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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24화 (324/1,000)
  • 325화 악당 연합 (3)

    …풍덩!

    호수에 누런 파문이 일었다.

    “?”

    조디악과 매드독 멤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뒤틀린 황천을 바라보았다.

    드레이크와 윤솔, 심지어 NPC인 벨럿마저도 황당한 표정이다.

    그때.

    부글부글부글부글부글…!

    갑자기 호수 위의 파문이 확 퍼져나간다.

    엄청난 물거품이 끓어오르며 황천 전체가 뒤틀리고 있었다.

    마치 낯선 이물질(?)을 삼킨 것에 당황한 것처럼.

    이윽고.

    파앗!

    호수 위에 만개한 낭화들이 걷히며 세 갈래의 빛이 뿜어져 나온다.

    “??”

    조디악과 매드독 멤버들, 윤솔, 드레이크.

    심지어 고르딕사와 벨럿까지 싸움을 멈추고 황천 한가운데서 솟구쳐 오르는 세 개의 빛기둥을 바라보았다.

    금색 찬란한 빛기둥.

    은색 찬란한 빛기둥.

    살색 찬란한 빛기둥.

    이 세 개의 빛기둥은 모든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 정도로 화려하고 눈부신 것이었다.

    드레이크와 윤솔은 그 빛기둥을 보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크고….”

    “아름다워….”

    동시에, 그 세 개의 빛기둥 안에서 각각 세 명의 사람이 튀어나왔다.

    착! 착! 착!

    날렵한 자세로 땅 위에 떨어져 내리는 세 명의 남자.

    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

    그도 그럴 것이…지금 등장한 남자들은 모두 나이기 때문!

    나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조디악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 명의 내가 고개를 들어 조디악을 바라본 것이다.

    금 고인물.

    은 고인물.

    걍 고인물.

    이 셋 중 금 고인물과 은 고인물은 나의 행동을 완벽히 카피하는 딥러닝 AI로 일정 시간 동안만 움직이는 NPC나 다름없다.

    “너는 정직하구나. 상으로 세 명의 나를 모두 주마.”

    나는 조디악에게 짧게 치하의 메시지를 건넸다.

    동시에.

    파파팟!

    세 명의 고인물이 조디악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조디악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도망갈 수 있는 구석 따위는 없다.

    ‘기동력’ 했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몸이 아니던가!

    착! 착! 착!

    금 고인물이 조디악의 앞, 은 고인물이 조디악의 뒤를 막아섰다.

    …그럼 걍 고인물은 어디에 있냐고?

    “네 머리 꼭대기에서 놀지!”

    바로 조디악의 머리 위!

    놈의 정수리를 노리고 활강 중이다!

    푹!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악!”

    조디악은 비명을 질렀다.

    내 깎단은 놈의 볼살을 세로로 긋고 지나가 놈의 어깨와 겨드랑이를 관통해 버렸다.

    놈이 머리를 숙였기에 정수리를 찌르는 것에는 실패했지만…사실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깎단은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동시에.

    “아직 안 끝났지, 정직한 아이에게는 상을 내려 주마!”

    “천국으로 보내 줄게, 음침 보이♂”

    금 고인물과 은 고인물 역시도 각자 깎단을 꺼내 조디악의 앞(?)과 뒤(?)를 사정없이 찌른다.

    1초에 최대 체력의 0.01%를 깎아내는 도트 데미지!

    그것이 자그마치 3배로 중첩되었다!

    조디악은 초당 0.03%씩 증발하는 체력 바를 보며 경악했다.

    “젠장! 뭣들 해! 막아!”

    김정은이 지시를 내리자 뒤에 있던 방철우, 방철해가 움직였다.

    놈들은 오크 특유의 강인한 육체를 내세워 나에게 돌진했지만 전에 반사 데미지를 대차게 환급받은 적이 있어서 그런가 영 미온적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수줍은 소녀와도 같은 돌진은 원거리 딜러의 좋은 먹잇감이다.

    “드레이크, 대기 중.”

    은신 중이던 드레이크가 앞으로 나섰다.

    차라라락!

    바닥에 뿌려진 마름쇠를 밟은 방철우, 방철해 형제는 크게 당황해 돌진을 멈췄다.

    드레이크는 그때를 놓치지 않았다.

    퍼-펑!

    배드엔딩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거대한 화살 두 발이 마치 공성병기처럼 날아가 두 오크의 배를 꿰뚫고 그것도 모자라 바닥에 대각선으로 박아 버린다.

    “오크는 처음 잡아 보는군. 종족 킬 수가 올라가겠어.”

    드레이크는 계속해서 화살을 난사했다.

    미늘 범벅의 수많은 화살들이 날아가 방철우, 방철해의 손바닥, 발등,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등등에 박혔다.

    두 오크 유저는 마치 스티로폼 위에 핀셋으로 고정된 곤충 박제 모양이 되었다.

    김정은은 바닥에 박혀 버둥거리는 방씨 형제를 보며 이를 갈았다.

    “제기랄! 도움 안 되는 놈들!”

