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320화 (320/1,000)
  • 321화 Show me the money (4)

    ‘자연스럽게 형성된 여론은 천재의 직감과 닮아 있다.’

    -에드거 엘런 포(Edgar Allan Poe)-

    *    *    *

    “이것이 집단지성의 힘이지.”

    나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봤던 수많은 공략들을 취합해 고르딕사의 황금 탄막 슈팅 패턴을 분쇄했다.

    ‘고인물 vs 딥러닝’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긴 것처럼 나 역시도 고르딕사를 이긴 것이다!

    세계 바둑 랭킹 1위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첫 패배를 겪은 뒤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라는 말을 남겼던 것처럼… 나 역시도 남길 말이 있다.

    “인간이 이긴 게 아니라 내가 이긴 것.”

    …뭐? 뭐!

    이 시대에서는 아무도 날 도와준 사람 없다고!

    나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나저나, 내가 고르딕사를 첫 플레이에 잡아 버리면 후발주자들부터는 조금 힘들 수 있겠군.’

    하지만 내가 그런 것까지 생각해 줘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고르딕사를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지금 없다시피 하니까.

    바로 그때.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놈을 쓰러트릴 수 없어!]

    벨럿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사실 뭐니뭐니해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지금부터 사금(砂金) 발라내는 것의 진수를 보여 주지.”

    나는 고르딕사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탁!

    내가 손을 뻗어 집어든 것은 벨럿의 등에 매달려 있는 자루였다.

    -<드워프의 은 말뚝> / A

    그 무엇이든 뚫고 고정할 수 있는 말뚝.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다.

    자루 속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말뚝이 잔뜩 들어 있었다.

    지하 3층으로 통하는 구멍을 뚫을 때 사용했던 도구였다.

    [어어? 이것은 광물 채굴용 도구인데. 이걸 어쩌려고?]

    벨럿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나는 그런 벨럿을 향해 손짓했다.

    “자, 방어력이랑 HP가 높은 네가 잘 도와줘야 해. 그 망치를 이용해서….”

    내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벨럿은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말 될까?]

    NPC답지 않게 의심이 많군. 호감도가 아직 그렇게 높지 않아서 그런가?

    그래도 어찌어찌 벨럿을 설득할 수는 있었다.

    고르딕사를 잡아야 한다는 목적 자체는 같았으니까.

    이내 나와 벨럿은 잽싸게 고르딕사에게 접근했다.

    핑- 핑- 핑-

    드레이크가 화살을 날려 어그로를 끌자 고르딕사는 바로 반응했다.

    [우어어어어어!]

    놈은 우리를 향해 커다란 주먹을 날려 온다.

    나는 그 주먹을 잘 보고 있다가 바로 손을 뻗었다.

    “X새끼!”

    내가 X자 표적으로 노린 것은 바로 고르딕사의 ‘새끼손가락’이였다.

    “죽어라, 이 새끼야!”

    욕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새끼손가락이라는 뜻이다.

    나는 집요하게 고르딕사의 새끼손가락에 반사 데미지를 퍼부었다.

    몇 번인가 죽을 뻔도 했지만 윤솔의 적절한 타이밍에 힐을 걸어줘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내.

    퍼석!

    고르딕사의 새끼손가락이 잘려 나갔다.

    물컹한 황금으로 된 손가락이 땅바닥에 쿵 떨어져 내린다.

    단지(斷指).

    이제 놈은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없게끔 되었다.

    [우우우우우…!]

    고르딕사는 흘러내리는 황금을 덧발라 손가락을 재생하려 했지만 그게 그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뭐, 아무튼.

    새끼손가락이 사라지자 고르딕사는 주먹을 쥘 수 없었다.

    구조 상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놈은 이제 주먹 말고 활짝 편 손바닥을 이용해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원하던 바였다.

    콰쾅!

    고르딕사의 손바닥이 지면을 때리는 순간!

    “지금이야!”

    나는 벨럿에게 소리쳤다.

    드레이크와 나는 커다란 은 말뚝을 꺼내 고르딕사의 손등에 내리꽂았다.

    그 위로 벨럿이 휘두르는 거대한 망치가 떨어져 내린다.

    쾅! 우지끈!

    은 말뚝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고르딕사의 손바닥에 틀어박혔다.

    그것은 그대로 고르딕사의 두꺼운 손바닥을 관통해 내려가 땅거죽까지 꿰뚫고 지면 안으로 깊숙이 박힌다.

    “한 번 더!”

    나는 다른 은말뚝을 꺼내들며 외쳤다.

    벨럿은 바로 망치를 회수하고는 한 번 더 은말뚝 위를 향해 망치를 내리찍었다.

    쾅!

    마치 떡을 치는 떡메처럼 떨어져 내리는 망치.

    그 육중한 타격에 의해 두 번째 은말뚝도 깊이 박혔다.

    [그워어어어어!]

    고르딕사는 황급히 손을 빼려 했지만 별 수 없었다.

    흐물거리는 형태의 금속도 붙잡아 고정할 수 있는 드워프의 말뚝이다.

    “자, 다음은 반대쪽 손이야!”

    나는 잽싸게 고르딕사의 다른 손을 향해 움직였다.

    고르딕사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한쪽 손을 내버려 두고 다른 쪽 손을 뻗어 우리를 잡으려 들었다.

    나는 말뚝에 고정시켜 놓은 손의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고르딕사는 또다시 나를 향해 주먹을 날렸고 나는 같은 방식으로 놈의 새끼와 약지를 파괴해 주먹 대신 손바닥을 쓰게끔 만들었다.

    …콰쾅! 우지직!

    이내, 고르딕사의 양 손바닥은 전부 땅거죽에 못 박히게 되었다.

