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화 악당 연합 (1)
“…시장질서 다 말아먹으려고?”
이죽거리는 목소리.
조디악이 말을 걸어왔다.
놈은 저 멀리 종유석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태도가 무척이나 여유로워서 마치 자기 집에 들어온 손님들을 반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여유로움은 마치 연극 무대 위의 방백인 양 이질감이 느껴진다.
“…어쩐지. 던전에 들어올 때부터 느낌이 안 좋더라니.”
나는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고인물로서의 직감이라고나 할까?
나쁜 예감은 역시 빗나가지 않는다.
좋은 일에는 으레 마(魔)가 끼기 마련이라는 옛말도 맞다.
‘…맞아. 여기가 저놈의 군자금 조달처였지.’
나는 머릿속으로 내가 회귀하기 전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오래 전.
이 던전이 막 발견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지저 4만 미터 아래에 있는 이 금광으로 몰려들었다.
에베레스트의 높이보다 4배는 더 깊은 이 금맥을 찾는 과정은 길고도 힘들었다.
수없이 많은 도르래와 천칭접시를 오가며 벌이는 기괴망측하게 생겨먹은 지하종 괴물들과의 사투.
가로숲 중간중간에 숨어 있는 수많은 NPC들과 그들의 사정 사정들… 더없이 다양한 히든 퀘스트들….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해치고 지저 바닥에 도달한 이들의 수는 극도로 적었다.
나는 운과 근성으로 그 소수의 인원 안에 포함될 수 있었다.
‘뭐 대형 길드 덕을 좀 보기는 했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대형 길드의 수색조, 일명 ‘버리는 패’
나는 금맥 조사의 첨병이 되어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투입되었다.
그렇게 또 몬스터들과 싸우고 각종 자연재해를 겪고 황금의 미궁을 조사하고….
또다시 수많은 인원들이 죽어나갔다.
누구는 몬스터들의 빈약한 끼니가 되었고 누구는 유황가스에 목 졸려 죽었고 누구는 불길의 한 줌 땔감이 되었고 누구는 엄마가 학원 가라고 해서 로그아웃….
그 모든 끔찍한 최후들을 딛고 전진한 나는 고르딕사를 잡는 최후의 레이드에 포함되게 되었다.
수십 시간의 난전 끝에 결국 던전의 최종 보스 고르딕사를 잡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 다음부터가 진짜였지.’
이 던전의 최종 콘텐츠는 고르딕사를 잡고 난 다음에 펼쳐진다.
고르딕사를 잡고 피버 타임이 오는 순간 모두의 귓가에 알림음이 울려 퍼졌던 것이다.
-띠링!
<동맹 상태가 해제됩니다>
<상대방을 죽이고 골드를 빼앗으십시오>
<이 공간에서 카르마 수치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메시지가 뜨는 순간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후련함과 개운함. 그동안 함께 해 온 동료들에 대한 전우애 비슷한 것이 뭉글뭉글 형성되던 차였다.
…물론 그런 것들은 안내음이 뜨자마자 순식간에 박살났다.
곳곳에서 칼이 휘둘러졌고 마법이 쏟아졌다.
그동안 함께했던 동료들의 몸이 도마 위의 생선처럼 토막 나고 아궁이 속의 장작마냥 불타 버렸다.
…그리고.
그 살육전의 중앙에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놈이 바로 조디악 번디베일이었다.
놈은 킬킬 웃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찔러 죽였다.
난다긴다하는 랭커들이나 어지간한 대형 길드의 생존자들도 조디악 앞에서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놈은 이곳에서 군자금을 챙겨 가기 위해 작정을 한 것처럼 행동했다.
조디악이 휘두르는 ‘깎단’에 찔리면 답도 없는 도트 데미지가 죽을 때까지 들어왔고 놈의 ‘눈알’을 보게 되면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그는 고르딕사가 죽으면서 떨군 모든 아이템을 독식했고 이 던전의 모든 황금을 손에 넣으려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회귀하기 전의 이야기.’
나는 눈을 빛냈다.