    그녀는 재빨리 손을 휘저어 시뻘건 불꽃을 일으켰다.

    정신계 메타 마법사에서 불꽃 계열 마법사로 전직한 모양.

    하지만 그 역시도 윤솔의 신성 보호막에 가로막혀 버렸다.

    신성불가침 특성은 어둠 속성 저항력 외에도 어느 정도의 물리, 마법 방어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조디악은 세 명의 나에게 둘러싸여 정신없이 찔리고 또 찔린다.

    “내가 왕년에 별명이 미친 이등병이었어. 알아? 찌르는 것 하나는 자신 있다고!”

    “뭐, 뭐? 너 군인 출신이냐?”

    “그렇다. 소원수리 킥!”

    나는 또 한 번 깎단을 들어 조디악 뒤를 찔러 주었다.

    앞과 뒤의 주도권(?)을 완벽하게 나에게 뺏긴 그는 쉴 새 없이 (리타이어의 문턱에) 가 버리는 처지에 놓였다.

    “제기랄!”

    조디악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지혈하며 뒤로 엉거주춤 물러났다.

    그는 뒤를 향해 버럭 외쳤다.

    “고르딕사! 뭐 하고 있냐!?”

    그러자 황천 기슭에서 버둥거리던 고르딕사가 몸을 재생한 뒤 일어났다.

    [우어어어어!]

    또다시 거대한 손을 펼쳐 우리를 덮치려 하는 고르딕사.

    하지만.

    콰-쾅! 우지지지지직!

    육중한 해머 하나가 날아들어 그런 고르딕사의 머리통을 후려갈긴다.

    [내 가족과 친구들의 원수!]

    최후의 드워프 벨럿.

    그녀는 은으로 된 거대한 말뚝과 망치를 들고 고르딕사와 맞서 싸운다.

    등급이 다운된 고르딕사는 벨럿을 상대로도 쉽게 우위를 점하고 있지 못했다.

    콰쾅!

    벨럿은 은 말뚝으로 고르딕사를 찔렀고 그대로 망치를 때려 박아 고르딕사를 황천의 바닥까지 밀어 넣었다.

    쾅! 꾸르륵…

    고르딕사의 흐물거리는 몸도 고정할 수 있는 드워프의 말뚝이다.

    말뚝은 망치에 맞아 깊은 바닥을 향해 쏘아진다.

    형체 없는 고르딕사의 몸을 꿴 채로.

    그것을 본 조디악은 핏발 선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다 있나!”

    그 외에도 심한 말을 욕을 몇 마디인가 더 했지만 욕설 필터 때문에 내게는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채팅 금지까지 먹어 버려서 더 이상 팀원들과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금 고인물, 은 고인물, 걍 고인물들은 열심히 조디악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금 고인물이 깎단을 들어 조디악의 앞을 푹 찔렀다.

    “네, 3번 테이블 꼬치구이 나갑니다.”

    은 고인물은 고르딕사의 몸에서 옮겨 온 횃불로 조디악의 뒤를 푹 지진다.

    “예이, 불맛 입혀드리고요.”

    걍 고인물은 앞뒤로 너덜너덜해진 조디악의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여기 점액 토핑 추가요.”

    피크타임의 음식점 서빙처럼 정신없이 몰아치는 나의 플레이.

    조디악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여 물러나기에만 급급한다.

    “야! 빠지는 게 낫겠어!”

    김정은이 그런 조디악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런 그녀의 손 반대편에는 텔레포트 스크롤이 쥐어져 있었다.

    저 구하기도 힘들고 비싼 것을 이런 노다지 광산의 최심층부에서 쓰겠다니 얼마나 원통할까?

    …하지만. 심지어 나는 그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모두들 여기 보세요. 김치~”

    나는 박수를 쳐 적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끌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사진사처럼 웃고 있는 나와 쭈뼛거리고 있는 윤솔이 서 있었다.

    이내.

    번쩍-

    윤솔의 한쪽 눈에서 엄청난 금빛 광채가 폭사되었다.

    -<황금광의 혈안(血眼)> / 안대 / A+

    황금에 미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눈알을 빼서 건조시킨 것이다.

    이 핏발 선 눈알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시야 -5%

    -집중력 -5%

    -어둠 속성 저항력 -5%

    -특성 ‘실명’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마나 번’ 사용 가능 (쿨타임: 12시간)(특수)

    시선을 마주친 이들의 마나를 굳게 하는 특별한 아이템!

    고르딕사의 황금안이 온 세상천지를 뒤덮었다.

    “꺄아아아악!”

    무심코 내 쪽을 쳐다보았던 매드독 멤버들은 전원 내 함정에 걸려 버렸다.

    쩌저저적…

    손가락과 발가락 끝부터 굳어 간다.

    체내의 마나가 딱딱하게 응결되는 것을 느낀 김정은의 표정 역시도 딱딱하게 변했다.

    손가락 끝부터 굳어 가는 마나 번의 특성 상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는 것은 불가능했다.

    “두, 두고 보자…네놈들….”

