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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318화 (318/1,000)

319화 Show me the money (2)

[나타났다!]

벨럿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수백 년 전 자신이 알던 모든 사람들을 황금과 토사의 저주 아래 파묻어 버렸던 괴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윽고, 누런 수면이 박살나며 그 아래에서 거대한 괴물이 기어 올라온다.

<황천의 수감자 ‘타락정령 고르딕사’> -등급: A+ / 특성: 어둠, 암석, 하수인, 지진, 와류, 유극(遊隙), 뽐내기, 마나 번, 절약, 황금향, 수전노.

-서식지: 어비스 터미널 ‘황천의 유극 3층’

-크기: 49m.

-“고개를 들어 저기 선택받지 못했고 선택 받기도 포기한 자의 말로(末路)를 보라. 추하고 가엾지 아니한가!”

-정령왕 가이악사-

황금의 정령 고르딕사!

놈은 거대한 몸뚱이를 물 밖으로 끄집어냈다.

쉬이이이익-

놈이 물 밖으로 몸을 빼내자 엄청난 양의 증기가 공동에 가득 찼다.

부글부글부글…

놈의 전신은 마치 붕괴하는 것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펄펄 끓고 있는 액체 상태의 황금 그 자체였다!

[우-어어어어…]

고르딕사는 몸도 마음도 무너져버린 괴물로서 더 이상 정령 특유의 신비롭고 고아한 아우라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추하게 흘러내리는 액체상태의 황금 몸뚱이 뿐이다.

두 눈은 커다란 진주처럼 둥그렇고 뿌연 모습이었고 코와 귀는 뭉개져 보이지 않았다.

입술 역시도 흘러내린 황금에 뒤덮여 사라졌고 쩍 벌어진 입 안으로 기형적으로 뒤틀린 이빨들 몇 개만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는 모습.

“윽, 징그러워.”

윤솔이 미간을 찌푸렸다.

천공섬 전율미궁의 배드엔딩들을 보고서도 상하지 않았던 그녀의 비위가 상할 만큼 고르딕사의 외형은 끔찍하고 또 추한 것이었다.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음, 정령인 척 할 것도 없이…무조건 악령인데 이건?”

물론 외모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만…아무래도 첫 만남이니만큼 보여지는 것도 신경을 써야겠지?

그렇기 때문에 고르딕사는 무조건 악령 판정이다.

하지만 반대로 씁쓸하기도 했다.

곡식의 정령 가이악사와 황금의 정령 고르딕사.

곡식과 황금 중에 곡식을 택했다는 어린아이의 전설은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삽입한 스토리겠지만….

“나한테는 그런 거 없어. 돈이 최고야!”

나는 오히려 고르딕사 쪽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을 사람들을 열심히 돈으로 후원해 줬는데 만칠천 배의 가치를 몰라보고 버림받다니….

“…고르딕사의 재평가가 시급합니다.”

나는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리가 일찍 만났다면 분명 좋은 관계(?)가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지금 너와 나의 사이는 플레이어와 보스 몬스터의 사이.

“넌 몬스터고! 난 플레이어야! 너는 던전 보스고! 나는 게이머란 말이야!”

약간 로맨틱한 대사와 함께, 나는 레이드를 개시했다.

콰쾅!

이내 나와 고르딕사가 황천의 경계에서 한 판 대차게 맞붙었다.

[오-오오오오오!]

고르딕사는 황금이 뚝뚝 떨어지는 주먹을 들어 그대로 우리가 있는 곳에 내리꽂았다.

콰쾅! 우르릉…

마치 운석이 떨어진 듯한 충격과 함께 묵직한 지진이 일어난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그 다음에 있었다.

푸확! 철퍽! 철퍽! 철퍼덕!

부글부글 끓는 액체 상태의 황금이 사방팔방으로 튄 것이다!

돈벼락!

고르딕사의 공격은 실로 돈벼락 그 자체였다!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는 황금 주먹에 맞으면 엄청난 물리 데미지를 입게 되고 피한다고 해도 주변으로 튀는 뜨거운 황금 때문에 성가신 화상 데미지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우우욱! 으에에에에엑!]

놈은 두 눈과 입에서 펄펄 끓는 황금을 게워내며 다가왔다.

상반신에 달린 두 개의 팔과 가슴, 허리의 구분이 없는 통짜 몸.