그때의 조디악을 상징하던 성명절기 ‘깎단’은 지금 내 손에 있다.
또한 저놈을 그토록 성가시게 만들던 ‘황금광의 혈안’ 또한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조디악 놈은 예전에도 이 던전의 ‘최종 주인’까지는 되지 못했던 녀석이다.
저놈이나 나나 실패한 처지라는 것이다.
“너나 나나.”
“……?”
나는 조디악을 향해 툭 내뱉었다.
그는 나를 보고 갸웃했지만 이내 자기 페이스로 주절주절 넋두리 비슷한 것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재미없네. 피버 타임인데 서로 죽이지도 않고.”
그거야 당연한 일이다.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현실에서도 친한 사이니까.
그동안 수많은 생사고락을 함께 넘어온 만큼 이런 돈에 트러블이 생기지는 않는다.
애초에 그러니까 데려왔고.
그리나 조디악은 세상에 그런 관계가 있다는 것을 당최 이해하지 못하는 듯싶었다.
그는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지? 대격변 일으킨 놈이.”
“…….”
내가 입을 다물고 대답이 없자 조디악은 멋대로 추측하고는 웃어젖혔다.
“진짜 깜짝 놀랐어. 대격변이 ‘벌써’ 일어날 줄이야.”
……벌써?
조디악 저놈은 원래 대격변이 일어날 타이밍을 알고 있다는 건가?
나는 조디악을 향해 툭 던져 보았다.
“대격변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거지 벌써가 어딨어. 네가 무슨 게임 관계자라도 되냐? 아니면 회귀라도 했거나.”
일부러 뒤의 ‘회귀’라는 단어에 초점을 둔 말이었다.
그러자 조디악은 빵 터졌다.
“푸스스스스! 게임 관계자라?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나는 클로즈 베타 테스터였으니까.”
…클로즈 베타? 이 게임에 그런 것도 있었나?
아무튼 조디악 놈은 내가 툭 내뱉은 ‘회귀’라는 단어에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보일 수 있는 미세한 반응조차도 없다.
내가 한 말을 완전히 흘려듣는 걸로 보아 나와 같은 처지는 아닌 듯하다.
‘하긴, 조디악 놈이 회귀자였다면 이미 내가 설 자리도 없었겠지.’
어마어마한 운빨과 재능빨로 여기까지 온 놈이 조디악이다.
만약 놈이 회귀자였다면 애초에 나에게 깎단부터 천공섬, 그리고 지금 고르딕사까지…이 모든 것들을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편.
조디악 역시 나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클로즈 베타라는 단어를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네?”
“……?”
“너 대체 뭐냐?”
아무래도 조디악 놈 역시도 나를 시험해 본 모양이다.
나는 ‘회귀’라는 단어로, 놈은 ‘클로즈 베타’라는 단어로.
우리는 서로 서로를 시험했고 둘 다 예상했던 대답을 얻지 못했다.
스륵-
조디악은 몸을 일으켜 종유석 위에 섰다.
그리고 짜증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클로즈 베타 테스터도 아닌 놈이 어떻게 대격변을 일으켰고 여기 고르딕사까지 잡으러 온 거야?”
“…그 클로즈 베타 테스트라는 게 뭔데?”
나는 역질문을 했다.
진짜 몰라서 물어본 것이다.
내가 전역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 게임은 이미 서비스되고 있었다.
세상 전체가 이런 엄청난 스케일의 게임이 하루아침에 시장에 출현한 것을 연일 놀라워하고 있었던 때였다.
조디악은 건조한 웃음을 머금었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건지, 알면서 놀리는 건지.”
“…….”
“친구.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봐. 얼마나 광활하고 정밀한 세계관이야?”
“…….”
“이런 게임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져 출연한다는 것이 이해가 돼?”
으레 기술은 계단식으로 진보하기 마련이다.
어떠한 신기술이 나온다면 그 토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논의되고 연구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그런 논의가 형성되지 않은 채 갑자기 시장에 나타났고 모든 게임 시장을 집어삼켰다.
