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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23화 (323/1,000)
  • 324화 악당 연합 (2)

    “어머. 먼저 온 손님들이 있었네?”

    무정(無情)한 황금굴에 어울리지 않는 살가운 어조.

    어딘가 끈적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종유석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커다란 플로피 햇을 푹 눌러쓰고 있는 마법사.

    바로 김정은이다!

    그 뒤로 두 명의 거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소 같은 돌진기를 주로 사용하는 육전형 탱커 방철우.

    거구의 몸을 이용하여 깔아뭉개는 기술을 구사하는 탱돼지 탱커 방철해.

    두 명의 탱커 형제가 김정은을 양편에서 호위하고 있었다.

    매드독!

    한때 프로팀으로도 활동했던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나타났다.

    ‘재수 없는 것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회귀하기 전 이 금광 던전을 최종적으로 차지했던 놈들이 바로 이놈들이다.

    놈들은 천하의 조디악을 밀어 낼 정도로 강하고 또 교활했었다.

    지금 시간대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동맹을 맺고 있는 듯 보였지만 말이다.

    내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정은과 조디악은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 봐. 내가 혼자 가면 위험할 거라고 했지?”

    “푸스스스스! 닥쳐. 네 헬퍼인지 지랄인지 하는 핵이 중간에 맛이 가는 바람에 미궁을 얼마나 헤맸냐? 그것만 아니었어도 저딴 놈한테 선수를 뺏기진 않았을 거야.”

    “으음. 우리가 카타콤 미궁에서 헤매고 있을 때 바로 3층으로 내려온 놈들이 있을 줄은 몰랐지. 아니 애초에 우리보다 빠른 놈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책임 회피하는 것 봐. 정말 네년은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혓바닥을 확 잘라 버리고 싶어.”

    “호호호호. 어디 해 보든가. 예전에도 한번 시도하려다가 미수에 그치지 않았었나?”

    김정은과 조디악은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날을 세우고 있다.

    틈만 보이면 바로 서로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듯한 태도.

    ‘…으음. 또 아주 동맹 관계는 아닌 건가?’

    나는 조금 의아했지만…사실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상황은 지금 별로 좋지 않았다.

    조디악이나 매드독이나 뭔가 꾸미고 있는 흉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놈들은 분명 그 사악한 꿍꿍이를 위한 군자금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으리라.

    “미안하지만 황금은 한 푼도 못 줘.”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깎단을 집어 들었다.

    조디악도 킬킬 웃어대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조디악과 매드독 일행이 나를 향해 뛰어내렸다.

    “죽어라!”

    조디악이 나를 향해 마도서를 펼쳐들었다.

    시커먼 불꽃의 비가 내를 향해 쏟아지려 한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인 것이 있었다.

    바로 드레이크의 쇠뇌였다.

    퍼퍽!

    동시에 날아든 화살 두 대가 조디악의 어깨와 허벅지에 꽂혔다.

    “어흑!?”

    조디악은 종유석에서 떨어지던 자세 그대로 추락했고 이내 돌무더기 위에 볼썽사납게 떨어져 내렸다.

    “…적응이 안 되네.”

    나는 거꾸러진 조디악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하기야 원래 놈은 무투가나 암살자 체질이었으니만큼 마법사 메타가 몸에 안 익기는 할 것이다.

    한편.

    조디악을 향해 달려가는 내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가 두 개.

    매드독의 방철해와 방철우 형제였다.

    물소와도 같은 힘과 스피드를 가진 방철우.

    하마와도 같은 힘과 무게를 가진 방철해.

    두 녀석 모두 나와는 구면이다.

    한때 나는 프로리그에 나가 놈들 둘을 연달아 리타이어 시켜 버린 전력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마동왕 모드였지만.’

    고인물 메타로는 마동왕 메타만큼의 폭딜을 내기 어려우니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방철우, 방철해는 한층 더 상대하기 까다롭게 진화해 있었다.

    오크(Orc)!

    강력한 힘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가진 상마초 종족!

    두 형제는 대격변 이후 오크 전사로 전직해 있었던 것이다!

    "e gut e progamer da."

    "na yak han in gan."

    두 놈은 나를 깔보듯 하며 육중한 근육덩어리 바디로 몸통박치기를 해 온다.

    쯧쯧, 내가 마동왕인 줄 알았다면 그런 어리석인 실수를 두 번 하지는 않을 텐데.

    나는 내가 할 줄 아는 간략한 오크어(토하라어)로 답장해 주었다.

    “pro byul gu up ne."

    내 입에서 튀어나온 오크어를 들은 방철우 방철해는 화들짝 놀라는 듯한 표정.

    …하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콰쾅!

    나는 동시에 달려드는 방철우와 방철해의 어깨빵을 양 손바닥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그 묵직한 충격파를 그대로 놈들에게 반사해 쏘아냈다.

    우지-끈!

    옅은 지진이 일어나며 놈들의 등짝이 지면에 부딪쳐 터져 나갔다.