    각각 12시와 6시 방향에 두 손이 고정된 고르딕사는 손에 박힌 말뚝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말뚝이 빠지지 않게 잘 고정해!”

    나는 벨럿을 향해 외친 뒤 또다시 어그로를 끌기 위해 움직였다.

    퍼퍼퍼퍼펑!

    나는 쏟아지는 탄막을 피하며 강기슭으로 다가갔다.

    부글부글부글…

    뜨거운 황천이 요란하게 끓고 있다.

    나는 마동왕의 건틀릿 중 하나를 손에 착용한 뒤 물에 담갔다.

    -<아귀 메기 이빨너클> / 한손무기 / A+ / (와류)

    ‘와류’ 특성. 필드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힘이다.

    콰콰콰콰콰콰-

    나는 황천의 수면을 한 손에 휘어잡은 채 원을 그리며 휘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오오오오오!]

    고르딕사 역시 자신의 ‘와류’ 특성을 발현시켰다.

    콰콰콰콰콰콰-

    내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와 고르딕사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가 맞부딪쳤다.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두 개의 황금빛 회오리!

    드레이크와 윤솔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하군.”

    “누가 이길까요?”

    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쿠르르르륵!

    두 개의 소용돌이는 부딪쳐서 서로 상쇄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로 융합해 더더욱 세력을 불리기 시작했다.

    “어어?”

    윤솔과 드레이크는 당황했지만….

    “좋았어!”

    나는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고르딕사의 와류 특성과 겨룰 마음이 없었다.

    내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는 고르딕사가 만들어 낸 소용돌이와 완전히 똑같은 방향!

    즉 놈의 힘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더 보태는 개념이었다.

    “자! 돌아라!”

    나는 호수 전체를 손으로 움켜잡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고르딕사와 아귀 메기의 힘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와류는 그야말로 격렬한 것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

    개미의 시점에서 본 변기 물 내려가는 광경이 이럴까?

    엄청난 규모의 소용돌이가 모든 공간을 집어삼킨다.

    윤솔의 보호막 안으로 들어온 드레이크와 벨럿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이쪽을 바라본다.

    오직 나만이 이 뒤틀린 황천의 중심부에 선 채 고르딕사와 마주하고 있었다.

    “돌려돌려, 돌림판!”

    나는 황천을 돌리며 외쳤다.

    쿠르르르르륵!

    엄청난 기세로 회전하는 물살이 온 세상을 집어삼킨다.

    놀랍게도, 그 중앙에 선 고르딕사는 천천히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회전하는 물살은 고르딕사를 중심으로 놈의 허리를 천천히 깎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놈의 양 팔이 물가에 못 박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콰쾅!

    나는 몰아치는 물살을 피해 땅으로 몸을 피했다.

    이미 와류는 흐름을 탔다.

    강맹한 소용돌이는 고르딕사 본인의 힘에 심해 몬스터 아귀메기의 힘까지 더해져서 태어난 것이니만큼 고르딕사의 힘으로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물살.

    츠츠츠츠츠…

    뒤틀린 황천 중앙에 갇힌 고르딕사의 몸이 점점 물의 칼날에 의해 깎여 나간다.

    마치 원심력에 의해 패닝접시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불순물들처럼.

    [그아아아아아악!]

    고르딕사는 나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와류에 의해 깎여나가는 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벅! …철벅! …철퍼덕!

    진흙과 돌이 섞인 황금들이 이리저리 튄다.

    “큭큭큭. 사금 튀는 것 보소.”

    나는 고르딕사와 눈을 맞추며 웃었다.

    이제는 눈을 마주쳐도 황금으로 변할 걱정이 없다.

    …왜냐하면.

    [우우…우우우욱…]

    고르딕사는 그 큰 눈을 꾹 감고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쾅! 우르르릉…!

    하지만 그 울음소리도 이내 소용돌이가 내뿜는 맹렬한 굉음에 삼켜져 버렸다.

    “핫하! 죽어라 몬스터야!”

    한평생 인간들에게 금화를 공짜로 제공했고 결국 정령왕으로도 선발되지 못한데다가 이곳 지저갱에 수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죗값을 치르란 말이다!

    이윽고.

    콰콰콰콰콰…!

    소용돌이에 거의 다 깎여나간 고르딕사의 몸 내부가 훤히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검붉은 금속이 도사리고 있었다.

    코어(core).

    그것이 고르딕사의 핵심 부분이자 본질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나는 눈을 빛냈다.

    ‘고르딕사의 코어’

    저것은 황천의 ‘피버 타임’과 더불어 내가 이 던전으로 온 진짜 목적 중 하나였다.

    이윽고.

    쿵… 첨벙!

    황천의 중앙에 갇혀 있던 수감자가 무릎을 꿇었다.

    고르딕사는 전신의 황금들이 죄다 벗겨진 상태로 쓰러졌고 그제야 황금 호수의 풍랑도 가라앉았다.

    동시에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지들이 뜨기 시작했다.

    -띠링!

    <세계 최초로 ‘황천의 수감자, 타락정령 고르딕사’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 물>

    <레이드 랭킹 집계 중...1위/ 트라이 횟수: 1회>

    <‘황천의 수감자’가 죽었습니다. 악마 진영 ‘불타는 군단’의 사기가 감소합니다.>

    <분쟁지역에 모여든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고인 물’이라는 이름이 알려집니다.>

    <‘황천의 수감자’가 부활할 때까지 분쟁지역에서 채굴되는 황금의 출토량이 50% 감소합니다.>

    <분쟁지대에서 대립하고 있는 두 대왕이 ‘고인 물’ 님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고르딕사를 잡고 난 뒤 여러 가지 특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가볍지 않은, 실로 엄청난 혜택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 중에서 단연코 월등한 혜택은….

    <피버 타임(Fever time)이 다시 시작됩니다!>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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