분명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전형적인 싸구려 음모론이네.’
나는 피식 웃어 줄 뿐이다.
이런 식의 음모론이라면 이미 미래 세계에서 수없이 봐 왔다.
보통 뒤에 숨어 망상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런 식의 거대한 음모론을 만들어 내어 멀쩡한 유저들에게 혼란을 주곤 했다.
내가 지난 15년을 플레이했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엄청나게 많은 스토리 작가들과 기술자들이 손을 댄 것이고 당연히 사람이 만든 것이니만큼 오류도 많았다.
때론 인간적이고 마음 따듯한 이벤트들도 있었고 배꼽 빠지게 웃긴 버그들도 존재했다.
이 게임은 생각보다 엄청난 기술이 들어간 것도 아니요 그렇게까지 완벽하지도 않다.
어디까지나 ‘사람이 만든 것’답게 사람 냄새 물씬 나는 게임이라는 거다.
어줍잖은 뉴비였다면 조디악의 말에 솔깃해 선동 당할지는 몰라도, 고이고 고인 물인 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갓겜이니까 그렇지.”
“……?”
“항상 감사하십시오, 작은 성기들아. And I also 갓.겜.조.아.”
내가 입을 열어 아무런 말이나 내뱉자 조디악의 이마에 퍼런 핏줄이 솟았다.
“이 자식, 말이 안 통하네. 선동 실패다.”
조디악은 두 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항복을 하는 동작이 아니었고 눈썰미 좋은 드레이크가 그것을 먼저 발견했다.
“어진! 페이크!”
드레이크의 외침과 동시에.
쿠르르르륵!
시커먼 불꽃이 내 발밑에서 싹을 틔우고 다리로 줄기줄기 타오른다.
아무래도 불씨를 미리 땅 밑에 심어 두었던 모양.
하지만.
파팟!
윤솔이 펼친 신성 방어막이 조디악의 불길을 잠시 억눌렀다.
덕분에 내 다리는 타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신발에서 점액을 뿜어내어 검은 불꽃을 깔끔하게 털어 버렸다.
그것을 본 조디악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어디서 좋은 힐러를 구했구나. 황금에 눈이 멀지도 않고. 그 류트 아이템은 어디서 난 거야?”
윤솔의 아이템 ‘아기천사의 쿠잉’이 천공섬에서 드랍되는 것을 모르는 걸 보니 저놈은 확실히 회귀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무서울 것 없지!
나에겐 미래 지식이 있고 조디악의 대표적인 아이템들도 전부 미리 선점했다.
레벨도 스탯도 아이템도 지식도 모두 내가 압도적으로 우위다.
…차이가 있다면 재능. 하지만 그것은 팀빨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4대 1’
이쪽은 나와 윤솔, 드레이크, 거기에 NPC인 벨럿마저 가세해 있다.
반면 저쪽은 조디악 하나.
모두가 다 고수들이라면 사실 쪽수만큼 깡패인 것이 없다.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에 좋은 아이템을 가졌다고 해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다수를 상대로는 도리가 없는 것이 바로 게임이 아닌가.
그것은 각종 게임 판타지 소설의 1화를 봐도 알 수 있다.
‘맨날 1:1로는 적수가 없는 주인공이 적대 길드에게 다구리 맞고 죽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조디악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넷이야. 가능하겠어?”
그러자.
조디악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연히 가능하지. 우리는 다섯이니까.”
동시에, 놈의 뒤에서 그림자 몇 개가 유령처럼 솟아올랐다.
그 면면들을 확인하는 순간.
오싹…
내 등골에 소름이 끼쳐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회귀하기 전 나를 죽였던 것은 조디악이다.
…하지만 천하의 ‘앙신(殃神)’조차도 결국 이 던전의 최종 주인은 되지 못했다고 했다.
말인즉슨. ‘그’ 조디악도 누르고 이 던전을 최종 독차지했던 악귀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것들이 이 자리에 나타나 있었다.
…앙신 조디악과 손을 잡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