    거구의 오크 전사 둘이 땅바닥으로 쓰레기처럼 내팽개쳐진다.

    한편, 나는 놈들의 머리통을 두 발로 밟은 채 서서 여유롭게 포션을 마셨다.

    “푸스스스! 너희는 저놈의 반사 데미지 특성을 모르나?”

    조디악은 김정은을 향해 빈정거렸다.

    김정은은 칫 하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딱히 조디악에게 항의하지는 않았다.

    “팀원들끼리 정보 공유도 안 하냐? 엉망이구만.”

    내가 빈정거리자 김정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이건 또 뭐 하는 놈팽이길래 방해질이야!”

    그녀는 마동왕과 내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듯싶다.

    재빨리 화염구를 캐스팅하는 김정은.

    하지만 그보다 윤솔의 보호막이 조금 더 빨랐다.

    번쩍!

    신성불가침 실드가 발동되자 어둠 속성이 붙어 있는 것들은 전부 저 멀리 튕겨나간다.

    바닥에서 기어 나와 나에게 반격을 시도하려던 방철우 방철해 형제를 비롯하여 조디악, 김정은까지 전부 뒤로 나자빠졌다.

    “…어진아 지금!”

    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서 윤솔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보호막의 범위를 맞추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기척을 죽여 가며 내 뒤까지 따라붙은 것이다.

    “나이스 솔!”

    나는 윤솔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재빨리 앞으로 내달렸다.

    “자. 참교육 시간이다, 빌런들아.”

    내가 깎단을 뽑아들자 조디악의 표정이 확 썩었다.

    “…그 빌어먹을 사기템 좀 치워라.”

    놈은 검은 불길의 장막을 둘러 나를 격리시켰다.

    그리고는 방철우와 방철해를 뒤로 불러들여 자신의 방화벽 아래 두었다.

    무조건 양보하고 후퇴하는 도주 패턴.

    아무래도 나와의 접근전이 부담스러운 듯하다.

    하기야 그렇게 죽었으니 당연한 일이지.

    바로 그때.

    “…음?”

    나는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분명 조디악은 처음 등장했을 때 자신들이 5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조디악과 김정은, 방철우 방철해 형제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하나는?’

    조디악이 나를 혼란시키기 위해 헛소리를 지껄였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애초에 저 녀석은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생각될 만큼 교활한 천재니까.

    하지만 7만 시간이 넘는 플레이, 고인물로서의 감은 외치고 있었다.

    당장 그 자리에서 피하라고!

    콰쾅!

    내가 뒤로 물러서자마자 바닥이 움푹 패였다.

    방금 전까지 내가 서 있던 공간이 통째로 묵사발이 되었다.

    [우-우우우우!]

    황천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대한 물무리가 융기해 올랐고 그 속에서 녹아내린 황금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벨럿이 기겁을 하며 외쳤다.

    [세상에! 고르딕사가 살아났다!]

    놀랍게도, 되살아난 고르딕사의 위험 등급은 A등급으로 생전에 비해 한 단계 밖에는 강등되지 않은 상태였다.

    “…어째서지? 원래 언데드 몬스터는 생전 랭크보다 두 단계가 낮아지는데.”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조디악이 쿡쿡 웃었다.

    “푸스스스. 그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지.”

    놈은 내 앞으로 시커먼 마법서를 꺼내 흔들어 보인다.

    -<어둠 대왕의 일기장> / 7(8)클래스 마도서 / A+(S) / 강화: +10

    어둠 대왕이 악마(惡魔)와 싸우며 겪었던 길고도 처절한 경험들이 기록되어 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단 한 줄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둠에 먹혀 버린다.

    -마법 공격력 +4400(+5800)

    -어둠 속성 저항력 –10%(-5%)

    -기록된 마법(?개): ‘무덤사역’, ‘유극지옥’….

    A+등급의 아이템.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A+등급이 아니다.

    놀랍게도 그 옆에 열 번 강화되었음을 알리는 표시가 떠 있었다.

    스오오오오…

    마도서에서 피어오르는 시커먼 기운이 열 배는 더 짙어졌다.

    “…풀강!?”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아이템은 9번 강화하는 것이 끝이고 10강부터는 특수한 주문서가 있어야 강화할 수 있다.

    무작정 강화 주문서를 발랐다가는 무조건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아홉 번의 강화가 성공하는 경우조차도 거의 없다.

    한 번 한 번 극도로 희박한 확률을 뚫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강화다.

    ‘…내가 강화하다가 인생을 날려먹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잘 알지.’

    조디악은 자기의 주력 무기에 강화 주문서를 발라서 그것을 풀강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것도 모자라 전설의 단계라는 +10강을 만들었다.

    +10강이 된 특전으로 ‘어둠 대왕의 일기장’은 A+등급의 7클래스 마도서에서 S등급의 8클래스 마도서로 ‘격’이 상승한 것이다.

