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21화 (321/1,000)

322화 Show me the money (5)

-<이어진>

LV: 74

호칭: 바실리스크 사냥꾼(특전: 맹독)  /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어둠 대왕 시해자(특전: 선택) /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HP: 740/740

실로 간만에 점검하는 상태창이다.

고르딕사를 잡자 레벨이 1 오르고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이 호칭에 수반되는 특전은 ‘절약’ 특성으로 사망 시 일정 확률로 아이템이나 경험치, 골드의 손실을 방어해 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생존 특성이라고 보기는 조금 애매하고… 보험 특성이라고 보면 되겠네.”

게임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죽을 위기가 많아지니만큼 점점 더 활용 가치가 높아지는 특성이기도 했다.

드레이크와 윤솔 역시도 같은 호칭과 특전을 얻었으니 결과가 막 좋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셈.

“이왕이면 ‘유극(遊隙)’ 특성을 빼앗고 싶었는데…아차, 그건 크라켄의 ‘틈’ 특성하고 중복되는구나. 이 정도면 다행이려나. 에이…그래도 ‘절약’ 특성보다는 ‘수전노’ 특성이 더 좋은데….”

곱씹을수록 아쉬움이 짙어지는 결과였지만 이 정도만 해도 사실 감지덕지다.

내가 하늘이 내린 기연 덩어리는 아니니 이런 적당한 수준의 행운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

나는 호칭과 특성을 살펴보고는 상태창의 변화를 최종 점검한 뒤 더 이상의 미련을 접었다.

난 1레벨 상승, 윤솔과 드레이크는 각각 2레벨씩 올랐다.

인벤토리의 크기도 대폭 확장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때.

“어? 아이템이다.”

윤솔이 물과 호수가 닿는 기슭에서 환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발견했다.

-<황금광의 혈안(血眼)> / 안대 / A+

황금에 미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된 자의 눈알을 빼서 건조시킨 것이다.

이 핏발 선 눈알과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시야 -5%

-집중력 -5%

-어둠 속성 저항력 -5%

-특성 ‘실명’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마나 번’ 사용 가능 (쿨타임: 12시간)(특수)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 떨어졌다.

메두사가 쓰는 마나 번의 상위호환인 고르딕사의 마나 번이다.

눈이 마주친 적을 황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스킬이 붙었다.

비록 각종 스텟들이 5%씩 감소되고 12시간이라는 쿨타임까지 붙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괜찮은 아이템이었다.

경매장에 내다 팔면 아마 서울 중심부 노른자위 땅에 4층짜리 상가 한 채는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 안대를 윤솔에게 내밀었다.

“솔아, 이건 일단 네가 써.”

“내가? 나보다는 네가 쓰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나는 아이템 사용도 아직 미숙하고….”

“이 아이템은 딱히 사용법이랄 게 없어. 힐러에게 제일 필요한 게 생존기니까. 뭐,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이 쓰도록 하자.”

“그렇다면 알겠어. 내가 잠시 보관하지 뭐.”

윤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대를 착용했다.

…하지만 사실 이 아이템은 나나 윤솔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있다.

“음, 그거 설마 날 말하는 건가?”

드레이크가 손을 들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구단 사람들 중에 이 아이템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지. 너랑 나는 아니고.”

“그게 누구지?”

드레이크가 안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재차 물었다.

하기야 눈을 사용할 일이 많은 궁수의 특성 상 이 아이템이 유용하긴 할 것이다.

어지간히도 이 안대가 가지고 싶은 모양.

하지만 안타깝게도 드레이크는 후보가 아니다.

나는 피식 웃고는 힌트를 주었다.

“마나 번의 유일한 약점은 거울이나 수면에 반사된 눈빛에 자신이 당해 버릴 수도 있다는 거야.”

메두사가 청동 방패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돌이 된 이야기는 유명하지 않은가?

“…아!”

내 힌트를 들은 드레이크는 바로 깨달은 모양이다.

우리 구단 멤버들 중 이 아이템을 제일 잘 사용할 수 있는 이가 누구인지.

드레이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황을 납득했다.

“확실히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지? 그럼 다음 아이템이나 보자고.”

나는 고르딕사가 떨어트린 두 번째 아이템을 살폈다.

-<고르딕사의 코어(core)> / ?

광물 중 가장 값어치가 높다는 황금조차도 고르딕사의 본체가 아니었다.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이 고르딕사의 몸에 심어놓은 이 정체불명의 금속 심지는 고르딕사를 타락시킨 핵심 요인이며 이 세상의 그 어떤 광물보다도 견고하고 희귀한 물질이다.

등급 불명, 정체불명의 아이템.

이것은 고르딕사의 몸속에 박혀 있던 길쭉한 금속으로 피가 섞인 흑철의 재질처럼 보였다.

연필의 심 같기도 했고 촛불의 심지 같기도 했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불길함이 느껴지는 검붉은 막대기다.