그리고 하반신은 완전히 녹아내려 마치 민달팽이의 바디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주르르륵…

놈이 움직인 궤적을 따라 땅 위에 황금의 점액길이 생겨났다.

그것은 놈의 몸에서 떨어진 직후 식으면서 딱딱하게 굳어 미끈미끈하게 되었다.

촤아아아악!

고르딕사는 얼마 넓지도 않은 땅 위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토악질을 시작했다.

[웨에에에엑-]

누런 액체가 온 사방팔방으로 비산한다.

뜨겁고 끈적한 황금 샤워!

쇠뇌를 들던 드레이크가 눈을 찡그리고 뒤로 물러났다.

“으윽! 눈부셔서 화살을 쏠 수가 없다.”

그저 빛.

고르딕사 당신은 도대체…….

놈이 퍼붓는 황금은 너무나도 번쩍번쩍해서 에임을 정확히 겨누기가 어렵다.

미약하게나마 실명 데미지를 뿌리는 능력을 패시브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파앙-

드레이크의 손에서 떠난 화살이 고르딕사의 몸뚱이에 박혔다.

퍽…!

황금 몇 방울이 튀며 화살대가 파르르 떨린다.

[그우욱!]

고르딕사는 화살을 맞거나 말거나 그냥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드레이크를 향해 밀고 들어간다.

나는 그런 드레이크에게 날카롭게 경고했다.

“저 놈은 의외로 히트박스가 작아서 유효 데미지 판정이 까다로워! 흘러내리는 황금 말고 상반신 쪽에 고정되어 있는 딱딱한 부분을 노려야 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르딕사가 반응했다.

[구에에에에엑!]

놈은 한계까지 마신 취객처럼 입 속의 누런 것들을 게워냈다.

또다시 끈적하고 뜨거운 액체들이 온 사방팔방에 흩뿌려진다.

나는 화상 데미지를 피해 윤솔에게로 뛰어갔다.

“으, 이 장판 데미지 무엇? 황금이라 좋긴 하지만…….”

“황금을 토사물로 취급하고 데미지까지 입게 한다라…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제작진의 사회고발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나는 누가 토해 놓은 거라도 상관없으니 황금이 좋아.”

나는 윤솔이 걸어 주는 힐을 받으며 눈을 반짝였다.

고르딕사가 열심히 날뛰어 준 탓에 주변은 온통 황금 천지다.

비록 고르딕사가 토해 낸 황금은 불순물이 많이 섞여있어서 상품가치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게다가 고르딕사를 잡고 나면 또다시 피버 타임이 온다.

그때 약간 덜 찬 인벤토리를 황금으로 빵빵하게 채우면 되는 일!

[그워어어어!]

고르딕사는 드레이크가 쏘아내는 화살비를 맞으며 귀찮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드레이크의 화살촉은 배드엔딩의 외골격을 깎아서 만든 것으로 주변 금속에 녹이 슬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데 아무래도 이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드레이크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역시 광물로 된 몸뚱이라 그런가 녹을 싫어하는군.”

“금에는 녹이 안 슬지 않아?”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어진.”

드레이크는 계속해서 화살을 날려 고르딕사를 견제했다.

…한데?

풍덩!

고르딕사는 드레이크의 화살을 피해 슬쩍 몸을 움직이더니 부글부글 끓는 황천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처덕- 처덕- 처덕- 처덕-

놈은 황천에 몸을 담그더니 바닥에서 황금이 섞인 진흙을 퍼올려 몸에 발라 덧댔다.

윤솔이 표정을 찡그렸다.

“…방어력이 올라가고 HP가 회복되었어.”

고르딕사는 등급답게 실로 까다로운 공격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거구의 몸과는 어울리지 않게 히트박스가 작아서 데미지 판정이 까다로운데다가 장판 데미지에 광역기, 대인기 모두가 완벽하다.

실명과 화상 데미지를 주는 기술을 패시브로 가지고 있고 물렁물렁한 몸뚱이 때문에 물리 데미지는 거의가 반감된다.

거기에 HP가 일정 수치까지 떨어지면 황천으로 되돌아가 몸에 황금을 덧발라 방어력을 올리고 체력을 회복하기까지 한다.