    그로 인해 놈의 ‘무덤사역’ 특성도 진화했다.

    이로 인해 되살아난 언데드 몬스터는 2랭크 하락이 아닌 1랭크 하락이라는 가벼운 패널티만을 입게 되도록.

    “푸스스스스. 우리 5번째 멤버가 어때? 귀엽지?”

    조디악은 언데드가 된 고르딕사를 조종하며 낄낄 웃어젖혔다.

    [우어어어어…]

    한때 정령왕의 자리를 노리던 상급 정령은 대체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콰쾅!

    고르딕사는 윤솔이 만든 보호막에 거침없이 돌격했다.

    뿌지직!

    이 추악한 황금 괴물은 흰 빛의 막을 찢고 들어와 주인의 사악한 의지를 안으로 전달한다.

    [저리 꺼져라!]

    벨럿이 거대한 망치를 들어 고르딕사에 맞섰다.

    하지만.

    턱! 터억!

    방철우와 방철해 형제가 고르딕사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들어와 벨럿을 막아섰다.

    쿠르르륵!

    조디악과 김정은이 뒤섞어 뿜어내는 검붉은 불길이 나와 드레이크, 윤솔을 한꺼번에 요격하고 있었다.

    퍼퍼퍼퍼펑!

    고르딕사가 뿜어내는 황금 탄막들은 덤이다.

    드레이크가 날아드는 황금 구슬들을 단도로 베어내며 소리쳤다.

    “큭! 아무래도 쪽수가 딸리니 힘들어지는군.”

    그렇다. 이런 난전에서는 랭커 급 인원 한 명 한 명이 절실하다.

    그마저 윤솔이라도 없었다면 확 쓸려 버렸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쪽수로 불리하다.

    무엇보다 저 커다란 고르딕사 놈이 되살아난 것이 가장 짜증나는 요인이었다.

    “푸스스스스! 여기서 퀴즈! 지금까지 내가 네놈에게 몇 번 죽었게!?”

    조디악은 복수로 이글거리는 눈을 한 채 나를 향해 밀고 들어온다.

    나는 놈을 도발하기 위해 한 마디를 던졌다.

    “…너는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기억하고 있나?”

    뿌직!

    내 말을 들은 조디악의 두 눈에 퍼런 핏발이 섰다.

    “푸스스스! 꼭 죽여 주마. 반드시!”

    놈은 검은 불길을 뻗어내 윤솔의 신성 보호막마저 태워 버렸다.

    그리고 고르딕사의 저돌적인 몸통박치기 뒤에 숨어 계속 전진해 온다.

    벨럿은 고르딕사 레이드 도중 체력이 많이 빠졌는지 이제 방철우 한 명에게도 고전하고 있었다.

    나, 윤솔, 드레이크, 벨럿

    VS

    조디악, 김정은, 방철우, 방철해, 고르딕사.

    총 4대 5의 승부는 점점 기울고 있었다.

    명백히 우리가 불리한 상황.

    쪽수도 부족하고 막 큰 레이드를 끝마친 시점이라 피로도도 상당한 상태에서 기습마저 당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실 무조건 지는 것이 보통.

    …하지만.

    “나는 보통이 아니지.”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와 윤솔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어진! 무슨 방법이라도 있나?”

    “아아,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두 명, 아니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드레이크와 윤솔은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언제나 위기의 순간 돌파구를 만들어 내던 나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조금만 기다려. 지원군을 불러올게.”

    나는 드레이크와 윤솔을 안심시킨 뒤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는 바로 조디악이었다.

    “이봐, 음침 보이.”

    “…? 나 말이야?”

    내가 부르는 것을 들은 조디악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검지로 자기 얼굴을 가리킨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금덩이를 들어 보이며 그를 향해 물었다.

    “여기에 있는 금덩이가 네 거냐?”

    “……?”

    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조디악은 머리를 갸웃했다.

    김정은이 대답하지 말라는 듯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쳤지만, 조디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내 질문에 대답을 했다.

    “푸스스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되겠지.”

    “…어쨌든. 지금은 아니라는 거지?”

    “푸스스스. 응.”

    나는 조디악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여기에 있는 은덩이가 네 거냐?”

    “……?”

    조디악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빈정거리듯 대답했다.

    “그따위 은덩이는 줘도 안 가져. 인벤토리만 채울 뿐이지.”

    “…어쨌든. 네 것이 아니라는 거지?”

    “너절한 질문으로 시간 끌지 마라, 이 자식!”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디악은 짜증스럽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시간을 벌었다.

    나는 시선을 힐끗 돌려 내 시야 상단에 있는 피버 타임을 보았다.

    피버 타임이 종료되기까지 약 1초쯤 남은 시점.

    나는 조디악에게 최후의 대사를 날렸다.

    “정직하구나. 너에게 금, 은, 오리지날을 모두 주마.”

    동시에 내가 한 행동은 온 힘을 다해 점프하는 것이었다.

    …풍덩!

    바로 황금 호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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