“…좋았어. 드디어 이것을 얻었군.”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템이다.

드레이크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어진. 그 막대기는 뭣에 쓰는 건가?”

“이건 고정 S+등급 몬스터를 잡는 아이템이야.”

“……!?”

내 말을 들은 드레이크는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그는 봐서 안다.

심해의 군주 크라켄, 부유섬의 지배자 여덟 다리 대왕, 천공섬의 식인황제 보카사 바리새인.

이 세 마리의 S급 몬스터들이 최후의 순간 잠시간 발휘했던 ‘S+등급’의 힘을.

하지만 심해 특성 탓에 파워업한 크라켄도, 폴다운 모드로 진화했던 여덟 다리 대왕도, 자신의 심장을 뽑아먹고 진화한 식인황제도…모두 고정 S+등급 몬스터에 비하면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정 S+등급의 몬스터’

드레이크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예전에 용암룡 모르그마르와 부패의 성좌 벨제붑을 보았을 때는 공포감에 짓눌려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데 그런 고정 S+등급 몬스터를 잡겠다고? 고작 이 막대기로?

“그게 정말 가능한 거냐?”

드레이크는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저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질문이다.

뎀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상식에 입각하자면 내가 한 말은 인간이 활을 쏴서 태양을 떨어트리겠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광오하고 황당무계하게 들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허황된 말은 하지 않는다.

“…잡는다. 고정 S+등급.”

나는 눈앞에서 빛나고 있는 검붉은 막대기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열일곱 서브스트림.

그것들을 대표하고 있는 십칠 인의 절대강자.

나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시스템의 중추(中樞), 메인스트림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박수를 한번 짝! 쳐서 윤솔과 드레이크의 시선을 모았다.

그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피버 타임(Fever time)이 다시 시작됩니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부글부글부글부글…

누런 호수가 다시금 물거품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어딘가 사람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그제서야 아차 싶다는 듯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맞다! 고르딕사가 죽으면 다시 피버 타임이 시작된다고 그랬지!”

“이, 이런. 어진! 어서 호수에 돌을…!”

그들은 재빨리 호수에 던질 무언가를 찾으러 뛰어간다.

나 역시도 사방에 널린 돌조각이나 종유석의 파편들을 집어 들었다.

“자, 인벤토리에 한계가 있으니 은덩이는 무시하고 금덩이 위주로 채집합시다! 무게를 달아도 금덩이가 더 값이 나가니까요.”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신이 났다.

“산신령님. 저는 정직하게 살았으니 금도끼와 은도끼를 주세요.”

“사실 금도끼, 은도끼 전설은 고대 그리스의 ‘이솝우화’에서 유래된 전설이지. 한국에서는 헤르메스가 산신령으로 토착화된 모양이군.”

우리는 또다시 신나게 호수로 돌덩이를 던져댔다.

풍덩! 파팟!

수면을 깨트리고 가라앉은 돌덩이는 금덩이, 은덩이, 돌덩이 이 세 가지 모습으로 도로 튕겨 나온다.

금덩이는 우리가 수집했고 은덩이는 벨럿이 주워 먹었다.

[드워프들에게는 은이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통하지.]

그녀는 마치 은덩이를 인절미 먹듯 우물우물거린다.

표정을 보니 정말로 맛있다는 느낌.

우리는 금을 얻어서 좋고 벨럿은 은을 먹어서 좋고.

윈윈 전략이다.

이윽고. 금덩이를 줍던 윤솔이 외쳤다.

“으아! 어진아! 이제 한계야! 더는 안 들어가! 꽉 찼어!”

“음, 나도 이제 비슷한 상태다. 굉장하군!”

드레이크 역시도 거의 꽉 찬 인벤토리를 보여 주며 흥분한 듯 소리쳤다.

레벨이 올라 한껏 팽창한 인벤토리조차도 꽉 찰 정도로 금의 양은 많았다.

우리는 잡템들을 떨구고 그 자리까지 금을 꽉꽉 밀어 넣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산더미처럼 넘쳐나는 황금들을 다 가져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던전은 그대로 있으니 마을까지 몇 번 왕복하면 되겠군. 창고까지 꽉 채울 수 있겠어.”

나는 잔여 황금들을 보며 마을까지 몇 번을 움직여야 할지를 고민했다.

바로 그때.

“풋푸스스스스…… 게임 돈을 현실 돈으로 바꿀 셈인가? 환율은 어쩌게? 시장질서 다 말아먹으려고?”

어디선가 초를 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누런 물결이 넘실거리는 곳.

벽에 가로로 툭 튀어나온 종유석 위에 한 남자가 걸터앉아 싱글싱글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체처럼 창백한 안색에 광대뼈까지 넘실거리는 다크서클.

뒤로 넘긴 시커먼 올백머리.

조디악 번디베일!

한때 이 던전에서 나를 죽였었던 남자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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