번쩍번쩍거리는 스펙이 한 두 개가 아니다.

나는 그런 고르딕사를 향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래. 요즘은 한두 가지만 잘해서는 못 먹고 살지.”

대격변 이후 보스 몬스터들의 스펙이 대부분 상향평준화 되었다.

고르딕사의 스펙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르딕사를 잡기 위해서는 마법 데미지를 꾸준히 넣거나 아니면 한 방 데미지를 주는 기술로 폭딜을 꽂아 넣어야 한다.

“바로 이렇게 말이지.”

나는 잽싸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우어어어어!]

고르딕사는 한결 단단해진 주먹을 날려 나에게 정면으로 부딪쳐왔다.

콰쾅!

이내, 내 주먹과 고르딕사의 주먹이 맞부딪쳤다.

…우지직!

박살난 것은 고르딕사의 팔이었다.

퍼퍼퍼펑!

황금들이 산산조각난다.

나의 반사 데미지가 고르딕사의 한쪽 팔을 멋지게 봉인해 버렸다.

깎단의 도트 데미지를 얹어 준 것은 덤이다.

“크윽!?”

나는 앙버팀 특성으로 인해 HP 1의 상태에서 겨우겨우 살아남았다.

하지만 위기는 그 다음부터였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황금 방울!

그중 한 방울만 내 몸에 닿아도 나는 열상 데미지에 의해 즉사할 것이다.

감히 허리춤에서 포션 병을 뺄 여유도 없었다.

바로 그때.

“어진아! 뒤로!”

윤솔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힐을 넣어 주었다.

나는 겨우겨우 HP를 회복해 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솔아. 땡큐.”

“별말씀을! 이러려고 힐러 있는 거지!”

나는 포션을 마시며 윤솔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웠다.

윤솔 역시도 나를 향해 밝게 웃는다.

이내, 윤솔은 모아 뒀던 MP를 이용해 신성불가침 배리어를 쳤다.

번쩍!

흰 빛의 장막이 나를 바싹 추격해 오던 고르딕사의 이빨을 튕겨내고는 뒤로 밀어냈다.

[그우우우욱!]

고르딕사는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맨 바닥을 더듬는다.

운이 좋았다.

100%의 확률로 들어가는 1차 상태이상 ‘마비’, 50%의 확률로 들어가는 2차 상태이상 ‘공포’, 25%의 확률로 들어가는 3차 상태이상 ‘환각’, 12%의 확률로 들어가는 4차 상태이상 ‘실명’까지.

도합 4개의 상태이상이 한꺼번에 들어간 것이다.

“좋아. 이제 눈먼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족족 반사 데미지를 먹이면 돼. 거기에 깎단의 도트 데미지를 계산하면….”

머릿속에서 복잡한 계산이 이루어진다.

지금까지는 매우 순조롭다.

하지만.

[…아앗!? 조심하게! 놈이 반격해 와!]

벨럿이 날카롭게 경고했다.

부글부글부글부글…

고르딕사의 전신이 사납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놈은 문드러진 얼굴을 들어 증오에 가득 찬 눈을 부릅떴다.

[오-오오오오!]

진주처럼 뿌옇고 탁한 눈동자가 우리를 향해 황금빛을 폭사한다.

그것을 본 벨럿이 경악하여 외쳤다.

[저놈의 눈을 보면 안 돼! 황금으로 변해 버린다!]

수백 년 전, 고르딕사의 저 공격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벨럿이다.

그녀의 절규를 들은 우리 모두는 황급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르딕사의 공격은 단순히 눈빛을 뿜어내는 것만이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놈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 버리는 눈빛을 뿌리며 우리를 향해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벨럿은 눈을 감은 채 절망했다.

[아아, 끝났어! 이제 눈을 뜨고는 놈과 싸울 수 없어! 이곳에 내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절망은 조금 이르다.

콰-쾅!

이내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고르딕사의 한쪽 팔이 터져나갔다.

후두둑- 후두둑- 후두둑-

뒤로 비산하는 황금들.

[……!?]

고르딕사는 크게 당황한 듯 주춤주춤 물러난다.

나는 고르딕사의 주먹 데미지를 반사한 뒤 느긋하게 포션을 한 입 들이켰다.

그리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벨럿에게 말했다.

“눈 감고 싸우는 것은 내 전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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