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화 애완남의 일상 (2)
게임 커뮤니티들은 난리가 났다.
-와 데우스 엑스 마키나 대단하다. 원래 대격변 패치 같은 건 게임 인기가 시들해졌을 때나 하는 건데…인기 최고조일 때 터트려버리네
↳소문에 의하면 회사가 의도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말도 있음ㅋㅋㅋㅋ
-어떤 유저가 메인 퀘스트 깨다가 발동시켜버렸다는 설이 유력
↳띠용? 그게 가능한 거냐? 걍 니 피셜 아님?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니 가능함. 우리보다 훨씬 더 까마득하게 앞서간 사람들이 했을지도...
↳;;;;;근데 그럴만한 사람들이 많이 없는데?
↳그러니까 그 많이 없는 사람들 중에 하나겠지 ㅂㅅ아. 아니면 공식선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알려줘서 고마운데 너 왜 욕 하냐? 누군 욕 못 하는 줄 아냐? 느그 엄마 오크
↳울 엄마 플레이 종족 오크 맞는데?
↳진짜냐??? 미안하다ㅋㅋ나도 오크임. 오크 만세!
-아무튼 대격변 패치 꿀잼이다ㅋㅋㅋ요즘 더러운 오크새끼들 잡는 낙에 살음
↳너 종족 뭔데?
↳나? 리자드맨인데?
↳더러운 도마뱀 ㅂㅅ들, 명예롭고 위풍당당한 오크 전사로서 말 섞기도 창피하다
↳오크? 느려터진 근육질 돼지머리 아님? ㅋㅋ분쟁지대에서 PK함 떠볼까?
↳ㅂㅅ제 7분쟁지대로 와라 바로 오함마 갖다가 뚝배기 깨드림 ㅅㄱ
↳님들아 저 대격변 이후에도 인간 종족 유지중인데 관전 가능?
↳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는 비열한 인간 놈들은 빠져라~
↳ㅇㅈ솔직히 종족 중에 인간이 제일 혐오스러움
-솔직히 인간 진영 너무 불리하다ㅠㅠ 오크랑 리자드맨에 비해 기본 피지컬이 딸리자나~~밸런스 조정좀...
↳ㄴㄴ그래도 고위랭커들 중에는 은근히 인간들이 많음
↳맞음. 지금껏 나온 아이템들도 대부분 인간 전용이고..
↳또 인간은 용 계열 몬스터랑 악마 계열 몬스터 둘 다 잡을 수 있어서 아무래도 성장이 빠르지. 나름 다 장단이 있음^^
↳ㅅㅂ 지금 위에 말하는 새끼들 다 오크랑 리자드맨들이지? 인간 종족 킬 수가 제일 낮은데 먼 개솔ㅡㅡ;; 밸붕 맞음 이거
-근데 이러면 프로리그들은 어떻게 함?
↳선수들 다 재계약행ㅎㅎㅎ
↳구단 조합 좆망해서 팀 픽 다 다시 짜야 할 듯
↳ㅅㅂ현실에서도 대격변 일어나겠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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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격변 이후 유저간의 정보 교류들은 더욱 더 활발해졌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대격변 이후 엄청난 이슈가 되면서 흥행몰이가 되었고 그로 인해 떨어졌던 주가는 다시 폭등했다.
동시 접속자수가 크게 증가했으며 관련 산업들도 더욱 더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시장은 여전히 자꾸만 커져가고 있었다.
나는 여론의 흐름을 모니터링하며 눈을 빛냈다.
“…지금 풀어 버릴까?”
얼마 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내 외장하드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네 개의 은밀한 동영상.
각각의 파일명은 다음과 같다.
‘물속에서 잔뜩 젖은 촉수괴물 크라켄과.avi’
‘끈적한 동굴 속에서 굵은 다리가 여덟 개나 되는 거미 여왕과.avi’
‘천사 납치 감금 플레이 순백의 뜨거운 불꽃 식인황제와.avi’
‘튜토리얼의 탑에서 전신이 꽁꽁 묶인 고문기술자와.avi’
총 네 마리의 S급 몬스터 사냥 영상.
나는 그것들을 보며 고민했다.
“……지금 풀면 무조건 세계 급 스타덤인데.”
