돌고 나서야 나는 그녀의 얼굴을 알현하는 것을 포기했다.

    […흥!]

    쥬딜로페는 지치지도 않는지 아직도 내 얼굴을 외면하고 있는 상태였다.

    드레이크가 그런 쥬딜로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알에서 막 깨어난 직후 떨어져 있다 보니 호감도가 많이 낮은 모양이다.”

    “으음, 큰일이네. 고르딕사 때는 위험해서 못 데려갔었는데. 2차 대격변을 일으키려면 얘랑 호감도가 MAX까지 올라가 있어야 한다고.”

    쥬딜로페와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어야만 2차 대격변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와 나의 사이는 그야말로 최악, 호감도는 거의 0에 수렴할 정도였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윤솔이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선물을 줘 보는 건 어떨까?”

    좋은 생각이다.

    NPC와의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 중 가장 어렵고도 쉬운 것이 바로 선물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선물을 줄 때도 조심해야 한다.

    NPC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줄 경우 호감도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 카르마 수치가 쌓이는 경우도 있다.

    가령 전쟁으로 인해 다리를 잃은 아이 NPC에게 축구공을 선물로 준다거나, 불임으로 고민하는 부부 NPC에게 아기 옷을 선물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이럴 때 모든 상황에서 범용 가능한 선물은….

    “바로 이거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금괴 한 점을 꺼내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받는 이를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선물, 바로 현금 아니던가!

    하지만.

    [퉤-엣!]

    쥬딜로페는 내가 준 금괴의 귀퉁이를 잠시 오물오물 씹더니 이내 땅바닥에 내버렸다.

    그 바람에 얼마 있지도 않은 호감도가 더욱 깎여 버렸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금 함유량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이게 18K인 것을 알아차린 것이라면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24K를 줘야 하나….”

    “어휴, 어진아. 그게 아니지.”

    보다 못한 윤솔이 앞으로 나섰다.

    “……쨔잔!”

    그녀는 인벤토리를 뒤지더니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린 숄 하나를 꺼내들었다.

    천공섬이 추락하기 전, 천사들의 야시장에서 구입했던 악세서리다.

    그것을 본 쥬딜로페의 눈이 순식간에 석류알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호엥, 호에엥! 뿌우!]

    쥬딜로페는 윤솔을 향해 앙증맞은 손바닥을 뻗어 바동거렸다.

    윤솔이 숄을 걸쳐주자 쥬딜로페는 세상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그것의 풍성한 털을 만지작거린다.

    -띠링!

    쥬딜로페가 윤솔을 보고 느끼는 호감도가 소폭 상승했다.

    윤솔은 그거 보라는 듯 나를 향해 어께를 으쓱해 보였다.

    “이 아이는 알에서 나온 뒤 줄곧 알몸이었잖아. 선물을 줄 거면 아이의 입장에서!”

    “…아하, 그렇군. 옷을 좋아하는 건가?”

    당장 인벤토리를 뒤진다.

    일단 대충 쓸 만한 옷이 몇 벌 보였다.

    “끝내주는 옷을 선물하지.”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유용하고 효율성 있는 갑옷 한 벌을 꺼내들었다.

    -<사망 도륙망치의 인간 혈액절임 살가죽 조끼> / 갑옷 / A

    망치로 사람 머리통을 으깨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한 연쇄살인마가 남긴 유품이다.

    그동안 죽인 사람들의 살가죽을 벗겨 꿰매 만든 것으로 으스스한 기운과 함께 썩은 악취가 풍긴다.

    -어둠 속성 방어력 -10%

    -방어력 +2,500

    -최대 체력 +20%

    -특성 ‘악취’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고속재생’ 사용 가능 (특수)

    간지 그 자체인 갑옷.

    입었을 때 마치 좀비가 된 듯 썩어 문드러진 바디를 가지게 되며 몸 주위로 으스스한 검은 오오라가 피어오른다.

    옵션 성능도 꽤나 좋고 패시브 스킬도 두 개나 붙어 있는데다가 좀비 룩을 완성할 때의 필수템인지라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초고가에 거래된다.

    특히나 오크나 리자드맨들은 이 갑옷 한번 구경해 보겠다고 난리다.

    “……원해?”

    나는 갑옷을 흔들어 보이며 쥬딜로페를 향해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뿌애애애애애앵!]

    쥬딜로페는 선망의 눈빛을 보내는 대신 땅을 팡팡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내 생전 저렇게 서글프고 억울하게 우는 애는 맹세코 처음 봤다.

    한편, 나는 점점 더 떨어지는 호감도를 보며 경악해야 했다.

    “아니 왜? 옷을 원한다며? 이게 얼마나 멋진 갑옷인데! ‘악취’ 특성은 말이 악취지 실제로는 냄새도 안 나요! 이거 한번 입어 보고 싶어 안달 난 고인물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내가 갑옷을 흔들어 보였지만 쥬딜로페는 역겹다는 듯 구역질만 했다.

    “어진, 그 갑옷 나 주면 안 되나? 검은 오오라 멋있겠는데.”

    괜히 드레이크만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쳐다볼 뿐이다.

    그때.

    “어휴 정말!”

    나와 드레이크의 등짝을 찰싹 때리는 손바닥이 있었다.

    화가 난 표정의 윤솔이다.

    “얘는 여자아이잖아! 여자아이 취향에 맞는 옷을 줘야지!”

    그 말에 나와 드레이크 모두 아차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인생 서른 하고도 수 년.

    유치원을 중퇴한 이후 어린 꼬마 여자아이와 교류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드레이크 역시 비슷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터라 딱히 내게 해 줄 말은 없어 보인다.

    나는 윤솔에게 물었다.

    “…그럼 뭘 해야 할까?”

    내 말을 들은 윤솔은 쥬딜로페와 가만히 시선을 맞췄다.

    쥬딜로페는 자기의 어깨를 풍성하게 감싸고 있는 숄을 만지작거리며 매우 행복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윤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쁜 옷이 가지고 싶은 모양이야.”

    뷰잘알.

    뷰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윤솔은 잘 나가는 뷰티 방송 스트리머다.

    이런 것은 또 그녀의 전문 아닌가.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고정 S+등급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옷 몇 벌이 필요하긴 했어. 사는 김에 같이 사러 가면 되겠군. 어차피 레이드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니까.”

    “옷? 옷을 어디서 사려고? 예쁜 옷을 살 만한 곳이 있나?”

    윤솔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한 군데 있긴 하지.”

    나는 정확한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마을 저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경매장.

    돈이 곧 전투력으로 직결되는 세계.

    돈푼께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몰려들어 위세를 부린다는 곳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