    매드독 멤버들은 원한 서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다.

    세 명의 매드독 맴버들은 그렇게 억울한 표정의 금 조각상이 되어 버렸다.

    불순물이 잔뜩 섞여서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전혀 없는 금 조각상.

    [우…우우우우…]

    가엾은 고르딕사 역시도 자신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윤솔과 눈이 마주친 고르딕사 역시 마찬가지로 거대한 황금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푸스스스스스- 이러면 나가린데?]

    조디악.

    오로지 이 질긴 놈만은 살아남았다.

    내 페이크에 낚이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기 때문이다.

    놈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는데 그것은 고밀도로 농축한 포션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살인자들의 탑에서 얻은 아이템이로군. 그레이 시티의.’

    저 포션은 고위 마법사형 몬스터, 가령 리치나 오래 묵은 거미, 드루이드 같은 괴물이 주로 드랍하는 아이템이다.

    조디악은 그 희귀한 농축 포션을 거침없이 퍼마시며 낄낄 웃었다.

    “오늘도 이렇게 빚을 지고 가는구나, 빌어먹을 놈들.”

    채팅 금지가 이렇게 빨리 풀릴 줄은 몰랐는데….

    내가 놈을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핑-

    순간 머리가 어지럽다.

    셋으로 나뉘었던 몸들이 하나로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금 고인물과 은 고인물이 사라졌다.

    피버 타임이 끝난 것이다.

    “…어진아! 괜찮아!?”

    윤솔이 재빨리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드레이크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내 옆에 서서 조디악을 노려보았다.

    윤솔은 마나를 다 써서 보호막도 칠 수 없다.

    비장의 무기였던 마나 번 역시도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는 봉인 상태이다.

    드레이크 역시 마름쇠와 화살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조디악은 히죽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

    “안타깝게 됐구나. 포션만 충분하면 네놈의 그 진절머리 나는 도트 데미지도 버틸 수 있어. 가까이에 있는 마을만 찾을 수 있다면….”

    어비스 터미널의 도르래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여행자들을 회복시켜 주는 NPC들이 가로숲 곳곳에서 종종 나타난다.

    상당히 드문 빈도였지만 발견하기 아주 어렵지만은 않았다.

    ‘간당간당하려나….’

    조디악으로서는 내심 굉장히 불안할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확률은 절반 정도이다.

    …하지만.

    “야, 하나만 묻자.”

    나는 도망치려는 조디악을 붙잡았다.

    조디악이 도망가다 말고 멈춰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질문했다.

    “죽는다는 건 무슨 기분이냐?”

    “…뭔 개소리야, 미친놈. 안 죽었는데?”

    조디악은 나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놈에게는 나와 썰전을 벌일 시간이 없다.

    체력이 초당 0.03%씩 깎이고 있었기에 맨몸으로는 얼마 버티기 어려운 상황.

    “…너는 운 좋은 줄 알아라. 푸스스스스!”

    조디악은 포션을 입에 퍼부으며 황급히 출구로 올라갔다.

    드레이크가 남은 화살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분하다는 듯 말했다.

    “어진. 추격하지 않아도 괜찮은가?”

    하지만 나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다.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인벤토리에 남은 공간 없이 꽉꽉 찬 황금.

    이거면 됐다.

    나머지는 뭐, 계획대로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       *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푸스스스스! 빌어먹을 것들! 내가 죽을 줄 알지? 큰 오산이야.”

    조디악은 던전 밖으로 기어 나왔다.

    황천의 유극으로 통하는 구멍에서 완전히 몸을 뺀 그는 남은 포션을 바라본다.

    찰랑찰랑-

    얼마 남지 않은 포션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젠장. 간당간당하긴 하겠네. 여기서 제일 가까운 신관이 어디에 있더라….”

    그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도르래를 향해 걸어갔다.

    최대한 빨리 올라가 가로숲의 현자를 만나 도트 데미지의 저주를 풀 생각이었다.

    “찾았다.”

    덤불숲 외곽에서 위로 올라가는 밧줄 사다리를 발견한 조디악은 황급히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싹뚝-

    무언가 굵고 단단한 것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바로 조디악의 척추뼈에서 난 소리였다.

    “……!”

    조디악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보았다.

    스르르…

    이윽고, 대각선으로 잘려나간 조디악의 상반신이 옆으로 미끄러진다.

    털썩!

    조디악은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채 바닥에 나뒹굴게 되었다.

    “푸…! 푸…! 푸스…!”

    그는 몸이 두 동강 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을 뻗어 자신의 하반신을 더듬었다.

    피와 함께 지금껏 뱃속에 꽉 차 있던 고급 포션들이 줄줄 흘러내려 흙에 덧없이 배어든다.

    상반신만 남아 버둥거리는 조디악의 위로 짙은 그림자 열두 개가 드리워졌다.

    “…던전 밖으로 나오는 놈들은 싹 죽이라고 했었지?”

    카렐린 강을 비롯한 열두 마리 리자드맨.

    결국 던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약속을 지킨 그들이 조디악의 최후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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