이 중 하나라도 동영상 시장에 풀리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수없이 많은 게이머들이 미친 듯이 열광할 것이다.
특히나 대격변에 제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식인황제 레이드 동영상은 더욱 그렇다.
나는 한국에 존재하는, 아니 아시아에 존재하는 유튜버 중 개인으로서는 최고의 유명세와 수익을 누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 한창 대격변 때문에 게임 내부가 어수선하고 또 호사가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을 때가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자.”
나는 동영상들을 풀어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이 동영상들은 훗날을 기약할 비장의 무기.
패를 벌써부터 깐다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김치는 가장 맛있을 때까지 익혀야지.”
나는 외장하드를 꺼내 김치냉장고의 옆에 고이 모셔 두었다.
이 동영상의 가치도 김치처럼 맛있게 익어 가길 바라면서.
* * *
나는 게임머니 환전과 동영상 편집 작업을 일부 마친 뒤 게임에 접속했다.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대격변 이후 얼마 없게 된 인간의 마을 중 그나마 가장 번화한 도시 ‘유토러스’의 외곽.
저 멀리 홀로 외롭게 서 있는 튜토리얼의 탑이 보인다.
내가 윤솔과 드레이크를 만나기로 한 장소인 ‘엔젤 인 유어스’에 막 도착했을 때.
[…끼에에에에에에에엑!]
지옥의 밑바닥에서나 들려올 법한 끔찍한 절규.
내 귀에 들려온 소리는 펫 보육시설의 책임자인 마더 테레라가 지르는 히스테리 섞인 비명이었다.
“…오, 이런.”
나는 건물의 상태를 보고 손으로 이마를 쳤다.
엔젤 인 유어스의 상태는 끔찍했다.
벽에는 아홉 개나 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고 모조리 깨진 창문에서는 매연과도 같은 독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근처에 있던 윤솔과 드레이크가 황급히 나에게 뛰어왔다.
“어진아! 여기에 뭘 맡긴 거야!? 네가 범인이라는데!?”
“…대체 펫 호텔이 왜 이 모양인가!?”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으음. 대격변 이후 펫 호텔이라는 기능이 생겨서 한번 시험 차 맡겨본 건데…역시 케어는 무리였나.”
금광 레이드 이후 들렸던 마을.
새로 추가된 기능들이 이것저것 있기에 회귀 전 기억처럼 되는지 시험 삼아 맡겨 본 것이 화근이었다.
[꺄아아아악! 당장 네가 맡긴 괴물을 되찾아가거라! 이 사악한 악마야!]
마더 테레라는 나를 향해 빼액 소리 질렀다.
그녀는 산발이 된 머리카락과 피곤에 쩔어 생긴 다크서클을 내보이며 길길이 날뛴다.
“쩝. 알겠어요. 체크아웃 하겠습니다.”
나는 마더 테레라 앞에 떠 있는 상태창에서 ‘펫 되찾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지이이잉!
건물 안에서 환한 빛무리가 생기며, 이내 내가 맡겼던 펫이 나를 향해 몸을 움직여 기어온다.
“…헉!?”
“꺄악!?”
드레이크와 윤솔은 내 펫을 보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왜 건물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는지 이해하겠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쉬이이익!]
건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검은색과 녹색이 섞인 두터운 비늘을 가진 뱀이었다.
문제는…그 머리의 수가 여덟 개나 된다는 점이다.
여덟 갈래로 갈라진 머리는 하나의 굵고 거대한 몸통으로 이어진다.
노오란 눈과 빨간 혓바닥. ‘여덟 개의 머리’를 가진 칠흑의 뱀.
<히드라 ‘유생체(幼生體)’> -등급: A / 특성: 무한성장, 백전노장, 과식, 맹독, 고속재생, 마법 면역
-서식지: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巳念)
-길이: 32m.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다는 신화 속의 뱀.
성장폭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히드라(HYDRA).
이 거대한 뱀은 ‘여덟 개나 되는 머리’를 내게 부비며 친한 척을 한다.
드레이크와 윤솔은 히드라를 보며 입을 벌렸다.
“아, 이 녀석을 여기에 맡겼던 건가? 건물 꼴이 이 모양인 것이 이해가 되는군.”
“우와…몇 번을 봐도 이 덩치는 적응이 안 되네.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커진 것 같은데?”
나는 친구들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지금 나에게 여덟 머리를 부비는 이 뱀은 원래 나의 충직한 펫이었던 ‘쌍뿔칠흑’의 진화형태이다.
나는 눈을 감고 얼마 전의 과거를 회상했다.
“…….”
천공섬 레이드 당시, 나는 한 번의 큰 위기에 봉착했던 적이 있다.
식인황제 보카사가 최후의 순간 자신의 심장을 뽑아먹고 진화했던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 일명 ‘유토피아 폴’이 등장한 직후였다.
보카사가 배드엔딩으로 전락하는 순간 놈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불길이 온 사방을 죄다 태워버렸고 나와 드레이크는 꼼짝없이 그 불길 속에 집어삼켜질 운명이었다.
그때 나를 살렸던 존재가 바로 쌍뿔칠흑이다.
‘조금이라도 좋아. 길을 열어 줘!’
나는 쌍뿔칠흑에게 조금 미안한 명령을 내렸었다.
지옥의 한 구석을 재현해 낸 것 같은 저 불구덩이에 뛰어들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당시 쌍뿔칠흑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불구덩이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방화벽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여 나와 드레이크의 목숨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녀석은 식인황제 보카사가 토해 낸 불길을 약간 삼키고 말았는데 아마도 진화의 원인은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오잉!? ‘쌍뿔칠흑’의 상태가……?
-축하합니다! ‘쌍뿔칠흑’는(은) ‘히드라 ‘유생체(幼生體)’’(으)로 진화했다!
S급 몬스터의 불길을 먹고 소화시킨 결과 쌍뿔칠흑은 히드라로 진화한 것이다.
[쉬이익!]
나는 친한 척 몸을 부비적대는 히드라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자식. 드디어 반지랑 동급 레벨까지 올라갔네.”
예전에 메두사를 잡고 얻었던 반지 ‘똬리를 튼 사념(巳念)’은 A등급의 아이템이었다.
반지 속에 사는 소환수인 이 녀석도 이제 A등급, 반지의 등급과 동급이 되었다.
내가 반지를 뻗자 히드라는 반지 속으로 되돌아가기 싫은 듯 주저한다.
아무래도 이제 반지가 히드라를 담기 버거워하는 것도 같았다.
히드라 녀석도 반지 속이 갑갑한 모양이고.
“녀석, 들어가기 싫은가 보네. 이래서 펫 보육원에 맡겼던 건데…….”
내가 혼자 중얼거리자 그것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나를 나무랐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큰 녀석을 펫 호텔에 맡기면 안 되지. 관리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어.”
“맞다, 히드라를 맡기다니 너무했다 어진. 마더 테레라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하지만, 정작 그들의 말을 들은 마더 테레라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야! 히드라는 오히려 얌전해서 괜찮다고! 얘가 얼마나 착한데!]
그녀는 손을 뻗어 히드라의 머리 여덟 개가 모이는 부근을 살살 쓰다듬는다.
그러자 히드라도 애교를 부리며 마더 테레라의 손길에 응답했다.
“???”
윤솔과 드레이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히드라가 문제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러자 마더 테레라는 분노한 표정으로 건물 안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당장 저 괴물을 데려가란 말이야! 으아아아!]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건물 중앙에 뻥 뚫린 구멍.
그때.
[빼애애애애앵-]
요란한 울음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와장창…!
그것은 건물 전체를 뒤흔들었고 남아있던 일말의 유리창들마저 모조리 깨 버린다.
쿵-
울음소리를 들은 히드라가 어지럽다는 듯 몸을 휘청거렸다.
녀석의 머리가 담벼락에 부딪치자 또다시 구멍이 뻥 뚫리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
윤솔과 드레이크는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본 뒤 경악했다.
펫 보육원 속.
조막만 한 손바닥으로 바닥을 팡팡 치며 나라라도 잃은 듯 서럽게 울고 있는 어린아이가 하나 있었다.
온 세상이 떠나갈 정도의 데시벨로 울어 재끼고 있는 떼쟁이 소녀.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